저자는 생물다양성의 불균형이 최근 바이러스와 관련된 각종 전염병들의 원인이라고 지적하는데, 독자인 내가 본문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은 뭐든지 적당한게 좋다는 말이었다. 적절한 균형을 잃은채 어느 한쪽으로 균형이 쏠릴경우 바이러스가 활동할 수 있는 커다란 무대가 형성되는 것이고 이는 가장 최근에 있었던 코로나19같은 팬데믹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좀 더 확장해 보자면 이러한 적절한 균형의 중요성은 비단 자연계 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관계된 다른 모든 분야들에도 적용해볼 수 있을 듯하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단순하지만 임팩트있는 문장이라고 느껴졌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는 말이었다. 얼핏 들으면 ‘이게 무슨 소리지?‘ 라고 반응할 수도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자연에는 어느 특정한 종류의 생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다양성이 그만큼 풍부한 것을 좋아한다 혹은 종의 스펙트럼이 넓은 것을 좋아한다 뭐 이런 의미로 보시면 될 듯 하다.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생태 엇박자라는 개념도 잠시 등장하는데, 이는 기존의 기후환경에 적응되어 있는 생물들이 최근 급속한 기후변화에 따라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면서 발생하는 종의 멸종 같은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현상들을 보면서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을 함께 연관지어 생각해보는 통섭의 지혜가 그 어느때보다도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바이러스에게는 지금이 블루오션이에요.

감염시킬 존재들이 주변에 너무 많아요. 그리고 늘 다닥다닥 붙어 있어요. 감염시키기 너무 좋아요.

우리 인간의 숫자가 확 줄어들지 않는 한, 아니면 우리가 기르는 가축의 수를 줄이지 않는 한, 또는 저 야생동물들이 사는 숲의 공간을 획기적으로 늘려주지 않는 한, 앞으로 이런 일은 자꾸 벌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 생물다양성의 불균형을 바로잡지 않는 한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누가 옮겼어요? 자동차가 옮겼고 사람이 옮겼습니다. 철새가 옮긴 게 아니잖아요.

누가 옮겼어요? 누가 옮겨 다녔어요? 비행기가 옮겨 다녔고 자동차가 옮겨 다녔고 사람이 옮겨 다녔고 사료가 옮겨 다녔습니다. 멧돼지가 옮겨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멧돼지를 죽이고 있습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우리가 가축을 기르는 방식이 문제잖아요. 우리는 그동안 알 잘 낳는 닭, 육질이 좋은 오리, 소를 만들어 내려고 수만 세대의 인위 선택을 해왔습니다. 좋은 형질만 남겨서 그것들끼리만 짝짓기 시켜왔습니다.

우리가 지금 기르고 있는 가축들은 거의 확실하게 복제동물 수준입니다. 유전자 다양성이 싹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한 마리만 걸려도 옆의 아이들이 계속 걸리는 겁니다. 게다가 우리는 평소에 이들에게 절대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다닥다닥 붙여서 공장식으로 사육합니다. 사회적 거리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니 한 놈만 걸려도 옆에 있는 놈이 그냥 걸리는 겁니다.

야생동물들은 좀처럼 대규모로 몰살당하지 않습니다. 면역력이 약한 몇몇이 죽는 거고, 그 빈 공간을 강한 자의 후손이 또 메우고 삽니다.

독감으로 일가족이 몰살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아빠, 엄마 두 분이 다른 집안에서 오셨잖아요.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분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함께 (독감에) 걸리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가 기르는 가축들은 똑같이 만들어놓고 다닥다닥 붙여 키우면서, 무슨 일 생기면 멀쩡한 애들까지 한꺼번에 몽땅 죽여버려야 하는 겁니까? 이건 아니라는 겁니다.

"Nature abhors pure stands."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

여기서 ‘순수‘라는 건 다양성이 쏙 빠져 그저 한두 개 남았으니까 그걸 순수하다고 하는, 약간의 빈정거림이 섞여있는 표현인 거죠.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 자연은 결코 순수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연은 시간을 두면 점점 더 다양화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알파, 베타, 델타, 오미크론, 변이가 계속 일어납니다. 바이러스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변신합니다. 자연은 원래 그런 곳입니다. 변이가 많이 생겨서 축적이 되면 새로운 종도 되는 거고요. 이게 자연입니다. 다양성이 중요합니다.

인간만 사라져주면 자연은 굉장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건데, 대체로 맞는 얘기입니다.

최상위권 포식자가 사라지면 자칫하면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는 수가 있다.

때로는 최상위포식자가 있어야 생태계 유지가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런 차원에서 보면 갑자기 인류가 사라졌을 때 과연 생태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만 갈 수 있을까?

"그것까지 우리가 걱정해야 합니까?"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지구의 미래까지는 걱정 안하셔도 좋습니다. 지구는 잘 지낼 겁니다."

전 세계의 아주 대단한 구조 조정을 통해 인구가 줄어들면 환경 문제도 저절로 좋아질 거예요. 모든 환경 문제가 궁극적으로 인구 문제니까.

우리나라의 절기라는 건 말하자면 어마어마한 빅데이터잖아요. 오랫동안 우리 조상님들이 날씨가 변하는 것에 맞춰 농사를 어떻게 준비하는지 축적해놓은 기가 막힌 빅데이터인데, 그게 지금 안 맞잖아요.

곤충은 몸집도 작고 생태계의 변화에 훨씬 민감해요.

생태 엇박자

곤충이 특별히 엇박자의 핵심에 들어있어요. 곤충들이 한창 번식할 때 다른 동물들도 거기에 번식기를 맞췄는데, 이게 안 맞아 떨어지니까 아주 치명적인 거죠.

혹시 우리 인류의 불행의 근원은, 끊임없이 다양화하는 자연 속에 살면서 끊임없이 다양성을 말살하다가 자초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에 있는 생물다양성을 말살하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고요.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문화 다양성을 말살하고 삽니다.

저는 그래서 어쩌면 생물다양성의 문제로 국한할 게 아니라 다양성의 문제 전반이 위기에 놓인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일반인들의 이른바 엔토모포비아 entomophobia, 즉 곤충을 싫어하는 것 때문에 곤충이 없어진다고 하니까 오히려 반기는 측면도 있어서 뉴스거리가 잘 안되는 것 같다고

숲에 벌레가 없어요. 제일 아래에 있는 식물이 빠지고, 그 바로 위의 곤충도 무서운 속도로 빠지고 있다는 거예요. 조만간 자연 생태계가 그냥 무너져 내리는 걸 우리가 보게 될 것 같은데, 그 순간이 지금 어디까지 와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곤충이 누굽니까? 동물계에서 맨 밑바닥을 떠받치고 있거든요. 곤충의 종수는 말할 것도 없고, 개체수가 엄청나게 줄어들면 그 곤충을 먹고 살아야 하는 작은 동물들이 차례로 사라진다는 겁니다. 작은 포유동물들, 새들이 지금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곤충의 경우에는 종 다양성만 없어진 게 아니고 풍부도도 없어졌어요. 바이오매스biomass, 즉 생물량 자체가 줄어버린 거예요. 종이 사라지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지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생물이 사라지는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적어도 다섯 번에 걸쳐 거대한 대멸종 사건이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이 지금으로부터 6천 5백만 년 전 거대한 운석이 멕시코 앞바다에 떨어져서 그게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공룡들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제5의 대멸종 사건이었습니다. 지금 저희들은 제6의 대멸종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전의 사건들은 전부 천재지변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화산이 터지고 운석이 떨어지고 지진이 일어난 겁니다. 지금 제6의 대절멸 사건은 비교적 조용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천재지변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지구의 막둥이 격으로 태어난 호모 사피엔스라는 한 종이 저지르는 장난질 때문에 생물다양성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다 끝나고 나면 지구 역사에서 가장 최대 규묘가 될 거라는 겁니다. 이건 아닙니다.

기후변화보다 생물다양성의 심각성을 알리는 건 참 힘들었어요.

프란체스코 교황님께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교황님이 2019년 11월에 ‘생태적 죄Ecological Sin‘를 인류의 원죄에 포함시킨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참 어마어마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걸 하느님이 창조하셨다. 그러면 이 세상 모든 건 하느님의 피조물이 아니겠느냐. 그런데 그 피조물들 중에서 어떤 하나가 자기(호모 사피엔스)가 힘이 좀 세다고, (중략) 하느님이 만드신 다른 피조물들을 마구 유린하며 죽이고 있는데, 하느님이 그걸 내려다보시면서 심히 흡족하다고 하실리가 있느냐.

어느 손가락 하나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건만, 다 하느님이 만드신 건데 그걸 어떤 한 놈이 망가뜨려버리면 하느님이 얼마나 후회하고 계시겠냐는 거예요.

내가 저놈만 만들지 않았어도, 저 호모 사피엔스만 만들지 않았어도 지금 이 모양 이 꼴은 아니었을텐데... 이게 원죄가 아니면 뭐가 원죄겠느냐.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의 문제, 그리고 이런 엄청난 팬데믹, 이런 걸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는 길은 자연을 보호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자연이 망가지기 시작하면 이런 일들은 끊임없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생명과학의 힘으로 지금 인류가 이 엄청난 재앙(코로나19) 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행동 백신behavior vaccine 과 생태 백신Eco-vaccine. 이건 실험실에서 만드는 백신이 아닙니다, 손 잘 씻고 마스크 잘 쓰고 거리두기 잘하면 행동으로 우리가 우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저는 행동 백신보다 더 좋은 백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태 백신. 자연계에서 그 나쁜 바이러스가 인간계로 건너오지 못하게 하면 되잖아요. 자연을 잘 보존하면 앞으로 이런 일은 안 벌어집니다. 이게 그렇게 힘든 일입니까?

제가 ‘자연 보호‘라는 표현을 생태 백신이라고 고치는 순간, 이제는 들으셔야 합니다. 이젠 동참하셔야 합니다. 왜? 백신은 구성원의 적어도 70 내지는 80퍼센트가 같이 맞아야 효력이 있거든요.

자연 보호를 저 혼자 하거나 제인 구달 박사님 혼자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저도 하고 여러분도 다 같이 해야 가능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자연 보호를 생태 백신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이젠 동참합시다. 자연과 우리의 관계를 재정립해서 원천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인류에게 주어진 전환은 생태적 전환 밖에 없습니다. 기술의 전환도 아니고, 정보의 전환도 아닙니다. 죽고사는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생태적 전환을 해야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현명한 인간이라는 자화자찬은 이제 집어 던지고 호모 심비우스 Homo symbious로서 다른 생명체들과 이 지구를 공유하겠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공생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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