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 마지막 부분에서 가방이나 신발에 있는 찍찍이velcro가 인간이 발명한 게 아니라 자연에 있는 식물이 개발해놓은 것을 인간이 베낀거라는 얘기가 나왔었는데, 이것과 관련하여 저자는 자연을 표절하는 건 합법이라며 자연에 있는 것을 언제든지 벤치마킹할 것을 독자들에게도 권한다.

이런 것들을 보면 일개 인간인 내가 이루 다 알 수는 없지만 인간이 자연에서 배울만한 가치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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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바꿔서 이번에는 몇 년전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얘기가 이어진다. 팬데믹의 정의부터해서 박쥐와 관련된 이야기도 나오고, 바이러스의 속성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최근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지구의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저자는 더이상 우리 후손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이 살고 있는 당대에도 얼마든지 기후관련 재앙이 닥칠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읽으면서 이 지구촌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환경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에 미칠 악영향을 알면서도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경우보다는, 무지해서 혹은 단지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환경을 신경쓰지 않는 경우가 많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환경에 대한 인식을 개선시킬 방안을 모색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좀 더 읽다보니 위에 언급한 기후변화가 생물다양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근데 이게 중요한 게 생물다양성이 감소할 경우 자연계의 먹이사슬 체계가 붕괴되면서 먹을 것이 감소하게 되어 인류의 생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이유로 자신이 있는 국립 생태원에서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을 연구의 커다란 두 축으로 삼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대다수의 일반인들이 알기도 힘든 이러한 것들을 연구하는 분들을 보면서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런 걸 어떻게 연구하나싶은 생각도 든다. 뭐 연구하시는 분들의 몫이긴 하지만 말이다.

표절은 불법입니다. 그런데 자연을 표절하는 건 합법입니다. 자연이 우리를 고소하지 않아요. 자연은 마구 베껴도 된다는 겁니다.

자연을 표절하는 것은 엄연한 발명입니다. 열심히 하십시오.

설계도가 있다면 이 세상의 흰개미 탑은 다 비슷하게 생겼겠죠. 그런데 설계도가 없이 서로 조율하면서 만들었기 때문에 결과물은 무지하게 다양합니다. 어쩌면 그게 흰개미들의 가장 기가 막힌 장점일지도 모릅니다.

그냥 각자 알아서 합니다.

잠언 6장 7절에서 8절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오죠.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개미나라에는 여왕 개미가 있지만, 여왕 개미는 현장에 나와 진두지휘하지 않습니다. 여왕개미는 그저 알을 낳을 뿐이죠. 그리고 여왕 물질이라는 걸 분비해서 개미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만 할 뿐, 직접 나와서 "이쪽으로 잡아당겨, 저쪽으로 밀어" 이런 걸 안 하거든요.

여왕개미는 굴의 중앙쯤에 앉아서 알 낳는 일에만 전념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개미 사회의 작업 현장에는 리더가 없습니다. 흰개미 사회의 작업 현장에도 리더가 없습니다. 없는데도 저렇게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겁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셀프 오거니제이션Self-organization, 쉽게 얘기하면 일개미 한 마리 한 마리가 각자 알아서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답입니다. 십몇 년 연구해서 꺼내놓은 대답이 결국은 각자 알아서 한다는 겁니다.

자가 조직의 원리라고 경영학에서는 얘기하잖아요. 각자 알아서 하는 겁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일을 시켜서 합니다. 그런데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문제를 찾아서 각자 그리고 함께 푼다는 겁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지도 않으면서 왜 그렇게 억지 평등을 자꾸 주장하는지 몰라요. 기회의 평등을 주장해야 하는데, 엉뚱한 평등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어요.

다섯 분이 캠핑에 가셨어요. 우리 알아서 하지 않나요.

우리는 기가 막히게 분업을 잘하는 동물입니다. 알아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합니다. 그걸 개미도 할 줄 알고 흰 개미도 할 줄 알고 벌도 할 줄 안다는 겁니다. 자기가 할 일을 찾아서 남이 하는 일과 조율하는 겁니다.

몇 사람이 모여 앉아서 어떻게 풀면 될까 고민하는 거죠. 알아서 횡적으로. 그걸 레터럴 리더십lateral leadership 이라고 하는데요. 그런 데서 오히려 창의성이 발휘된다는 겁니다.

"자연에 널려 있는 아이디어들은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자연 선택의 혹독한 검증을 거쳤으며, 더욱 신나는 것은 거저라는 점이다."

솔직히 우리가 사는 삶의 대부분이 아이디어를 내놓는 일이에요.

다윈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자연에 있는 아이디어들은 수천만년의 자연선택이라는 혹독한 검증을 이미 다 거쳤다는 겁니다. 검증에서 실패한 놈들은 다 멸종했어요. 그래서 안 보여요.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 까치, 은행나무, 개미들은 다 그 혹독한 검증을 거친 것들 입니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나, 그들이 뭘 갖고 있나를 들여다보고 그걸 가져다가, 그냥 주워다가 우리 입맛에 맞게 조금만 각색하면 그 아이디어가 여러분이 애써 짜낸 아이디어보다 대부분 훨씬 탁월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자연에 있는 아이디어를 베끼자는 겁니다. 자연에 있는 아이디어를 표절하자는 겁니다. 자연에 있는 아이디어를 제가 주워 갔다고 해서 자연이 제게 "내 걸 가져 갔으면 돈을 내야 할 것 아니야" 그런 소리 안 합니다. 거저입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일일 것 같아요.

자연을 주의깊게 관찰하다보면 베낄 게 한두 개가 아닐 겁니다.

자연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잘 들여다보고 자연과 함께 사는 방법을, 자연에 순응해서 그 친구들처럼 우리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 이게 바로 의생학입니다.

생물학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바이러스라는 존재는 생물도 아닙니다. 혼자서 생명현상을 이루어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보면 유전자 쪼가리거든요.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어디 묻어 있다가 다른 세포 안으로 파고 들어가서 그 세포의 유전체 안에 끼어 앉아서는 그놈이 복제할 때 은근슬쩍 같이 복제되는, 되게 수동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놈입니다.

지구상에 사는 포유동물 전체 종수의 절반이 쥐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의 절반이 박쥐입니다. 지구에 사는 포유동물의 넷 중 하나가 박쥐이다 보니까 박쥐로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 확률이 높은 것뿐입니다. 박쥐가 특별히 나쁜 동물이라서 그런 게 아니고요.

모름지기 모든 생물은 면역계라는 시스템을 진화시켰습니다. 그렇겠죠. 생물로 살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이물질을 아무 거름 장치 없이 들어오게 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만약 면역계의 민감도를 가지고 생물들을 줄 세운다고 하면, 저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금메달을 따지 않을까 싶어요. 이렇게 까지 예민한 동물을 저는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예민하면 ‘자가 면역 질환‘ 이라는 것까지 있겠어요. 에이즈도 그런 병이고요.

우리가 지나치게 예민한 면역 시스템을 갖고 있다 보니까, 내가 내 몸에게도 반응을 잘못해서 시작된다는 거죠.

세계면역학회지의 논문을 읽어보니, 박쥐는 우리 인간에 비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물질을 인식하고 방어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의 개수가 훨씬 적답니다. 무슨 얘기 입니까? 우리만큼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거죠. 우리보다 훨씬 느슨한 방역 체계를 가졌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박쥐는 모르는 거예요. 바이러스가 자기 몸에 들어와있는지도 모르고, 별 영향을 받지 않으니 그냥 날아다니면서 여러 동물에게 옮겨주는 겁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박쥐는 기본적으로 열대에 사는 포유동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박쥐 한마리가 대체로 코로나바이러스 두세 종류 정도를 갖고 다녀요.

코로나19 팬데믹의 배후에는 기후변화가 있습니다. 물론, 기후변화만 이런 문제를 일으킨 건 아닙니다. 저는 기후변화 외에도 생물다양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적으로 터지는 유행병을 저희가 에피데믹epidemic 이라고 부르고, 이게 전 세계적으로 번지면 팬데믹 pandemic이라고 하죠.

병원체라는 건 이런 겁니다. 더 이상 감염시키지 못하면 못 죽이는 겁니다.

바이러스나 병원체는 절대 우리를 깡그리 죽이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다릅니다.

어쩌면 기후변화는 우리 인간을 마지막 한 사람까지 완벽하게 이 지구에서 쓸어버릴 어마어마하게 위험한 재앙입니다.

어쩌면 뒤에 오는 더 큰 적을 대비하기 위해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잘 사는 나라들이 너무 방만하게 편안한 생활을 하려고 자동차 많이 타고 에어컨 많이 틀고 난방 많이 하다보니까, 온실 기체가 대기권으로 너무 많이 빠져나와서 지구의 온도를 올려주고 있는 겁니다.

이제는 재앙의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잘살고 못사는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그나마 구축해놓은 이런 시스템들이 지구의 기후변화 때문에 쏟아지는 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가는 겁니다. 이젠 모두 같이 당하는 겁니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의 문제, 이 두 문제를 확실하게 챙기지 않으면 앞으로 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저희 생물학자들의 걱정은 이번 세기가 끝나기 전에 지구의 생물다양성 절반정도가 사라질 것 같다는 겁니다.

지구의 동식물 절반이 사라질 때 과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저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마어마한 식량대란이 일어날 겁니다. 기름이 좀 부족한 건 나무 때면 될지 모르지만, 먹을 게 없으면 그때는 아비규환이거든요.

생물다양성의 문제가 훨씬 더 시급하고 훨씬 더 직접적으로 우리를 옥죌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자연계의 다양성이 일단 확보되면 그게 유지되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다양하기 때문에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고, 그러다보면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습니다.

자연 생태계라는 곳은 먹이사슬로 연결된 하나의 네트워크입니다.

우리가 뿌린 대로 거두는 겁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농사를 지을 때 이렇게까지 생물다양성을 완벽하게 말살하고 짓지 않았어도 된다는 겁니다.

간작, 혼작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우리는 싹 밀어내고 한 가지로만 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한 겁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우리가 지금 환경을 어마어마하게 파괴하고 그 악순환의 쳇바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생물다양성은 이렇게 중요한 이슈입니다. 우리의 삶과 아주 직결된 대단히 중요한 이슈입니다.

저는 생물다양성의 문제가 우리가 더 초점을 맞춰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팬데믹도 결국은 생물다양성의 문제입니다.

DNA연구를 해보면 개를 기르기 시작한 건 4만 년 정도 전이고, 고양이는 3만 3천 년 전쯤 됩니다. 농경을 하기 (1만년) 전에도 우리는 개, 고양이를 데리고 살았다는 겁니다.

지난 1만 년 동안 우리는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 로봇혁명, 별의별혁명을 다 일으키더니 완전히 지구를 뒤덮었습니다.

생물다양성의 불균형이 너무나 극심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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