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에서 팬옵티콘 그리고 개선문을 중심으로 한 파리의 도시 구조를 살펴보았었는데,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다. 읽으면서 팬옵티콘이든 개선문이든 펜트하우스든 대상만 다를 뿐 본질은 동일한 것처럼 느껴졌다. 핵심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는 것이 일종의 권력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와 관련된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뒤이어 모텔과 호텔을 비교하는 내용도 있는데 두 시설의 특성에 따라 창문의 크기가 결정된다는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참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다. 둘 다 사람들이 숙박하는 시설이지만 좀 더 파고 들어가면 그 시설을 이용하려는 목적이 약간은 다름을 느낄 수 있는데, 이러한 목적의 차이가 창문의 크기에도 영향을 주는 것을 보며 건축물이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 숨어있는 의미들을 알 수 있어서 흥미롭게 읽혔다.

또한 면적과 체적이라는 개념도 비교해서 나오는데, 면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많이들 알고 있지만 체적은 약간 생소할 수도 있는 개념이다. 체적은 기존의 가로 × 세로 인 면적에 높이라는 요소를 추가한 개념이다. 일종의 부피같은 개념으로 생각해보면 이해가 좀 더 수월할듯 하다. 면적이 2차원이라면 체적은 3차원인 것이다.

저자는 체적이라는 개념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면서 건축물의 가치를 단순히 면적의 크기로만 판단하기보다는 해당 면적에 함께 있는 높이까지 고려한 체적의 크기로 판단하는 것이 좀 더 건축물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독자인 나는 처음에는 체적이라는 용어가 낯설었는데 저자의 친절한 설명과 각종 예시들을 통해 체적이라는 개념을 알게 됨과 함께 건축물의 가치를 좀 더 잘 볼 수 있는 눈이 생긴 것 같아서 왠지모를 뿌듯함마저 느껴졌다.

뒤이어 여러가지 내용들이 나오는데 p.107에서 ‘도시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는 얘기가 와닿게 느껴졌다. 이 책에 직접적으로 나온 표현은 아니지만 독자인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도시에도 ‘기승전결‘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자도 이어지는 문장에 서술해놓았듯이 이는 마치 우리 인간의 생애와도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하나의 도시가 탄생하고 성장하고 전성기를 맞다가 서서히 쇠퇴하는 이 흐름은 어느 도시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인것처럼 느껴졌다. 또한 이러한 원칙은 도시 뿐만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건축물, 사람 같은 도시를 이루는 모든 요소들에도 적용되는듯 하다. 이런 걸 생각해보면 사람이든 건축물이든 혹은 도시든 관계없이 생김새는 각자 다 달라도 그 안을 관통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흐름(?) 혹은 생애주기(?)는 모두 동일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일종의 보이지 않는 진리(?)같은 거라고나 할까.




펜트하우스는 부자들이 권력을 갖는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 구조를 확실히 보여주는 주거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볼 수 있는 사람은 권력을 갖게 되고, 보지 못하고 보이기만 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지배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 P77

우리는 이렇듯 남이 자신을 보지 못하면서 동시에 나는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상황을 즐기기도 한다. 다른 말로 관음증 혹은 보이어리즘(Voyeurism)이라고 하는데, 관음증이라고 하면 보통 변태성욕 중 하나를 지칭하는 것으로 알지만 실상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이 같은 관음증이 넘쳐난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우리가 자주 가는 영화관이다. 영화관은 어두운 곳에서 화면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생활과 이야기를 훔쳐보는 것이다. 일종의 관음증이다. - P77

연극 극장 같은 경우에는 더욱 확실하다. 배우들은 관객이 있는 줄 알면서도 없는 ‘척‘하면서 연기를 한다. 배우가 관객에게 돈을 받고 일정 시간 동안 권력을 이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P77

이러한 행위들은 인터넷에서 극치에 달한다. 웹서핑을 하고, 다른 사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고, 익명으로 댓글을 다는 행위는 보이어리즘이 팽배한 현대 사회의 단면을 보여 준다. 게다가 때로는 악플로 개인이나 사회에 대해서 밴덜리즘(vandalism)을 하기도 한다. - P78

밴덜리즘: 문화재나 예술품 또는 공공장소에 낙서를 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뜻한다. - P386

다른 집을 다 내려다보는 옥탑방의 가격이 싼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공간의 권력이라는 것은 그렇게 시각적인 관계성만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는 아닌 것을 알수 있다. - P78

옥탑방의 가격이 펜트하우스와 다른 이유를 찾는다면 보안상의 문제와 연관시켜서 볼 수 있을 것이다. - P78

수공간(水空間)은 확연히 다른 공간으로 건너갈 때 쓰는 건축적 장치이다. - P79

누군가를 볼 수 있는 자유를 갖는 것은 그 만큼 권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 P80

자금성의 여러 겹의 담장처럼 보안상의 단계가 많을수록 안쪽 공간은 더 많은 권력을 가진 공간이 된다. - P80

클럽의 경우 그 선은 단순히 입장료만 낸다고 해서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젊음과 외모로 판가름 난다. 우리가 유명 클럽에 들어가는 이유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공간에 들어갔을 때 통과한 사람은 자신이 차별화된 권력을 가졌다는 것을 확인받는 것이다. 클럽 주인은 그런 달콤한 경험을 파는 것이다. - P82

공간에 들어가는게 쉽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공간이 아니라는 뜻이며, 동시에 권력을 가진 공간도 아니라는 것이다. - P82

공간의 디자인은 권력의 창출 및 재분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따라서 건축가들이 도시 구조를 디자인하고 건물을 디자인하는 것은 향후 수백년간의 권력 구조를 구성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 P82

감시는 때로는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 P83

공간 디자인을 잘하면 흉측한 CCTV 설치 없이도 안전한 도시를 만들 수 있다. - P83

감시자의 눈이 있다는 점은 공공 공간에서 사생활에 침해를 받는다는 단점도 있지만, 장소를 안전하게 만드는 장점도 있다. - P83

근린생활시설과 학교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상생할수 있는 관계이다. - P86

바라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에는 이와 같은 권력과 보안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건축적 장치에서는 창문이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을 결정짓는 장치이다. 하지만 단순히 창문이 모두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모텔과 호텔은 둘 다 창문이 필요하지만 창문의 크기에 따라서 미묘하게 건축적 의미가 나누어진다. - P86

일반 호텔에는 각종 레스토랑과 카페 같은 부대시설이 많은 반면, 모텔에는 그러한 부대시설이 없다. 이는 호텔은 서로 얼굴을 대면해도 되는 공간이나 모텔에 입장하는 손님들은 자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기 싫다는 생각이 설계에 반영된 것이다. - P87

모텔과 호텔은 이 같은 부대시설 유무의 차이도 있지만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을 꼽는다면 창문의 크기일 것이다. 모텔은 바깥세상과 건물 내부를 완전히 차단한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환기의 목적 이외에는 창문이 필요 없다. 이 공간은 항상 밤이기를 원하는 공간이다. 외부 공간을 거의 다 차단하는 곳이 모텔이라면, 반대로 호텔에서는 바깥 경치를 보기 원한다. 그리고 보이기를 원한다. - P87

건축에서 창문은 건축물의 안과 밖을 연결해 주는 소통의 요소이자 ‘바라본다‘는 권력을 조절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 P87

리차드 마이어는 호화 주택과 박물관 설계로 유명한 현대 건축의 대가이다. - P89

호텔이나 고가의 아파트는 유리창이 큰 반면 모텔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항상 비밀스럽고 보여 주기 싫다는 것이다. - P89

창문은 건축물의 기능과 사회적·심리적인 요구에 따라서 외부와 내부의 관계를 조절하여 공간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건축 요소이다. - P89

요즘같이 에너지가 귀한 시절일수록 체적이 넓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한 크기의 3차원 공간의 환경을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는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 같다. - P90

‘평‘이든 ‘제곱미터든 이들은 모두 평면의 면적을 측정하는 단위다. 하지만 천장의 높이까지 계산된 체적을 알려 주는치수는 아니다. - P90

자신이 소유한 공간은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이다. 더 큰 체적의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신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적인 해석을 한다면 더 큰 공간을 소비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 P90

우리는 흔히 얼마나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사람인가로 그 사람의 권력을 측정한다. 회사 내에서 회장님이 혼자서도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이유가 그것이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도 큰 평형대에 사는 분들이 더 권력을 가진 사람처럼 느껴지는 이유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면적이 아니라 체적으로 그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 P93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정확하게 우리가 소비하는 공간을 평가하려면 우리가 사는 집들도 이제 체적으로 계산해서 팔아야 한다. - P93

건축은 사회, 경제, 역사, 기술의 산물이며 도시는 살아 움직인다. 이 명제를 뉴욕의 로프트(Loft)처럼 잘 보여 주는 건축 형태도 없다. 로프트의 사전적인 정의를 찾아보면 ‘예전의 공장 등을 개조한 아파트‘라고 되어있다. 이 사전적 정의는 단순하게 결과만 설명하는데, 그 과정을 살펴보면 재미난 이야기가 나온다. - P97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듯이 ‘은행가 사람이 모이면 예술 이야기를 하고, 예술가들이 모이면 돈 이야기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 P99

뉴욕시에서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 싶으면 설계사무소가 밀집된 지역의 건물을 사면 된다.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설계사무소들은 단위면적당 벌어들이는 돈이 적기 때문에 임대료가 싼 지역으로 모인다. 소호 지역이 그러했다. - P99

플로터 : plotter, 출력 결과를 종이나 필름의 평면에 표나 그림으로 나타내는 출력장치. 주로 대형 인쇄에 쓴다. - P386

건축사무실들이 들어서고 나서 20년가량 있으면서 주변의 상업 시설들이 활성화된다. 멋을 아는 건축가들이 가는 식당이나 카페의 인테리어는 일반적인 곳과는 다르게 만들어진다. 자연스레 차별화된 멋스런 상업 지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때쯤 되면 일반적인 뉴욕의 10~20년 장기 임대 계약이 끝나고 이 자리에 IT회사들이 들어오게 되는 것이 뉴욕 부동산의 패턴이다. 이때가 되면 계절이 바뀌면 이동하는 철새처럼 건축 사무실이나 예술가들은 다른 지역을 찾아 이동한다. 그리고 그 지역은 한 20년 후에 뉴욕에서 가장 ‘핫‘한 지역이 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가 서울의 홍대 앞일 것이다. - P100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 싶다면 이제 홍대 앞에서 쫓겨난 예술가들과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쫓겨나는 건축가들이 가는 지역이 어디인지 알아봐야 할 시점이다. - P100

약간의 비호감적인 컨디션이 연출되면 부정적인 변화는 가속도가 붙어서 더욱 급속하게 나빠지게 된다 (중략) 이것이 깨진 유리창의 법칙 - P101

작은 발명품 하나가 도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 P102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새로운 발명품은 인간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냈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은 새로운 건축과 도시를 만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기차의 발명은 기차역을 만들었고, 비행기의 발명은 공항을 만들었고, 자동차의 발명은 주유소와 고속도로와 주차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건축물들은 도시의 모습을 바꾸었다. - P102

냉장고가 발명되기 이전에 사람들은 오랫동안 음식을 보관할 수 없었기에 식재료를 조금씩 사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생산지에서 도시까지 오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기에 식료품점에서 집으로 가져가서 음식이 상하기 전에 먹으려면 서둘러야 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 주변에 모여서 살아야 했다. - P104

뉴욕시는 할렘의 버려진 건물들을 한 채당 1달러에 100년을 임대해 주는 조건으로 개발업자들에게 장기 임대를 주었다. 물론 시로서는 슬럼가가 개발이 되면 세금이 들어오고 치안이 좋아지기 때문에 거저 주어도 남는 장사가 된다. - P105

거의 공짜에 임대를 하게 된 회사는 먼저 하나의 거리 전체를 한 번에 개발하게 된다. 거리가 전체적으로 개발되지 않고 한두 채만 개발될 경우에는 사람들이 ‘깨진 유리창의 법칙‘ 때문에 이사를 오지 않는다. - P105

도시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태어나서, 성장하고, 전성기를 지낸 후, 쇠퇴하고, 마지막으로 죽는다. 도시의 여러 부분도 태어나서, 성장하고, 나중에는 죽는다. 죽음이 생명의 일부이듯이 도시가 오래되면 일부분이 슬럼화되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죽은 부분에 다시 새로운 생명이 돋아나도록 유도하는 것이 도시를 재생시키는 건축가의 역할이다. 소호와 할렘은 이러한 도시 재생의 사례를 보여 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P107

보통 변화하는 환경에 건축이 적응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환골탈태의 방식으로 기존의 건축물들을 모두 철거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재개발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 즐겨 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기존의 건축물을 되도록 유지하면서 재생하는 방식이다. 후자의 경우를 도시 재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재생이라는 말에서 보이듯이 도시 재생은 기존의 건물을 다시 사용하는 것이다. 하드웨어를 유지한 상태에서 건축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가 업데이트 되어야 한다. - P108

중정형 : 가운데에 정원이 있고 주변으로 방이 위치한 형식의 평면 구성을 뜻한다. - P386

법규 같은 외부적인 요인으로 하드웨어인 한옥을 교체할 수 없게 되자,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는 용도를 변경하여 건축물이 생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P108

대부분의 경우 고가도로는 지상 층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이로 인해서 거리를 어둡게 하여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싶지 않게 만든다. 거리에 사람이 없으면 상점이 없어지게 되고, 상점이 없으면 도시는 죽는다. - P110

도시가 고밀화, 고층화되면 지면은 점점 건물에 묻히게 된다. 건물 옥상과 지면이 멀어질수록 건물의 길어진 그림자 때문에 지상은 더 어두워지는데, 건물에 바짝 붙어서 위치한 인도는 가운데를 차지한 차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더 어두워지게 마련이다. - P111

고가도로는 기본적으로 지상층을 죽이는 괴물 - P111

일단 뉴욕은 엄밀히 말하면 단순한 격자형은 아니다. 격자형이되 가로는 길고 세로는 짧은 형태의 격자형이다. 가로로 형성된 길은 스트리트이고 세로로 난 길은 에버뉴(avenue)로 명명되어 있다. - P112

소요되는 시간이 약 네 배가 길다는 이야기는 네 배가 더 지루하다는 이야기로 풀이될 수 있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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