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는 불순물이 들어가면 색상을 띤다. 예를 들어 철분 성분이 많아지면 녹색 유리가 된다. 중세 시대의 기술력으로는 투명한 판유리를 만들 수 없었고, 다양한 색상의 작은 유리 조각들을 밀랍으로 연결해 유리창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스테인드글라스로 발전했다. 이때 유리에 그림을 그려 화려하게 채색하였다. - P252
인간은 주광성 동물이기 때문에 우리 삶에 빛은 필수적이다. 건축물의 실내 공간에 빛을 들이는 기능은 창문이 한다. - P253
창호지 창문은 문을 닫은 상태에서는 바깥 경치를 볼 수 없지만 종이를 통해 빛은 투과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추운 날씨에 문을 닫고 있어도 햇빛이 방에 들어오게 하여 밝은 실내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창호지 창은 혁신적인 발명품이었다. - P254
르네상스 이후에 유럽에서 판유리가 보급되면서 유리 창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유리는 귀한 건축 재료였기 때문에 돈이 많은 귀족들도 사용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국가는 세금 징수의 한 방법으로 창문을 이용하기도 했다. - P255
유리창은 제작하기 비싸기 때문에 집에 창문이 많으면 부자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 P255
창문세를 시행하던 시기에는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창문을 없애고 벽으로 만드는 일도 생겨났다. 창문이 없으니 채광과 통풍이 안 되어 위생이 나빠지고 전염병이 돌기도했다. 또한 시민들은 햇볕을 받지 못해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 P255
창문에 유리가 본격적으로 대량 도입된 것은 근대 산업혁명 이후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다양한 물건이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도시로 모여들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도시에 거주하였고 공산품은 대량생산되었다. 공장에서 양산된 물건들은 팔려야 했다. 그래서 생겨난 건축 장치가 ‘쇼윈도‘다. - P255
인도는 자동차 도로보다 20센티미터 가량 높다. 이 높이는 일반적으로 직경 50센티미터 정도의 바퀴를 가진 자동차가 쉽게 올라가지 못할 정도의 높이다. 인도가 20센티보다 더 높으면 자동차 문을 열 때도 불편하고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갈 때에도 계단이 하나 더 필요해지기 때문에 20센티 정도가 적당했다. - P256
사람들은 건물에 가깝게 붙은 인도 위를 줄지어 걷기 시작했고, 상점들은 인도 위를 걷는 사람들에게 가게 안의 물건을 잘 보여 주기 위해 1층 벽면을 최대한 투명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유리창을 크게 키운 쇼윈도다. - P257
유리창은 보통 투명하기만 하다고 생각하지만, 유리창은 투명한 동시에 무언가를 비추는 효과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리를 걷다가 쇼윈도 너머의 물건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유리창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도 자주 쳐다본다. 일종의 나르시시즘을 유발하는 건축 재료가 유리창이다. - P257
에너지 측면에서 유리창은 에너지 소비의 주범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유리창으로 열이 모두 빠져나가 단열이 안 되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판유리 사이에 아르곤가스를 넣은 복층 유리가 나와서 단열이 크게 향상되었다. - P257
과거 전도를 통한 열 손실이 많았던 알루미늄새시 창틀 역시 창의 바깥쪽 창틀과 안쪽 창틀을 분리시키고 그 사이에 열 절연재인 고무 재료를 넣은 방식으로 디자인되어 단열성이 극대화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은 겨울철의 열 손실보다는 여름철의 온실효과가 유리창의 더 큰 문제다. - P257
필자가 주장하는 법칙 중에 ‘3차선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이 법칙은 차도가 3차선 이하인 경우에는 보행자의 흐름이 이어지지만 4차선보다 넓으면 단절된다는 것이다. 좋은 예가 홍대 앞이다. - P261
3차선 이하의 도로가 블록 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3차선 도로는 무단 횡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단 횡단이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길 건너편을 그냥 건너갈 만큼 가깝게 느낀다는 것을 뜻한다. 교통법규상으로는 문제가 되지만 보행자 중심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단 횡단이 가능한 폭의 길들이 만들어져야한다. 그것이 보행 친화적 도시를 만드는 방법이다. - P263
의미 있는 건축물보존을 통해 도시의 역사를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런 건축물들이 우리로 하여금 과거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최신 유행곡을 듣는 것도 좋지만 가끔씩 옛 추억의 노래를 들을 때 좋은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P264
실제 삶에서는 어린 것을 추구하지만 관광할 때는 오래된 것을 찾는다. 그이유는 고색창연한 건축물을 보면서 그것을 만든 천 년의 역사와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 P264
도시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 당연히 오래된 것들은 없어지고 새로운 세포가 생겨나야 한다. 하지만 어느 것이나 적당해야 한다. 시간이 흘러서 나이를 먹으면 적어도 얼굴에 주름이라는 것은 남겨 두어야 한다. - P265
지금 40년 된 건물 중에 좋은 건물들을 남겨 놓으면 백 년 후에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남대문 같은 문화재가 될 수 있다. 그 건물들은 아름답게 나이 든 오드리 헵번의 주름 같은 것이다. 지금같이 눈앞의 개발이익 때문에 모두 부수고 새로 지으면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 문화재는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이래서는 가짜 에펠탑이 있는 디즈니랜드는 만들 수 있어도 파리같은 도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 P265
도시를 만드는 것은 때로는 지워야 하고 때로는 보존해야 하는 어려운 의사 결정의 과정이다. 마치 제대로 된 나무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중한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P269
공장 건물은 기계가 들어가야 해서 기둥간격이 넓고 천장고가 높다. 따라서 다른 용도로 리모델링해서 쓸 때 공간을 나눈 벽이 없기 때문에 용도 변경이 쉽다. 새로운 입주자는 적은 인테리어 비용으로도 필요한 용도에 맞게 변경해 쓸 수 있는 것이다. - P271
벽식 구조는 처음에 지을 때에는 기둥이 없기 때문에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보면 다른 용도로 쓰려고 할 때 구조 벽은 철거와 변형이 어려워서 건물을 완전히 철거하고 다시 지어야 한다. - P271
건물을 오랫동안 쓰고 싶다면 기둥식 구조로 지어야 한다. 그게 친환경 건축이다. - P271
브로드웨이가 대각선인 이유는 인디언들이 다니던 길을 보존해서다. - P273
도시와 건축에는 적절한 변화와 도전이 필요하다. - P276
작금의 건축적 제약은 더 재미나고 창의적인 건축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보고 싶다. 제약은 획일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 P279
도시는 유기체에 비유된다. 따라서 궁합이 안 맞는 요소들이 만나면 문제를 일으키고 잘 만나면 상승 효과를 얻게 되어 전체 도시에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 P283
강남과 같은 방식으로 개발하고 강남처럼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정우성 같은 얼굴로 성형수술하고 정우성 같은 연예인이 되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후발 연예인 지망생은 정우성처럼 되기 위해 정우성처럼 성형수술을 하면 안 되고 박서준이나 정해인 같은 개성 있는 자신만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그 시대를 대표하는 연기자가 될 수 있다. 강남처럼 개발하고는 강남이 문제고 없어져야 된다는 논리는 정우성처럼 수술하고 나서 정우성에게 은퇴를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P294
짝퉁이 만들어지면 진품의 가치만 올라갈 뿐이다. 후발 주자는 자신만의 개성 있는 개발을 해야 한다. - P294
후발 주자일수록 나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 P294
진주는 진주다운 도시가 되고, 속초는 속초다운 도시가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앞선 지역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 개발, 그것이 진정한 지방자치고 지역 균형 개발이다. - P294
강남의 건축적 문제는 점점 더 폐쇄적으로 변해 간다는 것이다. 강남은 그곳에 살지 않는 사람도 공짜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공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 P295
위아래가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위아래가 바뀔 수 있는 평화적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 P296
평화적 시스템이 없어지면 폭력적 방법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평화적 사다리가 없고 폭력적 방법 외에 별다른 선택권이 없는 세상에서는 폭력이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 폭력적댓글과 시위를 비판하려면 평화적 사다리가 있어야 한다. - P296
"현명한 자는 다리를 놓고, 어리석은 자는 벽을 쌓는다" - P297
다리는 건축에서 나누어진 공간을 연결하는 건축 요소다. 다리를 짓는다는 것은 이웃과의 소통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하지만 우리는 최근 안타깝게도 다리를 건설하기보다는 벽을 더 세우고 있다. - P297
돌궐의 명장 톤유쿠크는 "성을 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만드는 자는 흥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소통하는 자가 발전하고 성장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 P297
우리는 우리의 도시를 더욱 소통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웃 지역과 걷고 싶은 거리로 연결될 때 지역 간 경계는 모호해지고 격차는 줄어들 것이다. - P298
우리나라 건축 역사를 결정적으로 나눈 기점은 무엇일까? 필자는 ‘보일러‘라고 생각한다. 보일러는 우리 사회를 근대화시킨 주역이다. - P301
건축에서 봄, 여름, 가을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겨울이다. 겨울을 어떻게 나느냐가 그 나라 건축의 특징을 가른다. 겨울의 추위를 건축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 P302
우리는 추위를 온돌로 해결했다. 불을 피워서 돌과 진흙으로 만들어진 구들장을 데우는 방식이다. 근대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최고의 난방 시스템이라고 극찬한 방식이다. - P302
문제는 온돌을 사용하면 2층 건물을 짓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2층짜리 주거 양식이 없었다. 서재나 관공서같이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경우에는 2층 건물로 짓기도 했지만 주택은 모두 단층이었다. 그렇게 수천 년을 지내 오다가 근대에 보일러가 도입되면서 큰 변화가 왔다. 파이프를 통해 더운물을 위층으로 올릴 수 있게 되면서 2층 이상의 집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 P302
물론 보일러가 우리나라의 경제를 근대화시켰다고 말하면 경제학자나 정치학자들은 웃기는 소리 한다고 할 것이다. 맞다. 근대화는 여러 가지 방향에서 온다. 하지만 보일러같이 새로이 발명된 물건이 기폭제가 되거나 영향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인류의 발전과 진화에서 물건의 영향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 P303
이 같은 생각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인간은 사물과의 동맹을 통해서 진화하고 발전한다고 보는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NT)‘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이 학자들의 생각은 예를 들어 사무라이가 권력을 가지고 주변을정복하는 것은 사무라이라는 인간이 날이 잘 드는 칼과 빠르게 달릴수 있는 말을 잘 다루어서라는 것이다. 인간이 말과 칼과 동맹을 맺어서 사무라이가 되고, 그 사무라이는 농사만 짓는 다른 사람들보다 권력을 더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식의 생각이다. - P303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에 따르면, 보일러는 근대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맹을 맺은 기계인 것이다. - P304
2층부터 12층까지 난방을 하려면 일단 12층짜리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재료와 구조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철근콘크리트와 철골구조가 그 역할을 맡았다. 우리는 이처럼 철근콘크리트와 철골구조, 그리고 보일러에 의해서 그야말로 공중에 ‘부富‘를 창조할 수 있었다. 이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될 수 있었다. - P304
고층 건물을 짓고 그 안에서 살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도시의 가장 큰 특징인 ‘시너지 효과‘를 얻올 수 있었다. 인류 문명에서 도시가 형성되면서 비로소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서 생각을 교류하고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경제가 구축되었던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비로소 도시에서 신분을 벗어난 생각의 교류가 생겨났다. - P304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자 정부에서는 세금을 걷어서 미술관, 음악당 같은 예술 시설도 지어서 공급했다. 어느 도시에 가나 볼 수 있는 시립 미술관이나 시립 음악당은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가능해진 건축양식이다. - P305
인구가 줄고 빈집이 많아지게 되면 인구밀도가 떨어지고 학교, 관공서, 미술관, 경찰서 같은 공공시설을 유지할 돈이 부족해진다. - P305
결국 어느 정도 이상의 인구밀도가 갖추어져야 우리가 누려 왔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 시스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 P306
20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우리 시대의 두 번째 빅뱅이 일어났는데, 바로 인터넷 빅뱅이다. 알다시피 인터넷은 컴퓨터와 컴퓨터를 연결해서 만든 네트워크일 뿐이다. 그저 개별적인 컴퓨터를 연결했을 뿐인데 새로운 ‘인터넷 공간‘ 이 만들어졌다. 이는 개체 간 연결이 이루어지면 새로운 무언가가 창조된다는 원리를 잘 보여 준다. - P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