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해비타트 67(Habirat 67)‘은 그리스 산토리니섬 언덕에 있는 마을을 옮겨놓은 듯한 작품이다. - P365
위에서 지붕이 막지 않고 아랫집의 옥상을 바닥으로 사용하는 것은 베란다고, 테라스는 건물의 1층에 있는 데크 같은 공간을 말한다. - P367
우리나라 아파트의 매달린 툇마루 같은 것은 발코니라고 부른다. - P367
건축 법규상 발코니로 인정되어 용적률 계산에 안 들어가게 하려면 폭이 1.5미터가 넘으면 안 된다. - P367
사람은 자신만의 개성을 가질 때 자존감을 가질 수 있다. 모두 비슷하게 생긴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자존감도 없앤다. 모든 집의 모양이 똑같다 보니 자신만의 가치가 없고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자신의 집의 가치를 집값으로만 본다. 획일화되면 가치관이 정량화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집값, 성적, 연봉, 키, 체중 같은 정량화된 지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데는 획일화된 아파트가 한몫했다. 그런데 몬트리올 ‘해비타트 67‘은 각 세대가 다양한 형태를 가지며 주변의 집들과도 다채로운 관계를 맺는다. 베란다는 내 개성에 맞게 꾸미면서 공간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다. 그만큼 거주자는 자신만의 개성과 가치를 찾을 수 있고, 이는 곧 자존감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 P369
158세대가 각기 다른 모양처럼 보이는 ‘해비타트 67의 세대 타입은 겨우 열다섯 개다. 몇 개 안 되는 평면 타입으로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모습의 풍경을 만들었을까? 그것은 각 세대를 쌓는 방식을 조금씩 다르게 했기 때문이다. 마치 레고 블록 한 개의 크기나 모양은 몇 종류가 안 되지만 쌓아 올리는 방식을 다르게 해서 다양한 형태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인간의 유전자도 염기의 종류는 A, G, C, T 네 가지뿐이지만, 그 조합에 따라 무한대의 다양한 생명체 디자인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 P371
‘해비타트 67‘에서는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해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콘크리트 패널을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을 택했다. 일반적으로 건축 공사비가 비싼 이유는 야외에서 작업해서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 이유가 크다. 그런데 건축물 제작의 대부분을 공장에서 대량으로 하고 현장에서 조립만 하면 공사 기간을 혁신적으로 줄일 수있고, 결과적으로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다. 이 건물이 지어진 캐나다 몬트리올의 경우 겨울이 길고 추워서 공사가 더 어려운데, 공장에서 제작하는 콘크리트 패널 방식은 이 문제를 해결했다. - P371
단위 세대들이 모여서 전체를 이루는 디자인 개념은 세포들이 모여서 유기체를 완성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세포 증식의 원리를 이용한 이러한 디자인 개념을 ‘메타볼리즘metabolism‘이라고 한다. 메타볼리즘은 직역하면 ‘신진대사‘인데, 한마디로 건축을 ‘세포를 가진 생명체‘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 P371
수천 년 서양 과학의 역사는 최소 단위를 찾는 역사이기도 하다. 고대그리스의 학자들은 세상이 물, 불, 공기, 흙이라는 네 가지 원소로 구성되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고대 원자론을 체계적으로 완성시킨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라는 한 개의 단위로 만물이 만들어졌다고 상상했다. 시대가 지나면서 이런 상상에서 나아가 관찰과 발견을 통해 물질은 분자라는 최소 단위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후 분자는 원자로,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밝혀졌다. 20세기 들어서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쿼크와 글루온으로 만들어졌음이 밝혀졌다. - P372
그러나 물질의 최소 단위는 마치 러시아 인형과 같았다. 러시아인형은 뚜껑을 열면 그 안에 다른 인형이 들어 있고, 그 인형의 뚜껑을 열면 그 안에 또 더 작은 인형이 들어있다. 물질의 근원을 찾는 과정에서도 러시아 인형처럼 최소 단위를 쪼개면 또 다른 최소 단위가 나왔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과학적 발견에 허탈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아무리 작게 쪼개어도 정작 생명의 근원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 P373
물질의 최소 단위가 쿼크라면, 생명의 최소 단위는 세포다. 세포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 전의 물질은 무기질로 취급받지만, 세포를 이루면서부터 비로소 생명체로 인정받는다. - P373
생명과학자들은 복잡성이론 등을 통해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연구했다. 과학자들은 크게 물질을 연구하는 부류와 생명을 연구하는 부류로 나누어지는 듯하다. 건축에서도 과학처럼 이런 양분화가 일어났다. - P373
어떤 이들은 건축을 무기질 재료의 조합으로 바라본다. 그들은 벽체, 바닥, 창문, 문 같은 요소들로 건축물을 분해해서 바라본다. 하지만 그러한 분석만으로는 건축의 본질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마치 쪼개진 쿼크만으로는 생명이 설명되지 않는 것과 같다. - P373
이에 반해 건축물을 생명체처럼 바라보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건물의 최소 단위를 하나의 집또는 방으로 본다. 그들에게 방은 마치 생명의 세포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세포가 증식하듯이 방이 증식해서 하나의 커다란 건물이 되는 ‘메타볼리즘‘이라는 양식을 만들었다. 1960년대에 시작된 이러한 생각을 이끄는 주류는 일본 건축계였다. 아무래도 동양인인 일본 건축가들은 음양의 조화로 세상을 바라보는 동양적 사고에 기반을 두고 건축도 관계를 바탕으로 한 생명성을 가진 것으로 바라보게 되었을 것이다. - P373
메타볼리즘 건축가들은 전체 도시도 세포 증식하듯이 캡슐을 성장시키는 방식으로 만들려는 원대한 꿈을 가졌었다. 이렇게 1960년대에 유행하던 메타볼리즘의 혁신적인 생각들을 캐나다에 실현한 것이 ‘해비타트 67‘이다. - P374
‘해비타트 67‘이 건축되는 과정은 마치 신진대사를 통해 세포가 증식하는 것과 같았다. - P376
‘해비타트 67‘ 같은 아파트가 우리나라에 건설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파트의 동 사이에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법규 때문이다. 발코니를 만들면 그만큼 아파트 동과 동 사이를 더 떨어뜨려야 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 P376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아파트 건물 가로 길이가 60미터를 넘으면 안 된다는 규정도 있다. ‘해비타트 67‘같이 베란다가 많은 디자인은 성냥갑 같은 건물보다 표면적이 넓어져서 건설비가 올라가는 단점도 있다. 베란다 바닥의 방수 공사와 단열 처리 등 신경 쓸 일도 많다. - P377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해서 기껏 아파트 분양가를 억제하면 입주와 동시에 수억 원씩 가격이 뛰는 게 우리 현실이다. 몇 년 후면 분양가 상한제에 맞춰 지어진 별로 좋지도 않은 건축물을 비싸게 사는 꼴이 된다. 최초의 입주자는 분양가 상한제 덕분에 로또 당첨된 것같은 혜택을 보지만 이후 대부분의 국민은 향후 100년간 허접한 집을 비싸게 사게 된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 P377
‘해비타트 67‘의 마당 같은 베란다를 아파트 분양 시 용적률 계산에서는 빼 주면서 분양하는 전용면적에 넣게 해 주면 이런 새로운 시도가 더 늘어날 것이다. 시장 경제에서는 가격 책정 방식이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된다. 건축 법규라는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해서 마당 같은 발코니나 베란다가 있는 아파트가 중산층 주거의 표준 모델이 되면 좋겠다. - P377
현상계(現象界): 지각이나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경험의 세계 - P488
세상은 원자로 구성된 물질의 세상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내 머릿속의 데이터 정보로 구축된 것일 수도 있다. 건축 역시 ‘물질적 본질‘과 ‘의식의 산물‘ 사이에 존재한다. 차가운 쇠를 손으로 만져 보거나 무거운 돌을 들어 보면 건축은 확실하게 물질의 세상이다. 그러나 어떤 건축물을 보면 건축은 물질이라기보다 정보에 가깝다. - P383
인간은 때로는 인공의 빛을 이용해서, 때로는 태양광을 이용해서 단순한 물질적인 물성의 공간을 뛰어넘어 정보로 만들어지는 공간을 구축해 왔다. 현대에 와서는 전구, 프로젝터, TV 모니터, LED 등을 통해서 좀 더 정교하게 빛을 조절하고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빛의 정보를 이용한 건축 공간의 구축은 계속됐다. 그 선구적인 작품이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오의 ‘윈드 타워 Tower of Winds‘ 다. - P385
타공 철판은 철판에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는 재료로, 가정집에 있는 모기장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표면에 있는 작은 구멍 때문에 이 재료는 어두운 쪽에서는 밝은 쪽이 투명하게 보이고 밝은 쪽에서 보면 은색의 불투명한 재료처럼 보인다. 집에 있는 방충망도 낮에 밖을 바라보면 경치가 보이지만, 밖에서 창문의 방충망을 보면 은색의 금속 면으로 보인다. - P386
‘윈드 타워‘는 건축적으로는 현실과 비현실, 혹은 실재와 허구 사이를 넘나드는 건축이 만들어졌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는 생활의 많은 부분을 인터넷과 TV에 의존해 살아가면서 삶의 절반은 실제공간에서 나머지 절반은 인터넷 가상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문화적 패러다임을 가장 잘 반영하는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 P387
우리는 아침에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 현실 세계에서 생활한다. 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열고 뉴스를 보고 인스타그램을 확인하면서 가상 공간 속으로 들어가 생활한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점심을 먹기도 하지만 저녁에는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몇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하루가 다 지나고 잠자리에 들려고 하면 나는 하루 중에 얼마를 현실 공간에서 보냈고 얼마를 가상 공간에서 보냈는지 잘 알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의식은 두 세상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과 가상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은 제삼자 시점에서 바라보았을 때나 구분돼 보이는 것이지, 내 의식의 관점에서 본다면 현실 공간이나 가상 공간이나 둘 다 정보를 처리해서 만들어진 공간과 세상일 뿐이다. - P388
‘윈드 타워‘는 낮에는 은색으로 빛나는 금속의 건축물로 보이지만, 밤이 되면 구체적 형체 없이 현란하게 변화하는 빛으로만 존재한다. 마치 스마트폰을 켜기 전의 스마트폰은 검은색 유리 면일 뿐이지만, 스마트폰을 켜고 나면 총천연색의 빛이 전달하는 정보의 폭포로 바뀌면서 유리 표면으로 만들어진 전화기라는 물질에 대한 의식은 사라지는 것과 같다. - P388
수천 년 동안 건축은 주로 물질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윈드 타워‘는 건축은 물성을 갖는 재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물질성은 사라지고 빛의 정보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P388
타공 철판이나 모기장같은 재료는 영상 프로젝트를 투사하게 되면 앞면과 뒷면에 동일하게 이미지가 맺힌다. - P389
‘윈드 타워‘나 ‘윈드 에그‘는 백남준의 작품처럼 빛의 이미지가 나타나기 전에는 각각 원기둥 모양이나 달걀 모양의 금속 조형물이다. 하지만 인공의 빛이 틀어지는 순간 완전히 다른 정보의 건축물이 된다. - P390
1990년대 들어서 많은 건축물이 입면에 LED 화면을 입혀서 건축 입면을 완성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건축이 이미지와 테크놀로지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건축 본연의 감동을 잃게 되는 폐단을 낳기도 했다. - P390
이 같은 현상이 극단적으로 표현되면 건축 디자인을 영상 매체가 대체하게 되어 모든 도시가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처럼 되어 버릴 위험이 있다. 현재 서울 강남의 많은 거리는 이미 대형 LED 광고판으로 도배가 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의 문제는 그 지역 고유의 장소성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지금 강남 도산대로에 가면 거리의 표정에 건축물은 없고 대신 명품 브랜드 광고 영상들만 넘쳐 나고 있다. 도산대로는 없고, 카르티에나 디오르 같은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만 남는 것이다. 도산대로 본연의 가치는 없고 다국적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가 도산대로 공간을 만들고 있다. 모든 건축이 LED로 도배된다면 전 세계 모든 도시가 동질성을 갖게 되는 평평한 세계가 될 것이다. - P390
이토 도요오는 ‘윈드 에그‘ 작품 이후에는 미디어 건축은 하지 않고 혁신적인 구조를 시도하는 쪽으로 디자인의 방향을 전환했다. - P390
진정한 선구자는 팔로워가 생겼을 때 그 자리를 뜨고 없다. 마치 힙플레이스를 개척하는 힙스터가 자신이 만든 힙플레이스가 너무 알려져서 아무나 가는 핫플레이스가 되었을 때 이미 그 자리를 떠나고 없는 것과 같다. - P391
극동아시아의 건축에는 낮은 담장이 많이 사용되는데, 이는 기후의 영향 때문이다. 극동아시아는 몬순 기후의 영향으로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온다. 비가 오면 지반이 약해져서 돌과 벽돌 같은 무거운 건축 재료를 사용하면 약해진 지반이 감당을 못해서 벽이 쓰러진다. 따라서 가벼운 목재를 사용해서 건축한다. - P395
목재를 주재료로 쓰면 벽이 아닌 기둥이 지붕을 받치는 모양새가 된다. 나무 기둥이 구조체가 되면 기둥과 기둥사이에 커다란 창문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건축은 바깥 경치를 보기에는 좋으나 창호지로 만든 창문만 있어서 보안상 취약해지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동양 건축에서는 집의 보안을 위해 건물 주변에 담장을 만드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본 건물과 담장 그리고 둘 사이의 빈 공간인 마당으로 집이 구성된다. 이렇게 한국, 일본, 중국의 집에는 담장이 아주 중요한 건축 요소가 된다. - P395
이때 담장 역시 벽이기 때문에 높게 만들면 장마철에 쓰러진다. 그래서 극동아시아 건축에서 담장은 궁전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낮게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집안에서 밖을 쳐다보면 시야 상단에 하늘을 가리는 처마가 있고, 다음으로 마당이 보이고, 그다음에는 낮은 담장과 담장 너머의 나무와 먼 산이 보이는 풍경이 연출된다. 이것이 일반적인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보이는 집의 풍경이다. - P395
서양 전통 교회에서 빛은 신의 임재를 뜻하며 이미 장미창,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통해서 신의 존재를 암시해 오는 장치로 사용돼 왔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처형당한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으로 이천 년 가까이 사용되어왔다. 그렇지만 십자가는 지난 이천 년간 교회에서 제단 위에 놓인 공예품으로, 빛은 건물 외벽의 창문으로 따로따로 존재해 왔었다. 그런데 ‘빛의 교회‘에서는 둘을 합쳐서 빛으로 십자가를 만들었다. - P403
이 십자가 모양의 구멍은 작기 때문에 실내 공간은 어둡다. 어두운 콘크리트 박스의 실내 공간 덕분에 동공이 확장된 방문객의 눈에 이 빛의 십자가는 존재감을 더 강하게 드러낸다. ‘빛‘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신의 임재‘라는 상징성과 ‘십자가‘라는 기독교를 대표하는 상징성이 하나의 ‘빛의 십자가‘로 완성되어서 공간 전체를 압도하고 있다. - P405
이 십자가가 더 멋있는 이유는 하나의 존재가 이중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내부에서 보면 하얀빛의 십자가지만, 바깥에서 바라보면 그림자로 만들어진 검정 십자가가 된다. 교회에 들어가기 전에 바라본 검은색 십자가는 내부에 들어오는 순간 어두운 공간 속에 강한 존재감을 가지는 빛의 십자가로 전환된다. 하나의 존재가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서 빛이 되기도 하고 어둠이 되기도 하는 상대적 가치를 갖다니 너무 멋있지 않은가? 이 십자가를 보면 하나의 존재를 음과 양의 관계로 설명하는 도가적인 가르침이 떠오르기도 하고,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 내는 것‘임을 뜻하는 불교 화엄경의 가르침 ‘일체유심조‘가 생각나기도 한다. - P408
안도의 건축물은 서양 건축물처럼 벽으로 만들어진 기하학적인 공간이지만 전달하는 메시지는 확실하게 동양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안도는 ‘빛의 교회‘에서 담장이 건물을 관통하는 점에서는 동양 전통 건축 양식을 깨는 파격을 보여 주고, 빛과 십자가를 합친 점으로는 서양 전통 교회 건축 양식을 깨는 파격을 보여 준다. - P408
권투 선수 출신 건축가여서일까, 안도의 건축은 자연과 스파링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권투 선수들은 상대 선수가 공격해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혹은 상대 선수와의 거리를 측정하기 위해서 가볍게 주먹을 뻗는 잽을 날린다. 권투선수가 잽을 날리듯이 안도의 건축물의 낮은 담장은 자연 속으로 파고든다. 권투 선수는 공격하는 선수를 팔로 껴안아서 공격을 막는다. 이를 클린치라고 하는데 권투 선수가 클린치하듯 그의 건축은 ‘ㄱ‘자로 생긴 낮은 담장을 이용해 자연을 껴안는다. - P413
현대 건축은 끊임없이 방수와 냉난방 시스템을 개발하여 어떻게든 자연의 기후가 건물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과거 수렵 채집의 시대와 농경 시대에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왔다. 반면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기술로 조정된 환경을 가진 실내에서만 지낸다. 현대인은 자연과 완전히 분리된 상태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인간이 조금이라도 더 자연과 밀접한 교류를 할 수 있게 유도하기 위해서 안도는 ‘아주마 하우스‘에 방에서 방으로 이동할 때마다 자연을 맨몸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 P417
안도는 시각적인 자연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주마 하우스‘에서 사람들이 방에서 방으로 건너갈 때 햇볕과 비를 맞으면서 온몸으로 자연을 부딪치게 만들었다. 다분히 권투 선수다운 발상이다. 권투는 운동 중에서 레슬링이나 유도 다음으로 상대 선수와 신체 접촉이 많은 운동이다. 레슬링과 유도는 몸은 부딪히지만 기본적으로 때리지는 않는 스포츠다. 반면에 권투는 두 팔로 상대방을 때리는 상당히 과격한 스포츠다. ‘아주마 하우스‘의 중정에 나갈 때 맞이하게 되는 햇볕과 빗방울은 권투에서 상대방 선수가 날리는 주먹과도 같다. 날아오는 주먹은 내 피부로 직접 느끼는 강한 자극이다. ‘아주마 하우스‘는 자연의 주먹질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집이다. - P419
‘아주마 하우스‘의 방에 앉아 있을 때 느끼는 공간감은 ‘내 방의 공간 + 중정 + 건너편 방의 공간‘으로 총 세 배 넓은 방에 있는 개방감을 느끼게 된다. 더 좋은 점은 중정에 햇볕이 들거나 비가 들이치면 세 칸 중에서 한 칸은 자연으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의 3분의 1이 항상 자연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게다가 그 자연은 계절과 날씨와 시간에 따라서 시시각각 바뀐다. 내 공간의 인테리어가 계속 바뀌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 P420
공간은 절대적 물리량이 아니라 기억의 총합이다. 그러다 보니 이 집은 좁지만 다양한 자연의 변화로 많은 기억이 만들어지고, 이는 심리적으로 공간이 넓어지는 효과를 만든다. ‘아주마 하우스‘는 소형 주택이지만 중정에 자연이라는 작은 우주를 담고 있어서 넓게 느껴진다. 현대 건축에서는 잊고 살았던 가치를 ‘아주마 하우스‘가 잘 재현해 내고 있다. - P421
열저항이 낮아진 부위로 많은 열이 나가거나 들어오는 경로를 전문 용어로 ‘콜드 브리지cold bridge‘라고 한다. - P423
실내 벽체가 차가워지면 그 차가워진 벽체가 겨울철에 난방된 실내의 따뜻한 공기를 만나면서 물이 맺히는 ‘결로현상‘ 이 생긴다. 결로가 만들어지면 벽에 시커먼 곰팡이가 생기게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다용도실 벽에서 이런 현상을 쉽게 볼 수 있다. - P423
새로운 시도는 완벽할 수가 없다. - P423
타설: 건물을 지을 때 구조물의 거푸집 같은 빈 공간에 콘크리트 따위를 부어 넣음 - P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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