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루이스 칸이라는 건축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본문 내용에 따르면 이 건축가는 ‘빛‘의 위대함을 강조한다.

이와 더불어 건축물의 요소에 대한 개념이 p.322에 밑줄친 부분에 나오는데 마치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들을 법한 기초적이지만 핵심적이고 중요한 개념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책에선 루이스 칸의 건축물 중 하나인 ‘킴벨 미술관‘ 이라는 곳을 소개하고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빛‘을 콘크리트 표면에 반사시켜서 마치 달빛과 같은 느낌을 주는 독특한 그만의 특징을 얘기해준다. 빛을 이용한 건축물로 ‘판테온‘이라는 것도 있는데, 판테온과 킴벨 미술관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비교하며 설명해줘서 독자들이 좀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저자의 독자들을 향한 배려가 느껴졌다.

윗 문단에 언급한 ‘빛‘외에도 지붕을 구성하는 곡선모양의 원에 담긴 ‘시간 개념‘에 대한 언급도 인상적이었다. 전통적인 원형 아치 볼트vault는 시간의 개념이 없는 디자인이지만, 킴벨 미술관의 지붕 모양은 ‘사이클로이드‘라는 용어를 등장시킴과 동시에 시간 개념이 담겨있다는 설명은 나같은 일반인 독자가 알기에는 힘든 전문가인 저자의 설명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기에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책에 소개되는 루이스 칸의 또다른 건축물로 ‘소크 생물학 연구소‘라는 것이 나온다. 이 건축물과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새롭게 접하게 된 개념으로 ‘주인 공간‘과 ‘하인 공간‘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개념을 바탕으로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보니 건축물을 보는 기본적인 시각이 어느정도 생긴듯 했다.

뒤이어 소개되는 ‘도미누스 와이너리‘라는 건축물은 불규칙성 속에서 자연과의 조화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적절한 불규칙성‘이라는 개념과 더불어 자연 그대로의 성질을 건축에 이용하여 와이너리(포도주 저장소)의 본래 목적인 햇빛의 최소화와 더불어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돌이 갖고 있는 고유의 성질을 이용하여 낮은쪽에는 밀도가 높은 작은 돌을, 위로 갈수록 밀도가 낮은 큰 돌을 배치시킴으로써 건축물의 안정감도 함께 챙기는 아주 현명하게 설계된 건축물이다.

‘도미누스 와이너리‘를 설계한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뫼롱은 중국에 위치한 ‘베이징 국립 경기장‘도 설계하였는데, 책에 첨부된 사진을 보면서 예전에 중국에서 올림픽을 할 때 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단지 스포츠 경기장의 기능으로만 봤다면, 오늘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건축가의 시선으로 경기장의 설계구조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얼핏 보기엔 그냥 랜덤하게 새둥지를 표현한 듯 하지만, 저자의 설명을 읽다보니 불규칙해보이던 것들이 굉장히 체계적으로 설계되어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건축 설계하시는 분들의 대단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칸은 "빛은 건축물에 닿기 전에는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빛은 그림자가 없으면 인지되지 않는다. 그림자 역시 빛이 없으면 인지되지 못한다. 빛과 그림자는 인지되기 위해 서로가 필요하다. 건축물이 빛을 받으면 건축물 뒤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때에야 비로소 빛은 자신의 위대함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칸에게 건축은 그림자를 만듦으로써 빛으로 하여금 빛이 되게 하는 위대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동양의 음양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칸의 이 말은 빛과 건축을 엮어 만든 이야기 중 가장 멋진 말인 것 같다. 칸의 건축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빛이 빛되게 하기 위한 장치‘ 라고 할 수 있다. - P321

칸의 건축 디자인의 첫번째 원칙은 ‘태양 빛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 그림자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이고 건축은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부산물일 뿐이었다. 그는 항상 태양광을 어떤 방식으로 건축물 내부로 들여올지 고민했다. - P321

건축물의 요소는 크게 구조체와 비구조체로 나뉜다. 구조체는 기둥이나 엘리베이터를 감싸는 콘크리트 벽같이 하중을 받으면서 건물을 지탱하는 요소다. 이것들이 없어지면 건물은 무너진다. 반면 사무실 건물의 실내에서 방과 방 사이를 구획하는 가벽들은 없어져도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다. 이런 요소들이 비구조체다. - P322

칸은 구조체의 재료는 노출 콘크리트로 하고 비구조체는 벽들이나 나무 등 다른 재료로 만들어서 건축물이 어떻게 서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 주었다. 칸의 이런 디자인 특징이 잘 보이는 건축이 ‘리처드 의학연구소‘다. - P322

보: 지붕이나 상층부에서 오는 건물의 하중을 기둥이나 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기둥이나 벽체에 수평으로 걸치는 재료, 목재, 강재, 콘크리트 등을 사용한다. - P488

미국 시골에 있는 곡물 창고인 사일로 - P323

이때 가장 큰 압축력을 받는 부분은 어디인가? 바로 아치의 가장 높은 꼭대기다. 그래서 예부터 벽돌로 아치를 만들 때도 맨 꼭대기 부분에는 깨지지 말라고 단단한 돌을 집어넣었다. 이때 이 돌을 ‘중요한 돌‘이라는 뜻으로 ‘키스톤keystone‘이라고 불렀다. - P325

‘판테온‘의 빛이 자체 발광하는 태양 빛이라면 ‘킴벨 미술관‘의 빛은 태양 빛이 콘크리트의 거친 표면에 반사되어 보이는 달빛이다. - P328

전시품이 회화인 경우 색상을 제대로 보여 주기 위해 균질한 빛이 많이 필요하다. 따라서 타공철판으로 만든 금속판을 사용한다. 타공 철판은 마치 방충망처럼 작은 구멍이 많이 뚫려 있는데, 빛을 투과시키기도 하고 반사시키기도 한다. - P329

반대로 조각품을 전시할 때는 형태를 명확하게 보여 주기 위해 전시품에 강한 국부 조명을 주어 그림자가 떨어지게 한다. - P329

반대로 조각품을 전시할 때는 형태를 명확하게 보여 주기 위해 전시품에 강한 국부 조명을 주어 그림자가 떨어지게 한다. 따라서 ‘킴벨 미술관‘의 조각품 전시 구역에서는 반사판의 절반 정도를 불투명한 금속판으로 만들어서 대부분의 빛을 투과시키지 않고 천장으로 반사시키게 해 놓았다. 그렇게 전시장의 자연광 조도를 낮춘 후 전시품에는 인공조명을 비추어서 명확한 그림자를 만든다. 이렇듯 칸은 ‘킴벨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작품의 종류에 따라 빛의 양과 질을 조절할 수 있게 반사판의 디테일을 조정했다. - P329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말하는 원의 정의는 한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을 연결한 선이다. 이 정의에는 시간의 개념이 없다. - P330

‘킴벨 미술관‘의 지붕 모양은 ‘사이클로이드 cycloid‘ 곡선이다. 사이클로이드 곡선이란, 원이 직선 위를 굴러갈 때 이 원둘레 위의 한 점이 그리는 궤적을 말한다. ‘원이 굴러가면서 그리는 궤적‘이기 때문에 ‘굴러간다‘라는 행위에 담긴 시간의 개념이 도입된다. - P330

미술사에서 뒤샹Marcel Duchamp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2 Nude Descending a Staircase No. 2」나 피카소의 그림 같은 작품을 가리켜 입체파라고 한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2」는 다른 시간대의 피사체를 한 장의 캔버스에 그려 넣은 것으로, 마치 카메라의 조리개를 열고 몇 초 동안 노출해서 찍은 사진 같은 그림이다. 이로써 그림은 이제 한 대상을 묘사할 때 한 순간이 아니라 여러 다른 시간대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입체파가 미술사적으로 의미를 갖는 이유는 2차원의 그림에 4차원의 시간 개념을 넣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건축에서 처음으로 입체파처럼 시간의 개념을 도입한 디자인이 ‘킴벨 미술관‘의 사이클로이드 곡선이다. ‘킴벨 미술관‘은 첫인상은 평범해 보이지만 뜯어보면 비범한 건축 디자인을 구현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P331

이렇게 단순한 중정일 뿐인데도 크기와 비율을 다르게 하여 빛의 질을 다르게 구성하고, 중정을 둘러싼 벽을 투명, 반투명, 불투명 세가지로 만들어서 각각의 중정이 전시장과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하였다. 훌륭한 건축가는 이렇게 단순한 방식으로 다양성을 만들어 낸다. - P333

인방보: 창, 문 등 개구부 바로 위의 벽을 받치기 위해 걸치는 콘크리트, 돌, 나무, 스틸 등의 수평부재 상부에서 오는 하중을 좌우 벽으로 전달시키기 위하여 대는 보 - P488

어느 분야에서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자신이 연구하고 다루는 대상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보거나 더 나아가 사람처럼 느끼는 것 같다. 그 정도로 그 분야를 사랑하고 대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분야의 대가가 되는 것이다. 건축가 중에서는 칸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 P333

보통 건축에서 천재들은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적용해서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건축을 제시하는 사람들이다. - P337

라멘 (Rahmen) 구조: 건물의 수직 힘을 지탱하는 기둥과 수평 힘을 지탱하는 보가 강성으로 접합되어 연속적으로 이루어진 골조 - P488

‘트렌턴 배스 하우스Trenton Bath House‘로 불리는 이 건물은 뉴저지 시골 동네 야외 수영장에 지어진 샤워장이다. 규모로 보면 정말 초라한 건물이지만 칸의 건축에서 중요한 ‘주인 공간‘과 ‘하인 공간‘ 개념을 처음으로 보여 주는 중요한 건물이다. - P338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주인 공간‘은 거실, 침실, 사무 공간, 전시 공간같이 그 건물의 주요 기능을 담당하며 사용자가 체류하는 시간이 많은 공간이고, ‘하인 공간‘은 계단실, 엘리베이터, 화장실, 창고, 다용도실같이 보조적인 기능을 담당하며 체류하는 시간이 짧은 공간이다. - P338

이 같은 공간의 성격 구분은 호텔 같은 건축 형식에서 명확하게 볼 수있다. 우리가 손님으로 호텔에 방문했을 때는 실제로 음식을 준비하는 주방이나 침대 시트를 빠는 세탁 공간, 룸서비스를 하는 웨이터들이 다니는 공간은 볼 수 없다. 이는 건축가가 호텔을 설계하면서 동선을 분리하고 서비스 공간을 따로 구획해 놓았기 때문이다. - P338

칸은 모든 건축물을 디자인할 때 이 같은 방식으로 ‘방‘의 기능에 따라 주인 공간과 하인 공간으로 나누어서 배치하였다. 그는 이렇게 주인 공간과 하인 공간의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해 한쪽으로 몰아 배치함으로써 각종설비 및 공조의 효율성을 높일 뿐 아니라, 강약이 있는 공간감을 연출하고, 성격이 다른 공간들을 원활히 넘나들도록 자연스러운 전이 공간을 만들어 훨씬 좋은 공간 구성을 이루었다. - P339

지붕이 중요한 건축 요소였던 곳은 우리나라가 속한 동아시아다. 대륙의 동쪽에 위치한 동아시아는 계절풍의 영향으로 장마철이 있어서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에 빗물을 빨리 배수하는 것이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빗물을 빨리 배수하기 위해서는 경사진 큰 지붕이 필요하다. 또 비가 많이 내려서 땅이 물러지기 때문에 무거운 건축 재료보다는 가벼운 목재를 사용해야 했다. 따라서 동양 건축은 네모진 평면의 네 귀퉁이에 있는 나무 기둥 네 개가 경사진 지붕을 받치는 구조다. - P339

벽돌로 벽을 쌓아 건물과 방을 만드는 것은 서양 건축의 특징이다. 칸이 디자인한 샤워장 건물의 경사진 지붕은 동양 건축을 연상케 하면서도 실질적 구조체는 서양식 벽식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 이유에서 동서양이 섞인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 P340

하나의 건축물에도 다양한 기능이 있고 각각의 기능에 따라 다른 공간이 필요하다. 칸은 건축물의 용도에 따라 공간을 분리해서 디자인하는 명쾌한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사고 체계가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 이 작은 샤워장 건물이다. 칸은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세상이 나를 알게 된 건물은 ‘리처드 의학연구소‘지만, 내가 나를 발견하게 된 작품은 뉴저지 샤워장이다." - P341

"중정에서 숲을 없애면 당신은 하늘을 건축 입면으로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P344

사람들은 평균값에 가까운 모양의 얼굴을 아름답게 느낀다고 한다. 예를 들어 눈 사이가 아주 넓은 사람이 있고 아주 좁은 사람이 있다면 그 중간쯤 어딘가의 비율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 P351

얼굴의 형태가 극단적이라는 것은 다른 유전자와 섞이지 않아서 유전자가 편협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대로 유전자가 섞이면 형태가 평균값에 가까워진다. 여러 유전자가 섞일수록 강한 우성의 유전자가 모인다는 것이고, 생존 확률이 높아질 수 있으니 본능적으로 평균값에 가까운 비례의 얼굴을 선호한다는 설명이다.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그렇게 아름다움을 정량적으로 설명하는 개념 중 ‘프랙털 지수‘라는 것이 있다. - P352

하얀색 도화지가 있다고 치자. 그것은 완전한 규칙의 상태다. 프랙털 지수로는 1이다. 여기에 검은색 볼펜으로 낙서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불규칙성이 점점 늘어난다. 프랙털 지수가 1.1, 1.2, 1.3 으로 점점 늘어난다. 그러다가 나중에 아주 새카맣게 되어서 더 이상 낙서를 할 수 없는 완전한 불규칙의 상태가 되면 프랙털 지수가 2가 된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수준은 프랙털 지수 1.4 정도의 적당하게 불규칙한 상태라고 한다. - P352

우리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자연을 보자, 자연은 가까이서 보면 아주 불규칙한 모습이다. 돌과 바위의 크기와 모양도 제각각이고, 나뭇가지의 모양도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것이없다. 그런데 조금 더 멀리서 자연을 바라보면 규칙성이 있다. 대부분의 나뭇잎 색상은 광합성을 하는 엽록체의 색깔인 녹색으로 통일되어있고, 나무줄기는 땅에서 시작하는 부분이 가장 굵고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가늘어진다는 점이 동일하다. 나뭇가지는 본가지가 올라가다가 옆으로 잔가지가 뻗어 나가고, 그 잔가지에서 더 가느다란 잔가지가 옆으로 빠져서 뻗어 나간다. 이러한 규칙들이 있기에 자연은 조화로워 보인다. 줌인해서 쳐다보면 불규칙하지만 줌아웃해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규칙이 보인다. 그렇게 프랙털 지수 1.4의 적절한 불규칙성이 만들어진다. - P352

예술에서는 이런 자연의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무단한 노력을 해 왔다. 가장 손쉽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져오는 방식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신전 기둥을 보면 기둥의 꼭대기인 주두 부분이 야자수 이파리처럼 조각된 것을 볼 수 있다. 수직의로 서 있는 기둥은 나무줄기를 흉내낸 디자인이다. 그래서 꼭대기 부분에도 오아시스의 야자수처럼 이파리 장식을 넣은 것이다. 이런 양식은 그리스로 넘어가서도 코린트 양식으로 이어진다. - P353

코린트(Corinth) 양식: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의 코린트에서 발달한 건축양식 화려하고 섬세하며, 기둥머리에 아칸서스 잎을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 P488

자연 모방은 인류 역사에서 계속해서 나타난다. 식물을 흉내 낸 아르누보 양식도 대표적이다. - P353

나무는 광합성을 해야만 살아남는다. 주변의 나무와 경쟁해서 더 많은 태양 빛을 받아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식은 더 높게 올라가서 더 넓게 퍼지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높게 올라가면 바람에 쓰러질 위험도 커진다. 그렇다 보니 중심을 잡기 위해 아래쪽의 줄기는 굵고 위로갈수록 가늘어진다. 또 옆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압력을 줄이기 위해나뭇가지 사이사이에 공간을 비워서 바람이 통과하게 한다. 나뭇잎이경직되어 있으면 바람의 저항을 그대로 받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나뭇잎은 바람에 쉽게 흔들릴 수 있게 나뭇가지에 붙은 접합부가 유연하다. - P353

일단 나무줄기가 땅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 그다음부터는 옆으로 퍼지는 경쟁을 해야 한다. 그러니 나뭇가지가 옆으로 뻗어나가게 되고, 중심부에서 반지름이 커지게 뻗어 나갈수록 면적은 제곱, 체적은 세제곱의 비율로 커진다. 넓어진 빈 공간에는 잔가지가 뻗어 나가 나무의 표면적을 넓힌다. 이때 옆으로 계속 펴져 나가기만 하면 나무가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나뭇가지가 커지는 만큼 땅속으로 뿌리가 뻗어 나가면서 기초를 튼튼히 하고 수분과 영양분을 흡수하는 일이 동반되지 않으면 구조적으로나 에너지의 흐름으로나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된다. 그러니 나뭇가지가 뻗어 나간 직경, 나무줄기의 굵기, 나무뿌리의 크기는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어 나가면서 커져야 한다. 나무의 디자인에서 보듯이 모든 디자인은 문제 해결을 위한 필연성을 갖는다. - P354

‘도미누스 와이너리‘의 가장 큰 특징은 입면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이 와이너리는 그냥 가로로 긴 상자형 건축물이다. 너무 심심한 상자 모양이어서 자연과 상반되는 디자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너무 ‘자연스러운‘ 건축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이 건물의 외장을 싸고 있는 것은 전문 용어로 ‘게비온gabion‘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주로 토목 공사에서 사용하는데, 철망으로 상자 형태 프레임을 만들고 그 안에 주변에서 구한 돌을 넣는다. 이렇게 상자층으로 만들면 차곡차곡 쌓기가 편리하다. ‘도미누스 와이너리‘도 주변에서 구한 돌을 철망에 넣고 그것을 쌓아서 입면을 만들었다. - P355

상자를 쌓으면 어떤 상자가 가장 힘을 많이 받을까? 맨 아래에 있는 상자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위의 상자들이 누르는 무게를 더 많이 견뎌야 한다. 그렇다 보니 아래의 상자는 위의 상자보다 단단해야 한다. 단단하려면 재료의 밀도가 높아야 한다. 단위 면적당 더 많은 돌을 넣는 것이다. 같은 크기의 철망에 더 많은 돌을 집어넣으려면? 작은 돌을 넣으면 된다. 불규칙한 큰 돌들은 서로 부딪혀서 많이 넣을 수가 없다. 하지만 돌의 크기가 작으면 사이사이에 촘촘하게 더 많이 들어간다. 그리고 돌끼리 만나는 표면적이 늘어나면서 더 안정적인 구조가 된다. 그래서 ‘도미누스 와이너리‘ 입면의 게비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래로 갈수록 작은 크기의 돌을 채워 넣었고, 위로 갈수록 큰 돌을 넣었다. 구조적으로 필연적인 디자인이다. - P357

이 건물의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돌을 넣은 게비온에 빛을 비추면 어떻게 될까? 돌과 돌 사이의 틈으로 빛이 새어 나온다. 큰 돌을 넣을수록 틈이 넓어서 더 많은 양의 빛이 들어올 것이다. 이때 빛이 만들어내는 모양은 정말 찬란하게 아름답다. - P357

포도주 저장소는 햇빛이 최소화되어야 한다. 캘리포니아의 강한 빛과 와이너리라는 건물 용도의 조화를 위해 그들이 선택한 방식은 ‘게비온‘으로 만든 입면이다.  - P359

돌이 깨지면서 만들어지는 불규칙한 모양들은 그대로 돌 틈으로 들어오는 빛의 불규칙성을 만든다. 돌은 깨질 때 분자 구조에 따라 갈라지는 모양이 결정된다. 그러나 이때 돌이 깨지게 힘을 가하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은 구석기 시대부터 그런 일을 해 왔다. 돌에 충격이 가해졌을 때 돌의 분자 구조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에 균열이 가면서 모양이 결정된다. 돌을 깨기 시작한 것은 인간이지만, 깨지는 최종 모양은 자연이 결정한다.  - P359

헤르조그가 한 일은 각기 다른 모양과 크기로 깨진 돌들을 분류해 구조적인 이유에서 작은 돌은 아래에 넣고, 큰 돌은 위에 넣는 일을 한 것이다. 거기까지 건축가가 하고 나면 캘리포니아의 태양 빛이 그 벽을 때리고 불규칙한 돌 틈 사이로 통과하면서 공간이 완성된다. - P360

‘도미누스 와이너리‘는 인간의 구상과 자연의 섭리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공간이다. 건축가는 그 돌들을 조합할 방법만 개발했고 나머지는 자연이 완성했다. 그냥 자연의 겉모습을 모방해서 만든 건축물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예술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자연의 짝퉁이다. 모방한 것은 절대로 그 오리지널을 뛰어넘을 수 없다. ‘도미누스 와이너리‘의 디자인은 자연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 협업한 것이다. 음악으로 치면 이중주 혹은 듀엣 곡 같은 디자인이다. - P360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뫼롱은 둘 다 1950년 출생으로 아인슈타인이 졸업한 것으로 유명한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TH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이들은 1978년에 스위스 바젤에서 사무실을 함께 설립한 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2001년에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고, 몇 년 후에는 ‘베이징 국립 경기장The National Stadium, Niaochao NationalStadiumn(國家体育協)‘ 현상 설계에 당선되면서 명실상부한 세계적 건축가의 반열에 올랐다. - P360

‘베이징 국립 경기장‘은 새의 둥지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이다. 새 둥지는 새들이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얼기설기 엮어서 만들어 내는 집이다. 나뭇가지의 길이와 모양이 제각각이어서 불규칙한 형태를 띤다. 그러면서도 동그란 형태의 모양을 유지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새 둥지처럼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려면 적절한 불규칙성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면서도 거대한 올림픽 주경기장을 만들려면 구조적으로도 안정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구조적으로 안정적으로 만들면 불규칙성이 사라져서 새 둥지처럼 보이지 않게 된다. 헤르조그는 구조적 안정성과 디자인의 불규칙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위해 기발한 구조적 발상을 했다. 둘을 분리해서 진행한 것이다. - P360

우선 스타디움은 보통 윗부분이 타원형으로 뚫려 있는데, ‘베이징 국립 경기장‘은 그 구멍 난 티원의 주변을 따라 기둥과 보로 만들어진 보편적인 ‘ㄷ‘자 형태의 트러스가 돌아가는 방식으로 주요 구조를 완성했다. - P362

트러스(truss) 구조: 여러 개의 직선 부재를 삼각형 형태로 배열하고 그물 모양으로 짜서 하중을 지탱하는 구조, 보통 교량이나 지붕 등을 지탱하는 데 사용된다.

부재 : 구조물의 뼈대를 이루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는 여러 가지 재료 - P487

건축물은 위에서 내려오는 하중을 받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틀어지는 힘을 받치는 구조도 중요하다. 이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기둥 사이사이에 사선으로 지나가는 부재를 넣는 것이다. 헤르조그는 수직으로 완성된 주요 구조체의 기둥 사이에 횡압력을 지지하는 사선의 보강 철골 부재를 불규칙한 형태로 집어넣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뭇가지로 만든 새 둥지처럼 보이는 디자인을 완성했다. - P362

설계가 훌륭해도 하나의 건축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시공 기술은 또다른 문제다. 이 경기장의 건축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면 경기장을 구성하는 트러스를 제작하기 위해 밑에서 받침대 역할을 하는 보조 구조체를 만들어야 했는데, 문제는 그 받침대를 철거할 때 경기장이 워낙 크다 보니 보의 처짐 현상도 너무 심하다는 점이었다. 만약에 중구난방으로 받침대를 철거하면 건축물이 찌그러지면서 붕괴할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다. 당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를 받치는 받침대 아래에 유압식 장치를 넣었다. 이 유압식 받침대는 컴퓨터에 의해 원격으로 장치가 풀리게 되어 있었는데, 구조기술사가 계산한 순서대로 수십 개의 유압 받침대가 순차적으로 내려가게끔 프로그램을 만들어 철거를 진행했다. - P362

불규칙한 아름다움은 단순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고도의 기술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 자연도 그러하다. 자연은 인간이 함부로 손을 대기에는 너무 복잡한 시스템이다.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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