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에 이어서 오늘은 뉴욕에 위치한 ‘시티그룹 센터‘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많지만 주변 다른 건물들과는 다른 이 건물만의 독특한 특징은 첨두부분이 비대칭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 건물과 관련하여 ‘공중권‘이라는 개념도 나오는데 자세한 내용은 p.246에 밑줄 친 내용을 참조바란다. 이미 우리나라에도 있는 개념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처음 알게 된 개념이라 신기하게 느껴졌다. 책에 첨부된 사진과 함께 읽다보니 이해가 좀 더 수월했던 것 같다.

위에서 ‘시티그룹 센터‘에서 첨두부분이 비대칭으로 된 것 외에도 또 하나의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건물을 받치는 기둥이 사각의 모서리가 아니라 사각의 가운데 면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해당 토지에 있는 교회가 자리를 뜨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그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해결책인데, 앞에서 언급한 ‘공중권‘ 개념을 좀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이 책에 첨부된 ‘시티그룹 센터‘의 사진을 보면 정말 이런 건축물이 있을 수 있구나 싶을정도다. 이 챕터의 마지막에 ‘제약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저자의 말도 기억에 오래 남을 듯 하다.
.
.
.
다음에 나오는 건축물은 ‘허스트 타워‘라는 건물인데 이 건물만의 독특한 특징은 건물하단의 입면은 오래된 형태의 건물인 반면 그 하단위에 지어진 빌딩은 최신식 건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과거에 지어졌던 사옥 건물의 역사를 보존함과 동시에 새로운 건축물을 지음으로써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듯한 느낌을 준다.

뒤이어 ‘낙수장‘이라는 폭포 언저리에 지은 건물이 나오는데, 훌륭한 건축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는 공간이라고 느껴졌다.
.
.
.
다음으로 나오는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베트남전쟁재향군인기념관‘ 이라는 곳은 주변 환경을 아주 잘 활용해서 설계한 ‘마야 린‘이라는 사람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곳인데, 얼핏보면 굉장히 단순한 구조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그 속에 내재된 의미들을 따라가다보면 단순한 것이 어쩌면 최선의 결과를 내는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건물은 미국 미시간주에 있는 ‘더글러스 하우스‘라는 곳이다. 이 건물은 리처드 마이어라는 건축가가 설계하였는데 그는 흰색을 적절히 활용함과 동시에 줄 맞춤이라는 정형화된 특징을 통해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특히 자연과의 조화를 굉장히 중시한 건축가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티그룹 센터‘가 가장 훌륭한 오피스 건축물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건물 하나의 디자인에 사회적 이해, 경제적 혜안, 타협과 중재 능력, 창의적 생각, 구조 기술력, 법규의 기발한 활용, 친환경 사고 등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장점들이 종합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 P244

공중권은 토지와 건물의 상부 공간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로, 나아가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연면적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있는 권리다. 예를 들어 내가 단층짜리 건물을 가지고 있는데 그 땅의 용적률에 따라 기존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으면 30층까지 지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아주 장사가 잘되는 50년 넘은 스테이크 집을 운영하고 있어서 앞으로도 이 건물을 부수고 신축할 생각이 없다. 이런 경우에 내가 지을 수 있는 29개 층 높이의 연면적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는 권리가 ‘공중권‘이다. 내 머리 위 공중의 권리를 파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땅에 높은 건물을 짓고 싶은데 그 주변 건물이 신축할 계획이 없다면 그 낮은 건물의 공중권을 사서 그 건물 위로 대지 경계선을 넘어서 건축할 수 있다. - P246

공중권이라는 개념 덕분에 건축주는 자신이 가진 건물을 유지하면서 그 건물 상부에 건축을 할 수 있는 공간만큼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개발 업자는 자신의 건물을 더 높이 짓기 위해 오래된 건축물을 찾아서 그곳의 공중권을 산다. - P247

우리가 사각형의 평면에 네 개의 기둥을 넣을 때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네 개의 꼭짓점에 기둥을 넣는 경우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을 비롯해 일반적인 기둥 구조의 건축에서는 그렇게 한다. 두 번째 방식은 ‘시티그룹 센터‘처럼 사각형의 각 변의 가운데에 기둥을 넣는 경우다. 이런 방식은 잘 사용하지 않는데 구조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각 변의 가운데에 기둥을 넣으면 코너부가 모두 받침 없이 공중에 떠 있는 상태의 캔틸레버 구조로 만들어져야 한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시티그룹 센터‘의 구조는 이런 모양새다. 구조적으로는 어렵지만 일단 만들면 장점이 있다. 사각형 평면의 내부개방성이 좋아진다는 점이다. 코너가 열려 있으면 같은 사각형이라고 하더라도 훨씬 더 개방감이 있다. - P250

고층 건물을 지을 때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고층에 부는 바람이 가하는 압력, 즉 풍압 때문에 건물이 옆으로 흔들릴 수도 있는 위험성이다. 더욱이 ‘시티그룹 센터‘는 기둥 네 개와 가운데 엘리베이터 코어로만 지탱해야 할 뿐 아니라 이 기둥들이 꼭짓점이 아닌 각 변의 가운데에 있어서 구조적으로 더 불안한 상태다. 평소에는 괜찮지만 허리케인이라도 부는 날에는 아주 심각한 위험이 초래될 수도 있다. - P252

이 문제를 결하기 위해 ‘시티그룹 센터‘ 고층부에는 ‘동조 질량 감쇠기 Tunned Mass Damper‘라는 기계 장치를 내부에 설치해 놓았다. 장치의 원리는 네 개의 끈에 매달려 있는 무거운 추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무게 중심을 이동시켜 건물의 구조를 더욱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바람이 세게 부는 날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몸을 기울며 걸으면 좀 더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건물이 바람에 밀려 왼쪽으로 기울 때 끈에 매달린 추는 관성의 법칙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결과적으로 추가 건물의 오른쪽에 위치하게 되면서 건물의 균형을 잡아 주는 원리다. - P252

이 기법은 대만의 ‘타이베이1013opel Financial Center‘ 같은 초고층 건물에도 사용되고 있다. ‘타이베이 101‘에 사용되는 추의 무게는 728톤이나 된다. 추가 이 정도로 무겁기 때문에 백 층 넘는 건물이 바람에 넘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P252

건축 설계를 하다 보면 끊임없는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훌륭한 건축가는 그때마다 창의적인 해결책으로 문제를 푼다. 그리고 그 해결책의 결과가 디자인이 된다. 훌륭한 건축가는 그저 직관적으로 아름다운 모양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보는 훌륭한 디자인은 모두 ‘문제 해결의 결과물‘이다. 자연의 디자인이 그렇다. 기린의 목이 긴 것도, 오리발에 물갈퀴가 있는 것도 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다. - P253

‘시티그룹 센터‘의 디자인은 자리를 뜨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건축가는 그 제약을 없애 버리기보다 오히려 제약을 풀기 위해 창의적인 생각을 하여 새롭고 독특한 디자인을 창조해 냈다. 제약은 새로운 창조의 어머니다. - P253

코어(core): 모든 층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다발로 묶이는 시설. 보통 엘리베이터, 현관, 계단 등 주변에 동선이 집중된 공간을 가리킨다. - P488

내가 보는 메시의 장점은 인간의 몸을 다른 사람보다 더 여러 개의 부분으로 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수는 앞에 수비수가 있으면 돌파를 못 하고 옆으로 공을 돌리기에 급급하다. 수비수 한 명을 하나의 벽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시는 사람의 몸을 몸통과 네 개의 팔다리로 구성된 것으로 이해한다. 몸통에는 머리와 팔다리 네 개, 총 다섯 부분이 가지처럼 붙어 있다. 따라서 각각의 팔, 다리, 머리 사이에 다섯 개의 빈 공간이 있다. 메시는 사람이 앞에 서 있어도 이 다섯 개의 빈 공간으로 공을 통과시킨다. 축구장에서 남들보다 더 높은 해상도로 사람을 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 P257

마찬가지로 ‘허스트 타워‘를 만들 때 포스터가 그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건축을 남들보다 더 높은 해상도로 분석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터는 건축물을 한 덩어리로 보지 않았다. 그는 건물을 외부의 입면 벽과 실내 공간을 구성하는 바닥 면들로 분해해서 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오래된 전통 건축물에서 중요하게 지켜야 할 것은 입면 벽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판단은 합리적이다. - P257

유럽은 1년 내내 비가 고루 내리기 때문에 지반이 단단해서 무거운 돌이나 벽돌로 건축한다. 이때 벽은 건물을 지탱하는 주요 구조체다. 벽이 구조체다 보니 창문을 크게 뚫으면 집이 무너진다. 그래서 유럽의 창문은 작은 세로형 창문이다. 창이 작으니 바깥경치를 보기 어렵다. 자연스레 건물의 가치를 판단할 때 안에서 바라보는 밖의 풍경보다는 외부에서 바라본 입면이 가장 중요해졌다. 이렇게 서양 건축은 ‘입면 벽 중심의 건축‘이다. 포스터는 이런 점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건축물의 외부 벽체만 남기고 내부는 과감하게 철거한 다음 신축했다. - P258

건물이 고층일수록 바람과 지진등으로 인해 좌우로 작용하는 횡압력을 어떻게 견딜지가 가장 큰 문제다. 수직으로 내려가는 일반적인 기둥은 건축물 자체의 무게는 어렵지 않게 지탱하지만 옆에서 흔들면 쉽게 쓰러지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횡압력에 더 잘 견디기 위해서는 기둥의 숫자를 늘려서 건물을 단단하게 잡아 주어야 한다. 그런데 기둥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해결 방식이 있다. 바로 대각선 부재를 덧대는 것이다. - P262

포스터는 ‘허스트 타워‘에서 과감하게 대각선이 강조된 다이아몬드 모양 격자의 구조 체계를 입면에 도입했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이러한 구조를 ‘다이아그리드 Diagrid‘라고 한다. - P263

부동산의 가치는 주변이 잘될 때 더불어 올라갈 가능성이 커진다. - P264

‘허스트 타워‘ 같은 디자인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건축물의 가치를 좀 더 세분화시켜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도시는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건물이 철거되고 새롭게 지어질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무엇을 보존해야 할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경회루‘처럼 목구조 자체가 가치를 가지는 건물은 전체를 보존해야 하고, 어떤 근대식 건물은 입면만 보존해야 할 수도 있고, 어떤 경우는 건물은 부수고 새로 짓더라도 골목길의 모양만 보존해야 할 수도 있다. - P264

우리는 좀 더 말랑하게 생각하면서도 예리해질 필요가 있다. 건축물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지 말고 가치를 분해해서 봐야 한다. 메시가 팔과 다리 사이, 목과 어깨 사이, 다리와 다리 사이로 공을 통과시키듯이 건축을 볼 때도 그런 눈을 가진다면 어려운 도시 재생을 더 멋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메시의 플레이처럼 박수 칠 만한 재건축 사례가 많아질수록 좋은 도시가 된다. ‘허스트 타워‘는 좋은 사례를 보여 준다. - P264

건축은 한번 자리를 잡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건축물이 있는 그 자리의 지리적·기후적 특징을 반영해서 맞춤형으로 디자인하게 된다. 더운 하와이에 짓는 건축물을 굳이 혹독한 추위에도 견딜 건물로 디자인할 필요는 없다. 그게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축 디자인은 그 건물이 위치한 땅의 특징에 적합한 맞춤형으로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한 건축을 추구한 사람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다. - P268

‘낙수장‘의 발코니처럼 한쪽만 지지대가 있고 다른 한쪽은 팔을 뻗듯이 나간 건축 구조체를 ‘외팔보‘라고 하고 영어로는 ‘캔틸레버‘라고 부른다. 보통 이런 구조체는 짓기는 힘든데 만들고 나면 웬만하면 다 멋있다. 중력을 아슬아슬하게 극복하는 모습에서 긴장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 P269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시카고에서 건축 일을 시작했다. 그는 근대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루이스 설리번 Louis Sullivan 밑에서 실무를 배웠다. 루이스 설리번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Form follows function"라는, 건축계에서 가장 유명한 금언을 남긴 사람이다. 그는 철골과 콘크리트를 이용해 백화점같이 기존에는 없었던 새로운 형식의 건축물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라이트는 스승인 설리번이 말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사상을 이어받아 꽃을 피웠다고 보면 된다. - P271

자연이 만든 모든 디자인은 이유가 없는 것이 없다. 나무의 모양을 예로 살펴보자. 나뭇가지가 위로 갈수록 펴지는 것은 나뭇잎들이 광합성을 하기에 적합하게 하늘과 접하는 면적을 최대한으로 키우기 위해서다. - P272

나뭇가지들이 적당하게 거리를 두어야 이파리가 서로 간섭하지 않을 수 있고, 그 사이로 바람이 통과해 비바람에 나무가 쓰러지지 않을 수 있다. 나뭇가지는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데, 그렇게 해야 하중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뭇가지가 줄기에 붙은 부분은 가늘고 가지의 끝으로 갈수록 굵어진다면 그런 나뭇가지는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부러질 것이다. 이렇듯 모든 자연의 디자인은 기능적으로 이유가 있기에 그렇게 나온 것이다. - P272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명제는 자연에서 배운 지혜이며, 그것을 완성한 것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유기적 건축이다. - P272

그의 작품은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건축물이 그냥 땅에서 자라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의 건축 세계를 ‘유기적 건축‘이라고 부른다. 건축물이 생명이 없는 무기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다는 뜻이다. - P269

자연과 하나 된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주변의 자연을 잘 이해해야 한다. - P272

훌륭한 건축가는 자신이 만든 건축물에서 거하는 사람의 모든 생활 모습을 상상하고 그에 대처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따라서 건축가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주택 설계다. 왜냐하면 주택은 상업 시설이나 사무 공간보다 기능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 P279

집에서는 먹고, 자고, 싸고, 모이고, 혼자 있고, 요리하고, 쉬는 등 온갖 행위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다양한 행동이 모두 좁은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건축가는 이런 복잡한 상황을 상상하고, 다양한 시간대의 갖가지 행위가 충돌하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 P279

왜 인류는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해 돌을 세워서 놓았을까? 인간은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직립 보행을 한다. 사람이 죽으면 서 있지 못하고 눕는다. 사람에게 서 있다는 것은 살아 있는 생명을 뜻한다. 그러니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해서 살아 있었을 때를 기억할 수 있도록 무언가를 세워 놓는 것은 본능적인 행위가 아닐까 생각된다. - P281

하나 더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인류가 최초로 건축물을 만든 목적이 누군가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였다는 점이다. - P281

초기 인류의 직업은 사냥꾼이었다. 그들은 사냥하다가 죽은동료를 회상하기 위해 동굴 벽에 함께 사냥하던 곳과 비슷하게 동물들을 그려 놓고 그 공간에서 옛 추억을 회상하지 않았을까? 일종의 앨범처럼 말이다. - P284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많지만 가장 중요한 다른 점은 미래를 상상하고 그에 따라 죽음을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가올 것을 미리 상상하는 능력이 있었기에 겨울을 생각하며 봄에 미리 씨를 뿌리는 농사를 지었고,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며 무덤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건축 공간에서 죽음을 슬퍼하고 서로를 위로하던 인류는 이러한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더 큰 사회 조직을 만들고 발전할 수 있었다. - P285

세월이 흐르고 인간의 기술이 발달할수록 무언가를 기리는 건축물은 더욱 커지고 기법도 다양해졌다. 자연이 만든 실내 벽에 벽화를 그리는 대신에 인간이 돌로 건축물을 쌓아서 실내 공간을 만들고 창문에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드는 쪽으로 발전했다. 단순하게 돌을 세우던 것에서 발전하여 세운 돌에 조각을 해서 구체적인 인물의 모습을 한 조각상을 만들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죽음을 기리는 공간이나 물체에 장식이 늘었지만 ‘공감을 자아내는 기념의 공간을 만든다‘는 본질은 그대로다. - P285

그리스신화에도 저승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네 개의 강을 건너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고, 기독교에서도 죽음을 ‘요단강을 건넌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게 인류의 보편적 정서에서 강은 삶과 죽음을 나누는 공간적 경계다. - P286

국경이나 땅문서가 따로 없던 고대의 인류는 어느 땅이나 걸어서 갈 수 있었다. 공간의 경계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고대 인류에게 유일한 공간적 한계가 있었다. 바로 물이었다. 상상해 보자. 고대 인류는 다리나 배를 만들 수 없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강같이 건널 수 없는 물은 자연이 만들어 낸 가장 강력한 공간적 한계이자 경계였을 것이다. 죽음 이후의 세상은 머리로는 상상할 수 있지만 갈 수는 없는 분리된 세상이다. 그렇다 보니 삶과 죽음을 나누는 경계를 강으로 상상했던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 P287

중력은 피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이다. 시간도 역시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죽고, 죽으면 땅속에 묻힌다. 누가 묻어 주지 않아도 우리 몸은 썩어서 중력에 의해 땅으로 들어간다. 베트남전 참전 전사자들도 지금 어딘가의 땅속에 묻혀 있다. ‘베트남전쟁재향군인기념관‘에서 중력에 이끌려 걸으며 땅속에 들어가는 듯한 경험은 마치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경험과 비슷하다. - P295

검은색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갇히면 마치 땅속에 묻힌 듯한 느낌이 든다. 참전 용사들과 함께 묻혀 보는 것이다. 이때쯤 되면 그 검정 대리석 벽에 눈이 가고 표면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 검은색 옹벽에는 전사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대략 내 눈에 들어온 이름의 숫자만 해도 수백 명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한 사람의 이름은 한 명의 목숨을 의미한다. ‘베트남전쟁재향군인 기념관‘의 벽에는 죽어서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 P295

우리는 장례식장에 가면 모두 검은색 옷을 입는다. 검정은 죽음을 상징한다. 검은색 돌 앞에서는 더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 P297

그리고 그 검정 돌의 표면 처리도 중요하다. 물을 부어 가며 돌을 가는 물갈기 작업을 하면 표면이 거울처럼 반짝인다. 돌의 색상이 짙을수록 거울 같은 효과가 더 커진다. 이 기념관에서도 검은색 돌을 바라보면 표면에 내 얼굴이 비친다. 내 얼굴에는 많은 사람의 이름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죽은 자를 생각하며 살아 있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이다. - P297

중력을 거스르면서 올라가서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심박수가 빨라지면 살짝 흥분되고 긍정적인 마음이 생긴다. 우울증 환자에게 가장 좋은 처방중 하나는 햇빛을 받으면서 빠른 걸음으로 걷는 것이라고 한다. ‘베트남전쟁재향군인기념관‘에서 걸어 나올 때 딱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 P299

훌륭한 건축가는 주변의 좋은 에너지를 잘 이용하고, 더 훌륭한 건축가는 좋지 않은 에너지까지 좋은 것으로 전환한다. 마야 린은 정말 다루기 어려운 슬픔과 갈등의 이야기를 미국 전체 역사 이야기 속에 잘 버무려 한 편의 영화 같은 기념관을 만들었다. 최고다. - P300

같은 백색이어도 건축 재료의 재질, 건축물이 지어지는 지역의 태양광의 입사 각도와 광량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다. 따라서 건물이 위치한 지역, 마감 재료, 건물 용도에 따라 세심하게 백색을 골라야 한다. - P305

백색은 그런 힘이 있다. 어떤 것을 가져다 두어도 담긴 것이 돋보이게 하는 힘이다. 백색의 인테리어는 배경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관이나 갤러리는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백색 마감을 하고 가장 기본적인 상자 형태를 추구한다. 그래서 ‘화이트 큐브white cube‘라고 하는 흰색 상자 형태가 가장 보편적인 갤러리의 공간 유형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이나 사진을 액자에 넣을 때 그대로 넣지 않고 사진 주변에 흰색 종이를 두르고 넣는데, 이런 종이를 ‘마운트mount‘라고 부른다. 그런 흰색 마운트를 두르면 그림이나 사진이 더욱 돋보인다. - P306

흰색 건축물이 자연 속에서 눈에 띄는 이유는 자연에는 백색이 드물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무수히 많은 색상이 있지만 하늘의 구름이나, 눈 정도를 제외하고는 백색이 별로 없다. 백색은 가장 인공적인 색상이면서 동시에 가장 주변을 살리는 색이기도 하다. 마이어의 건축은 환경과 인간의 삶을 잘 프레임해 주는 액자 속 흰색 마운트 종이다. - P308

타일이나 돌은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의 모양으로 생산된다. 이런 재료를 시공할 때 각 부재들 사이를 약간 띄우고 시멘트로 채워 넣는데 이를 ‘모르타르‘라고 부른다. 이 모르타르 간격은 재료마다 다르다. - P313

여러분도 마음이 복잡하다면 안 쓰는 물건을 버리고, 청소와 정리 정돈을 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다못해 컴퓨터 모니터 안의 아이콘들을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컴퓨터나 스마트폰 배경 화면은 우리가 제일 많이 바라보는 창문이다. 그 창으로 어떤 공간이 보이느냐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 P315

배경 화면으로 넓은 공간의 사진을 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참고로 내 컴퓨터와 스마트폰 배경 화면은 맨해튼과 ‘센트럴 파크‘가 내려다보이는 조감 사진이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3천억짜리 펜트하우스에 사는 창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 P315

마이어 디자인의 멋을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디테일은 난간이다. 건축 작품을 감상할 때 난간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난간의 모양과 디테일에서 건축가의 철학과 생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 P315

난간은 크게 네 가지 정도로 분류된다.
첫째, 벽으로 만든 난간, 둘째, 수직 바로 만든 난간, 셋째, 수평 바로 만든 난간, 넷째, 투명 유리로 만든 난간이다. 일반적으로 마이어는 난간에 수평 바를 사용한다. 아마도 수직 바로 난간을 만들면 경치를 많이 가리게 되는 문제를 피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 P315

마이어의 건축은 형태나 색상과 재료가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흰색 배경이 되어 주는 동시에 정교하게 다듬어진 디테일로 건축에 담긴 자연과 사람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마이어는 살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건축가다. - P3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