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숙 작가님의 ‘자작나무 숲‘이라는 소설은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일종의 강박장애를 겪는 사람을 지칭하는 ‘호더(hoarder)‘라는 것을 소재로 하여 쓰여진 소설이다.

비단 이 소설 뿐만이 아니라 우리 현실 속에서도 이러한 호더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TV프로그램 중에 정리전문가와 함께 일반 가정의 불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하는 프로그램들을 봤던 기억도 나고, 유튜버들 중에 정리유튜버라고 해서 집안에 쓰지 않고 방치된채로 남아있는 물건들을 정리하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유튜버들도 봤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이 작품의 메인소재가 이런 것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고, 이 소설의 주제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작가님이 작품을 통해 어떤 것을 의도하셨는지는 독자인 내가 확실히 알 순 없지만, 적어도 우리 현실의 실생활에서 자주 쓰지도 않는 물건들을 충동적으로 구매하거나 하는 행동들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고 반성해보게 하는 효과는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소설의 주제와는 약간 벗어난 얘기 일 수도 있겠지만, 호더라는 소재자체에서 느껴지는 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이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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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나오는 ‘작은 방주들‘이라는 작품은 신주희 작가님의 작품이다.

‘작은 방주‘라는 게 이 소설에선 회사같은 어떤 ‘조직‘을 지칭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인공의 친구인 진주가 이직한 회사 이름이기도 하면서도, 주인공이 속해있는 회사를 상징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의 소재들을 이것저것 볼 수 있었다. 비트코인이네 블록체인이네 하는 것들... 그리고 간단한 비유를 통해 그것의 원리들도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 또한 이와는 별개로 독자인 나는 잘 몰랐던 ‘우유니‘라는 소금 사막이 있는 관광지에 대한 얘기도 나왔는데, 검색해보니 관광 여행지로 나름 유명한 곳이었다. 여행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미 알고 계셨던 분들도 있었겠지만, 아예 몰랐던 나 같은 사람에겐 뭔가 이국적이면서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이 단편 소설을 통해 잘 몰랐던 여행지를 알게 되어 유익했던 것 같다.

너 자작나무가 왜 자작나무인지는 아냐?

왠데?

자작자작 타서 자작나무란다.

너 꽝꽝나무가 왜 꽝꽝나무인 줄은 아냐?

그런 나무도 있어?

탈 때 꽝꽝 소리를 내서 꽝꽝나무란다.

자작나무는 추운 곳에서 자란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았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았다. 소나무만큼이나 알았다. 하얀 껍질을 종이처럼 벗겨내는 나무였다. 한 껍질을 벗기면 또 살아나서 다시 하얘지는 나무. 벗고, 벗고, 또 벗는 나무. 그래도 알몸이 되지 않는 나무.

하나도 버릴 게 없지 않니.....

할머니가 등 뒤에서 말했다. 좌절과 부끄러움과 슬픔과 고통이 뒤범벅되어 있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무리 애를 써도, 이를 악물고 애를 써도 단 하나도 버릴 것을 찾을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집과 마당은 이제 물건으로 완전히 장악되어 사람은 커녕 간신히 고양이 한마리나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 통로만 남아 있었다. 그런 통로를 ‘염소의 길‘* 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나는 훗날에야 알았다.

* 랜디 O 프로스트, 게일 스케티키 《잡동사니의 역습 : 죽어도 못 버리는 사람의 심리》 (정병선 옮김, 윌북 2011) 에 쓰인 "산양의 오솔길(Goat Paths)"에서 차용.

종이는 뭉쳐 있으면 더는 가벼운 것도 날리는 것도 아니었다.

할머니가 호더가 된 이유를 나는 꿈 속에서 깨닫는다. 내가 못 가져가도록, 아무도 못 가져가도록 쓰레기를 쌓아놓은 것이다. 아주 산처럼 쌓아놓은 것이다.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어린 시절, 나는 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까. 상상하는게 많아서였을 것이다. 어쩌면 엄마의 이야기속 빈틈을 채우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소설이 꼭 윤리적일 필요는 없는 거잖아.

할머니는 도시 괴담을 방송하는 유튜버에 의해 발견되었다. 호더가 어찌하여 도시 괴담의 일종일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할머니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바람에 괴담의 자격을 얻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빨리 모든 것을 다 치워버리는 것 뿐인듯 했다.

나를 붙들고 있는 것들이 쓰레기들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쓰레기를 실어 나르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거슬리다 못해 견딜 수가 없었다.

저들은 쓰레기는 다 쓰레기인 줄로만 안다. 그래서 다 쑤셔넣고 다 던져버린다. 그러고는 다 묻어버리거나 다 태워버리겠지.

자작자작 태울 줄도 몰라 다 꽝꽝 태워버리겠지.

할머니가 살아있을 때는 다 버려야 한다고 믿었던 것들인데, 갑자기 무슨 마음인지, 어떤 것은 남겨두라고, 그것만은 안된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이뿌리의 신 침처럼 고였다. 그러더니 점점 다 그냥 놔두라고, 다 내거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니까 전부 다 내가 상속받은 것이라고, 내가 상속받은 쓰레기라고.

들어가면 위험해요!

아빠가 있어요, 저기에!

위험하다니까요, 할머니!

뭐라고요?

깔려 죽는다고요, 할머니!

이것은 내 이야기인가, 할머니의 이야기인가, 아니면 소설 속 이야기인가.

아무것도 버릴 수가 없어요. 왜죠?

모든 것에 다 기억이 있어서요.

어떤 기억입니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숲으로 가야 할 것이다. 할머니를 버리러. 어쩌면 아빠도 버리러. 가다가 자작나무 숲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한 껍질 한 껍질 벗으면서도 맨 몸이 되지 않는 나무들의 숲. 환한 나무들의 숲. 그런 숲에 이르면 나는 마침내 물을지도 모른다. 뭐가 그렇게 탔어, 뭐가 그렇게 애타게 자작자작 힘들었어, 할머니.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죽은 사람은 대답할 수 없으므로. 그러나, 다시 궁금해진다. 죽은 사람은 과연 대답할 수 없는 것일까.

플라밍고 튜브에 바람을 넣는 꿈을 꿨다.

‘No more priceless time.‘

아이들을 위한 책을 만드는 일이고, 이건 값을 따질 수 없는 priceless한 일이 아니겠냐고.

물론, 일은 늘 ‘어떤‘보다 ‘얼마‘가 더 중요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값을 따지려는 걸 보니 마음이 침침해졌다. 돈이면 세상 별 게 없다는 논리가 착착 맞아들어가는 게 싫어서 억지를 부린 거였다.

‘우유니 소금 사막 초초초특가 패키지.‘

코로나가 창궐할 때 그것은 여행사들의 마지막 몸부림이었을 터였다.

생소한 이름이 적힌 명함을 내밀 때, 진주의 모습은 얼마나 밝고 멋져 보였나. 돌이켜보면 나는 그런 그 애의 모습을 당연하다고 여겼다. 견뎠으니까.

하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게 아니다,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이 진주였다.

그간 벌어진 일을 떠올려 볼 때, 불행이 실패 선고를 제대로 내린 것 같았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고. AI하고도 경쟁을 해야하는 시대, 라고.

가보지도 않은 곳이 그리울 수도 있단다

언젠가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를 봤다고 말하며 줄거리를 설명했던 게 기억났다. 체 게바라가 오토바이로 남미 대륙을 횡단하는 이야긴데, 그는 추키카마타란 광산에서 노동자들의 참상을 목격하고는 의학도의 길을 포기했다고 했다. 그 뒤부터 혁명가의 길로 나서게 됐다고.

피로를 모르는 가상세계와 달리 진주의 현실 세계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그러니까 진주가 한다던 새로운 일의 실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붙잡고 어디론가 휩쓸려 가는 일처럼 보였다.

지난 일들이 시커먼 소용돌이를 만들며 머릿 속을 휘저었다.

허니쿠키는 명절에나 겨우 얼굴을 보는 제 가족이 손님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때가 되면 만나서 서로를 먹이고 입히고 마중하며 틈틈이 상처를 주고 받는 관계들.

아이러니하지만 근미래에 가족이 없을 여자들의 우정은 남편도 자식도 없이 혼자 남겨질 때를 대비하며 두터워지는 법이었다.

우울한 미래 따위에 미련을 두지 말자, 그저 최선을 다해 오늘의 술잔을 비우자, 하는 게 주된 건배사였다.

의혹과 경계심이 묘하게 뒤섞인, 전과는 확연히 다른 눈빛이었다. 마음 속 어딘가에서 화르륵, 하고 애써 눌러 놓은 것들에 불이 붙는 느낌이었다.

아크가 뭐더라?

방주요.

암호화폐를 보관하기 위해 누구도 해킹할 수 없는 보안이 필요한데, 아크는 블록체인 기술을 장착한 전자지갑이라고 설명했다.

지갑을 비롯해 채굴이니, 주소니, 하드포크니 하는 말들은 몽땅 미래에서 과거로 갑자기 떨어진 말이었다. 블록체인과 비트코인 얘기로 넘어가는 진주를 보며 나는 그저 눈을 깜빡였다.

진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 애다운 설명을 덧붙였다.

자, 꽃이 있다고 치자.

그럼 벌과 나비같은 곤충들이 있겠지? 꽃과 벌은 각자의 일을 하는 거야. 꽃이 벌을 위해, 벌이 꽃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대신 각자 원하는 보상을 받지. 꽃은 번식을 하고 벌은 꿀을 얻잖아. 그런 거야, 내가 하는 일이. 프로그램 안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꿀을 가질 수 있도록 그 시스템을 번식시키는 거. 암호화폐의 철학이 탈중앙화거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그 애의 말을 되씹었다. 지배적인 중앙세력이니, 대중을 속일 수 없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됐다느니.

나는 의구심을 품은 채 인터넷을 뒤적였다. 그 후에야 진주의 얘기가 블록체인 기술의 핵심 개념에 관한 비유라는 걸 알게 됐다.

뭐가 있다고 치는 것. 없는데 있다고 치는 것. 치자, 치자, 치자, 중얼거리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거짓말도 치는 거고, 사기도 치는 거고, 뒤통수도 치는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질투와 아쉬움이 역력한 허니쿠키의 얼굴을 보는데 희열이 느껴졌다. 내가 그의 마음 한 구석에 예리한 구멍을 낸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여유로운척 고개까지 끄덕이고 있었다.

근면성실이 더는 성공의 무기가 될 수 없다는 걸, 심지어 무능도 전략적으로 증명해야 실업급여라도 받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초현실적인 형벌을 받으며 복기했다. 매 순간 뒤통수와 엉덩이가 얼얼했다. 뼈가 시릴 정도로 반성의 시간을 보냈다.

인간의 위엄이나 품위같은 건 잠시 어딘가에 담보로 잡혀있다 생각하고 버텼다.

무보직 대기 발령 메일을 받은 그날부터 찬찬히 되짚어보니 세 단어중 방점이 찍힌 단어는 ‘발령‘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무보직‘이었다.

누군가 ‘세계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고 부른 곳에 차가 들어서고 있었다.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었다. 눈이 부시도록 아른거리는 흰빛, 차는 빛을 그대로 밟으며 지평선 끝에 다다랐다. 정확한 대칭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이곳과 저곳이, 안과 밖이 혹은 오늘과 내일의 구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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