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이유로 소란한 사람들은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마늘을 그렇게 잡수셨는데 왜 아직도 인간이 덜 됐을까.
마늘 까기에 몰두한 할머니는 나를 본 척도 하지 않는다.
5백 원짜리 동전은 내 주머니에 넣는다. 이건 훔친 것이 아니라 버려진 것.
승규는 지나던 길에 발끝에 걸린 돌멩이를 차내는 것처럼 망설임 없이 나를 후려쳤다.
나는 늘 소란의 중심에 있었다. 나를 놀리고 조롱하고 멸시하느라 소란해진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건 지겨운 일이었다.
승규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 휘휘 걸어 자리를 벗어났다. 소란에서 멀어지기 위해 승규를 흉내 냈다.
뺨을 맞는 일. 그게 특별히 부끄럽진 않았다. 뺨이 아니라도 나는 어디든 늘 맞았으니까. 내가 죽도록 부끄러웠던 건 나의 관성이었다.
정답이든 오답이든 상관없이, 오로지 뺨을 맞기 위해 발설되는 나의 대답이 죽을만치 부끄러웠다. 내가 답을 하는순간 게임이 성립됐다. 승규와 나의 수직적 위계가 거기 있었다.
말하지 마. 그만해. 나는 그 말을엄마와 변호사에게서 제일 많이 들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중에도 그들은 내팔죽지를 꽉 눌러잡고 말했다. 네게 불리할 수 있어. 말하지 마.
소란은 소문으로 이어졌다. 누군가는 소문을 불신하고 누군가는 소문을 맹신했다.
매일매일이 소란했다. 아무 것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문득 이상하단 생각이 들지 뭐니.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하다 보니 도무지 끝이 나질 않는 거야.
나는 진심을 담아말한다. 알 리가 없다. 이미 으깨진 것을 기어코 한 번 더 으깨놓는 사람의 마음 같은 건.
사람이 잘못 알수도 있는 거지. 그게 뭔 대수라고,
그건 대수로운 일이다. 사람에 대한 말은 어떤 것이든 다 대수롭다.
나는 처음으로, 여자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를 위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끝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안쪽과 바깥 쪽, 앞문과 뒷문, 훈육과 학대.
손쉽게 구분되는 것 같지만 기준점이 조금만 바뀌어도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
청소 일로 연수가 받는 돈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그러나 누구와도 부딪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연수는 자신에게 당도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것은 재물의 형태로 어떤 것은 말의 형태로 떠올랐다.
연수를 제외한 사람들이 임의로 산정한 금액과 연수만이 동의하지 못한 말들. 잃어버린 개를 찾기 위해 지불되는 사례금 50만 원과 학부모에게 머리채를 잡힌 교사에게 지불되는 위로금 50만원.
연수가 말했다. 자신에게 당도한 모든 순간에 연수는 그렇게 답변해왔다. 난 몰라요. 난 못 봤어요. 나는 정말 그런 적 없어요.
처음엔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연수는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않아 모든 것을 비밀로 했다.
작은 현판이 붙은 교실을 떠올릴 때마다 구토와 어지럼증이 솟는다는 걸,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호흡이 가빠진다는 걸, 교탁 앞에서면 시야가 급격히 졸아들면서 머릿속에 암흑이 찾아온다는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수가 아무리 애를 써도 들키는 것이 있었다.
중학생이 다 그렇죠. 관심받고 싶어 하고 미숙하고 제멋대로고. 관심받고 싶어 하는 미숙한 한모가 연수에게 한 일은 그저 문을 닫는 것이었다.
스트레스 받을 땐 단걸 먹어줘야 돼요. 선생님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면 애들은 그게 재밌어서 더 짓궂게 굴거든요.
아무것도 눈치챌 필요가 없었다. 연수는 그게 좋았다.
한모가 몸을 밀어붙여 올때의 불쾌감을 참는 것과 교실에서 추방당하는 모멸감을 참는 것 중어느 쪽이 그나마 견딜 만할까. 연수는 진지하게 그런 것들을 생각했다.
연수는 모든 게 다 지겹고 피로해 견딜수가 없었다. 연수는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하고 교무실로 돌아오는 단순한 일상속에 있고 싶었다. 그 당연한 일이 연수에게는 왜 그렇게 힘들었나.
중앙 현관을 넘고 나면 이제 다시는, 어떤 문안으로도 몸을 들이지 않을 작정이었다. 연수는 너머의 세계에 있기로 했다. 그것은 부끄러운 선택이 아니었다. 적어도 연수에게는 그랬다.
자음과 모음을 낱낱이 풀어 손에 쥐고 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자석으로 되어 어디든 착착 붙던 한글 놀이 자석 세트 였는데,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손안에서 조몰락대던 그 글자들이 언제든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요.
동시에 그때 이미 알게된 것도 같습니다. 앞으로 제가 살아가게 될 글자들의 세계가 얼마나 입체적이고 선명한지에 대해서요.
한글 남자들을 연이어 붙이면 글자가 되고, 그 글자들을 소리 내 읽으면 세계가 시작됩니다.
말과 소리를 수줍게 싸서 누군가에게 건네면 관계가 시작되고, 주렁주렁 얽힌 무수한 타래를 박제시키면 역사가 됩니다. 글자를 몇 개 조합하는 것만으로 와락 일어서는 세계란 얼마나 매혹적인지요.
그러나 그세계는 끈질기게 이어 붙이지 않으면 순식간에 붕괴되어버리기도 합니다. 멋대로 기괴해지고 손쉽게 부정당하고 누군가를 틀림없이 상처 입힙니다.
어쩌자고 이런 무서운 것을, 어린 시절엔 굴리며 놀수 있었을까요. 입에 넣고 우물거리거나 냉장고 따위에 철썩 붙여둘 수 있었던 걸까요.
낱자를 더듬어 붙이던 어린 시절처럼 저는 여전히 글자들을 골라내고 있습니다. 활자를 조판하듯 백지 위에 하나하나 조심스레 올립니다.
어떤 글자들은 몰래 손바닥에 써서 삼켜버리기도 하고, 어떤 글자들은 담벼락에 휘갈긴 뒤 도망치기도 합니다. 누군가 읽어버릴까봐, 혹은 아무도 읽지 않을까 봐 늘 두려워하면서요. 수상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그 글자들의 무게를 떠올렸습니다.
정확히는 글자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소설 속 세계의 무게에 대해서입니다. 고집스러운 마음으로 쌓아올린 세계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계속 고민해보겠습니다.
아이는 쏟아지는 질문들과 상반된 요구 속에 놓이게 되었다. 엄마와 변호사는 이렇게 경고했다. "말하지마. 그만해.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들도 그랬다. "네게 불리할 수 있어. 말하지 마."
그러나 죽은 아이의 엄마는 불쑥불쑥 찾아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다른 요구를 했다. "진실을 말해줘." 이 소란의 중심에 있는 아이가 바로 <애도의 방식>의 주인공 나(=동주)‘이다.
소란하다. 나는 소란한 것을 좋아하고 소란해지는 것을 싫어한다. 이미 소란한 곳에서는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 소란해지기 시작한 곳에서는 대부분 내가 그 중심에 있다.
나를 놀리고 조롱하고 멸시하느라 소란해진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건 지겹다. 나는 소란한 곳이 좋다. 타인에 의해 한껏 소란해진 상태라면 더더욱 좋다.
그 ‘사건‘ 이후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자신을 따라다니는 소문과 억측에 시달려야 했다.
종종 찾아오는 죽은 승규의 엄마는 ‘나‘를 둘러싼 소문이 잦아들 틈을 주지 않았다. 승규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나‘를 소란의 중심에서 벗어날 수 없게 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나‘는 마을을 떠나려 했으나, 먼 여정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의 작은 찻집에 머물게 된다. 부산한 대합실에 ‘나‘가 누구인지 아무도 신경 쓰지않을 만큼의 소란이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나‘의 진실을 억압하고 있는 이가 승규 엄마뿐 아니라, 엄마와 변호사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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