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들어가는 말과 함께 처음 나오는 짤막한 이야기를 읽어 봤는데 몰랐던 사실들을 이것저것 알게 되었다. 근데 실용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대다수의 일반인들이 들어보지 못했던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것을 읽어본다는 느낌이 좀 더 강했다. 향후에 어떤 내용들이 이어질지 궁금하다.
.
.
.
저자는 p.29에 밑줄 친 디킨스와 도스토옙스키간의 대화는 허구라는 얘기를 하면서, 공론의 장에 유통되는 가짜 인용구들이 얼마나 될 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냥 유명인이 언급했다고 무작정 믿었던 것에 대해 한 번 쯤은 의심해보는 마음을 가질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일일이 밑줄치진 않았지만 이러한 가짜 인용구들을 인용하여 논문에 사용하는 사례도 소개되는데, 굉장히 스펙타클(?)하게 느껴졌다. 한 예로, 러시아어 문헌에 대해 영문학자들이 러시아어를 모를거라는 예상과 더불어 그 문헌을 일일이 확인할 리도 없을거라는 생각으로 가짜 인용구들을 논문에 넣어 학술지의 심사를 통과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
.
.
뒤이어 개인적으로는 처음 들어보는데 티옴킨이라는 러시아 출신 작곡가에 관한 이야기가 간단하게 나온다. 근데 이력을 보니 꽤나 유명한 사람인듯 하다.

이 책은 읽으면서 각종 지식들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생년 처음 들어보는 외국의 인물들이나 사건들에 대해 나오는데 읽으면서 어떤 교훈적인 것보다는 배경 지식의 확장에 초점을 두는게 맞을 것 같다.
.
.
.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에피소드로 밥 딜런이 2016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때 있었던 일들이 간략히 소개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나왔던 갖가지 말들이 굉장히 흥미롭게 읽혔다.

여기서 특별히 p.44에 밑줄 친 칭찬과 관련된 영국의 문인 새뮤얼 존슨 박사가 한 말은 굉장히 날카롭고 예리하게 느껴졌다. 마치 정곡을 찌른 것 같은 느낌이었다.


p.50에 밑줄 친 ‘마음이론‘과 관련된 이야기도 나름 흥미로운 읽을거리였다. 특별히 추리작가 챈들러가 했던 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밑줄 친 마지막 부분에는 미국의 영화 평론가인 ‘폴린 케일‘이라는 사람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개인적으로 이쪽 분야에 무지한 터라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잘 몰랐는데, 저자가 쓴 이야기에 근거해보면 굉장히 영향력이 있었던 평론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오늘도 하나 배운다.

그녀의 평론 방식은 기존 평론가들의 것들과는 상당부분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p.54에 밑줄 친 부분에도 잠깐 나오지만, 그녀는 영화를 볼 때 늘 친구를 대동하고 본 반면, 대다수의 남성 평론가들은 주로 혼자 영화를 보러 다녔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폴린 케일의 평론은 마치 친구에게 건네는 말 같은 생생함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본문에 직접적으로 나오는 표현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기존의 평론이 상투적이고 뭔가 딱딱한 느낌이었다면, 폴린 케일의 평론은 고리타분하거나 딱딱하지 않고, 뭔가 기존의 것과는 다른 느낌을 줬다는 것으로 보였다.

읽으면서 나름대로 흥미가 느껴지는 글이었다.

어머니에게 드립니다. - P5

버스에서 우린 웃으며 승객들과 게임을 했는데 그녀는 개버딘 정장을 입은 남자가 스파이로 보인다고 했고 나는 "조심해. 그 남자 나비넥타이, 실은 카메라야."라고 말했다.
ㅡ 폴 사이먼, 「아메리카」 - P7

이 책에서 언급된 작품이나 작가들 대부분은 스파이로서 읽었던 것이지 업계인으로 읽은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업계인으로서 읽었던 책은 그리 인용하게 되지 않는다. - P11

제목 『작가, 업계인, 철학자, 스파이』는 존 르카레의 장편소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1974)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이다. - P12

1부 ‘작가‘는 작가나 문필가, 넓은 의미의 문학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이 책 전체가 대체로 그런 편이지만 특히 여기 실린 글들은 인상적이었거나 좀 웃기게 생각됐던 에피소드에서 출발한 것이 많다. 몇몇 작가들, 보르헤스, 토마스만, 그레이엄 그린 등은 이 책에 너무 단골로 등장시키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폴린 케일이나 윌리엄 트레버에 대한 글처럼 팬으로서의 마음이 너무 드러나 버린 것도 없지 않다.
이런 개인적이고 편향적인 시선이 문학에 대한 독자의 시들해진 호기심을 다시 자극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물론 너무기쁠 것이다. - P12

2부 ‘업계인‘은 직장에서 일하는 것과 관련된 경험들을 다룬다. 나는 업계인이라는 말이 가진 뭔가 구식의, 지금보다 덜 유동적인 사회에서 통용되었을 법한, 블루칼라적이면서도 계급이 사라진 듯한 느낌을 좋아한다. - P13

나는 어린 시절 에릭 앰블러와 르카레의 소설에 매료되었다. 당시 번역된 게 많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니 이 책에 실린 글들과 제목까지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집착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 P14

글쓰기를 육상선수의 자세로 해야 하며 어슬렁거려서는 안 된다고 했던 베냐민이 몰두한 주제가 산책자였던 것은 내게 늘 재미난 아이러니로 생각된다. 낭비하는 동작 없이 결론으로 질주할 것. 한눈을 팔아서도 안 되고 방금 떠올린 하찮은 생각을 적느라 시간을 낭비해서도 안 됨. 그의 이런 스파르타적인 규칙은 실용적인 조언이라기보다 하나의 사상에 가깝다. - P14

어떤 피아니스트들은 모두가 아는 곡들을 마치 자기는 지금 처음 쳐본다는 듯이 머뭇거림과 놀라움을 드러내며 연주하고는 한다. 완벽한 기교를 과시하는 연주보다 늘 더 많은 흥미를 주는건 그들의 연주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제공하는 것은 정교하게 배치된 정지 화면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극장이기 때문이다. - P15

누구든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것만 가져올 수 있을 뿐이다. - P28

1862년 런던에 들른 도스토옙스키는 디킨스를 방문했다. 대화 중 디킨스는 털어놓았다.
"내 속에는 두 명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마땅히 가져야 할 도덕을 지닌 자이고, 또 한 사람은 그와 완전히 반대입니다. 전자는 내 삶에 지침을 주고, 후자는 사악한 등장인물의 소재가 됩니다."
도스토옙스키가 반문했다. "단지 두 명뿐이라고요?" - P29

한마디로 서두의 디킨스-도스토옙스키 회동은 완전히 허구다. 창작자는 노년에 접어든 무명의 역사학자이자 작가임이 밝혀졌다. 그는 주목받지 못한 자신의 논저와 소설들을 찬양할 목적으로 십여 개의 필명을 지어내 서평을 투고해 왔다. 별 성과가 없었다는 점만 빼면 수십 년간 이 불장난은 딱히 위험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를 곁가지로 - 왜 그랬을까? - 건드리면서 그는 꼬리가 밝히게 되었다. - P30

공론의 장에 유통되는 가짜 인용구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꽤 많을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 P31

가짜 인용의 피해자가 되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본인이 읽고 확인한 구절만 인용하는 것이겠다. 그러나 이건 시간과 노력이 꽤 드는 일이다. - P32

불확실한 것은 불확실한 채로 남긴다. 딱히 동조하는 인상도 주지 않는다. - P32

티옴킨은 흥미로운 인물이다.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공부했고 혁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영화음악 작곡가가 되었다. 오스카상을 네 번 받았다. 그의 장기는 서부극이었다.「하이 눈」, 「OK 목장의 결투」, 「리오 브라보」, 「알라모」등 고전 서부극은 이 러시아인에게 빚을 지고 있다. 「자이언트」나 「알라모」 주제곡을 다시 들으면 여전히 미국 음악 같으면서도 러시아 합창 음악 비슷한 요소가 떠오른다. - P34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여럿은 사무라이 웨스턴 즉 일본 옷의 서부극이다. 「7인의 사무라이」(1954) 등을 미국인들은 감탄하며 역수입했고 이후 서부극 장르에는 구로사와의 영향이 감지된다. - P35

말년의 인터뷰에서 구로사와는「7인의 사무라이」의 여러 원천 중 하나로 알렉산드르 파데예프의 『궤멸』(1927)을 들었다. 파데예프는 스탈린 시대 어용 작가로, 『궤멸』은 내전기 파르티잔 이야기이다. - P35

문화는 서로 모방하면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물론 연원과 소유권을 따지는 게 부질없는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명해 보이는 장르도 조금 더 살펴보면 누가 누구를 모방했는지, 무엇이 누구로부터 비롯되었는지 결국 알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 P36

적어도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전체를 고려하는 것이다. 독자라는건 얼마나 순수하고 공정한 자리인가. 현실에서는 보통 이러지 않는다. - P39

우리의 현실 판단은 크게 믿을 바가 못 된다. 우리의 판단력이란 책 읽을 때 쓰려고 최적화되어 있는 듯하다. - P40

레넌과 매카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봤어요. 하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우리는 지식인이 아니니까요." 비틀스는 음악뿐 아니라 인터뷰에도 천재였다고 하는데, 사실 이보다 좋은 대답은 상상하기 어렵다. 만일 그들이 감사하다든지, 그 기사가 흥미로웠다든지,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고 해 보자. 그들과 음악 평론가는 사람들 보는 앞에서 만나야 했을 테고, 서로 ‘음악‘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으며 터지는 플래시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등 전혀 불필요한 장면이 연출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 건 비틀스와 어울리지 않는다. - P42

그해 수상자는 미국 가수 밥 딜런이었는데, 핵심은 팝 음악가사의 문학성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이 인정한다는 데 있었다. 예상 밖의 결정을 한 스웨덴 아카데미는 칭찬받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문제는 딜런이 협조했을 때만 원하는 그림이 된다는 건데, 딜런은 일주일 넘게 전화도 받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단지 공연 중 「왜 나를 바꾸려 드나」라는 노래를 불렀을 뿐이다. 당황한 스웨덴 아카데미 인사가 "무례하다" 라고 말한 것이 보도되었다. - P43

‘왜 나를 바꾸려 드나‘는 ‘나를 광대처럼 이용하지 말라는 말의 순화된 표현이었겠지만, 결국 상황은 딜런이 양보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참사의 원인을 그가 제공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 P43

"말하는 데 한 푼도 들지 않은 당신의 찬사가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는 먼저 생각해 보시죠." 18세기 영국 문인 새뮤얼 존슨 박사가 한 말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칭찬이 모두 무가치하냐 아니냐가 아니고, 칭찬을 말한 쪽이 빠지는 고유의 착각이다. 그는 원가(=제로)와 무관하게 자신의 칭찬이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가치가 있기 때문에 받은 쪽이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수표라도 써 준 것처럼 말이다. - P44

사실 노벨상은 공짜가 아니기 때문에 수상자가 예를 
표하는 건 당연한 일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 딜런은 나중에 상금은 받지 않았다. - P44

지식이나 지능을 자랑하는 소설 주인공처럼 안타까운 것도별로 없다. 도덕과 양심을 자랑하는 것보다는 참아 주기 쉬울 수도 있지만, 왜 하필 소설 속에서 그러고들 있을까? - P45

번잡한 논의는 생략하지만, 소설에서 부정직이라고 하면 대개 거짓을 들켜 진실처럼 보이게 하는 데 실패했다는 의미이다. 화자나 작가의 전지적 시점이 반칙에 의해 유지된다면 진실성 있게 보이기는 어렵다. - P46

언제 독자는 소설의 화자를 믿게 되는가. 사실 독자는 진실성의 문제에서 그리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언제 화자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는가로 물음을 바꿔도 좋겠다. 답은간단한데, 화자가 알 수 없는 것을 아는 것처럼 보일 때 신뢰를 잃는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대화 상대방 등 타자의 모든 의도를 꿰뚫고 있는 슈퍼맨이라면 그런 책을 끝까지 읽어 주기는 힘들 수밖에 없다. 작가가 자신을 전지전능한 창조자라고 느끼는 게 일이 잘 풀리고 있다는 뜻은 못 된다. - P47

움베르토 에코는 친구가 쓴 어느 소설에 붙인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것은 지식을 얻기 위함이다." 현명하게도 그는 독자들이 소설로 배우는 게 어떤 종류의 지식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그는 소설이 얼마나 제대로 된 학습 도구일 수 있느냐는 식의 반론을 회피할 수 있었다. - P47

좋은 소설은 불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무지를 숨기지 않고 행하는 탐구의 기록처럼 보인다. 사실 우리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게 많다고 느끼니 소설이 계속될 여지는 충분한 것 같다. - P48

뭐든 끝장이라고 말하면 효과가 좋은 건 사실이다. 그런 발언은 우리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 준다. - P49

보니것의 소설『제5도살장』(1969)에는 독서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평론가가 "이제 소설은 끝났다."라고 선언하는유명한 장면이 있다. 옆에 앉은 평론가가 맞장구치듯 말한다. "현대 독자들은 글을 읽고 이를 장면으로 떠올리는 능력을 상실했다." 그 뒤 반세기가 흘렀는데 앞에 나온 것들중 실제로 죽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 P49

사실 평론가2의 말은 편집자가 작가에게 수정을 강요할 때 쓰는 말이다. - P50

소설이 정말 죽었는지 따져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라고 한 얘기도 아닐 테니 말이다. 소설의 추락한 위상을 과장해서 한탄한 정도로 이해한다. 나는 지금 소설이 받는대접이 문제가 된다고 보지 않는다. 소설이 사회에 기여하는 점이 분명치 않은 것, 그래서 사회로부터 받는 보수가 큰지 작은지 모르게 된 것. 이게 더 문제 아닐까. - P50

1970년대 영장류를 연구하던 학자들은 뜻밖에 침팬지가 상대방의 생각을 고려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게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인데, 이론이라고 하니 어렵게 느껴지지만 ‘타인의 생각과 상황을 시뮬레이션 할수 있는 능력‘을 그렇게 표현한다. 인간의 기본탑재 능력 같은데 꼭 그렇진 않다. - P50

마음 이론이 결핍된 사람은 예컨대 약속 장소가 바뀌었을 때 상대방에게 알려 줘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옆에서 아무리 안달을 해도 그 연락을 마지못해, 가능한 한 나중에 하는 사람을 살면서 몇 번은 보았으리라 생각한다. 이들에게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평생 감당하기 힘든 수수께끼인 것이다. 이런 능력을 어렸을 때부터 충분히 발달시키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약물 중독이나 뇌손상, 조현병 등으로 상실하는 경우도 있다. - P51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소설을 읽는 것이 마음 이론의 유지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한다.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타인의 상황과 감정에 일단 공감하는 게 전제되고, 읽기를 마치면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은 공감을 돌려받게 되니, 좋은 훈련이 되는 게 당연할 것이다. - P51

추리작가 챈들러의 데뷔 시절, 잡지 편집자들은 그의 문학적인 묘사나 대사를 통째로 삭제하곤 했다. "이런 건 우리 독자들이 원하는게 아니에요. 액션에 집중하시죠." 프레드릭 제임슨에 따르면 이 문제에 ‘확고한 이론‘을 갖고 있던 챈들러는 뒷날 이렇게 썼다. "독자 스스로 액션만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감정, 묘사와 대사가 빚어내는 감정이다. 단지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 P51

챈들러의 좋은 점은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데있다. 그것은 독자를 타자화하지 않고 스스로를 진정 독자의 입장에 놓아 봤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다. 여기에서 몇 마디더 시켜 봤다면, 예를 들어 왜 독자는 감정을 원할까요라고물어봤다면, 그는 마음 이론 비슷한 것을 말했을지 모른다. - P51

우리는 정신 건강을 위해, 마음 이론을 유지하기 위해 소설을 읽을 수 있다. 한편 ‘감정‘을 느끼기 위해 소설을 읽을 수도 있다. 그게 같은 목적이라는 걸 이해하기는 어렵지않아 보인다. - P52

중고생 시절, 미국의 ‘물질주의‘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처음의심하게 된 계기는 히틀러를 피해 건너온 망명자들이 제공했다. 그들은 걸핏하면 자기들 ‘문화‘를 우리 ‘천박한 물질주의‘와 대비시키곤 했다. 들여다보니 그들의 ‘문화‘라는 건 유럽 시절 하인을 부리고 살았다는 것과 그들이 황홀해하는 릴케, 슈테판 츠바이크, 브루크너, 말러에 대한 지식 정도가 다였다. 그들이 말하는 ‘문화‘가 신세계에서 형편만 허락한다면 제대로 누리고 싶은 중산 계급식 물질주의와 감상주의를 뜻할 뿐이라는 걸 발견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폴린 케일,《나는 영화관에서 그것을 잃었다 (I Lost It at the Movies)》, 1965) - P53

문화가 자기편에 있다고 믿기 시작하면 보통 이상의 어리석음에 빠지게 마련이다. - P54

나중에 그녀(폴린 케일)는 문화든, 윤리든, 깜찍한 최신 예술 사조든 주머니에서 화폐처럼 꺼내 흔들어 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한칼에 베어 버리곤 했다. 영화 평론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 P54

그녀는 늘 친구를 대동하고 영화를 보러 갔다. 나중에 제일 놀란게 평론가들(주로 남자)이 혼자 영화 보러 다니는 것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 P54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윌리엄 허트의 빨간 스카프가 터무니없다든지 「모리스」에서 ‘키 큰 제임스윌비 옆에 서니 더 작고 머리는 커 보이는 루퍼트 그레이브스‘라는 식의 귀여운 코멘트에는 극장을 나서며 친구에게 건네는 말 같은 생생함이 있다. - P54

어떤 주의나 이론에 의지하지 않았다는 것, 맨땅에 헤딩 하듯 자기 느낀 대로만 썼다는 것, 겁도 없고 양보도 없었다는 것은 하나의 특질ㅡ자유든, 정직이든ㅡ을 여러 다른 말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 P55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말해 왔고 그게 사람들의 존경을 얻을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 P55

"친구의 기분을 맞춰 줄 목적이라면 평론을 쓸 이유가 없다.
정중한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 P55

즉 케일의 반응은 예측하기 어려웠다. 대체로 재능 있는 젊은이의 미숙함 (‘과잉‘)에는 호의적이었지만, 완전히 노장이 되어 반복되는 결함이 하나의 잔꾀가 되어 버린 사기꾼(스타일리스트)들에게는 냉혹했다고 할 수는 있겠다. - P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