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인물인 은하수와 형연 간의 대화가 뭔가 범상치는 않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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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챕터가 바뀌어 무슨 도사인지 법사인지 하는 요상한 인물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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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김진명 작가님의 작품을 처음 읽는데, 이야기를 토막토막으로는 그냥 알겠는데 초반이라 그런가 아직까지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큰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와중에 읽다보니 현직 대통령을 암시하는 듯한 내용도 잠깐 나오는듯 하고, 좀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우리와 거리상으로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끔찍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아직 초반인데 어떻게 스토리가 전개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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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산이니 무슨 땅이니 하면서 풍수지리와 관련된 내용들이 줄줄이 이어지는데 그냥 어렴풋이 들어봤던 어떤 풍수지리와 관련된 얘기들이 소설 속 내용들과 어우러져 거부감없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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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읽을수록 나도 모르는 사이에 풍수지리라는 것에 점점 빠져들고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인가?

사건이란 그 실체를 깊숙이 들여다보면 겉으로 보이는 것과 전연 다르기 마련이었고 사람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여 그는 반듯한 사람이라 해서 무조건 곱게 보지 않았고 정의롭다고 해서 쉽사리 인품을 인정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하찮은 사람이라 해서 멸시하지 않았고 범죄자라 해서 외면하지 않았다.

법이 워낙 촘촘한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든 세 발짝만 걸으면 법을 어기게 된다는 것, 때문에 사람을 판단할 때는 과거로부터 걸어온 길을 모두 통찰해야 한다는 것.

"풍수는 죽은 사람의 뼈를 좋은 자리에 묻어 살아있는 자식이나 후손을 이롭게 하는 소위 동기감응을 말하지. 그런데 양자역학이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어."

"얽힘 상태에 있는 두개의 양자 중 하나의 성격이 결정되면 나머지 하나의 성격도 동시에 결정돼. 그런데 이 둘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상관없다는 것이 ‘양자얽힘‘ 이론이야."

"아인슈타인은 그게 틀렸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어. 하지만 그가 했던 모든 행위들은 거꾸로 자신이 틀렸다는 걸 입증했을 뿐이었어. 작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세 사람의 수상 이유도 바로 그 양자얽힘을 실험으로 증명한 거였고."

"빛과 중력이 전공이었던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정연함과 너무도 어긋난 양자 역학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어.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며 반발했지만 도리어 모든 과학자로부터 거부당하는 비극을 맞고 말년을 쓸쓸히 보냈지."

"나는 풍수를 긍정하는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건 무조건 안 믿겠다는 태도 또한 바람직하지 않아. 백 년 전에도 과학이 있었지만 지금 과학의 눈으로 보면 미개한 거였잖아. 마찬가지로 천년 후의 과학으로 보면 지금의 과학은 거짓투성이일 거야.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양자 역학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지금은 양자 컴퓨터가 실물로 눈앞에 나타났어."

"양자 얽힘을 고려하면 풍수가 과학과 완전히 어긋난다고 볼 수만은 없을 거야. 지하에 묻힌 뼈에도 DNA가 있고 우리 몸에도 DNA가 있으니."

"예수의 부활도 비과학이지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잖아. 그러니 과학이 만물의 척도는 아닐 꺼야."

"도사란 구름을 굽어보며 무위도식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일을 통해 깊은 경지에 들어서 있는 존재를 말함일세."

"도사란 쓸데없는 말이나 동작, 또는 감정의 동요 없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가장 간단하고 직선적으로 이루어 내는 사람을 말함이네. 사람들의 삶이란 언제나 과도한 감정 지나친 언사, 불필요한 동작으로 점철되어 자신이 원하는 바를 깔끔하게 이루어 내지 못하지. 이런 것들로부터 해방되는 게 바로 도사야."

"자네의 일은 혼을 위로하고 모시는 거야, 그렇지 않나?"
"그러합니다."
"그럼 자네는 혼령의 존재를 믿을 거 아닌가? 설마 혼이 없다 생각하고 여기서 제관을 하는건 아니겠지?"

다테부미는 야스쿠니가 본래 일왕의 신사인걸 생각했다. 게다가 신도의 최고 제사장 역시 일왕이었다.

"왕이 절대로 야스쿠니에 참배하지 않고 있는데 그들 영가가 전범들 편에 서겠나?"

다테부미는 그 자신이 혼령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었고 혼령 저주가 불러일으키는 무서운 현상을 여러 번 목도한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일이었다. 총리대신 같은 거물이 거의 백 년 전에 죽은 자잘한 혼령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 터였다.

"대수대명이라 하면 무엇을 말함인지요?"
"다른 사람의 죽음을 불러 내가 원하는 사람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오."

"탄트라가 뭐지?"
"밀교야. 불교의 일종이지. 이들은 주문의 효과를 몹시 신봉해 수행자를 기하학 도형인 얀트라와 밀교의 그림 만다라를 통해 단련시키는데, 그 최종 목적은 강력한 주술의 실현이야."

"그런데 예로부터 최고의 성취를 이룬 탄트라의 수련자들은 강력한 주문을 현실 세계의 최고위인 왕에게 걸곤 했어."

"그건 나라 이름이야."
"뭐? 나라 이름? 그런 나라가 어디 있어?"
"나라 이름 앞머리만딴 거야. 나이지리아, 이집트, 파키스탄, 이란, 한국, 필리핀, 베트남."

"아니, 맞는 말이기는 한데, 이게 뭐야. 내가 나이키, 이케아, 파리바게뜨, 이마트, 한국전력, 필립스, 베스트샵 이렇게 얘기해도 똑같은 나이파 이한필베잖아."

"인터넷에 2050년 세계 국가 경제력 순위를 검색해 봐. 여러 보고서 중에 현대경제연구소의 연구를 보면 내가 나열한 순서대로 국가 순위가 매겨져 있어."

"그런데 이걸 어떻게 알아냈어?"
"특별한 비결이 있는건 아니야. 계속 그 주문을 생각하다 보니 나라 이름을 붙이면 될 것 같은 영감이 떠올랐을 뿐이야."

세상의 모든 현상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미래 예측을 내놓으면 당황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은 몇십 년 어치의 변화를 한순간에 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책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목적은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야. 즉 뉴스란 말이지. 그 주목을 끌기위해 일부러 가스총을 든 거야. 팔순 노인과 가스총. 이보다 흥미로운 뉴스거리가 어디 있겠어?"

"머리카락과 손은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 신체 특징이야."

"땅을 소유한 사람은 그 땅으로 득 볼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그 땅에게 득이 되도록 생각해야 맞아요."

"땅이 주인에게 어떤 도움이 되느냐가 풍수의 초점인 줄 알았는데 거꾸로 땅 주인이 땅에 도움이 될 걸 생각하시니 놀랍네요."

"땅을 소유해서 주인인 것이 아니라 땅을 그 땅의 성질에 맞게 관리하는 사람이 주인인 거예요."

"술법사나 풍수사들이 엄청 좋아할 만한 물건이네요?"
은하수는 속으로 다소 놀랐다. 입에 올리는 것조차 싫어하던 이상한 단어들이 자신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가고 있는게 아닌가.

"동시에 이 여덟 글자가 이 나라에 내린 저주를 풀 수 있는 열쇠라는 얘기도 되는 거지요."

—회신령집만축고선淮新嶺繫萬縮高鮮 -

과연 여덟 글자는 밝은 빛 아래서도 사람이 아닌 귀신이 쓴 것처럼 그늘이 져 있고 축축한 느낌을 주었다.

"회신淮新 다음이 산봉우리 령嶺이니까 해석하자면 회신령에 그다음글자는 잡을 집...."

"맬 집繫 입니다. 잡을 집執 밑에 실 사絲가 있어 잡아맨다는 뜻이 되지요."
"아!"
"잘 안 쓰는 글자이긴 합니다."

"그럼 여기까지의 뜻은 회신령 고개에 잡아맨다는 뜻인가요?"
"일단 그렇게 보입니다."

"그다음은 숫자 만萬이니 회신령에 만을 잡아맨다로 해석하는 게 맞지요? 만이 무엇인가는 차치하더라도."
"사람, 혹은 사물일 수도 있겠어요."

"회신령에 군사 만 명을 매어두고 축고선縮高鮮을 한다, 축은 줄인다는 뜻일 테고 한자의 어순으로 보아 이 축 뒤에 나오는 두 글자는 목적어가 되지 않을까요?"

형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뒤의 두 글자 고선高鮮 이 목적어가 되는 게 통상적인 한자의 문법이었다.

"그리고 고선은 고려와 조선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요? 그렇게 보면 이 편액이 저주를 담은 주문인 건 확실해요. 고려와 조선을 줄인다는 거니 이 축이란 글자는 분명 글 쓴 사람의 의지가 담긴 글자예요. 저주의 의지지요."

그 자신이 비보풍수의 대가인 오하산인은 글자의 성격을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뒤의 세 글자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는데, 문제는 앞의 다섯 글자입니다. 회신령에 만 명을 잡아맨다. 회신령은 어디이고 만 명은 무엇인지 시간을 갖고 잘 생각해 봐야 할 일입니다."

오하신방을 다녀온 이후 은하수는 생각이 약간 달라졌다. 그간 풍수니 뭐니 하는 얘기만 들어도 비위가 상할 정도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의외로 치열했다.

잃어버린 신물이 나왔다는 얘기만 들으면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값을 따지지 않고 사들여 오는 오하산인이나 현대인의 삶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갑골문을 무섭도록 파고들던 형연을 비과학이라는 단순한 잣대로 치부할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오히려 모든 열정과 시간을 눈에 보이는 일에만 쏟는 데다가 그 모든 것이 오로지 개인적, 이기적 방향을 향하고 있는 자신이 좀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며 은하수는 형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풍수에서는 사물을 의인화하기도 해. 만 명이란 게 꼭 군사나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는 거지."
"가령 나무나 돌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거지?"
"그래."

"그럼 회신령에 나무 만 그루를 심거나 돌멩이 만 개를 쌓는다는 거야? 그게 더 풍수적이네."
"그런 식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겠어."

"회신령에 나무 만 그루를 심어 고려와 조선을 축소시킨다. 회신령이 어딘지가 아연 중요해지네. 글을 쓴 사람이 희대의 풍수사이니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지는데."

"다이이치는 신화적 인물이라 따르지 않는 사람이 없었어. 이것이 조선에 건 주문이라면 조선총독부에서도 그 내용을 알았을 거야. 어쩌면 총독부가 앞장서서 이 주문을 실행했을 가능성도 있고. 무엇보다 김용달의 고백으로 미루어 볼 때 현재 진행형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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