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리커버 특별판)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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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페이지를 넘는 결코 적지 않은 양의 소설이었다. 이 리뷰를 쓰기전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아 다른 독자님들이 쓰신 리뷰들을 한 번 읽어보았다. 정말 찐 독자님들이 많이 계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용 정리를 기가 막히게 잘 해주신 분들이 많이 보였다. 내가 했던 생각들과 비슷한 생각들도 많이 보였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깊이 있게 감상하셨지 하면서 감탄하며 읽었던 리뷰도 있었다.

내용정리와 관련해서는 너무나도 훌륭하게 정리해주신 분들의 다른 리뷰가 많기도 하고, 내가 세세하게 내용정리를 할 엄두도 도무지 나지 않아서 여기선 내용정리 보다는 그냥 내가 읽으면서 느꼈던 점들을 위주로 한 번 두서없이 끄적여보려고 한다.

먼저 등장인물들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을 듯 하다. 옥희, 월향, 단이, 은실, 연화 등 기생으로 일하는 한 부류가 있고, 소설 속 시대배경이 일제시대인지라 일본 군인인 하야시, 이토, 기타 등등의 일본 사람들이 있다. 또한 지식인 계층을 대변하는 명보와 성수 같은 부류들, 마지막으로 정호와 한철로 대변되는 경제적으로 빈곤한 환경에 있는 부류들 이렇게 크게 4가지 정도의 부류로 소설 속 인물들의 군상을 나눌 수 있을 듯 하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처음에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있어서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고 읽어나갔었는데, 초중반을 지나면서 초반에 나왔던 이야기들이 조금씩 연결되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커다란 퍼즐의 구석부터 조금씩 맞추다보면 큰 그림이 조금씩 보이는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어 이야기가 중후반으로 치달을 수록 위에서 말한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가 모두 조금씩 얽히고 설키는 그런 관계들로 발전한다. 작가님이 소설을 참 치밀하게 잘 구성하신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왜 제목을 작은 땅의 야수들이라고 지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위에서 말한 등장인물들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야수와 같은 기질들을 조금씩 보여주는 것들을 소설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진짜 독한 맹수와 같은 기질을 가진 캐릭터도 있었고, 어떤 강한 신념을 가지고 일본군에 저항하는 캐릭터들도 있었으며, 그냥 순전히 물질적인 혹은 본능적인 탐욕으로 가득차 있는 인물들도 볼 수 있었다. 특별히 이 리커버 판 같은 경우 겉표지를 호랑이 그림으로 하여 야수적인(?) 이미지를 더욱 강조한 듯하다. 뜬금없는 건 아닌게 실제로 소설 맨 첫 부분과 후반부에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호랑이를 상징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뒤 등장인물들의 야수같은 용맹함을 각각의 캐릭터에 조금씩 녹여낸 듯한 느낌도 받았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소설 속 시대 배경은 일제시대를 위주로 하고 있으며 해방 후의 시대도 잠깐 나온다.
머릿말에 작가가 이 소설은 픽션이라고 하였기에 어디까지가 실제사실이고 허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실제 우리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기에 더욱 더 실감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사실유무를 떠나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잘 몰랐던 이야기 중에 새롭게 알게된 스토리 중 하나는 위에서 말한 등장인물들 가운데 기생들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을 지원했다는 것이었다. 기생이라고 하면 단지 음주가무에 능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 소설 속을 읽으면서 그들 내면에 있는 지조와 절개 그리고 애국심만큼은 그 어떤 다른 인물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서 단순히 겉으로 비쳐지는 이미지만이 아닌 그 내면에 있는 올곧은 정신과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볼 수 있었다.

또한 일제시대를 논하다보면 빠질 수 없는 이야기 중 하나가 친일파 이야기일 것이다. 내가 위에 논했던 지식인 계층의 두 인물 명보와 성수를 여기서 잠깐 언급하자면, 소설 속에서 친일파 성향을 가진 이는 성수이고 이에 반에 일본에 저항하며 독립군을 조직하여 일본군과 맞서 싸우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이는 명보다. 소설 속 이야기라 당연히 역사 상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일제시대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두 부류로 굳이 나누자면 하나는 성수로 대표되는 친일파, 다른 하나는 명보로 대표되는 독립운동파 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이 둘은 동경유학까지 함께했던 친구로 나오지만, 유학 후 이들의 노선은 양쪽으로 갈라진다. 두 인물 모두 각자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처신했을텐데, 여기서 내가 만약 이 시대에 태어나 살았다면 과연 어떤 캐릭터와 유사하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했다. 정의라는 가치를 우선하여 생각한다면 당연히 명보의 길을 갔을테지만, 또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한다면 성수의 길도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의 악랄함에 맞서 싸우는 것도 물론 가치있는 일이지만, 목숨이라는 것이 한 번 죽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에 일단 목숨이라도 부지하면서 후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비굴하지만 현실적인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생각들을 하면서 다시금 목숨바쳐 독립운동을 하셨던 우리 조상님들의 기개와 용기를 우러러볼 수 밖에 없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지키고자 했던 순국선열들의 영혼에 머리숙여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친일파 관련 이야기는 이정도로 하고 위에서 말한 등장인물들 중 세 번째로 정호와 한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인물 모두 정말 어려운 환경속에서 살다가 형편이 점차 나아지는 캐릭터들로 그려진다. 먼저 정호의 경우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길거리를 전전하다가 거지 패거리들을 만나 위기에 빠지기도 하지만 특유의 싸움실력으로 거지 패거리들을 자신의 수하로 만들고 그러면서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로 세를 불려나가며 생을 이어간다. 한편 한철은 과거 안동 김씨집안의 양반 가문이긴 했지만 현재는 가세가 기울고 몰락하여 경성시내를 누비는 인력거꾼으로 일하는 캐릭터로 나온다. 한철은 나중에 인력거꾼 경험을 바탕으로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아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여 경성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부자로 성장한다. 이렇게 가난하고 어렵던 환경에 있던 이 캐릭터들의 성장스토리를 보면서 참 사람 일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문득 생각나기도 했다.

이 두 캐릭터의 성장 스토리와는 별개로 중간에 어찌어찌하여 기생으로 일하던 옥희와 정호 그리고 한철이 삼각관계에 놓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가 이 책을 읽던 중간중간 독서노트에 썼던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며 관계가 이래저래 꼬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읽으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써놓았던 독서노트가 문득 떠오른다.(자세한 내용은 제 독서노트를 참조해주시길..) 핵심은 인간관계라는게 참 마음대로 되는게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줄 의도가 없었음에도 한 쪽이 엄청난 마음의 상처를 받는 모습들을 보며 인간관계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으로 일본군으로 나왔던 하야시와 이토 같은 캐릭터들을 보면서는 참 본능에 충실하고 탐욕스러운 캐릭터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떤 특정한 장면에서는 이들도 어느정도의 양심은 있는 인간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하자면 할 수는 있지만 너무 길게 늘어지는 것 같아서 키워드만 간단히 말하자면 '은제 담뱃갑' 이라는 게 나오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책을 직접 읽어보시면 정말 와닿게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등장인물들을 4가지 부류로 나누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대로 끄적여봤는데, 어느정도 끄적인다고 끄적였음에도 소설 속에서 작가님이 의도한 바를 100% 온전히 리뷰하지는 못한 것 같아 부족한 리뷰였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가 100%라고 봤을 때 대략 한 55%~60%정도 밖에 논하지 못한 것 같다. 내가 위에 적은 것들 외에도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구구절절이 아주 잘 버무려져서 이래저래 생각해볼 만한 것들이 굉장히 많았던 스케일이 나름 컸던 소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에 몰입하여 그 인물들의 내면이 어땠을지 생각해보고 공감하며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 속에서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아주 훌륭한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해보며 리뷰를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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