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일제시대가 막을 내리고 광복이 찾아온다. 이후에 친일파들에 대한 재판들이 열리는데, 이것은 현재까지도 논란이 있는 부분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을 괴롭게 한 일본군의 조력자 역할을 했던 친일파들을 모조리 척결해야한다는 의견과 목숨을 부지하면서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친일할 수 밖에 없었다는 두 의견이 대표적이다.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 있기에 단정지어 얘기할 수 없지만, 양 쪽 모두 나름의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이 소설에서는 이명보라는 인물과 김성수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전자는 독립운동에 힘썼던 인물이고, 후자는 소위 말하는 친일파에 가까운 사람으로 그려진다. 물론 소설 속에서는 이 둘이 서로 아는 관계로 이명보가 독립운동을 하는데 필요한 수단으로 김성수에게 독립운동에 필요한 물품들을 지원 받는 장면도 나오기는 하나, 김성수라는 캐릭터 자체의 무게중심은 애국심에 불타는 쪽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안위 쪽에 좀 더 쏠려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인물간의 구도가 있는데, 이명보와 김성수라는 두 캐릭터에 수반되어 옥희나 그 주변의 인물들 그리고 한철과 정호까지 얼키고 설킨 채로 이어져 있다.

아직 끝까지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 슬슬 막바지에 치닫고 있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만약 내가 소설 속 시대인 일제 시대에 태어났다면 과연 어떤 캐릭터와 가장 유사하게 생각하고 행동했을까에 대해 문득 생각해보게 되었다.

생각해봤는데, 내 자신의 실제 성격에 비추어 보았을 때 어떤 한 캐릭터와 유사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예상해보게 되었다. 굳이 어떤 캐릭터인지를 여기서 밝히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기에 따로 말하진 않겠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각자 사람이 처해있는 각종 환경과 입장이 다들 다르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자체도 달라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단정지어 말하기가 약간은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막말로 사람은 생긴대로 사는 동물(?)이라, 자신의 부모님의 직업이 무엇이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의 진로에 있어 어떤 커다란 영향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고, 가정환경이라든가 성장배경에 따라 정말 다양한 길로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도 살펴보면 어릴때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찢어지게 가난한 채로 성장해온 캐릭터도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집안 배경이 좋아서 유복하게 자라난 캐릭터도 있으며, 어릴적 가정환경이 불우한 나머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이른 나이에 사회에 나와서 일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캐릭터들도 나온다.

어떤 캐릭터가 되었든 간에 인간이라는 동물은 생존 본능에 따라 거기에 맞게 적응하기도 하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존재이다.

지금 나는 어떤 것에 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두고 살고 있는지 다시금 돌아보고 자신이 그에 걸맞게 잘 살고 있다면 그대로 가면 될 것이고 혹시라도 그 의미나 가치가 헛된 것이라면 또다른 의미나 가치를 찾거나 부여하고 거기에 걸맞는 삶을 살다가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내게 주어진 인생을 가치있고 보람되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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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부분을 더 읽으면서 어떠한(?) 계기로 인해 옥희와 한철 그리고 옥희와 정호가 다시 재회하며 두 사람 사이의 관계들을 추억해보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데, 예전에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들에 대해 용서를 구하면서 화해하는 모습들을 보며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별히 정호가 옥희에게 인연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면서 아쉬움을 나타내는 모습은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독자들에게도 뭔가 마음에 짠한 여운을 남겨주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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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이 되고 시간도 어느정도 지난 무렵 정부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여 잡아들이는 일을 하는데, 정호가 예전에 고려공산당의 일원이었던 이명보와의 친분이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수사를 받게 된다. 소설 속 수사과정을 보면 약간은 억지로 끼워 맞춰 넣는듯한 느낌도 받지만 이게 또 묘하게 앞에서 나왔던 뭔가 의미있었던 물건(?)들이 겹쳐지면서 정호에게 불리한 증거로 이용되는 장면이 나온다. 예전에는 이 물건(?)들이 정호의 목숨을 살렸던 물건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물건들이 정호의 인생의 장애물(?)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물리적으로는 동일한 물건임에도 시간에 따라 그 역할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생각해보도록 한다는 느낌도 살짝 받았다.

생각을 조금 확장하여 우리 일상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너무나도 귀하디 귀했던 물건이 어느 순간 내 발목을 잡는다든가 하는 물건이 혹시 없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소설 속 시대 상황과 지금은 완전히 다른 시대이지만, 시대를 초월하여 한 번 쯤 생각해봐도 괜찮은 주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독자마다 삶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다 다를 것이기에 특정한 것으로 일반화하기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각자가 소중히 여겼던 물건들을 생각해보며 주변 친구 등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 주제를 놓고 수다를 떨어보는 것도 나름 소소한 재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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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전 마지막 부분에 정호가 군중들의 돌팔매질에 맞아 죽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마치 예수가 십자가를 지러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면서 로마군인들에게 채찍에 맞고, 침뱉음을 당하며 조롱당했던 장면과 묘하게 비슷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실제 작가의 의도가 그러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장면도 독자들에 따라 느끼는 바가 조금씩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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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에서는 화자가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바뀌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기서 주인공은 옥희다.

밑줄친 부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옥희는 정호와 한철과의 추억을 곱씹으며 좋지 못한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것을 훨씬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 정말 신기하게도 좋지 못한 일들에 대한 기억들은 흐릿해져서 기억을 더듬으려 해도 잘 생각나지 않는 반면, 좋았거나 행복했던 일들에 대한 기억들은 흐릿해지기보다는 기억을 더듬으면 더듬을수록 더욱더 선명하게 떠오름을 고백한다.

이러한 옥희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과연 예전의 추억들, 기억들을 더듬어 돌이켜볼때 과연 어떨지 잠시 책을 덮고 생각해봤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나도 살면서 안좋았던 기억들보다는 좋았던 기억들이 보다 선명하게 그리고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것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인간의 본능안에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것들을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자하는 어떤 시스템이 확립되어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도 있듯이 사람이 한번 보거나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잊지 않고 다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꼭 행복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좋은 경험도 물론 하지만,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좋지못한 경험을 하게 될 경우 그러한 모든 것들을 잊지않고 기억할 경우 감정적으로 울분이 차올라 넘치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도 있고, 내가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이유로 감당하기 힘든 어떤 고통이 새롭게 찾아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간에 소설로 다시 돌아와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옥희가 좋은 것만 기억하고 떠올리려는 저 모습은 뭔가 희망을 놓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위한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독자인 나의 마음 또한 왠지모르게 훈훈해졌다.




명보는 인연을 믿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서로 만나게 해주는 보이지않는 실타래가 우주의 섭리에 따라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가장 중요하고 좋은 인연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연이었다. 이는 하늘이 정해준 천륜이며, 그 어떤 것으로도 단절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이미 오래 전에 깨달은 터였다.

반면 그가 이제야 막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 있었으니, 돌이킬 수 없는 악연 또한 그만큼이나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노년이란, 인생의 모든 행복이 앞으로 다가올 날들이 아닌 이미 지나간 날들에서만 발견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삶을 위해 지불하기에 죽음은 아주 작은 대가였다.

빠르든 늦든, 결국 될 일은 되기 마련이라는 걸 한철은 경험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나 무서운 이야기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사실이었다.

이를 알게 되고부터 그는 남에게 좀 더 관대하게 행동하게 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경험해 온 엄청난 규모의 일들을 겪거나 일으킬 능력과는 거리가 먼, 그저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아닌가. 부품 공급자들, 그가 고용한 노동자들, 그리고 그의 조용하고 성실한 수행원도.

"그때만 해도 제 말을 믿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하지만 스스로 자기 자신을 믿으면, 결국 인생도 그 믿음을 따라 잘 풀려 나가더라고요."

"아, 자신감이란 타고나는 게 아니에요. 만약 처음부터 완벽한 자신감을 느낀다면, 그 사람은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는 말밖에 안 되지요."

"자신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갖게 만드는 건 세상에 딱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본인에게 닥친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서 깊은 사랑을 받는 것이죠. 운 좋게도 이 두 가지를 다 경험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에 대해 충분한 믿음을 지니고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떠나지 마. 내 곁에 있어줘.‘ 한철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 말이 목구멍에 걸린 채 뭉쳐서 그의 목을 꽉 메웠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겠어." 대신 한철은 간신히 이렇게 말을 꺼냈다. "언젠가 그런 말을 한적이 있었지. 다른 누구에게서도 당신에게 느꼈던 것과 같은 감정은 느끼지 못할 거라고.... 지나보니 그 말이 맞았어."

"나도 그래, 천 번도 더 그래."

나는 모래시계 안에 갇혀 있었던 거라고.

"확률상 나는 오래전에 이미 죽었어야 했을 사람이야.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그 어떤 일도 두렵지 않아…………"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인생을 살아오면서 어떤 일들은 조금 다르게 했다면 좋았을걸 싶어. 삶의 끝이 가까워지니 이제야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정호는 자신의 손으로 옥희의 작은 손을 감쌌다.

"아버지는 늘 그 호랑이가 환생한 우리 어머니였을 거라고 생각하셨어."

정호는 옥희의 눈을 들여다봤다. 옥희의 얼굴도 삶의 풍파에 많이 쓸렸지만, 그 검고 빛나는 눈만은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모습 그대로였다. 모래시계 안에서조차 영원히 시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정호의 마음이 아려왔다.

"그게 과연 맞는 말인지는 나도 몰라…………. 그냥 아버지 당신께서 그렇게 믿고 싶으셨던 거겠지. 먼저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너무 사랑하셔서 다른 삶을 살면서도 그분을 지켜주려 하셨던 거라고."

"왜냐면, 옥희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인연이니까. 길거리에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을 하잖아.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인연은 백년가약을 맺는 부부의 연이겠지.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인생에서 제일 아쉽고 후회스럽게 생각하는 점이야…………. 이번 생에서 너랑 그런 인연이 되지 못했다는 거."

정호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혹시나 옥희가 자신을 싫어하게 될까 봐 평생 마음에 묻어두었던 말이었다. 그러나 이는 두 사람 모두 이미 아는 사실이었고, 또한 떨어져 있는 동안 경험한 모든 것을 돌이켜볼 때, 정호의 일생에서 가장 진실하게 선언할 수 있는 이 고백을 그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훨씬 더 일찍 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옥희야,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내가 이 세상의 모든 보석을 다 너한테 갖다줄 텐데…………."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들이 항상 그렇듯, 당시 느꼈던 갑작스러운 감정들은 이후에 오히려 더 깊고 충만하게 발전해 옥희가 그 장면을 마음속으로 다시 떠올릴 때마다 새로운 빛깔과 향기를 띠었다.

그 순간 정호는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기생들의 행렬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향해 꽃을 던진 어느 아름다운 소녀에게 첫눈에 반했던 바로 그 지점에 그가 지금 서 있었던 것이다. 그가 처음으로 옥희를 만난 순간이었다.

결국 정호는 고개를 돌려야 했다. 그래서 이 말을 전할 수 없다는 게 그에겐 큰 아픔으로 남았다. 나는 너를 사랑해.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또 다른 돌이 그의 귀를 적중했고, 군중의 야유는 점점 흐려져갔다. 정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 번에 한 걸음씩, 길이 끝나는 곳을 향해.

비단으로 감싸인 채 두 겹의 나무상자 안에 숨겨져 있던 그 물건들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달라진건 나 뿐이었다.

제주는 모든 것이 본토와 달랐다. 일단 바다부터 그랬다. 제주의 바닷물은 모래사장 근처에서는 밝은 청록색이다가, 해안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에메랄드빛 초록에서 사파이어의 파랑으로 점점 더 깊은 색채를 띤다.

공기에서는 소금의 짠 내음과 잘 익은 감귤의 새콤한 향기가 풍겼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를 내쫓지도 않았다. 섬사람들은 육지에서 온 사람을 경계했다.

하지만 끝없이 밀려오는 푸른 파도를 바라볼수록 내 마음은 행복했던 기억들로 더 쏠리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몇몇 이미지를 제외하고는 그동안 일어났던 모든 끔찍한 사건의 면모를 자세하게 기억해 내기란 어려웠다.

그런데도 이제는 막상 그날 저녁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가 정확히 어떻게 내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아직도 아주 선명하게 꺼내볼 수 있는 기억은 오직 아름다운 부분들뿐이다.

이웃 마을의 이장이 쓰던 중고 흑백 텔레비전 한 대를 구입한 뒤에야, 나는 마침내 동네 안에서 약간의 존경과 인정을 받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 마을 전체에서 텔레비전을 놓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의 매일 저녁 마을 사람들 전체가 뉴스를 보기 위해 우리 집으로 몰려들었다.

몇 달이나 물에 떠 있기와 물장구치기를 꾸준히 연습한 끝에, 나는 마침내 숨을 참고 해저로 잠수하는 단계를 허락받았다.

물속에서, 나는 과거의 ‘나‘들의 무게가 깊은 해저로 가라앉는 걸 느꼈다. 나는 그 모든 고통과 후회를 겪었던 그 사람이 더는 아닌 것 같았다.

제주도에 와서 내가 또 하나 알게 된건, 여기서는 봄여름에도 코스모스가 핀다는 사실이었다.

내 손바닥 위에 놓인 그것은, 새벽달처럼 옅은 분홍색과 회색으로 빛나는 진주 한 알이었다. 한참이나 그걸 바라보던 나는, 정호가 아직도 나를 돌봐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저세상에 가서도 말이다. 그리고 나도 똑같은 방식으로 있을거라는 것도. 삶을 계속 놓아주고 또 붙잡고 버티면서, 오직 바다에서 온 나의 일부만이 남을 때까지.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기 때문에.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원한 청색 파도 사이를 둥실둥실 부유했다.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그 어떤 것에 대한 소망도 동경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마침내 바다와 하나였다.

번역자는 그 책의 가장 꼼꼼한 독자라는 말이 있다.

한국어를 써본 경험이 있는 저자가 영어로 쓴 원문은 마치 이중으로 섬세하게 조각된 예술품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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