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향(bias) 편견을 갖게 되는 태도나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 그 자체. 인간의 인지와 감정에서부터 사회 제도, 인공지능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경향성.
이 책은 우리 시대를 위협하는 난제중의 하나인 무의식적인 편향과 차별에 돌파구를 제시하는 혁신적이면서도 심층적인 탐구의 결과물이다.
‘bias‘와 ‘prejudice‘ 두 단어 모두 편견으로 번역될 수 있지만 ‘bias‘는 편견을 낳는 태도 혹은 한쪽으로 쏠리는 성향, 그런 쏠림이나 기울어짐 그 자체를 가리키는 단어인 ‘편향‘으로, ‘prejudice‘는 한쪽으로 쏠린 견해나 기울어진 의견인 ‘편견‘으로 구분하여 정리했다.
혐오와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차적인 대책은 법으로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이지만, 근본적 원인인 ‘편향‘이 사라지지 않는 한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는다.
편견을 어떻게 줄여야 하고, 편향의 부정적 영향을 어떤 식으로 통제할 것인지, 이 까다로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이 책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 더 깊은 책임감을 요구한다.《뉴욕타임스》
일부 사람들은 특정그룹에 속한다는 이유로 타인을 의도적으로 저평가하거나 비열하게 대한다.
적나라한 잔혹 행위가 현실로 존재한다. 2020년 여름에 일어난 미네아폴리스 경찰에 의한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슬로모션 살인*에서는 일상적인 야만성이 전 세계를 뒤흔들 정도로 비인간적이고 소름 끼치는 수준으로 드러났다.
*미네아폴리스의 경찰 데릭 쇼빈이 무릎으로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8분 46초간 눌러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이 타인을 해치거나 차별적으로 대우하기 위해서 직업을 갖지 않고, 공정성을 추구하거나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차별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공정성의 평가와 실제 현실의 상충은 ‘무의식적 편향‘, ‘암묵적(묵시적) 편향‘ 또는 ‘비의도적 편향‘ 혹은 ‘무비판적 편향‘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것은 어떤 방향으로 행동하기를 원하지만 실제로는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의 처신을 가리킨다. 우리가 어떻게 노력해 그것을 끝내는지가 이 책의 초점이다.
사람들은 흔히 본인의 경험이 열어준 문을 통해 정의에 관련한 이슈를 접하게 된다. 내게는 그 문을 깨뜨려 열어준 것이 젠더 편향이었다. 그것이 거대하고 다차원적인 현상 속에 자리 잡은 것임을 채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말이다.
편향의 맥락과 심각성 정도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편향 형태들 간의 연관성을 간과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한 인간의 삶이 어떤 억압에 깊이 영향받을 때 ‘그를 위축시키려고 위협하는 재앙과 그 재앙은 단지 가장 분명한 보기일 뿐 더 넓은 맥락과 여건‘ 간의 관련성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쉽다.
편향을 지니고 행동하는 사람은 현실이 아니라 기대치에 따라 행동한다. 그 기대치는 문화의 부산물을 모은 조합이다.
편향이 있는 사람은 인간을 보지 않는다. 그들이 보는 것은 인간 형상을 한 백일몽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편향을 영혼에 가해지는 일종의 폭력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삶의 물질적 여건-그 사람의 선택과 가능성-에 대한 공격만이 아니라 그의 자아감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다.
저널리즘은 대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문제를 발견하고 파헤치는 데 관심이 있다.
낙관주의는 홍보 회사와 자기계발 도서가 담당할 몫이다.
편향은 단순한 덧셈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푸른색 유리와 노란색 유리가 겹쳐서 완전히 새로운 색채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서로 겹쳐서 완전히 고유한 것이 된다.
어떤 편견이든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행동만이 아니라 누락된 부분까지도 반드시 고려해야한다.
고려 대상이나 인지 대상이 아닌 것은 관심과 보살핌의 범주 밖에 방치된다.
‘발견‘은 도구와 제도를 접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시인 에이드리엔 리치Adrienne Rich는 "모든 침묵에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편향은 옷감에 섞어 짠 은실처럼 문화 속에 짜 넣어져 있다. 어떤 빛 아래에서는 환하게 보이지만 다른 빛아래에서는 알아보기 힘들다. 그처럼 반짝이는 실에 대한 당신의 상대적 위치가 당신이 그것을 보는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물론 차별은 개인의 순간적 왜곡을 넘어서는 문제다. 제도적인 것이며 구조적인 것이고, 과거는 현재와 섞인다. 일부 집단을 적대시하는 억압과 편견을 합법화하고 다른 집단에게 유리하도록 부와 자원을 조합하는 것이다.
각각의 편향적 행동은 빛을 렌즈로 집중시켜 하나의 화점에 모은 것처럼 방대하고 산만한 유산이 집중된 형태다.
민권 법률가 코니 라이스Connie Rice의 말처럼 법률은 차별의 한계만 설정한다. 법률은 더 미묘하고 덧없는 인간들 사이의 상호 관계를 바꾸지 않는다. 법률은 바닥을 만들어낸다. 천장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다.
편향은 개인에게서 미래를 박탈할 뿐만 아니라 인재가 활약할 현장을, 아이디어가 넘치는 기업을, 진보의 문화를 말살하고 만다.
그것(편향)은 예술과 과학의 돌파구를, 문학의 지혜를, 통찰력이 넘치는 정치를 사람들로부터 앗아간다. 또 질문자가 어떤 성격인지를 미리 제한하여 어떤 질문이 던져질지를 규정하고, 인간 지식의 범위를 축소시킨다. 그것은 개인의 잠재력을 줄이고 사회의 재능과 자원을 훼손하는 습관이다.
생태학의 분야에는 ‘경계edge‘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2개의 서로 다른 생태계가 만나는 지형을 가리킨다. 바다가 육지와 만나는 염수습지 강물이 언덕사면을 깎아나가는 하천부지 같은 곳이 그런 예다. 이 경계는 대개 모든 지형 가운데서도 가장 비옥하고 생산성이 큰 지역으로, 어류 배란지나 철새 체류지가 되곤 한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만나는 곳도 일종의 경계다. 그곳은 편향이 드러나는 곳이며, 해를 입힐 가능성이 높은 영역이다.
하지만 그곳은 우리가 편향에 간섭한다면 서로를 보고 반응하고 관계 맺는 다른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하다. 그 경계에서 부글거리며 일어나는 발효 과정에서 뭔가 새로운 것이 자라날 수 있다. 너무 오랫동안 우리 손에 잡히지 않던 통찰, 존경, 호혜성 같은 것들 말이다. 위험도는 높고 반향도 막중하지만 해결 가능한 문제다.
"어떤 감정이 그 사람의 무의식에 깊이 잠복해 있고 예속되어 있어 그 존재조차 모를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적절한 자극이 가해지면 그것은 전면에 나설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듣는 것이 정의의 소리라고 믿지만 기만당하고 있다. 사실 그것은 편견으로, 그가 모든 정의와 공정성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린다."
-레나 올리브 스미스(미네소타주 최초의 흑인 여성 변호사)
심리학자들은 이런 언행 불일치가 개인적 차원에서도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백인 개인은 편견을 갖지 않는다고 부정하지만 그들의 행동에서는 온갖 차별적 행동이 현저하게는 아니더라도 나타난다.
타인에 대한 사람들의 지각이 항상 사실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드바인은 편견의 패러독스 때문에 당혹스러워졌다. 모든 백인이 자신들의 인종주의적 태도를 숨기기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결론은 인종주의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해명이 되지 못했다.
프라이밍(priming)
점화 효과라고도 한다. 특정한 정서와 관련된 정보가 그물망처럼 서로 연결되어 한가지 정보가 자극을 받으면 관련된 기억이 함께 떠오르는 것으로 먼저 제시된 자극이 나중에 제시된 자극의 지각과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촉진현상을 나타내는 인지심리학 용어
프라이밍은 잠재의식적으로 시행되었더라도 사람들의 반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누군가에게 1000분의 1초 동안만이라도 ‘적대적‘이라는 단어를 노출한다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모호한 행동을 더 적대적인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 단어를 본 것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렇다.
그 단어는 홍채에 접촉할 것이고, 시각신경을 거쳐 두뇌에 도달해, 적대적이라는 개념을 활성화한 다음 그 사람을 평가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된다.
프라이밍은 사람들의 반응을 은근히 부추기는 것만이 아니라 지식이 마음속에서 어떻게 조직되는지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것으로도 보인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빵‘이라는 단어에 프라이밍된 다음, 단어 목록에서 단어를 골라보라는 요청을 받는다면 그들은 ‘의자‘보다는 ‘버터‘라는 단어를 더 빠르게 알아볼 것이다. 이는 ‘빵‘과 ‘버터‘가 마음속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지식은 네트워크로 조직되어 있고, 각 개념은 무수히 많은 다른 개념들과 거미줄처럼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한단어를 건드리면 그 네트워크 속 다른 단어도 함께 건드리게 된다. 거미줄 중 하나만 건드려도 거미줄 전체가 흔들리는 것과 같다.
드바인은 프라이밍에 대해 읽어나가면서 그것이 인종주의에 대한 백인들의 진짜 마음을 평가하는 수단이 되어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빵과 같은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흰색‘이나 ‘검정‘같은 사회적 범주에 프라이밍을 할수도 있는 일이다. 백인들이 진짜 이 인종주의자라면 그들 마음속에 있는 ‘검정‘이라는 범주는 인종주의적 신조와 고정관념의 네트워크 전체에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만약 그 범주만으로 그들을 프라이밍한다면, 그들은 자신의 인종주의적 개념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시나리오를 인종주의적 방식으로 해석할 것이다. 잠재의식 차원에서 사람들을 프라이밍할 수 있으므로 그들의 해석은 그들이 지닌 신조 네트워크의 진정한 반영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종적 태도가 시험당하고 있는 줄 모를 것이다. 그들은 거짓말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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