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범은 험준한 절벽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고, 따라서 이곳에 그 짐승의 은신처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이 활이 가진 힘으로 호랑이에게 상처라도 내려면 예순 자 안에서 쏴야 할 거다. 치명상을 입히려면 마흔 다섯자 안까지는 들어가야한다. 호랑이에게 마흔 다섯 자가 얼마나 짧은 거리인지 아느냐? 소년은 침묵으로 자신의 무지를 인정했다.
내가 말했지, 호랑이를 죽이는 건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만이라고, 그리고 그건 호랑이 쪽에서 먼저 너를 죽이려고 할 때뿐이다. 그럴 때가 아니면 절대로 호랑이를 잡으려 들지 말아라. 알겠느냐?
사냥꾼의 오래된 기억은 지금 주위에 폭신하게 쌓여가는 눈처럼 그의 머릿속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러나 거친 바람이 그의 귓가에서 아우성을 쳤고, 남자는 활과 화살을 아래로 내렸다. 호랑이가 널 먼저 죽이려 들지 않는 한, 절대로 호랑이를 죽이지 말아라.
남자는 산신령을 향해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당신의 영물을 놓아주었으니 저도 무사히 내려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쪽에 있는 나무들의 가지가 더 굵직한 것을 보니 틀림없이 이 방향이 남쪽이지. 우린 한 시간 동안이나 계속 반대쪽으로 왔던 거야!" 야마다 대위는 노여움과 경멸감을 감추지 못했다.
인간의 마음이란 어두운 숲과도 같아서, 야마다처럼 이성적인 남자도 내면에 그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수수께끼를 담아 두곤 한다.
감정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게 한 사람의 내적인 의지와 신중한 판단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 요인으로 야기된 반응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백수 중에서도 제일 영험한 짐승이자 조선 땅 어디에나 있다는 호랑이를 직접 사냥해 봤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사람 말로는 호랑이를 보내줘야 한답니다요. 상처 입은 호랑이는 건강한 호랑이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요. 호랑이들은 영물이라 복수심을 품을 줄 압니다. 불의와 정의를 기억할 만큼 영리하고, 공격을 받아 다치면 상대를 죽일 기세로 덤빈답니다."
그는 오직 성공만을 추구했고, 피를 보길 좋아하는 그의 잔혹성조차도, 사실 개인적인 만족보다는 동료들 사이에서 자신의 우월함을 나타내고 부하들을 위협하여 자신을 두려워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서로 대치하고 있는 군인들은 다르기보다 오히려 비슷할 수밖에 없으며, 그들에게는 각자의 편에 있는 민간인들보다 자신과 맞선 상대편 군인들이 훨씬 더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이기 마련이다.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에게 무엇인가를 빚지는 것만큼 불명예스러운 일은 없을겁니다.
자신이 타인의 운명에 결부되어 있다는 감각도 짜증스럽기 그지없었다.
50원은 의원이 줄 수 있는 돈의 곱절보다도 많았고, 꽤 많은 일을 해낼 종잣돈이 될 수 있었다.
옥희는 눈물조차 말라버릴 정도로 지친 어머니의 어두운 눈동자 속에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희망이 비치는 것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 전까지 옥희는 외모가 매력적인 여자일수록 관능적인 욕망도 더 강하리라 생각했지만, 이제 반드시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옥희는 특정한 단어들을 특정한 순서로 나열하면 자기 내면의 모습도 마치가구를 옮기듯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고 한 마리 춤추는 나비처럼 언어 속을 누볐다. 내면에 쌓이는 단어들이 계속해서 그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가는데도 외부에서는 누구도 그 차이를 감지할 수 없었다.
옥희가 가장 존경하는 황진이의 면모는 그가 자신의 연인이 될 사람을 자유롭게 선택했으며, 또한 그들을 떠날 때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옥희는 그 시가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알고 있었고, 은실이 왜 그 시를 좋아하는지도 알았다. 애초에 그래서 그 시를 고른 것이었다. "첫사랑을 추억하는 한 여자의 심정에 대한 내용이야." 옥희가 대답했다.
"쇤네처럼 미천한 장사꾼들이야 남들 못지않게 금을 밝히지만, 그런 저희라도 지켜야 할 명예는 지킵니다."
자신이 지니고 있던 가장 값비싼 장신구들을 다 합쳐도, 은실에겐 은반지 하나를 포기하는 마음에 비하면 값어치가 덜한 듯했다. 그러나 삶은 균형을 유지해야 했다. 은실은 실제로 안타까운 희생처럼 느껴지는 무언가를 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쓸쓸한 손은, 다음 날 아침 성문을 통과한 천 씨가 사냥꾼의 집에 은반지를 전달하는 순간까지도 줄곧 텅 빈 애석함을 느끼고 있었다.
가장 놀라운 사건들은 아무도 눈치챌 수 없이 작은 바늘 하나가 툭 떨어지듯 시작하여 꼬리를 물고 연쇄한다.
은실은 작은딸을 지그시바라보았다. 흡사 보석함을 정리하다가 출처가 불분명한 오래된 기념품을 발견했을 때의 눈빛이었다. 예기치못한 즐거움과 약간의 당혹감이 뒤섞인, 그러나 결국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그런 눈빛 말이다.
한편 그 못지않게 오랫동안 침소에 누워 지내던 월향은, 현실의 생각과 꿈속의 일을 구분할 수 없을 때까지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호랑이는 결국 포기하고 동굴을 빠져나왔다. 지성과 감정은 거의 인간에 가까워졌으나, 겉보기에는 여전히 야수의 형상을 띠게 된 이유였다. 홀로 묵묵히 인내한 곰은 101일째 되는 날 아름다운 여자로 변했다.
월향이 기억하는 한, 필사적으로 아이를 원했던 여자들에 대한 이런 이야기는 수십 개나 되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어머니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던 여자들에 대해서는 절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현실에는 기생, 하인, 혼인하지 않은 여자, 과부 그리고 이미 부양해야 할 입이 수두룩하게 딸린 부인들이 많은데도 말이다. 이런 여성들 역시 그들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하늘에 기도를 올리고 쓰디쓴 약초를 삼켜야 했다.
월경을 한 번 건너뛰었을 뿐이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포궁 안에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날카롭고 뾰족한 무언가가 생겨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배 속에 든 이 씨앗이 흉측하고 사악한 쇠못 같다는 사실이 월향에게는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 하야시 같은 남자에게서 온 것이니 당연하고도 남는 일이었다.
월향을 둘러싼 공기가 점점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약초는 그 나쁜 못을 월향의 몸 밖으로 내보내는 대신 더 커지게 만들어 안쪽에서부터 모조리 찢어버릴 요량인듯 싶었다.
"이 일을 기억하기엔 네가 너무 어렸지. 나도 연화를 갖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때도 탕약이 듣지 않았지." 은실이 입을 열었다.
나는 그 애를 없애려고 했지만, 그 애의 영혼이 실처럼 나에게 이어진 거야. 인연이라는 게 참 이상하기도 하지. 인연이 아니라면,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를 붙잡을 수 없어. 깊이 사랑했던 사람들도 인연이 다하면 한순간에 낯선 이들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가끔은 그 어떤 변수에도 상관없이 영원히 너에게 이어져 있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하지. 연화와 나, 우리의 인연은 깊고, 지금의 이 삶을 초월한 전생에서부터 온 것이지.
나는 널 위해 그러듯, 연화를 위해서도 무슨 일이든 할 거야. 너희 둘 다 내 딸이니까.
단이는 다른 사람들처럼 단순하게 분류되기를 철저히 거부하는 사람이었고, 그런 특성이 그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어쨌든 옥희는 아직 열 살밖에 안 됐잖아. 한창 자라는 아이들은 한 해에도 열두 번이나 달라진다고."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옥희가 좋은 애라는 거야.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만큼은 많은 사람을 봐왔잖니."
가장 소중한 친구가 자신에게 없는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위축된 패배감을 맛보는 대신, 옥희는 그들이 서로 딱 맞는 완벽한 한 쌍이라는 사실을 확인받았다는 사실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자신은 관찰력이 뛰어나고, 총명하고, 지적이고 성실하다. 연화는 활달하고, 기백이 있고,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열고, 자신감이 넘친다.
그들은 서로 성격이 비슷한 두 친구가 종종 그러하듯이 한 사람의 마음을 두고 동시에 경쟁하거나 같은 종류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었다. 옥희는 그들이 각자 반쪽의 인생, 하나씩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들은 서로 나란히 서 있을 때 진정으로 완전해질 수 있다고.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책들은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마음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더 아름다운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들이었다.
그의 상상력은 낯설지 않고 친숙한 것들 사이에서 계속 순환하며 흘러갔다. 말하자면 강물보다는 샘 같았고, 특히나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할수록 그랬다.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 나오는 것보다 신나는 것도 없거든. 슬플 땐 그걸 기억하렴."
묘하게 사람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능력 또한 그의 특별한 재능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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