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힘든 것보다 눈치 보는게 훨씬 힘들어. 정신적으로 지치는 게 더 힘들어."
가게는 깨끗하고 건강한 느낌이 유지돼야 했다. 약재 냄새가 나더라도 그건 건강과 깊은 관계가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 부분을 기대하고 들어온 손님이 가장 먼저 맞이하는게 식사 중인 모습과 음식 냄새라면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는 어려웠다.
나는 한 사람이라도 더 건강하게 할 거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가지고 일한다.
매일 좁디좁은 화장실에서 몸을 구겨가며 씻는 기분이었는데, 이렇게 퍼져 있으니 스트레스와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스스로가 어묵이라도 된 양 한참 동안 몸을 담갔다.
세면을 하고 믹스커피 한잔을 마신 뒤에 모텔을 나섰다. 건강하지 않지만 달달하고 입에 쩍쩍 달라붙는 게 좋았다. 365일 매일 건강식만 입에 달고 살 수는 없었다. 가끔은 몸에 좋은 식품이 아니더라도 맛있게 즐긴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로 인해 스트레스가 풀리면 그건 그거대로 건강에 좋은거니까.
이 작은 사업조차도 계속되는 투자를 반복하며 신경 쓸 것이 많았다.
온라인 판매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배송이었다. 배송이 늦어지거나 제품이 훼손되면 무조건 클레임이 걸려온다. 이는 매출과 직결될수도 있는 문제다. 재구매 욕구를 확 떨어뜨린다. 내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의 항의를 받을 가능성도 높다. 그렇기에 택배기사와 사이가 좋아서 나쁠 것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신경 써주길 바라는 마음에 즙이라도 하나 챙겨주는 것이었다.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한 방에 크게 뭐가 터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작은 것들이 쌓여서 큰 변화를 이룬다.
그나저나 신기하기도 하지. 회사에 다닐 때는 시간이 그렇게나 안 갔는데, 이제는 너무빨리 지나간다.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 야속하고 아쉽다. 왜 즐거울 때는 시간이 빨리 가고, 그렇지 않을 때는 느리게 가는 걸까.
얼굴만 봐도 어디가 좋지 않은지 보였다. "턱이 많이 아프신가 봐요." 나의 한마디에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늘어놨다. "평소에 이 정도는 아닌데, 오늘 갑자기 좀 심하네요." "병원에 다니신 적은 있나요?" "예, 동네 치과부터 시작해서 구강외과, 구강내과, 이비인후과, 신경과까지 다 가봤습니다. 3차신경통이라고 하더라고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의 옆으로 다가가 얼굴의 신경이 지나가는 쪽들을 엄지로 짚었다. 관자놀이, 눈가, 광대 부근, 귀 앞쪽 등을 차례로 눌렀다. "이쪽들은 전부 괜찮으시고요?" "네, 네." "그럼 여긴요?" 나는 천천히 엄지를 이동하며 턱선을 따라 차례차례 눌렀다. "아, 아아!"
"제가 먹는 즐거움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인생의 즐거움에서 반은 먹는 것에 있다고 하거든요." "네, 네." "엄나무껍질을 드시면 좋아지실 겁니다." "엄나무껍질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엄나무껍질을 25g이랑 물 400ml 정도를 넣고 달여서 하루에 세 번 드세요. 이렇게 딱 2주만 해보십시오. 통증이 완화될 겁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제게 오셨던 분들은 무슨 질환이든 호전되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분명히 효과를 보실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잠 충분히 주무시고, 만약에 술드시면 금주하시고요. 너무 맵거나 짜거나 단 음식은 피해주십시오." "네, 네." "그리고 음식을 씹을 때 유난히 더 아프잖아요? 당분간 질기거나 딱딱한 음식은 피해 주십시오."
그렇게 건강상담을 마쳤다. 몸이 아파서 오는 사람들이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그래도 건강상담 자체는 너무 좋았다. 요즘 들어서 내가 두 번째로 행복할 때였다.
첫 번째로 행복한 순간은 내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고마워할 때였다. 오늘 내게 건강상담을 받은사람들도 전부 호전이 됐으면 좋겠는데. 진심으로 그러길 바랐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랬고, 나를 위해서도 그랬다. 기뻤다. 스스로가 느끼는 보람참에 기인한 것일지라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위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게 기뻤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저녁식사는 평범했다. 하지만 정말 맛있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먹는 음식의 종류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먹느냐가 더 중요한 듯했다.
살면서 혼자 밥 먹을 때가 참으로 많았다. 외로움 따위는 모르고 산줄 알았는데, 어쩌면 언제나 외로움을 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이지, 삶이 너무나 나아졌다. 할아버지에게 능력을 전수받고, 가르침대로 바르게 산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받으면 베풀 줄 알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정직하게 산 덕분이라고 생각됐다. 그래서 추가적인 방송 출연이 더 고민됐다.
내가 고민을 하는 이유는 양심과 정직함 때문이었다. 할머니의 일을 도와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깔짝깔짝 잡일이나 조금 해본 정도가 전부였다. 할머니에게 일을 배운 적은 아예 없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거짓말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도우며 건강원 일을 익혔다. 결국 할머니의 솜씨도 할아버지 덕분이었다. 공력까지 함께 능력을 전수받은 나는 민간요법은 물론이고, 즙을 내리는데 있어서도 할머니보다 실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이게 과연 정직한 걸까?‘ 라는 질문에 대답을 내놓기는 어려웠다. 고민을 하는 시점에서 이미 글러먹은 것일지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나도 사람인지라 욕심이 났다. 가게는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만약 ‘일의 달인‘에 출연하게 된다면 순항 중이던 경비행기에 제트엔진을 다는 것처럼 치솟을 가능성도 존재했다.
최근에는 정말 살면서 행복하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 행복함 속에서도 고민은 있었다. 원인은 이미 알고 있었다. 결국 내 욕심이 기인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런데 그 욕심을 버리기가 참 어려웠다.
그런 생각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스쳤다. 10원짜리 하나 안 받고 사람들을 위해 건강상담을 하는데, 잠과 마진을 줄여서라도 더 나은 제품을 위해 노력하는데,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방송에 나간다고 내가 건강상담을 그만두거나 할 것도 아닌데. 지금 가지고 있는 마음은 그대로 유지할 것인데도 안 되나? 나는 그렇게 한참 동안 스스로와 씨름을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엇나가지않고 지금의 능력을 계속 유지하는 거니까.
할머니는 너그럽게 웃으며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은 시간이 많이 없구나. 원래 나중에 같이 오려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말 좀 전해달라고 해서 빨리 온 거야." "무슨 말?"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랴. 그렇게 해도 괜찮대." "응?"
"머리 싸매고 죽는 소리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래. 괜찮다고." "하고 싶은 대로......?" "그려, 다 지켜보고 있어. 잘하고 있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하래." "그냥 그렇게만 말했어?" 할머니는 빙그레 웃었다. "지금 하는 일을 왜 하는지 생각하면서 결정하랴. 그러면 된다고. 제일 중요한 게 네가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거고. 왜 하는지만 잊지 말라고."
"알겠어요. 꼭 그렇게 한다고 전해줘요." "그래. 우리 손자야 알아서다 잘하지. 이렇게 장하게 커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장하기는....... 할아버지랑 할머니 아니었으면 개망나니였지 뭐." "으이그! 아서어! 개망나니가 뭐야." "할머니가 강아지라며!" "그래도 개망나니가 뭐여." 그렇게 잠시 웃음이 쓸고지나갔고, 파도가 지나간 뒤 평평한 바다가 보이듯 차분한 분위기가 찾아왔다.
"할머니." "응, 우리 강아지." "그 있잖아요, 그......."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속에 쌓아두지 말고 다 해. 또 보려면 한참 있어야 돼." 어쩌면 처음일지도 몰랐다. 아주 어렸을 때 편지 쓰기 같은 걸로 표현해 본 적은 있던것 같지만. 지금은 꼭 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할머니!" 내가 장난스레 목소리를 높이자 할머니가 즐겁게 웃었다. 나도 한바탕 웃다가 서서히 옅은 미소만을 남겨놨다. 그리고천천히 양손을 뻗어 할머니의 양손을 감싼 뒤 내 얼굴로 가져왔다. 그렇게 손과 뺨으로 할머니의 손에서 전해져오는 따스함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사랑해요."
"나도 사랑한다." 할머니는 행복하게 웃어 보였다. "이제 시간이 다 된 것 같구나. 또 보자. 밥 잘 먹고, 잠 푹자고, 운동도 하고." "그럴게요." 그 순간 위쪽에서부터 빨려들어가는 감각을 느꼈다. 그 순간에도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뺨에 대고 눌렀다. 양쪽 눈꺼풀이 들리는 느낌이 듦과 동시에 앞이 깜깜해졌다.
"허억....... 허억......." 마치 악몽을 꾸다가 갑자기 잠에서 깬 것처럼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더 이상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잠에 들었던 모텔 침대 위였다. 새하얀 베갯잇은 내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할머니......."
좋은 기회니까 놓치지 말고 잡아. 좋은 일도 너부터 챙겨가면서 여유가 생겨야 할 수있는 거야.
저번에도 말했지?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건 좋은데, 요령껏 잘 저어야 돼. 잘못하면 물에 풍덩 빠지는 거야.
방송 출연을 하기로 결심했다. 목표를 분명히 했다. 돈을 더 벌자고 나가는 게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더 유명해져서, 한 사람이라도 더 나를 찾아오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한 가지라도 더 건강을 위한 방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돈? 돈도 중요하긴 하다. 많은 돈을 가지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돈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이미 먹고살기에는 충분하다 못해서 넘치는 돈을 벌고 있었다. X소기업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도 밥은 먹고살았다. 사명감과 숭고한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됐다. 그럼 돈은 알아서 따라오는 거니까. 따라오지 않는것 같으면, 거리를 더 벌리면 된다. 돈이 조급해져서 빨리 쫓아오게끔.
끝이 없을 것 같은 이 행복이라는 바다에서 계속 헤엄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목표였다. 행복은 내가 만들어나가는거다.
누구나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누구나 자신만의 아픔을 견디고 있다. 누구나. 행복하고 말고는 오롯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 내가 걷고자 하는 행복한 길은 그 어떤 길보다도 행복으로 충만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여 나도 행복하고자 했으니까.
"넌 어째 사장이면서 제일 바쁜 거 같아." "그게 당연한 거지. 원래 사장이 제일 바쁜 게 당연한 거야. 제일 바빠야 되고." "그런가? 하긴, 성공한 사장들 보면 다 그 소리하긴 하더라."
"알면서 그래?" "난 그냥 말만 저러지 않을까, 그랬지." "다들 뭐 빠지게 일하니까 성공하는 거야. 운도 따라야되지만." "그래서 성공가도를 밟는 기분은 어떠십니까? 강 사장님?" "성공은 개뿔, 아직 근처도 못 갔어. 이제 그냥 좀 먹고살만해진 거지." "오오....... 겸손함까지......"
"응, 껍질 표면 만져보면 미끈미끈하지? 원래 계란 껍질표면은 까끌까끌하거든. 그러면 상한 거야." "그래?" 녀석은 달걀판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모르겠으면 하나 까봐. 계란 노른자가 봉끗하게 안 올라오고 푹 퍼지면 상한 거야." 옆에서 듣고 있던 오정득이 피식 웃었다. "별걸 다 아네." "그러게."
사사로운 생활의 지혜들도 능력을 전수받은 덕분이었다. 나름대로 공부를 하려고 해도 뭐만 펼쳐서 보면 이미 머릿속에 다 담겨 있는 내용들일정도였다. 베이스는 민간요법들이었지만, 현대의학에 근거를 두고 증명되는 것들도 굉장히 많았고. 어째서 할아버지는 저승에서도 끊임없이 공부를 했던 걸까? 살아가면서 능력을 활용하고 있는 내가 대충 능력만 받아먹는 건 말이 안 됐다. 공부를 하는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었다.
상황이 닥쳐야 떠올릴 수있던 것을 평소에 유기적으로 이어가며 머릿속에 박아두는게 가능했으니까. 사업적인 것도 계속 공부해 나가야 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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