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에 주인공과 관련된 약간의 로맨스가 나오면서 해피엔딩으로 무난하게 마무리되어갈 줄로만 알았던 이 소설의 결말이 갑작스럽게 검찰의 압수수색이라는 예상치 못한 이슈로 인해 극적인 반전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회귀전에 주인공을 지독히도 힘들게 했던 김강현이 있었다. 한동안 잊혀져 있었던 이 악역이 막판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해서 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를 알 수 없게 혼돈의 상태로 몰아간다.

"그럼 이제 게임 시작인가?"
박철규가 물었고.
"반격의 시간이 된 거죠."
"그래. 반격이라. 좋은 말이네."

‘방주인 돌아오면 당분간 몸조심하라고 전해줘요. 천지 분간 못 하고 설치고 다니니까 아주 피곤해 죽겠어. 그쪽만 피곤한가? 우리도 힘들어.‘
메시지의 뜻은 명확했다.
이번 압수수색 뒤엔 힘센 누군가가 있다는 의미. 검찰이 움직이고 그 위에 수많은 하수인이 있겠지만 그 의지를 따라가다 보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단 한 사람.
‘대통령 차대철‘

알 수 있었다. 검찰은 바로 그 자료를 얻기 위해 영장을 청구해 압수수색을 벌였다는걸.
"네?"
"무슨?"
경고가 아니다. 그들이 가지고 간 건 비록 5년이나 지난 것이지만.
"문제가 심각해지겠는데요?" 그 5년 전 자료엔 과거 한국공조, 정확히는 당시 기획실이앞장서 회사가 저지른 중대한 범법이 기록되어 있다.

"문제라뇨?"
"5년 전이라면...... 설마?"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김동호 이사의 눈에 경악이 스쳤고.
"맞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이쪽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끼어 있는 것 같군요."

김동호의 입에서 5년 전, 그때의 일이 흘러나왔다.
으득.
이를 악물었다. 악물린 어금니 사이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 이 순간 분명 야비한 미소를 짓고 있을 그의 이름을 흘러나왔다.
"김강현. 아주 오랫동안 잊었던 이름. 이 순간 등장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던 그 이름에 최지용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기업 내 돈의 흐름은 모두 기록에 남는다. 비록 은밀하게 조성되어 아무도 모르게 사주에게 전달된 돈이지만 그 역시모두 기록에 남아 있다.
"문제는 숫자 안에 감춰진 범법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그걸 직접 저지른 사람 뿐이라는 거지요."

회계감사가 끝났고 모든 신고절차까지 끝난 2005년 회계장부지만 여전히 법적인 책임은 남아 있다.

당시의 모두가 회사를 떠났다. 억울하게 책임자로 지목된 당시의 임원들부터 배신을 통해 회사를 휘어잡았던 김강현까지.
그럼에도 책임은 남는다.
불법에 대한 책임은 한국 공조의 후신인 유니콘이 져야만 한다.
"장부의 내용이 알려지는 날엔......."
신용재가 말했고,
"유니콘은 회계 조작이라는 천인공노할 불법을 저지른 회사가 되는 거지."

유니콘의 도덕성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무기가 정체조차 불명의 적의 손에 넘어갔다. 이번 압수수색에 그 무기를 정확히 알고 있는 자가 끼어 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은 가능성일 뿐입니다. 정확한 내용이 확인되기 전까지 이번 일은 비밀로 합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아무리 코너에 몰렸다 해도 시작은 적을 아는 것부터다.

두 번째 화재 차량에서 얻어낸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화재 약 한 시간 전 배터리 이상 고온 현상 발생.‘

‘운전자는 화재 전 약 두 시간 동안 디벨로퍼를 상당히 가혹한 조건으로 몰아붙였다.‘

기획실의 파트장이 되기 위해 난 그의 호통은 물론 때때로 날아오는 손찌검을 감내해야 했다. 어리석은 당시 여준선은 그것이 성공의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제 안다.
김강현은 쓰레기이며 그런 그의 뒤를 아무 말 없이 따랐던 나 역시 다르지 않다는 걸.
가슴속에서 김강현이라는 인간을 향한 혐오와 적의가 울컥울컥 치솟았다.

하지만 이제 필요 없다. 그와는 같은 소속도 아니며 좋은 감정이라곤 일말도 남아 있지 않다. 하나의 욕망만이 꿈틀거렸다.
‘이번만큼은 놈을 완벽하게 파멸시킨다.‘

팔짱을 낀 그가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전기차, 그 분수에도 안 맞는 사업 포기해."

예상대로 그는 말단이 아니었다. 조건을 입에 올린다는건 중원 자동차에서 김강현은 그런 조건 결정에 관여할 만큼 중책을 맡고 있다는 뜻.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거야. 니들 2005년 장부가 검찰에 넘어갔어. 그 내용이 까발려지면 유니콘이 어떤 꼴이 될지 아주 잘 알고 있겠지?"
잘 알다뿐인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던 유니콘의 이미지는 한순간에 바닥을 치게 될 거다.

직원들의 업무의욕을 고취시켜 주는 주식의 가치는 수직하락할 것이다.
세무조사가 들어오고 징벌적인 벌금이 선고될 거다.
아이콘들이 추진하는 일들은 줄줄이 허들에 가로막힐 것이며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생산능력을 확보한 공장은 가동률에 허덕이게 될 거다.

"감정은 빼고 말할게. 유니콘 이대로도 좋잖아? 그냥 하던 대로 가전만 하란 말이야.
가전회사에서 자동차를 판다는 게 말이 돼?"

김강현의 말은 너무 익숙했다. 기획실장일 때도 그는 늘 비슷한 말을 했다.
‘어딜 삼전 같은 대기업과 겨루려 하느냐.‘
‘너 따위가 무슨 기획을 하려고 하느냐.‘
‘너 따위가..... 고작 우리가.... 한국 공조 따위가.......‘

"아무리 배포 좋은 기업이라도 먹거리를 뺏기면 무슨 짓이든 할 수 밖에 없는 거야. 지금 네가 그걸 뺏으려고 한 거 잖아. 생각해 봐. 너 중원 자동차뿐만 아니라 그 회사에 다니는 수십만 명한테 큰 죄를 짓고 있는 거라고."
그의 입에선 끊임없이 궤변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자동차 사업 포기해. 당장 그만두라는 거 아냐. 천천히 한 일 년에 걸쳐 정리하면 돼. 그렇게 한다면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할 수 있어."
대답이 없으니 내가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지금 김강현의 얼굴은 진실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진심으로 국가와 우리 회사를 걱정해주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그럼 이번 일은 여기서 끝나는 거야. 더 이상 생기는 문제 같은 건 없어. 유니콘은 지금처럼 그냥 혁신의 아이콘으로 남으면 돼.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가전제품 만들어서 계속 성장하면 되잖아? 그럼 여준선이는 그런 회사를 이끈 능력 있는 대표로 남는 거지."
김강현이 씩 웃었다.
"어때? 이 정도면 제법 합리적인 제안 아닌가?"
말을 마친 그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전기차 사업을 포기해라? 요구사항이 그거였다고요?"

"하긴 중원 자동차 입장에선 눈엣가시였을 테지요. 자기들이 10년이나 미국 시장에 공을 들였는데도 성과가 없었는데 벨로프가 일 년도 안 돼서 성공을 해버렸으니....."

그의 말처럼 벨로프에 대한 중원 자동차의 시기와 질투는 정당하다. 미국 시장뿐만 아니라 이대로라면 내수시장마저 장담할 수 없게 된 그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질투를 느끼는 것과 그것을 실행하는 건 다른 얘기다. 특히나 상대의 약점을 볼모로 사업 철수를 요구하는 짓거리는 용납이 불가하다.

"김강현을 믿을 수 없습니다."
"하긴....... 그놈을 믿느니 끝장을 보는 게 낫겠죠."
최지용도 전적으로 동감을 표했다. 김강현은 자신이 벌인 일조차 남에게 뒤집어 씌워 파멸시키기를 주저하지 않는 자.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한들더 이상의 위협은 없을 거라는말을 믿을 수 없다.
"게다가 한번 자기 말이 통하면 그놈은 거기서 그치지 않을 사람입니다."

벨로프를 철수하면 다음은 날 치려 할 것이다. 유니콘에서 내가 사라져도 그는 계속 그 다음을 원할 것이다. 아마도 눈엣가시 같은 이 회사가 산산이 부서질 때까지 그는 요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상대가 김강현이라니....... 어차피 우리로선 협상 자체가 불가능한 상대였군요."
"그렇죠."
"중원도 참 한심하군요. 그 쓰레기 같은 놈을 받아주다니 원."
"필요했던 거겠죠. 우릴 치기 위한 무기로."

고개를 끄덕이던 최지용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차라리 잘됐습니다. 그 속 시커먼 놈하고 거래를 하느니 벌을 받는 게 맘 편하겠군요. 어쨌든 대비는 해놓으라고 해야겠네요."
협상이 결렬되면 2005년 회계장부가 백일하에 드러난다. 회계부정에 대한 징벌이 언제 어떻게 떨어질지 알 수없지만 어찌 보면 마땅히 받았어야 했던 벌이다.

김강현과 거래에 응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아쉬움은 남았다. 2005년 부정에 대한 벌을 받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무기를 쥔 자들이 그걸 어떤 식으로 휘두르느냐.

장담컨대 결코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정부와 수사기관은 부정을 엄청난 부도덕으로 포장해 세상에 터트릴 것이며 그에 동조한 언론은 이슈를 더욱 증폭시킬 것이다.
오랜 시간 국민들의 신뢰속에서 커온 유니콘이었기에 이슈의 폭발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물론 믿었던 기업에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터져나올 소비자들의 반발은 생각도 하기 싫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제주도지사 고상원, 우릴 도와 제주도 렌터카 사업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덕에 지금 입장이 아주 곤란해진 그였다.
전화를 통해 그는 다짜고짜 전기차 방화범을 잡아두었으니 제주도로 내려올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유가 있어서 그래.]
하지만 전화기 너머의 지사는 단호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정황상 방화는 거의 확실해. 소지한 장비도 확보했고 뭣보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 장비로 렌터카에 손을 써놓은 것까지 확인했으니까 말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