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부터 회귀한 주인공의 아이디어가 이제 고갈될 위기에 처하자 주인공은 회사조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엎는 혁신을 단행하고자 한다. 기존의 부서별로 나뉘어 있던 업무분담의 경계선을 모조리 허물고 부서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원 누구나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그 프로젝트의 수장이 되어 프로젝트를 이끌도록 하게 한 것이다. 비록 이러한 움직임에 처음에는 현장의 혼란이 많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이러한 시스템이 자리를 잡게 된다.

8권의 후반부에는 미국에서 전기차 판로를 뚫은 것을 기념하여 주인공과 삼전 회장이 대통령과 함께 오찬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자리에서 오가는 대화속에 숨겨진 협상의 밀당(?)장면들이 인상적이었고, 플랜A가 통하지 않게 되자 신속히 플랜B로 전환하여 전기차관련 사업을 이어가고자 애쓰는 주인공의 기지도 아주 볼만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대통령같이 한 번 만나기 힘든 사람을 만나러 갈 때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여러가지 대응책을 잘 준비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자기가 원했던 결과를 100%는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소기의 성과라도 얻기 위해서는 준비가 정말 철저해야 함을 가슴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소설 속 주인공도 대통령과의 대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자신의 사업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독자인 나 또한 느낀 바가 많았다.

"몸 잘 챙기고 계십시오. 아무리 독한 병도 의지로 이겨낼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빨리 나으셔서 다시 출근하셔야죠."

"네 생각을 말해봐. 내가 죽어라 떠들어봐야 당사자가 싫다면 헛수고니까."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먹고 일도 성공해 본 사람이 잘한다.

"결국 문제는 제품 개발이네요."
"그렇지. 그래야 연구 방향도 정해질 테니까."

"회사의 이름엔 여러 개의 아이콘으로 다양한 분야로 진출을 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다음 단계의 주인공은 저 화면 안에 있습니다. 수많은 회사의 직원들 여러분들이 바로 변화의 핵심입니다."
임직원들의 얼굴이 2천 개의 아이콘이 되었다. 알아보지 못할 만큼 작은 아이콘들은 서로 달라붙고 뭉치며 수십 개의 아이콘으로 바뀌었다.
화면을 자유롭게 떠돌아 다니던 수십 개의 아이콘들이 제각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어떤 아이디어라도 좋습니다. 모든 아이디어는빠짐없이 검토할 것이며 채택된 아이디어는 입안자가 리더가 됩니다. 리더는 자신의 팀을 구성할 인사권을 보장하겠습니다."

조명에 드러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들이었다.
"아이디어가 성공하면 성과에 대한 확실한 보상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를 통해 새로운 회사가 생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닐겁니다.

"오늘부터 그 팀을 아이콘이라고 칭하겠습니다. 이제 유니콘은 하나의 조직이 아닙니다. 수많은 아이콘들이 모여회사를 이루게 될 겁니다. 앞으로 유니콘에 수많은 대표들이 생겨날 수도 있겠죠?"

회사는 경직된 조직이다.
한번 영업은 최소 몇 년간 영업만 해야 하며 한 번 연구원이 되면 퇴직하기 전까지 그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조직은 다르다. 그리고 난 일찍부터 하나의 아이콘을 운영해 왔다.

[신제품 개발 TF]
김강현의 반발하에 힘겹게얻어냈던 그 프로젝트팀은 기획, 연구, 개발, 영업의 다양한 조직원들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아이콘의 파일럿 테스트였다.
TF의 성공을 통해 난 경직된 회사 조직에서 아이콘이라는 프로젝트 조직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하지만 아이콘을 이끄는 것이 회귀자일리 없기에 성공을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다양한 원천기술,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접니다."

"모든 아이디어는 대표인 제가 승인합니다. 모든 아이콘에 관여할 순 없겠지만 올바른 방향을 잡아줄 순 있겠죠."
이제는 나 홀로 멱살 잡고 끌고 갈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진 회사, 그리고 다양한 기술을 바탕으로 열린 다양한 가능성.
비록 가전제품에 대한 내 지식은 고갈되었지만 다양한 사업의 흥망은 머릿속에 가득히 남아 있다. 그러니 아이디어를 승인하는 것도 또 그 방향을 짚어주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콘을 만들기 위한 직원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는 며칠지나지 않아 내 메일함을 가득채웠다.
고작 몇 줄의 성의 없는 아이디어부터 수십 페이지에 이르는 장대한 구상까지. 그 결과 내 하루 일과의 대다수가 그 메일들을 읽고 검토하는데 소모되고 있었다.

하루에 날아드는 메일이 수십 건에 이르자 마침내 눈이 번뜩일 만큼 놀라운 아이디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어제 회사의 첫 번째 아이콘이 결정되었다.

거긴 첫 번째 아이콘이 된 입안자의 아이디어가 크게 적혀 있었다.
휴대용 콘솔 게임기. 약 5년후 첫 모델이 출시되어 10년후 거짓말 같은 월드와이드 성공을 일구어내는 휴대용 콘솔게임기.
하지만 실현 가능하다. 이미 확보한 영상과 배터리 기술을 기반으로 게임기 쪽 기술을 인수하거나 추가하고 또 오리지널 게임 타이틀을 가진 회사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단 전제하에 말이다.

"직원을 더 뽑든, 아니면 다른 직원을 올리든 해주세요.
이런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영업에 묶여 있다는 건 말이 안 돼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회사 이곳저곳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다. 비록 아직 검증되지 않았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회사에 활력을 불어 넣어줄 개발 역량을 가진 새싹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회사엔 변화와 활력이 필요하고 아이콘 프로젝트가 그걸 끌어낼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물론 그 과정이 혼란스럽겠지만.

한 명 두 명 기존의 직무에서 아이콘으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건 묘한 경쟁심을 부추기는 것이었다.
20년 가까이 자신의 직무에만 충실했던 무뚝뚝한 지원팀 차장이 식당의 무인 결제를 위한 키오스크 시스템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 난 알 수 있었다. 아이콘 프로젝트가 조금씩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을.

대한민국 최대 기업의 오너가 미안함을 느낀다는 건 아주 좋은 신호다. 언젠가 그의 도움이 필요할 때 그의 부채의식을 단단히 써먹을 참이었다.

"그래요. 정치인과 기업은 사실 떼려야 뗄 수가 없죠. 기업이 어려울 땐 정치인이 나서야 하고 정치인이 어려울 땐 또 기업이 나서 줘야 하고."

겉보기엔 화기애애한 대화일 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우린 미국에서 큰 성공을 이뤄 국가의 위상을 올렸고 대통령은 인수위원회를 움직여 유니콘을 도왔다.
청와대와 우린 한 번의 도움을 주고 받았고 이로써 우린 부탁의 명분을 잃었다.
대통령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 올랐다.

대통령은 손을 들어 그의 발언을 제지했다.
"내가 정치를 해보니까 여긴 흑백이 없더라고. 흑 아니면 백, 기업에서는 당연한 그 선택이 정치에선 아니에요. 좀 더 진한 회색이냐 밝은 회색이냐. 정치는 그런 선택이지."

"정책도 마찬가지예요.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결정하려면 여러 법을 바꿔야 해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와 지자체가 한 몸처럼 움직여야하지."

"결국 아직 시기상조란 말이에요. 기존 자동차 회사들이 준비할 시간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하니까요."
이걸로 게임은 끝났다. 결과는 우리의 완패. 대한민국의 전기차 출시는 이제 기약 없는일이 되어버렸다.

"대통령님, 그럼 지자체 한 곳에 시험 운행을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네. 제주도 말입니다. 전기차는 제주도와 궁합이 잘 맞지않습니까?"
제주도. 2002년 유네스코로부터 기후와 생물 다양성의 생태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받은바로 그 섬.
게다가 다른 도와 달리 특별자치도로 지정되어 완벽한 독립 행정 우영이 가능한 섬.
"판매 허가가 시기상조라면 그쪽의 렌터카 업체들과 손을 잡아보겠습니다."
"으흠."

대통령이 고심에 잠겼다.
플랜 B까지 거부하기 힘들 터였다. 벨로프의 전기차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는 무시하기 힘든 수준, 게다가 제주도는 환경 문제가 최대 이슈였다.
일 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이기에 렌터카를 통해 전기차를 시험 운행한다는 건 그로서도 거부의 명분이없는 카드다.

마침내 차대철의 입에서 마침내 긍정적인 반응이 흘러나왔다.
"뭐, 선택은 그쪽 지자체가 하게 될 거예요. 특히 제주도는  진짜 자치도거든, 도지사가 나랑 당도 다르고."
"배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사실상 도와준 게 없음에도 돌아간 감사 인사.
차대철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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