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에 반응한다는 것은 그것을 누리라는 뜻이다. 자유주심을 누린다는 것은 모든 형태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됨을 뜻한다. 또한, 재물의 소유욕이 사라진다. 더 이상 체면이나 지위, 명예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근심과 불안이 나를 사로잡지 못하며, 집착으로부터도 벗어나고, 금욕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다. 즉, 많이 가지고 있는 삶보다 깊이 있는 삶을 살게 된다. - P107
조금 더 쉽게 이야기하면 옆집 아주머니가 자기 자식을 자랑해도 질투하지 않는다. 친구가 좋은 차를 구입해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직장 동료가 먼저 승진해도 배 아프지 않다. 대학친구가 좋은 더 취직해도 질투하지 않는다. 재산이 많다해도 허영을 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기꺼이 나눈다. 성공 때문에 조바심을 내지 않고 최선을 다하며 만족한다. 유행에 민감해하지도 않는다. 옷이 낡거나 자동차가 오래돼도 구애받지 않는다. 왜? 우리는 이제 그 무엇도 하나님 나라를 앞설 수 없다는 원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 P108
자유함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다. 그래서 자유함을 소유한 사람은 이 땅에서도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자유함을 구입한 것과 다름없다.
또한 하늘 나라는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아주 값진 진주를 발견하자, 그 사람은 가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그 진주를 샀다.(마 13:45~46, 쉬운 성경) - P108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굴레와 멍에로부터 자유해지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 P10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시 107:9) - P110
하나님은 우리에게 낮추라고 말씀하시고, 비우라고 말씀하시며,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신다. 심지어 자기 목숨을 버리라고 하신다. 왜 그렇게 강도 높고 부담스러운 말씀을 하실까? 그분은 우리를 다 비워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하고 싶어 하신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살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만 인정하게 하고 싶어 하신다. 나는 이러한 하나님의 비워주심에 빈응했을 때 상상할 수 없는 채워주심을 경험했다. 하나님께 대한 나의 작은 반응은 항상 더 큰 하나님의 반응으로 돌아왔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10) - P113
자신의 동기를 숨기더라도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모두 아신다. - P115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섬씽, 혹은 낫씽을 가장한 섬씽이 아니라 정말 깔린 것이 없는 낫씽이다. 우리 마음 속에도 아간같이 하나님의 것을 몰래 감춰놓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자기 부인이란 내 것이라고 속였던 하나님의 것을 그분께 돌려드리는 것이다. 우리의 자기 부인은 하나님의 인정과 그리스도의 사심을 경험하는 것이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눅 12:2) - P118
광야에서는 예수님에게 열등의식을 조장하려 했고, 이번에는 교만 의식을 조장하려 했다. 브루스 탐슨은 그의 저서 《하나님의 다림줄》에서 열등감의 반대 표현이 바로 교만이라고 했다. 즉, 열등감과 교만은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참 유치한데 우리가 여기에 넘어가고 있지 않은가. - P120
"이 더러운 귀신아, 나를 나타내지 마라!"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미리 준비시킨 작은 배를 타고 사람들의 인기를 뒤로하고 떠나셨다. 나에게도 작은 배가 필요하다. 나의 자아 성취, 인정받고자 하는 심리적 욕구로 인해 마귀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항상 피할 수 있는 작은 배를 준비해놓을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였으니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의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막 3:9~12). - P121
우리가 종종 오해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주께 쓰임받으려면 뭔가 더 준비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시간을 자꾸 미룬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자격이 아니라 태도가 더 중요하다. 마치 우리의 죄를 용서받으려면 뭔가 고행을 해야 할 것 같고, 우리의 죄책감을 씻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는 불충분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과 같다. 그저 지금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반응하라. - P123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고전 9:19~22). - P125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요 6:15 하). He departed again into a mountain himself alone.
예수님은 사람들의 인기를 뒤로하셨다. 왕으로 옹립되는 것에는 아예 관심도 없었다. 그분은 그러한 인기를 멀리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again)‘ ‘산 속으로(into a mountain)‘ ‘그 스스로(himself)‘ ‘홀로(alone)‘ 떠나신 것이다. 예수님은 어떤 일을 성취한 후에도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을 떠날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사명은 섬기는 것이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 P131
예수님은 대중의 이기적인 욕구에 반응하기보다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만 반응하셨는데... - P132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 107:9) - P132
사람들은 마음을 비우라고 이야기하지만 내가 살아보고 경험해보니 스스로 마음을 비우기란 참 쉽지 않다. 비우면 다른 형태의 욕심으로 채워지곤 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비울 때 명예의 욕심이 찾아왔고, 명예의 욕심을 비울 때 육체의 욕심이 찾아왔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귀신이 나갔다가 더 많은 귀신이 그를 점령했다고 하는 성경말씀과 비슷한 이야기이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눅11:24~26). - P133
우리의 마응도 자연과학의 이치와 비슷하다. 비워서 진공상태가 되면 블랙홀이 되어 무엇이든지 빨아들이게 된다. 이전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 내 안의 악을 박멸하기 위해서는 선으로 채워야 한다. 즉,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 P133
기독교 신앙은 비워가는 과정이 아니라 채워가는 과정이다. 하나님이 비워주시면 긍정으로 반응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선한 것으로 채워주신다. 우리는 비우고 채우는 과정이 단계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동시에 발생한다. - P134
우리의 마음이 악으로 채워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비우기 위해 선을 밀어 넣으신다. 그리고 선과 악은 싸우기 시작한다. 내 안에서의 영적 전쟁이 시작한 것이다. 점점 하나님의 선이 차지하는 부피가 커지면 결국 악은 추방되고 만다. - P134
악이 추방될 때까지 우리는 내적 갈등과 고통을 겪게 된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이 처음에는 기쁜데 조금 지나면 괴로워진다. 왜냐하면 내 안에서 싸움이 점점 크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비워가시며 채우시는 과정이다. - P134
하나님의 비워주심에 반응할 때, 자기 부인이 가능하다. 그때 우리의 교만이 겸손으로 바뀔 수 있다. 나 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아갈 수 있다. 주변 인물이 된 것에 대한 섭섭함이 사라지게 된다. 내가 조명을 받지 않아도 개의치 않게 된다. 비워주심에 반응하면 성령으로 채워주심을 경험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 18:12).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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