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을 일일이 치지는 않았지만 저자 자신의 스토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사람이 내가 읽었던 세븐 파워 교육, 자녀를 빛나게 하는 디톡스 교육, 파인애플 공부법 책의 저자와 동일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판이하게 달랐던 과거의 모습들을 보면서 참 놀랍기도 하고 신기했다. 부동산 투자로 재산을 증식시키면서 남부럽지 않은 자기 집도 마련하고 공부도 굉장히 잘해서 아쉬울것 하나 없어보이는 분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갑자기 교육에 뜻을 두고 기존의 것을 다 내팽개치고 중국으로 건너가서 학교를 설립하였는지 의아했다.
뒷 내용을 좀 더 읽다보니 마냥 승승장구하던 인생에서 삶에 대한 회의가 생겼다는 저자의 고백과 더불어 보다 의미있는 인생을 찾고 싶다는 얘기가 나왔다.
난 이 고백을 보면서 갑자기 문득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이 떠올랐다. 기본적인 욕구(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사회적 욕구)가 충족된 인간이 점점 더 고차원적인 욕구를 추구하게 된다는 이론인데, 이 저자분의 경우에 간략히 대입을 해보자면 일단 기본적인 저차원의 욕구들은 남부럽지 않게 충족되었고 보다 상위 단계인 4단계 존경의 욕구와 5단계 자아실현의 욕구를 갈망하게 되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후에 이야기들을 읽으며 이거는 단순히 매슬로우의 이론의 차원을 넘어 영적인(spiritual)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여기 자세히 밑줄치진 않았지만 저자가 그간의 걸어온 길을 바탕으로 미국의 명문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해달라는 제의를 받기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러한 것들을 다 포기하고 중국 선교사로 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기자신만 생각했다면, 결코 결정하기 쉽지 않은 선택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매슬로우의 욕구 최상위단계인 자아실현 정도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어 더 큰 어떤 비전이나 꿈을 바라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위에서 영적인 느낌을 지울수 없다고 적은 것도 결국 이것은 기독교에서 종종 말하는 부르심(Calling)이라는 말 외에는 이성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선택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세월이 흘러 지금은 중국 하얼빈에 만방학교라는 것을 세워서 많은 학생들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아주는 분이 되셨지만 당시에 저런 선택을 할때는 지금처럼 될거라는 생각을 과연 하셨을까 라는 의문과 함께, 저자분의 믿음(?)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 나에게 진심어린 인정과 칭찬 한마디는 엄청난 에너지가 된다. 속에서 잠자고 있던 뭔가가 꿈틀거리는 것 같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나를 인정해 주신다고 생각할 때면 나는 기절할 정도로 좋았고 자신감도 얻었다. 누구에게나 인정받는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가 심해지면 문제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 P87
사도바울이 아들 같은 제자 디모데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는일꾼으로 인정받은 자가 되라고 부탁하는 것을 볼 수 있다(딤후2:15) 우리도 먼저 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주님되심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하기 시작하신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 P87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 1:14). - P89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5:8). - P90
누가복음 12장을 보면 이러한 비유가 나온다. 한 부자가 소출이 많아 창고가 부족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부자는 곳간을 헐고 새 곳간을 짓기로 했다. 그리고 자기 영혼에게 여러 해 동안 편히 먹고 마시고 즐겨야겠다고 말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 부자에게 말씀하셨다.
"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 사람이 바로 나였다. 아니 이보다 더 나빴다. 세상에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잠23:5). - P91
사람들의 삶의 유형을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굴레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의 삶이다. 굴레의 삶을 사는 사람은 현실에 집착하여 뭔가를 쌓아가려 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이다. 생각도 행동도 심지어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또한 재물에 권력에 명예에 속박되어 사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굴레의 삶은 복잡하고 계산이 많다.
성경에서 야곱의 외삼촌 라반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여동생 리브가를 이삭에게 시집보낼 때에도 아브라함으로부터 금과 온 등의 온갖 패물과 의복을 선물로 받았고, 야곱에게도 딸 라헬을 주는 조건으로 7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도록 한다. 또 7년이 경과하자 라헬이 아닌 언니 레아를 주며 약속을 어겼다. 라반은 야곱의 라헬에 대한 집착증을 이용하여 라헬을 미끼로 20년이란 긴 세월동안 머슴살이를 하게 했다. 라반은 재산 증식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 P92
소유욕과 탐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굴레가 된다. - P93
한편, 자유의 삶이 있다. 자유의 삶은 단순성으로 대표된다. 단순성이란 우리를 복잡하게 얽어매는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뜻에만 초점을 맞추는 삶이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고,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단순성의 삶을 살았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단순한 삶의 모델이셨다. 그분은 하늘의 문화에서 지상의 문화 속으로 온 분이었다.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한 신의 속성을 가지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버리고 한계를 입은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영광을 얻을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 모든것을 포기하고 온전히 십자가에 목숨을 내주심으로써 한 알의 밀알이 되기로 하셨다. - P94
나는 이미 얻었거나 이미 온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것을 붙잡으려고 좋아갑니다. 이는 나도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혔기 때문입니다(빌 3:12, 우리말성경). - P94
30살이 갓 되었을 때 나는 단순한 삶이 무엇인지 배워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군대를 면제받았으니 이 면제받은 기간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봉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3년만 중국에 교수 선교사로 다녀올 결심을 했다. 오랜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 P94
내가 3년이라는 교수 선교사로 헌신하려 했던 주요 원인은아마 삶에 대한 회의가 아니었나 싶다. 편한 생활이었지만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액 연봉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승진이 나를 기쁘게 하는 것도 아니었다. 빛나는 연구업적이 나를 의미 있게 하는 것 또한 아니었다. 승진과 출세만을 향해서 뛰는 것이 인생의 해답은 아니었다. 보다 의미 있는 인생을 찾고 싶었다. - P96
경기에 나서는 사람은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썩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절제를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썩어지지 않을 월계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고전 9:25, 표준새번역). - P96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때 우리에게 기존의 틀에서 누렸던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신다. 내가 가지고 있던 안정을 버리기 시작한다면 하나님께 반응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 P96
누구나 한번쯤 직장을 다니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그때가 의미를 찾기 시작하는 순간이지만, 대부분 가정과 현실에 묶여 그냥 눌러앉고 만다. 속으로만 ‘뭐하고 있나‘하는 생각을 하거나 일부러 그 질문을 잊어버리려 한다. 그리고 자기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미친 듯이 직장이나 사업장에서 열심히 일한다. 거의 매일 자정이 다 되어서 집에 들어가고 새벽같이 일어나 일터로 나간다. 때로는 술도 덜 깬 상태로 회사에 출근해서점심 때 살짝 사우나에 다녀온다. 이 모든 것이 내가 하던 방법들이었다. - P97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고전 7:22). - P99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 - P103
우리는 하나님의 자유주심에 반응할 때 거룩한 중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단순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단순한 삶은 뒤를 돌아보는 삶이 아니다. 두 마음을 품는 삶이 아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오직 푯대를 향해서 달려가는 삶이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14). - P104
신기하게도 남을 위해 어떤 도움을 주고 싶을 때 성령께서는 나와 아내에게 똑같은 생각을 주시곤 했다. 그때마다 순종하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곤 했다. - P105
우리의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방법은 그 재물을 하나님을위해서 쓰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에 우리만을 위해서 썼던 기쁨보다 훨씬 컸다. - P105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 6:19~20). - P106
하나님은 사랑을 주시고도 기대를 갖지 않으신다. 나는 예전에도 많은 사람에게 금전적 혜택을 준 적이 있다. 그러면서 속으로 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섭섭함이 있었다.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사랑을 베풀고 상대방에게 기대를 하느냐 안하느냐에 달려 있다. - P106
지금 의미 없어 보이는 삶 때문에 방황한다면 한번 기도해보기를 격려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에 날개를 달아주시는 분이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계획해놓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환란 가운데서도 기쁨이 넘칠 수 있다.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고후 7:4).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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