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나는 문득 생각했다-'사랑'은 가장 애매한 감정이 아닐까.
분노나 슬픔 혹은 기쁨 같은 것은 본인도 선명하게 느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명확한 감정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은 자기도 잘 모르고 사람에 따라 그 정의가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설명없이는 완전히 공유할 수 없다.
혹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개념이 아닐까?
감정처럼 명쾌한 생리적 현상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추상적 개념 같은 것이라서 사람에 따라 정의가 다르기도 하고, 말로 설명하지 못해 합의를 이루지 못하기도 하고, 육체적 결합으로도 공유할 수 없는 게 아닐까.
하지만 우리들은 '사랑'을 개념이 아니라 감정이라고 믿고 있는 탓에 굳이 상대방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통할 거라고 착각하곤 한다.
상대도 나와 같은 기분일 것라고 멋대로 생각하는 거다.
그리고 어느 날 현실을 깨닫고는 깜짝 놀라는 것이다.
내 '사랑'과 그의 '사랑'은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었구나 하고 말이다.-1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