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을 수 있다면 2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6년 12월
구판절판


이건 하나의 가정이다. 확언을 하기에는 아직 이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의 확신이란 결코 요지부동한 것이 아니다. 어느 날은 죽고 싶도록 사는 게 암담하다가도 이튿날에는 몇 계단 내려가서 스위치를 찾아내기만 하면 눈앞이 조금 더 환해진다는 것을 깨닫는 게 우리네 사람살이 아니던가. 어쨌거나 이들 네 사람은 다가올 시간을 자기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나날로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129쪽

"너 이거 아니? 사람이 늙으면 가장 고약한 게 말이다......자아 한잔 더 따라 다오.....육신이 망가진다는 것도 고약하지만 그보다 더 고약한 건 회한이야. 그것이 계속 따라다니면서 우리를 괴롭혀.....밤이건 낮이건 시도 때도 없이 말이야. 그것을 쫓아버리기 위해서 눈을 감아야 할지 뜨고 있어야 할지 모를 때도 있어. 그래도 어떤 때는 무언가를 시도하기도 했어...... 어쩌다 일이 잘못 됐는지, 왜 모든 게 그릇된 쪽으로 돌아갔는지 이해해 보려고 애를 썼지. 그런데......"
"그런데요?"
폴레트는 떨고 있었다.
"안 되더라고. 이해를 못 하겠어. 난 말이야......"
폴레트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무슨 얘기부터 하지?"-156쪽

둘째로, 나는 어떤 남자랑 고약한 인연을 맺었어. 파스텔 통과 꼬깃꼬깃한 헝겊을 들고 다니던 멍청한 화가 지망생이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천재와 사랑에 빠졌으니, 그 다음 일은 안 봐도 뻔하지. 그는 저주받은 예술가, 닭의 무리에 잘못 섞인 학, 얼굴에 그늘이 잔뜩 서린 홀아비, 절망에 빠진 영혼이었어. 텁수룩한 머리에 무언가를 갈망하는 눈빛, 초췌하고 비리비리하면서도 멋있는 외모, 그야말로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천재 예술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지......아버지는 아르헨티나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헝가리 사람이었어. 굉장한 혼혈이지. 양쪽 문화에 고루 영향을 받아서 교양도 어마어마하게 풍부했어. 그는 빈집을 불법으로 점거해서 살고 있었어. 그가 바라는 것은 하나뿐이었어. 자기가 지독한 고통 속에서 창조를 하는 동안 어떤 순진하고 멍청한 여자가 자기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 주는 것, 그뿐이었지. 나는 그 순진하고 멍창한 여자의 역할을 떠맡았어.-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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