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와 앨리스 먼로
하지만 '여성과 픽션'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했는데 내가 자기만의 방이라는 말을 꺼낸다면 도대체 그게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말하겠지요.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민음사)
버지니아 울프는 '하지만'이라는 접속사로 글을 시작한다. 하지만.
왜 '하지만' 일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한 가지 의견, 즉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민음사)
분명하다.
자기만의 방.
이 글을 읽는 순간, 앨리스 먼로가 쓴 단편이 떠올랐다.
<작업실The Office>이라는 단편이었다.
"아무래도 작업실을 얻어야겠어요." (중략)
아무리 내가 쓴 글이지만, 침묵할 공간과 저를 드러내 보일 미묘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건 글들이 스스로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친절을 베푼답시고, 내게 건네는 걱정 어린 다정한 목소리가 그 침묵의 공간을 다 차지해 버린다. 참 대단하다, 좋겠다, 이야, 흥미롭다 등등 찬사도 참 가지가지다. 그러면서 무엇을 쓰느냐고, 한사코 캐묻는다. 이쯤 되면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매번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자칫 시건방지다고 느낄 만큼 느긋하게 소설을 쓴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눈에 띄게 낙담한 나를 몇 번이고 거듭거듭,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달래던-그러나 위로할 말들이 바닥나 지칠 대로 지친-사람들은 오직 "아!" 할 뿐이다.
앨리스 먼로, <행복한 그림자의 춤> 중 <작업실>, 뿔
두 여성작가는 말한다.
소설을 쓰기 위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작업실이 필요하다.
어슐리 K. 르 귄
버지니아 울프는 앞선 여성 작가로 후대의 많은 여성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 중 한 명이 미국의 SF 작가인 어슐리 K. 르 귄이다. 르 귄은 미국의 작가는 남성 중심적이던 SF 소설에 여성의 관점이 들어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가 쓴 <어스시> 시리즈는 J.R.R.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 C.S.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와 함께 세계 3대 판타지 소설로 꼽힌다. 어슐러 K. 르 귄의 이름을 듣고 <작가란 무엇인가> 3권에서 그녀의 인터뷰를 찾아 읽었다. 그녀의 책은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었다. <바람의 열두 방향>부터 읽을 생각이다.
남성 중심 세계에서 여성 작가가 된다는 주제와 관련해,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기준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르 귄 어머니가 그 책을 주셨어요. 어머니가 딸에게 줄 수 있는 중요한 책이지요. 어머니는 제가 십 대였을 때 <자기만의 방>과 <3기니>를 주셨어요. 1950년대에 <자기만의 방>은 고전하고 있었어요. 글쓰기는 남자들이 규칙을 정한 분야였고, 저는 거기에 의문을 제기한 적이 없었어요. 의문을 제기한 여자들은 너무 혁명적이라 저로서는 그들을 알 수조차 없었죠. 그래서 글이라는 남자들의 세계에 저 자신을 맞춘 채 남자처럼 글을 쓰며 남성의 관점만 표현했죠. 초기 작품들은 모두 남자의 세계가 배경이에요.
여성운동이 당신을 변화시켰나요?
르 귄 여성운동은 제게, "이봐, 그거 알아? 당신은 여자야. 여자처럼 글을 쑤 수 있어."라고 얘기해줬어요. 전 여자들이 남자들이 쓰는 내용을 쓸 필요가 없고, 남자들이 읽고 싶어하는 내용을 쓸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여자들에게는 남자들에게 없는 온전한 경험의 영역이 있고, 그런 글이 쓸 가치가 있고 읽을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찾아 제대로 읽었어요. 그 뒤로는 페미니스트들이 우리에게 준 모든 책, 다른 여자들이 수 백 년 동안 써온 책들을 읽었지요. 여자들이 여자처럼 글을 쓸 수 있고, 남자와는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왜 안 되겠어요? 아, 배에 오르기까지 정말 오랜 세월이 걸렸네요.
<작가란 무엇인가> 3권, 김율희 옮김,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