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의 사막여우 - 교과서에 살아있는 과학체험 학습프로그램, 해피페이퍼
엠아이페이퍼 편집부 엮음 / 엠아이페이퍼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어느 한가한 날 오후 친구 딸래미- 일곱살 먹은-와 나란히 앉아 떼어내고 풀칠하기를 시작했어요. 


  

조각 조각 떼어내서 붙이게 되어 있네요..

처음에 '서영아, 너 혼자 해봐~' 했더니 자신이 없나봐요.  '이모도 같이 해~~ ' 라는 걸 보니.

평소엔 '내가 내가! 내가 다 할꼬야!'하는 앤데요. ㅋ

일점 쇄선과 점선 접는 방향이 다른 거, 가르쳐줬는데 좀 헷갈리나봐요.  애가 자꾸 반대로 접어요.

풀칠해 붙이는 영역이 좁은 경우도 많고, 요거 제법 세밀한 작업을 요구하는군요.



 둘이서 이게 맞네 저게 맞네 다퉈가여 머리를 완성했어요!

내가 자꾸 그렇게 하는 거 아냐, 풀칠 잘 해, 반대로 접었잖아... 잔소리 해대서 표정이 살짝... ^^;

미취학 아동에겐 조금 어려운 게 아니었나 싶어요.

그래도 꼬리는 일곱살 꼬마 혼자서 다 붙였답니다.

귀도 크고, 꼬리도 긴 사막여우 완성!

귀는 열을 발산하는 역할을 하느라 크다는데 꼬리는 왜 긴 걸까?

사막여우에 대한 책을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 어리버리 작품 감상시 공통 주의사항 - 자세히 보면 안 돼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 읽는 CEO -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 읽는 CEO 8
김진애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런 책은 도시란 무엇인가로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러질 않아서 할 수 없이 혼자서 궁리해본다. 언젠가 '도시란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곳, 시골에 의지해서 존재하는 곳' 그런 정의도 들어본 것 같지만, 이 시점에 들이대기엔 어색한 것 같고...  

순전히 사람들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진 곳이라고 정의하면 이상할까.

물론 논밭이나 목장 등도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지만, 그 모습을 만드는 데는 사람의 의지나 계획 이상으로 자연의 힘이 많이 작용하니까...

바로 그 '사람의 의지'에 따라 도시가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형성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로 쿠리티바와 두바이를 들 수 있다.

저자는 쿠리티바와 두바이를 "지속 가능성"이라는 주제 하에 상반된 도시로 묶여 비교하고 있다. 

갑자기 세계의 이목을 끄는 초고층 건물들이 들어서고 화려하게 변신한 사막의 도시 두바이. 세계 자본과 세계 부자를 겨냥한 전략으로 성공을 꿈꾸는 곳이다. '환상의 도시, 최고의 창조력, 최고의 상상력'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도시지만 저자는 고개를 갸우뚱 한다.

야자수를 키우기 위해 거미줄 같은 수도관을 설치해 끊임없이 물을 공급하는 장면을 단적인 예로 들면서 이 도시가 과연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 지, 유령도시가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한다.

'보통 땅은 자칫 사막화해 버리지만 사막은 절대 보통 땅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두바이는 막대한 관리 비용을 계혹 투입하지 않는 한 유지될 수 없는 구조적 특성을 안고 있는 도시인 것이다.'

반면 쿠리티바는 가난 탈피, 경제생활 안정을 위한 정책 수립에 지속 가능한 환경 정책도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정책을 수립 할 때 그 안에서 생활하는 서민들을 중시한다. 서민들의 입장에서 교통계획을 수립하고 주택을 짓고 환경정책을 편다. 홍수 방지를 위해서는 토목사업을 피하고 자연습지에 가까운 호수와 도랑을 조성한다. (서울의 교통정책을 쿠리티바에서 따왔으니 4대강 정비사업도 부디 이쪽을 모방해주길...)

두 도시의 차이는 지속 가능성을 꿈꾸는가, 대박을 꿈꾸는가이다.

도시와 사회를 운영하려면 어느 쪽 모델을 따라야 할까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위에서 처럼 이 책은 한 가지 주제 하에 비슷한 도시, 혹은 상반되는 도시들을 묶어 비교하며 설명한다. 

파리와 런던의 구조를 질서라는 측면에서 비교하고, 중화권 도시의 모델로서 싱가포르, 홍콩, 상하이를 비교한다. 도시 전체를 파악해보자는 내용으로, 중심의 도외지에서부터 나이테처럼 커간  비엔나와 중심부에 녹지를 유지하고 주변부에 고르게 발달한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들을 비교한다.

한 순간의 재해로 사라진 도시- 폼페이와 짝 지워진 도시는 어디였을까? 근년 도시 전체가 물에 잠겼던 뉴올리언스였다. 

전자가 여기서 당부하는 내용은 

'부디 개인, 가족, 기업, 단체, 도시,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가상 위기'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위험에 대한 상상, 재난에 대한 상상, 재앙에 대한 상상은 우리의 근간을 튼튼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얼마전 읽은 단편집 (길이 상 콩뜨라고 해야하는 건가... 스와보미르 므로제크라는 첨 보는 작가의 '초보자의 삶')에 어떤유적이 발굴되는 장면이 나왔다. <캠코더를 들고 있는 모습 그대로 보존된 사람이 발견되고, 더 파보니 소니 카베라를 든 일본인이 발견되고, 더 발굴하니 커다란 카메라를 든 미국인이 발굴되고.... 발굴팀장이 이 사람들은 고대 유적지를 관광하다가 다시 화산에 파묻혔고 그 관광객 미라를 구경하던 이들이 또 파뭍혀 새로운 층을 형성한 거라고 설명하는 순간 조용하던 화산이 갑자기 폭발을 일으킨다.> 는 내용. 그땐 풋 웃고 넘긴 이야기였는데 폼페이와 뉴올리언스를 비교한 챕터를 읽고 나니 진지하게 와 닿는다.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 건물이 얼마나 멋있나, 거리가 어떻게 배열되었나가 아니고 인간의 의지와 사고방식이다. 사람에 의해 계획되고 사람에 의해 유지되고 사람들이 살며 운영하고 있는 곳이 도시이다. 자연의 경고를 얼마나 잘 듣는가, 위기에 어떤 식으로 사람들이 준비하는가, 서로 어떻게 소통하는가에 따라 살만한지, 지속될 수 있는지 결정되는 곳이 도시이다. 

이 한권의 도시 이야기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던 것은 그 안의 건물이나 거리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웃터넷
최민호 지음 / 따뜻한손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사람들간에 교감하고 소통하는 장치인 인터넷의 대척점을 생각하며 만든 단어 아웃터넷.

소설 속 발명품인 텔레스코프라를 이용하여 식물과 소통하는 시스템을 칭하는 것이다.

 

실제로 예전에 벡스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거짓말 탐지기를 식물에 연결하여 모니터에 나타나는 파장의 변동을 보며 그 것이 식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거라고 설명하여 인기를 끌었더랬다. 자신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나타나면 불안해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보이면 기뻐하고... 더 나아가선 자신을 돌봐주던 주인이 여행 중 위험한 상황이 되면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그걸 감지하고 불안한 파장을 나타낸다거나...

그런데 어느날, 식물을 태우는 등 위협적인 실험을 하던 사람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거지말 탐지기는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않는다. 벡스터는 식물이 겁에 질려 죽은 척 위장을 한 거라고 변명했던가... 뭐 그랬지만 그의 신뢰도는 바닥을 치게 되지...
그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뭐야, 완전 사기꾼이구만~'하면서 넘어갔는데, 그 책의 저자는 중립적으로 소개하면서도 뭔가 아쉬워하는 듯 보였었다. 식물을 오래 가까이하다보면 애완동물을 기를 때처럼 소통하고 사람보다 더 자신을 이해하는 듯 느끼게 되어 벡스터의 주장도 믿고 싶어져 그런 건지...

 

후르마쓰 부녀는 식물이 어쩌면 인간보다 고등한 사고를 하는 존재라 여기고 있고 어쩌면 벡스터의 뒤를 잇는 듯한 연구를 계속한다.  인간이 알아듣지 못할 뿐이지 식물을도 사고하며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식물의 감정을 인간의 언어로 변환하는 기계를 개발한다.

반면 막스 쉬뢰더 연구원의 소장 쉬뢰더 씨는 식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개발하고 이용할 대상으로 여기고 유전자 합성을 통한 품종 개발을 계속한다. 벡스터 실험실에 마지막에 등장해서 벡스터에게 사기꾼이란 낙인을 찍었던 그 남자 같은 존재랄까...  쉬뢰더 씨가 골몰하고 있는 것은 식물과 동물의 유전자를 결합한 꽃 튜라플라네스의 개발이었다.

그리고 그 두 식물관 사이에 젊은 주인공 마순원이 있다고 해야할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그 학생은 독자에게 설명을 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일 뿐 (그앤 식물 전공이 아니다보니 여기저기 가서 이런저런 설명을 듣게 된다) 그리 중요하지 않고, 제프가 그 중간에 존재하는 중요한 인물인 듯하다.

제프는 과학자이긴 하지만 개발보다 보전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산업적 이용보다 관찰과 분석 자체에서 의의를 찾는 젊은이이다.

여러차례 순원에게도 자연 앞에 오만하지 말것, 식물 등 다른 생명체를 함부로 다루다가는 오히려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랬던 그인데.. 어째서 막상 튜라플라네스가 완성되자 스스로 나서서 더욱 독성을 강화하는 실험을 제안하고 직접 수행하고 끝내 사람이 죽도록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 게다가 박사도 동의하고 함께 수행하던 실험이었는데 왜 끝끝내 그 실험 내용을 숨겼던 건지도.
저자는 어쩌면 문명을 이용하면서 환경보전을 외치는 서양식 환경주의자를 곱게보고싶어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얼핏 드네? 전통적 동양식 환경주의랄 수 있는 - 나무 신령을 숭배하는 모습 등은 곱게 봐주면서 말이다.

또 한가지 신경쓰이는 내용은 뜬금없이 등장한 사막 녹지화 계획. 꽃 하나 합성했다가 그 사단이 났는데 거대한 사막을 별 고민 없이 녹지로 만들겠다고 나서도 괜찮은 걸까.... 우려 된다.

텔레스코프를 연결해서 사막의 선인장이나 습지의 식물들 그리고 오래 살아온 나무 신령에게 부디 물어보고 착수하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담장 속의 과학 - 과학자의 눈으로 본 한국인의 의식주
이재열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과 속의 차이는?

국립국어원의 설명으론 속은 거죽 등으로 둘러싸인 안쪽, 내부이고, 안은 어떤 물체나 공간의 둘러싸인 가에서 안으로 향한 부분이라고 한다. 안의 반대말은 밖이고 속의 반대말은 겉이다.

예전에 본 어떤 책에선  원래 공간이 곽 차있어야 하는 건 '속', 비어 있어도 되는 건 '안'이란다. (단 100% 맞지는 않다고 함.)

사과 속에 씨가 있다고 하지, 사과 안에 씨가 있다고는 안 하는 건, 사과는 원래 속이 꽉 차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 책 제목을 봤을 때 담장의 재료 자체의 성질, 한옥재에 대한 과학적 분석일까, 싶었는데 그런 부분도 조금 있긴 하지만 주 내용은 한옥 담장 안쪽 공간에서 이루어지던 우리 선조들의 생활방식을 과학적으로 설명해보자는 시도였다.

 

1부는 주택에 관한 이야기, 2부는 먹을 거리 관련. 3부는 옷에 대한 이야기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현대 건축물들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한국적인 건축의 미를 살리고자 하는 건축가들이 본따오는 점이 바람이 통하는 집, 즉 바람이 자연스럽게 들어와 집안을 감아돌고 어울리다 나가는 것, 그리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그대로 집과 어루어지는 점 등이었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런 자연을 그대로 집 정원으로 삼은 조화와 대청마루의 시원함을 찬탄하고 그리워하며 글을 쓰고 있다. 그러고 집구조에 따른 바람에 더하여 집 재료가 쉬는 숨결 이야기도 살짝 들려준다.

벽의 재료로 대나무나 수숫대 같은 것을 발처럼 잘게 짜서 얽어맨 후 흙을 바르면  살갗처럼 숨을 쉰다. 공기를 머금었다 토해내면서 온도를 조절해준다는 점, 해충을 막아주고 물건이 부딪혀도 (콘크리트에 비해) 쉽게 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장점으로 들고 있다. 벽 뿐 아니라 창문이나 문에 쓰이던 창호지도 숨을 쉰다. 공기도 햇살도 집 안에 사는 이에게 알맞는 정도로 조절해 준다. 그리고 초가 지붕을 보면, 그냥 구하기 쉬워서 쓴 것이 아니라 단열효과도 뛰어나고 빗물도 잘 흘러내리게 할 수 있는 좋은 자재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냥 두면 날려가니까 서까래에 대나무를 잇대고 새끼줄을 걸어서 바둑판모양으로 눌어주었다는데, <아기 돼지 삼형제>의 돼지들은 그걸 몰랐던 모양이다. 지금 보니 짚으로 만든 집이 불안정하고 불량한 집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나쁜 동화였군!

기둥이나 서까래 재료로 주로 쓰던 소나무의 장점은 몇백년이 가도 멀쩡한 나무 속심, 뛰어난 신축성이다. 못을 박기 보다는 끼워맞추는데, 맞물린 채 서로 밀고 당기면서 건물은 튼튼해진다. 끼워맞췄기에 이동해서 다시 옮겨 짓기도 비교적 수월한 친환경적 건물이라고도 한다. 좀 다른얘기지만  그래서  일제시대에 건물 자체를 일본으로 훔쳐 옮겨갈 수 있었구나...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우리 먹을거리에의 최고봉은 아마도 김치일텐데, 조상들은 미생물이 뭔지 발효가 뭔지 알지 못했지만 절이고 익히고 오랫동안 보존해서 건강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을 줄 알았다. 그랬던 것을 세계시장 진출엔 일본에 선수를 빼앗겨 버리다니~~

그렇게 된 건 남들이 인정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우리 전통의 장점을 찾으려 들지 않았던 탓이 아닐까 싶다. 세계에서 기무치 좋아요~ 하니까 그제야 그거 원래 김치고, 원래 우리 거예요, 하고 목소리 높이는 식으로 늘 한두발 늦어서는 곤란하다.

입을거리로 저자가 강추하는 제품은 갈옷이다. 무명에 감으로 염색을 하면 질기면서 통기성 좋고 방부, 방습, 방온 효과도 뛰어나 일옷으로 적당하다. 여름에 덥고 비맞으면 무겁고 겨울엔 추운 청바지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여기서도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 것이고 좋으니까 입어~ 가 아니라 패셔너블하게 만들어 소비자를 끌어당기려는 노력을 얼마만큼 하고 있는가 이다. 지금으로선 갈옷하면 떠오르는 색깔이며 스타일이, 그걸 어떻게 입고 다닌담, 싶으니까 말이다. 

의식주를 둘러싼 우리 고유 문화를 어떻게 계승해나갈 것인지 생각해 볼 때이다. 무조건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물론 옛것따윈 내팽개쳐두고 새것만 좇겠다고 하는 건 더더욱 아니고. 지금이 바로 이 책의 다음 문장을 기억해야 할 때이다.

 

구식이라고만 생각하고 돌보지 않는 사이에 우리만이 고유한 전통문화는 그 맥이 끊어지고 점차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면서 결국에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문화도 생명력이 있기게 한번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을 때에 북돋아주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빠 어디 가?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 

오른쪽 아이는 형인 마튜. 왼쪽 아이는 토마, 동생이다.

우는 모습이지만, 아유 귀여워. 사탕이라도 하나 주면서 울지마~ 달래주고 안아주고 싶어지는데...

아이들의 아빠는 이 그림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 

시니컬하게 '너무 미화해서 그렸군요~' 라고 할지,

우울한 표정으로 '저렇게 제발로 꼿꼿하게 서있기만 해도 얼마나 좋을까' 라고 할지.... 

날때부터 비정상이었던 두 아이는 사람들에게 귀엽다는 얘길 그닥 들어보지 못했다.

근육이 점점 무력해되어서 고개가 점점 숙여지고 제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한다. 의학용 코르셋에 갖혀있어야만 땅바닥만 보지 않을 수 있단다.

그의 표현을 따르면 그애들 머릿속엔 지푸라기만 들어있어서 말을 알아듣고 똘똘하게 행동하지도 못하고 단조로운 자신만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는 그런 아이를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둔 부모다운 우울한 톤으로만 글을 쓰고 있지는 않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복잡한 곳에 갔다가 아이들을 찾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기적이 아닐까.... 하는 은밀한 생각도 하고,

사실은 얘들이 천재인데 사람들의 관심이 귀찮아서 남들이 볼 때는 말을 못하는 척 하는 건 아닐까....하는 꿈같은 생각도 한다.

또 정상인 아이들의 이쁜짓을 자랑하는 부모들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어떤 때는 왜 너희는 다른 애들처럼 못하니, 싶다가도

어떤 때는 내가 뭘 잘못해서 애들이 저렇게 태어났을가 자책하다가

저 애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세상에 나오게 하다니 못할 짓을 했구나 싶었다가

그래도 저 애들도 살아서 좋았던 순간이 있었을거야, 오리인형, 햇살, 맛있는 감자튀김이 있어서 행복했다고 할지도 몰라....라고 혼자서 위로하기도 한다.

장애아들의 아버지가 된 지 십 년이 넘었지만 저자는 아직도 갈팡질팡인 모양이다.

그래, 다른 부모들도 평생 한결같이 같은 마음만으로 자식을 대하는 건 아닐테니까....

 

아이가 생기면 부모들은 뭘 기대하게 될까?

내가 아는 어떤 사람(男)은 여자들이 딸을 원한다고 말하면 <인형처럼 예쁘게 입히고 꾸미고 싶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라며 못마땅하게 여기곤 했다.  그건 쫌 아닌 듯... 여자 입장에선 딸과는 아들보다 더 많이 공감하고, 소통하고, 함께 느낄 수 있으니란 기대감이 크기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이 책에서 저자는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경치가 좋은 곳을 지날 때면

"얘들아 밖을 봐. 너무 아름답지?"라고 하고 함께 경치를 감상하고 싶은데 현실의 아이들은 뒷좌석에서 아빠어디가?만 되뇌이고 있다.

아이들에게 레코드를 사주고 같이 음악을 듣고 싶었고 자신이 재미있게 보았던 책도 선물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책은 사준 일이 없다. 그 아이들을 읽지 못하니까. TV조차 보지 않는 아이들인 걸....

이 책은 읽을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주는 아버지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이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자, 너희에 대한 아빠의 생각은 여기 다 써놨어. 아무 것도 숨기지 않고 미화하지 않고 속내를 그대로 썼단다. 이젠 너희 차례야.

토마야 말해봐. 넌, 내 아이로 태어나서 행복하니? 네 생각을 들려주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