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속의 과학 - 과학자의 눈으로 본 한국인의 의식주
이재열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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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속의 차이는?

국립국어원의 설명으론 속은 거죽 등으로 둘러싸인 안쪽, 내부이고, 안은 어떤 물체나 공간의 둘러싸인 가에서 안으로 향한 부분이라고 한다. 안의 반대말은 밖이고 속의 반대말은 겉이다.

예전에 본 어떤 책에선  원래 공간이 곽 차있어야 하는 건 '속', 비어 있어도 되는 건 '안'이란다. (단 100% 맞지는 않다고 함.)

사과 속에 씨가 있다고 하지, 사과 안에 씨가 있다고는 안 하는 건, 사과는 원래 속이 꽉 차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 책 제목을 봤을 때 담장의 재료 자체의 성질, 한옥재에 대한 과학적 분석일까, 싶었는데 그런 부분도 조금 있긴 하지만 주 내용은 한옥 담장 안쪽 공간에서 이루어지던 우리 선조들의 생활방식을 과학적으로 설명해보자는 시도였다.

 

1부는 주택에 관한 이야기, 2부는 먹을 거리 관련. 3부는 옷에 대한 이야기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현대 건축물들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한국적인 건축의 미를 살리고자 하는 건축가들이 본따오는 점이 바람이 통하는 집, 즉 바람이 자연스럽게 들어와 집안을 감아돌고 어울리다 나가는 것, 그리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그대로 집과 어루어지는 점 등이었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런 자연을 그대로 집 정원으로 삼은 조화와 대청마루의 시원함을 찬탄하고 그리워하며 글을 쓰고 있다. 그러고 집구조에 따른 바람에 더하여 집 재료가 쉬는 숨결 이야기도 살짝 들려준다.

벽의 재료로 대나무나 수숫대 같은 것을 발처럼 잘게 짜서 얽어맨 후 흙을 바르면  살갗처럼 숨을 쉰다. 공기를 머금었다 토해내면서 온도를 조절해준다는 점, 해충을 막아주고 물건이 부딪혀도 (콘크리트에 비해) 쉽게 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장점으로 들고 있다. 벽 뿐 아니라 창문이나 문에 쓰이던 창호지도 숨을 쉰다. 공기도 햇살도 집 안에 사는 이에게 알맞는 정도로 조절해 준다. 그리고 초가 지붕을 보면, 그냥 구하기 쉬워서 쓴 것이 아니라 단열효과도 뛰어나고 빗물도 잘 흘러내리게 할 수 있는 좋은 자재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냥 두면 날려가니까 서까래에 대나무를 잇대고 새끼줄을 걸어서 바둑판모양으로 눌어주었다는데, <아기 돼지 삼형제>의 돼지들은 그걸 몰랐던 모양이다. 지금 보니 짚으로 만든 집이 불안정하고 불량한 집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나쁜 동화였군!

기둥이나 서까래 재료로 주로 쓰던 소나무의 장점은 몇백년이 가도 멀쩡한 나무 속심, 뛰어난 신축성이다. 못을 박기 보다는 끼워맞추는데, 맞물린 채 서로 밀고 당기면서 건물은 튼튼해진다. 끼워맞췄기에 이동해서 다시 옮겨 짓기도 비교적 수월한 친환경적 건물이라고도 한다. 좀 다른얘기지만  그래서  일제시대에 건물 자체를 일본으로 훔쳐 옮겨갈 수 있었구나...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우리 먹을거리에의 최고봉은 아마도 김치일텐데, 조상들은 미생물이 뭔지 발효가 뭔지 알지 못했지만 절이고 익히고 오랫동안 보존해서 건강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을 줄 알았다. 그랬던 것을 세계시장 진출엔 일본에 선수를 빼앗겨 버리다니~~

그렇게 된 건 남들이 인정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우리 전통의 장점을 찾으려 들지 않았던 탓이 아닐까 싶다. 세계에서 기무치 좋아요~ 하니까 그제야 그거 원래 김치고, 원래 우리 거예요, 하고 목소리 높이는 식으로 늘 한두발 늦어서는 곤란하다.

입을거리로 저자가 강추하는 제품은 갈옷이다. 무명에 감으로 염색을 하면 질기면서 통기성 좋고 방부, 방습, 방온 효과도 뛰어나 일옷으로 적당하다. 여름에 덥고 비맞으면 무겁고 겨울엔 추운 청바지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여기서도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 것이고 좋으니까 입어~ 가 아니라 패셔너블하게 만들어 소비자를 끌어당기려는 노력을 얼마만큼 하고 있는가 이다. 지금으로선 갈옷하면 떠오르는 색깔이며 스타일이, 그걸 어떻게 입고 다닌담, 싶으니까 말이다. 

의식주를 둘러싼 우리 고유 문화를 어떻게 계승해나갈 것인지 생각해 볼 때이다. 무조건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물론 옛것따윈 내팽개쳐두고 새것만 좇겠다고 하는 건 더더욱 아니고. 지금이 바로 이 책의 다음 문장을 기억해야 할 때이다.

 

구식이라고만 생각하고 돌보지 않는 사이에 우리만이 고유한 전통문화는 그 맥이 끊어지고 점차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면서 결국에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문화도 생명력이 있기게 한번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을 때에 북돋아주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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