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지도 - 대규모 전염병의 도전과 현대 도시문명의 미래
스티븐 존슨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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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소개>

존 스노 : 의사. 자수성가형 인물로서 마구잡이로 투여되던 마취를 정량화하여 명성을 얻었다. 콜레라가 번지자 당시의  주류 이론인 독기설에 의문을 품고 조사를 벌인 끝에 수인성 질병임을 밝혀낸다.

 

헨리 화이트헤드 : 콜레라가 창궐한 보르도 지역의 교구 목사. 처음에는 주류 독기설과 스노의 수인성설 모두에 반대했으나 여러 정황 증거가 스노의 설을 지지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평소 쌓은 지역주민과의 유대관계와 해당 지역에 대한 토박이 지식을 활용하여 결정적 증거를 수집, 제공하는 도움을 준다.

 

인문과학서지만 마치 소설처럼 묘사되어, 감염지도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이해할 수 있다. 위의 두 주인공에 공감하여 함께 마음 졸이거나 기뻐하면서. 

 

"자네하고 나는 그런 날(그들의 조사 결과가 모두에게 인정 받는 날)을 보기 전에 죽겠지. 그런 날이 와도 내 이름은 완전히 잊혀졌을 걸세. 하지만 대규모 콜레라 발생이 까마득한 과거의 일로만 여겨지는 그런 날은 반드시 올 거라네. 그리고 질병의 전파 방식을 파악하는 것이 바로 질병 박멸의 수단이 될 것이네."

존 스노가 화이트헤드에게 한 말인데, 이 말이 얼마나 슬프게 느껴지던지. 정말 완전 감정이입을 했던 모양이다. 화이트헤드는 장수한 덕에 죽기 전에 공로도 인정받고 훗날 다시 콜레라가 창궐하자 고문역을 하게 되지만, 스노는 요절한 탓에 수인성 이론이 인정받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요절의 이유가 마취제를 연구할 때 스스로에게 생체실험을 했던 때문으로 보인다니, 더 슬퍼. ㅜ.ㅜ

 

1800년대 중반 영국에서는 (아마 서구 전체가 그랬을 것) 독기가 질병을 옮긴다는 확신이 주류 이론이었다. 환자가 발생하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독기를 차단하는 일이었다. '독기'를 확인하는 지표는 '악취'였다. 일상적으로 가장 악취를 내는 것은 물론 '똥'이다. 아, 책 첫장부터 분뇨처리인, 똥 치우는 얘기가 막~ 나와서 '으, 밥맛 떨어져!'라고 느(꼈....으나 실제로 밥맛은 떨어지지 않았지만)끼며 읽기 시작했다.

적당히 구덩이를 파고, 또는 커다란 지하실에 모아뒀던 똥을 분뇨처리자를 불러 퍼내는 식이었는데 도시가 거대해지고 밀도가 높아진 데다 독기론 신봉자가 도시 정책을 맡으면서 분뇨를 포함한 하수를 템스강으로 흘려보내는 시스템을 만든다. 차라리 분뇨만 따로 모아뒀다 퍼가는 예전 방식이 나았으려나. 결과적으로 보면 완벽하지 못한 하수시스템에 흘러들어간 감염자의 분뇨는 그 지역에서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우물에 스며들었고 그 탓에 맛좋은(!) 물을 마신 이들을 집단 감염시키는 지경에 이른다.

지금 우리 생각으로는 몇 가지 데이터만 보여주면 아, 오염된 물이 원인이었구나, 끄덕일 것 같지만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설명하듯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두 사람이 아무리 확실한 사례를 모아도 그러니까 '독기론'이라며 무시당하고 만다.  이를테면 공기가 맑은 곳에 사는 부인이 그 물을 공수받아 마시고 콜레라에 걸린 사례가 있는데, 정책담당자들은 공중에 떠도는 독기가 너무 강력해서 깨끗한 물까지 더럽혔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인과관계와 질병의 전파 경로를 한 눈에 보여주기 위해 고안한 것이 바로 책 제목이기도 한 '감염지도'이다. 거리의 지도에 우물 위치를 표시하고 감염자 발생 수치를 표시한 지도.

 

자, 지도가 완성되어 - 아직 몇몇 고집쟁이들은 똥고집을 부리지만 - 대부분은 수긍하게 되어  대단원의 막을 내리리라, 아니면 과학의 방법이나 전염병의 발생과 진화에 대한 고찰이 이어지리라 생각하는 순간 이 책은 저자의 독특한 관점에서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첫 째는 두 주인공이 이 분야에서 아마추어 토박이였다는 점. 스노는 사실 의사기는 했지만 전염병 전문은 아니었고 화이트헤드는 더더욱 문외한이었다. 저자는 그들의 끈기도 중요하지만 토박이였다는 점도 높이 산다. 외부에서 잠시 들러 조사하는 타지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던 현실을 느낄 수 있던 것이다. 이 관점은 현대 도시의 정보망은 토박이 아마추어들이 멋지게 구축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다른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할 때 시너지효과도 고려했을 때 전문가들이 아마추어의 말에 귀를 귀울여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얘기다.

둘째는 도시 자체에 대한 고찰. 멀리 떨어져 사는 것보다 오밀조밀 모여사는 편이 생태발자국이 작다나. 이 얘기엔 아무래도 끄덕여지지가 않네.  아무튼 150년 전보다 훨씬 밀도가 높아진 도시가 품고 있는 여전한 위험과 새로 등장한 위험 요소를 생각해본다. 여전한 위험이란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전염병이다. 다음 요인은 도시 문명 자체를 이용한 테러. 911테러를 도시 문명 자체를 이용한 고효율(!) 테러로 볼 수 있다. 과밀하게 사람들을 집중시키는 고층 빌딩, 문명의 작품 비행기가 없었으면 그만큼 효과적이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스노의 지도 덕에 여전한 위험인 조류독감은 미리 예방책을 내놓을 수 있지만 다른 위험인 도시 문명 자체를 이용한 테러에는 속수무책이다. 다른 지도들과 달리 테러위험 지도는 그려두어도 소용에 닿지 않는다.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은 인간의 예측을 비웃는 독창적(!) 문제를 낳는 법. 더불어, 생산도 폐기물 처리도 도시 내에서 해결할 줄 모르는 거대도시의 생태발자국 계산도 다시 제대로 해봐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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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전 한국을 걷다 - 을사조약 전야 대한제국 여행기
아손 그렙스트 지음, 김상열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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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스웨덴은 우리와 그닥 가깝지 않은 나라인데, 100년 전에 이 땅을 걷고 보고 듣고 체험기를 남긴 스웨덴 인이 있었다고 한다.

을사늑약을 앞둔 겨울, 아손이라는 스웨덴 기자는 도쿄에서 지루해하고 있었다. 그는 전쟁의 모습을 취재하고 싶어서 동아시아까지 온 거지 평온한 도쿄에서 지내기 위해 온 게 아니었다. 일본 관리들은 웃는 낯으로 꾸벅이고 애매한 약속의 말을 남겼다. 하지만 서양 기자들이 실제로 전장을 볼 기회는 결코 주어지지 않을 상황이었다.

아손은 속임수를 쓰기로 한다. 장사치로 신분을 위조하는 것이다. 그 계획은 제대로 통해서 그는 드디어 조선땅에 상륙하게 된다. 연말 즈음 도착해 한 달 남짓, 몹시 추운 서울에서 그는 참 많이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기록으로 남긴다. 왕실 장례식도 보고, 감옥도 구경가고, 강화도에 가서 전등사 주지도 만나보고.  

100년 전 작은 동양나라의 낯선 문화에 대한 소중한 기록이자,  우리 입장에서도 그 당시에 대한 많지 않은 민간의 기록이기도 하다. 잠시 후면 일본에 먹혀버릴 것이 명백한 나라를 딱하게 바라본 씁쓸한 여행기이다. 아손의 문체에 순간순간 유머와 재기가 흐르지만...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은 서양 기술을 받아들이고 부지런히 조선을 삼킬 준비를 하는 일본에 비해 너무나 낙후되었고 사람들은 게으르기만 한 곳이었다. 준비 없이 근거없는 낙관적 태도만 보이는 민족으로 비춰진다. 조선 사람들은 일하기를 너무 싫어한다는 일본 사람들이 평이 과연 틀리지 않더라는 듯한 묘사에 나, 이거 창피해해야 하나 갈등하다 가냘프게 반론을 해본다. 겨울이니까 그렇지이~ 하고.

겨울의 우리의 대표적 문물로 떠올릴 수 있는 온돌은 영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코레아 사람들은 밤이면 방에서 빵처럼 구워진다나. 빵이든 핫케이크든, 온돌에 구워지는 거 기분 좋은데 이 아저씨 그 맛을 모르시네... 쩝.

미신도 엄청나게 믿고 맨날 귀신을 무서워하고, 병에 걸리면 무당에게 의존하거나 엉터리 의학에 매달려 어이없는 처방 끝에 죽게 되고. 부정적 묘사도 꽤나 많다.

그런데 미신과 원혼을 두려워하는 건 일본도 만만치않았을 텐데.... 일본에선 서민들을 못 만나고 식자들의 얘기만 들었던 거 아냐?

어쨌거나 이 책에서 또 중요한 부분은 조선인들을 학대하는 일본에 대한 증언이다. 그리고 그런 일본의 속내를 간파하고 미워하면서도 힘없이 당하는 가련한 모습도 묘사하고 있다.  

일본이 자기네를 따라잡으려는 꼴이 보기싫었던지, 원래부터 일본에 좋은 인상은 아니었던 듯 한데 막상 조선 땅에 와보니 상상을 초월하더라는 말이지. 일인들은 조선인을 노예나 짐승처럼 다룬다고 하며 아손은 몹시 분개한다. 그러나.... 자기가 아무리 흥분한다고 해도 양자의 주종관계(?)는 더욱 심화되고 조만간 이 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지리라고 생각했던 듯도 보인다.

저자가 쓴 부분의 뒤를 이어서 한 마디 보태면, 일단은 당신의 예상대로 진행되었지만

종국에는 우린 살아남았다오~

우리 힘으로 독립을 한 게 아니라 국제 정세에 의해 어쩌다보니 광복이 주어졌니 뭐니 하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얼마나 터무니없는 체급 차이가 있었는지 상세히 보고 나니..... '버티느라 애들 많이 쓰셨어요, 어르신들'이라고 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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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거나 멍청하거나 천재이거나 - 꼬마 올리버의 과학 성장기
올리버 색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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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이 넘은 저자에게 어느 날 소포가 도착한다. 

소포 안에는 화학학용품 카탈로그와 주기율표, 그리고 묵직한 텅스텐 막대가 들어있었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텅스텐 막대는 어린 시절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향기로운 과자도 아니고 단단한 텅스텐이 어떻게! 싶지만 말이다.

텅스텐은 올리버 색스에게 화학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주고 각종 장비를 제공하던 일명 텅스텐 삼촌 덕에 가장 좋아하는 금속이었다.

지금은 신경생리학자로 환자를 세심하게 살피는 의사로, 그리고 따뜻한 글로 알려진, 내겐 처음 접했을 때부터 할아버지였던 저자는 수십 년 전에는 화학에 푹 빠진 소년이었다.

주기율표의 매력에 푸욱 빠진 소년을 보며 아픔 속에 주기율표를 암기하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 화학 선생님은 일단 수업에 들어오면 한 학생을 지명해서 일으켜세우곤 '3족 읊어봐.' '칼슘 원소번호, 원자량은?' 등등.... 문제를 냈고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 볼따구를 '아프게' 잡아당겼다. 몇 명을 그렇게 괴롭힌 후에야 화학 수업은 시작되었고 화학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행복감을 느낄 구석도 (수험 과목에서 그럴 걸 느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저자가 화학물질, 금속을 알아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행복한 앎의 과정이었다. "난 금속을 너무 사랑해. 금속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는 느낌. 촉감과 무게를 느끼고 냄새를 맡고, 이 녀석이 어떤 물질과 친하고 어떤 물질과 사이가 나쁜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걸 암만 자세히 말해도 읽는 나는 '뭐야~' 싶었지만 느낌만은 전해졌다.

당시는 놀라운 화학적 발견이 계속 이루어지고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학설이 지위를 차지하던 시절이었다. 소년 올리버는 새로운 물질이 발견될때마다 환호하고 텅스텐 삼촌 등을 통해 자료와 재료를 구해 지식욕을 채운다. 특히 주기율표가 그 틀을 갖추고 화학 물질의 체계가 정리되었다고 느꼈을 때는 어찌나 좋아하던지,,,,, 원.....

열정이 사그라진 때는 아마도 양자역학이 등장하고 나서인 것 같다. 수학처럼 확실한 규칙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직접 만져보고 느낄 수 있는 단단한 세계라고 생각했던 화학이 양자론의 불확실성에 의해 훼손되었다고 느낀 모양이다. 혹시 너무 늦게 태어나서 화학자가 되지 못했다고 생각했을까?

독자 입장에서는 조금 늦게 태어난 덕에 화학은 어린 시절의 즐거움으로 간직하고 커서는 의학계의 음유시인이 되었다고 기뻐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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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워크
E. F. 슈마허 지음, 박혜영 옮김 / 느린걸음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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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에서는 이 책을 '거대한 현대 산업사회의 악을 드러내는 문명비판서'라고 압축한다. 

거대 산업이란 물건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공정은 더없이 복잡하게 만드는 한편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작업은 단순하고 가치없게 만들어버리는 죄악을 저지르는 존재라고 비판한다는 것이다.

비판서라고 하면 히스테릭하게 날을 세우고 당신들 이것도 틀려먹었고 저 행동도 잘못됐어. 이런 일을 하니까 지구가 망가지지! 당장 그런 짓은 그만 둬!하고 다그치는 많은 책들이 생각난다. 컴퓨터 한 대 만드는 데, 싸구려 티셔츠 한 장 만드는 데 탄소발자국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봐, 라고. 거대한 공장에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재료를 끌어모아 제품을 만들고 다시 전 세계에 유통시킬 때 얼마나 많은 연료가 허비되고 지구 환경을 망가뜨리는지 열변을 토하는 책들. 솔직히 그런 책을 읽을 때면 저자가 전투적으로 열을 낼때마다 왠지 불편한 느낌이 들곤 했다. 

반면 이 책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생각이 없는 생산과 소비가 나쁜 점을 강조하기 보다는, 약간 경제성은 떨어지지만 지역에서 소규모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작업이 완결될 때 만들어지는 좋은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드는 좋은 작업을 강조한다.

화를 내고 열변을 토하기 보다는 "자 들어봐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다 싶지 않나요 여러분?" 하고 말을 거는 쪽을 택한다.

이를테면....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보니 과자를 잔뜩 실은 A사 트럭이 A지역에서 B지역으로 달리고 있다.  반대로 B사의 트럭이 B지역에서 A지역을 향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그들은 결론을 내린다.

아, 지구의 과자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맛있어지는구나~

그 차들이 그렇게 서로 반대편으로 달려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대한 공장이 만들어지는 배경이다. 100개를 만들 때보다 200개를 만들 때 개당 비용이 더 줄어드는데 A지역의 수요는 100개가 안 된다. 그러니 B지역까지 시장으로 삼아야만 '경제적'인 사업이 된다. B지역에 있는 B사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많이 생산해서 넓은 지역에서 판매하는 전략을 택한다. 각각의 회사 입장에서 보면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이지만 지구 규모에서 바라보면 무의미하게 왔다갔다 하는 모양새가 된다.

자 이정도 예화면 현재의 글로벌 기업에서 어떤 점이 문제라는 건지 쉽게 이해가 된다.

이 책 전체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 규모의 경제를 지향하여 작은 사업을 무시하고 지역사회 단위의 경제활동은 사그라지는 상황이다. 예전에는 아이디어와 의욕이 있으면 필요한 물건을 만들고 사업화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처음부터 자본을 갖추고 대규모로 시작하지 않으면 경쟁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이 팽배한 사회가 되었다.

슈마허씨는 크지 않은 지역 단위에서 지역내 생산과 유통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지지한다. 그래서 그는 중간기술을 제안한다. 거대기업, 거대 산업이 아닌 중간기술, 작은 산업. 지역 규모에 맞으며 사용하기 쉬우며 생태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산업.

예를 들면 트랙터를 이용할 정도의 대규모 농장이 아닌 자그마한 농지에서, 옛날처럼 사람이 소를 끌고 경작하는 단계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트렉터와 소의 중간쯤 되는 간단한 농기계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외계인 이야기 빼고는) 그냥 탁상공론이 아니라 슈마허 씨가 직접 발로 뛰고 작은 동네에서, 자본이 부족한 가난한 나라에서 실제로 만들고 실행한 경험담이다. 

기술에 종속당하지 않고 적당히 이용하여 좋은 노동을 하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꿈이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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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 구효서 장편소설
구효서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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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타로는 친구의 강권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은폐되고 폐기되는 문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 중 하나인 윤동주에 얽힌 원고를 찾아 먼 길을 떠나기에 이른다.

그 원고에는 반항심 가득한 소녀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보고 들은 과묵한 청년 윤동주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윤동주가 처음에 우리글로 썼다가 경찰의 강압으로 직접 일본어로 옮긴 번역본 시가 있었다.

 

사실 이 책에는 화자가 둘이다. 겐타로가 원고를 찾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그 원고에서는 요코라는 소녀가 자신의 이야기와 동주의 이야기를 나란히 풀어가고 있다.

요코는 아이누(홋카이도에 사는 소수민족)인데 그 사실을 모른 채 나가사키에서 학대당하며 살던 소녀. 가출해 도착한 교토에서 동주를 알게 된 것이다. 

겐타로는 재일조선인인데, 자이니치인게 내 인생이란 무슨 상관? 이라는 태도로 살던 청년.

즉, 세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해서 진행되는데 그들 셋의 공통점은 모국어의 상실을 겪었다는 점이다.

겐타로가 좇는 원고뭉치는 저항시인이라는 별칭에서 저항이 아닌 시인에 방점을 찍고 아파하는 윤동주의 교토시절을 돌아보게 하는 기록이었다. 그에게 시란 어떤 의미였는지, 우리말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지, 간도에서는 어떤 상실을 겪었는지를 알게 된 후 겐타로와 요코는 달라진다. 

 

경향신문에는 요즘 고은 시인 인터뷰가 실리고 있는데 마침 이번 토요일자에는 일제의 한국어 말살 정책 이야기가 등장했다. 식민통치 후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조선어 말살정책을 펼치기로 한 일제는 조선인 스스로 제 말을 없애달라는 호소문을 제출하게 했단다.

그리하여 친일 작가들은 이런 청원을 낸다.

'총독각하! 내선일체 동조동근 그리고 대동아공영을 위하여 낡은 조선어를 폐지하고 문명의 국어시대를 열어주소서' 운운~~

그러면서 인터뷰 기사에서는 호주 작가 데이비드 말로프의 말을 들려주는데 당시 윤동주의 심정이 이렇지 않았을까?

"내 모어가 더 이상 사람들의 입속에서 살아있지 않다는 생각을 할 때 나 자신의 죽음보다도 더 깊은 전율이 나를 휩쓸고 지나간다. 내 종족의 죽음을 모두 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늘 조용하고 과묵하던 윤동주가 한 번 핏대를 세우는 장면이 있다. 거기에서 윤동주는 이렇게 열변을 토한다.

"이제는 조선의 말까지 빼앗아 머리도 가슴도 모두 일본제국의 사악한 본성에 부복하도록 만들자는 거 아닌가. 대포나 총칼보다 무서운 게 너희들의 국어라는 무기야.

말이 같아야 한다고? 같아지는 게 아니라 빼앗기는 거지. 말을 빼앗기면 다 빼앗기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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