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거나 멍청하거나 천재이거나 - 꼬마 올리버의 과학 성장기
올리버 색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예순이 넘은 저자에게 어느 날 소포가 도착한다. 

소포 안에는 화학학용품 카탈로그와 주기율표, 그리고 묵직한 텅스텐 막대가 들어있었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텅스텐 막대는 어린 시절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향기로운 과자도 아니고 단단한 텅스텐이 어떻게! 싶지만 말이다.

텅스텐은 올리버 색스에게 화학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주고 각종 장비를 제공하던 일명 텅스텐 삼촌 덕에 가장 좋아하는 금속이었다.

지금은 신경생리학자로 환자를 세심하게 살피는 의사로, 그리고 따뜻한 글로 알려진, 내겐 처음 접했을 때부터 할아버지였던 저자는 수십 년 전에는 화학에 푹 빠진 소년이었다.

주기율표의 매력에 푸욱 빠진 소년을 보며 아픔 속에 주기율표를 암기하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 화학 선생님은 일단 수업에 들어오면 한 학생을 지명해서 일으켜세우곤 '3족 읊어봐.' '칼슘 원소번호, 원자량은?' 등등.... 문제를 냈고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 볼따구를 '아프게' 잡아당겼다. 몇 명을 그렇게 괴롭힌 후에야 화학 수업은 시작되었고 화학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행복감을 느낄 구석도 (수험 과목에서 그럴 걸 느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저자가 화학물질, 금속을 알아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행복한 앎의 과정이었다. "난 금속을 너무 사랑해. 금속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는 느낌. 촉감과 무게를 느끼고 냄새를 맡고, 이 녀석이 어떤 물질과 친하고 어떤 물질과 사이가 나쁜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걸 암만 자세히 말해도 읽는 나는 '뭐야~' 싶었지만 느낌만은 전해졌다.

당시는 놀라운 화학적 발견이 계속 이루어지고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학설이 지위를 차지하던 시절이었다. 소년 올리버는 새로운 물질이 발견될때마다 환호하고 텅스텐 삼촌 등을 통해 자료와 재료를 구해 지식욕을 채운다. 특히 주기율표가 그 틀을 갖추고 화학 물질의 체계가 정리되었다고 느꼈을 때는 어찌나 좋아하던지,,,,, 원.....

열정이 사그라진 때는 아마도 양자역학이 등장하고 나서인 것 같다. 수학처럼 확실한 규칙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직접 만져보고 느낄 수 있는 단단한 세계라고 생각했던 화학이 양자론의 불확실성에 의해 훼손되었다고 느낀 모양이다. 혹시 너무 늦게 태어나서 화학자가 되지 못했다고 생각했을까?

독자 입장에서는 조금 늦게 태어난 덕에 화학은 어린 시절의 즐거움으로 간직하고 커서는 의학계의 음유시인이 되었다고 기뻐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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