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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워크
E. F. 슈마허 지음, 박혜영 옮김 / 느린걸음 / 2011년 10월
평점 :
책 소개에서는 이 책을 '거대한 현대 산업사회의 악을 드러내는 문명비판서'라고 압축한다.
거대 산업이란 물건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공정은 더없이 복잡하게 만드는 한편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작업은 단순하고 가치없게 만들어버리는 죄악을 저지르는 존재라고 비판한다는 것이다.
비판서라고 하면 히스테릭하게 날을 세우고 당신들 이것도 틀려먹었고 저 행동도 잘못됐어. 이런 일을 하니까 지구가 망가지지! 당장 그런 짓은 그만 둬!하고 다그치는 많은 책들이 생각난다. 컴퓨터 한 대 만드는 데, 싸구려 티셔츠 한 장 만드는 데 탄소발자국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봐, 라고. 거대한 공장에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재료를 끌어모아 제품을 만들고 다시 전 세계에 유통시킬 때 얼마나 많은 연료가 허비되고 지구 환경을 망가뜨리는지 열변을 토하는 책들. 솔직히 그런 책을 읽을 때면 저자가 전투적으로 열을 낼때마다 왠지 불편한 느낌이 들곤 했다.
반면 이 책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생각이 없는 생산과 소비가 나쁜 점을 강조하기 보다는, 약간 경제성은 떨어지지만 지역에서 소규모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작업이 완결될 때 만들어지는 좋은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드는 좋은 작업을 강조한다.
화를 내고 열변을 토하기 보다는 "자 들어봐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다 싶지 않나요 여러분?" 하고 말을 거는 쪽을 택한다.
이를테면....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보니 과자를 잔뜩 실은 A사 트럭이 A지역에서 B지역으로 달리고 있다. 반대로 B사의 트럭이 B지역에서 A지역을 향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그들은 결론을 내린다.
아, 지구의 과자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맛있어지는구나~
그 차들이 그렇게 서로 반대편으로 달려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대한 공장이 만들어지는 배경이다. 100개를 만들 때보다 200개를 만들 때 개당 비용이 더 줄어드는데 A지역의 수요는 100개가 안 된다. 그러니 B지역까지 시장으로 삼아야만 '경제적'인 사업이 된다. B지역에 있는 B사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많이 생산해서 넓은 지역에서 판매하는 전략을 택한다. 각각의 회사 입장에서 보면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이지만 지구 규모에서 바라보면 무의미하게 왔다갔다 하는 모양새가 된다.
자 이정도 예화면 현재의 글로벌 기업에서 어떤 점이 문제라는 건지 쉽게 이해가 된다.
이 책 전체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 규모의 경제를 지향하여 작은 사업을 무시하고 지역사회 단위의 경제활동은 사그라지는 상황이다. 예전에는 아이디어와 의욕이 있으면 필요한 물건을 만들고 사업화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처음부터 자본을 갖추고 대규모로 시작하지 않으면 경쟁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이 팽배한 사회가 되었다.
슈마허씨는 크지 않은 지역 단위에서 지역내 생산과 유통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지지한다. 그래서 그는 중간기술을 제안한다. 거대기업, 거대 산업이 아닌 중간기술, 작은 산업. 지역 규모에 맞으며 사용하기 쉬우며 생태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산업.
예를 들면 트랙터를 이용할 정도의 대규모 농장이 아닌 자그마한 농지에서, 옛날처럼 사람이 소를 끌고 경작하는 단계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트렉터와 소의 중간쯤 되는 간단한 농기계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외계인 이야기 빼고는) 그냥 탁상공론이 아니라 슈마허 씨가 직접 발로 뛰고 작은 동네에서, 자본이 부족한 가난한 나라에서 실제로 만들고 실행한 경험담이다.
기술에 종속당하지 않고 적당히 이용하여 좋은 노동을 하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꿈이 담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