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다우어 드라이스마 지음, 김승욱 옮김 / 에코리브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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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최초의 기억

당신은 어떤 게 첫번째 기억인가?
난 어느날 낮잠에서 깨어보니 엄마가 없어서 마루로 나와(기어나왔는지 걸어나왔는지는 모르는데 기어다닐 정도로 어릴 때는 아닌 것 같다... ) 엉엉 울던 기억. 넓게만 느껴지던 집안은 굉장히 조용하고 환했다.
첫 기억에는 불안, 공포 그런 게 많다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 건 가짜 기억도 있을 수 있다는 것. 피아제의 경우 최초의 기억이 유괴당할 뻔 했는데 유모가 자기를 용감하게 지키던 씬인데, 나중에 나중에.... 그 유모가 구세군에 들어가면서 그때 거짓말을 했노라고 고백했단다. 
 

2. 절대적인 기억력

난 기억력 좋은 사람이 정말 부럽다.
이 책에는 셰라셰프스키라는 절대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 나온다. (실존 인물이다)
학습법에 관해 설명할 때 공간을 이용하라고 하곤 하는데, 이 사람이 원조인가보다. 머릿속에 어떤 거리를 걸으면서 이 집 문에는 A를 대입하고 그 옆집에는 B를 새겨놓고... 그런 식. 그게 억지로 그렇게 하는게 아니라 그런 이미지가 저절로 떠오르는 모양이다. 색깔이나 모양 같은게 떠오르고 때론 맛까지 느껴지면서 저절로 어떤 공간을 차지하는 거다.
마냥 부럽기만 한 이 능력자의 정신에 대해 저자는 정신병의 겅계선에 서있다고 말한다. 은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추상적인 추론이 불가능하다. 차이를 무시하고 일반화하는 작업이 불가능하다. 머리가 그렇게 좋아보지 못해서 왜 안되는지 이해가 안되네... 그런데, 또 한가지 결함이, 사람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한단다. 피곤할 때, 기분이 좋을 때, 슬플때, 기쁠 때의 미묘한 차이 자체까지 기억하고 있기에 사람의 얼굴이 변화가 너무 심하다며 투덜댔다고 한다. 아, 난 그런것까지 기억하고 있는 거 아닌데도 왜 사람 얼굴을 잘 못알아보는 걸까... 하고 고민해보니, 그 사람은 너무 많이 기억해 감정에 따른 얼굴 변화까지 잘 보이는거고, 난 너무 기억을 덜해서 특징, 차이 그런걸 떠올리지 못하는 것 같다.


3.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이 빨리 흐르는지가 젤 궁금했던 사항인데,,,앞에 나왔던 여러 설명을 기초로 여러 이론이 등장한다.
기억할 사건의 많고 적음, 회상할 때의 오류.. 그런 걸로도 설명 하는데 좀 아닌 것 같고
가장 그럴싸해보이는 이론은 생체 시계가 점점 느려진다는 설명.
내 속에서 시간을 인지하는 시계가 느려져서 난 아직 50초 밖에 못 셌는데, 실제론 1분이 흘렀다면 '시간이 왜 이렇게 빨라'라고 하겠지. 반면 애들은 그걸 빨리 세서, 하둘세넷.,.. 육십까지 세고 '엄마 1분 됐찌?' 그러는데 엄마는 아직이야... 그러고 애들은 안달을 하는거다. '왜 이렇게 시간이 느려어~~' 그러면서. 

읽는 동안 어릴적 기억이 자꾸만 떠올라, 주말에 엄마랑 한참 얘기를 했다. 어릴 때 살던 그 집 말야... 나 유치원때,,, 어쩌구 저쩌구.... 이 책 덕에 오랜만에 긴 대화를 나누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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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마르탱 파즈 지음, 용경식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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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다섯 먹은 앙투안은 좀 더 안락한 생활을 꿈꾸며 자신의 두뇌에 어리석음이라는 이름의 수의를 입히기로 맘 먹는다.  
 
앙투안은 곰곰히 생각한 끝에 자신이 앓는 마음의 병의 원인은 지성이라고 생각하고 그로부터 벗어날 생각을 한다.
지성이라는 것, 지성인이란 것도 타락했다. 매스컴 등을 통해 찬탄을 받고 있는 지성은 허울 뿐인 눈속임이고, 앙투안의 진실하게 고민하는 지성은 가난과 고뇌, 우울을 초래할 뿐이다.
그가 보기에 지성은 진화에 실패한 것이다. 선사시대 다른 아이들은 야외에서 어울려 활동하는데 자신 같은 체력이 딸리는 애들은 동굴에 남게된다. 그리고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심사숙고하고 문명을 만들어냈다. 할 일이 없고, 어울릴 친구가 없어서! 정신 차려보니 내가 바로 그런 존재라니, 앙투안은 정말 우울하다. 자신이 창피하다. 신체를 활용하지 못하고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게 만드는 이 지성이라는 병을 고쳐야겠다.

그래서 알콜 중독자가 되려고 결심하기도 하고, 자살교실을 기웃거려보기도 하고, 의사한테 가서 신경을 조금 잘라내 달라고도 해보고....
그런 짓들이 참 귀엽네.
증권거래로 대박을 터뜨리고 폼나게 사회생활을 하며 고민을 잊고 사는 모습도, 에로작을 먹고 멍하니 티비 불빛에서 위안을 얻는 모습도 귀엽게 봐줄 수 있었는데...
칫. 마지막 장은 맘에 안 들어. 사랑에 빠진 바보가 되다니. 뭐냐 열다섯도 아니고 스물다섯에 감정 과잉, 과장스런 행동을 하는 유치한 커플로 끝을 장식하다니....
(라고 툴툴거리며 노처녀 독자는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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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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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은 인생의 주요고비, 중요한 순간마다 피를 판다.
피를 팔 때마다 다짐하는 건, 이건 그야말로 피흘려 번 돈이다. 정말 중요한 곳에 써야겠다.
그 돈으로 장가를 들고, 가뭄으로 굶주린 가족들에게 국수를 사주고, 저당잡힌 물건을 찾아오고..... 아들을 살린다.

오랜만에 마음 졸이기까지 하면서 읽은 소설이다.
상해의 병원에 아들을 입원시키고 치료비를 위해 계속 피를 팔 땐, 허삼관이 이러다 죽어버리면 어쩌나, 
일락이만 국수를 못 먹어서 어쩌나, 마누라한테 갖다준 도시락 속 반찬을 들키면 어쩌나...  

가볍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코 가볍에 읽을 수 없는 인생사이다.
내가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걸 들으면 허삼관은 이렇게 말하겠지.

"피도 한 번 안 팔아보고선 무슨 인생을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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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수잔네 파울젠 지음, 김숙희 옮김, 이은주 감수 / 풀빛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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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주아주 예쁜 책이다.  책갈피마다 나뭇잎이 끼워져있는 듯한.
내용- 말투도 꽤나 곱다. 식물에 얽힌 문화나 생물학적 지식을 설명할 때는 물론이고 식물을 대하는 인간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화낼 때도 부드러워서, 앞표지의 저자 사진을 다시 들춰봤을 정도. 유쾌하고 선한 사람일 듯... ^^  

나로선 식물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에 대해서 드는 생각이라곤 '태양에너지를 동물이 쓸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주는 유용한 존재'라는 원론적인 사실 뿐인데,
저자에게 식물은 세상의 문명을 좌지우지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음식이 되고 약국이 되고, 시계도 되고 달력도 된다. 저자에게 있어 식물은 없으면 우리 인간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 더없이 중요한 존재이다. 
어쩌면 식물 이름 한가지만 들면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줄줄 읊어댈지도 모르겠다. 
그런 모습을 상상하며 나도 책에 나온 식물중에서 육두구 얘기로 책 내용을 풀어내볼까.

후추가 귀하게 여겨졌다는 얘긴 들어봤어도 육두구는 내겐 생소한데, 중세 유럽에선 그 꽃 1파운드가 양 세마리값에 달하는 귀한 양념이었다고 한다. 당연히 사람들은 육두구를 찾아 항해를 시작한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통해 반다 섬(오늘날의 인도네시아)에 육두구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반다 섬은 그 후 열강들의 각축장이 된다. 1605년 네덜란드 군과 반다섬 원주민들 간에 분쟁이 일어나면서 네덜란드 군은 반다섬 원주인을 씨를 말리다시피 사살하고 세계무역을 통제한다.
그런데 육두구는 왜 요리에 어울리는 향을 가져서 반다 섬에 그런 비극을 불러온 것일까.
육두구의 경우 조금 넣으면 향기롭지만 많은 양의 육두구 양념을 먹으면 흥분상태에 빠진다.
그럼 다시 질문, 식물은 왜 우리에게 흥분제를 제공하는가?
답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자신의 적이 되는 곤충을 물리치기 위해서 만들어 낸 화학물질이다. 천연 살충제를 사람들은 좋다고 맛보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약할 때는 인간에겐 특이한 향의 양념이 되기도 하고 조금 세면 흥분제가 된다. 더 강력한 어떤 식물들은 죽음을 불러오는 것이다. 
반대로 약이 되는 식물도 있다. 디키탈리스는 심장을 좋게하고,조팝나무와 버드나무에서 추출한 살리실산으로는 아스피린을 만든다. 말라리아는 기나수 껍질로 만드는 키닌이 치료제로 이용되어왔는데, 요즘은 말라리아균이 약에 면역되어 효과가 없다고 한다. 현재는 아르테미신 약초를 이용한 약을 개발했다고 하는데.... 저자는 가난한 현지인들이 그 약초를 이용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며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지만, 
거대제약회사가 유전자배열에 대해 특허권을 갖고 동식물의 유전자에 소유권을 주장하는시대에. 글쎄.... 

글쎄 한가지 더. 
책 끝부분에서 미래의 정원으로서 '텔레가든'을 소개하고 있다. 중앙에 빛을 비추는 장치와 로봇이 설치되어 원격으로 키우고 감상하는 정원.  작가는 재미있는 시도 쯤으로 보는 것 같은데 난 별로 좋아보이지도 않네.  그게 컴퓨터 장난감이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식물이랄 수 있겠는가. 식물 입장에서도 그런 곳에서 살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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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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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큐트한 김연수라니~!  *^^*
... 라는 감상은 중반까지이고.
중반 이후, 결론은 역시 총밍한 김연수. 
'민우는 한국의 킹카입니다'라고 말하는 신화팬 애나나, '김연수는 가장 총명한 작가입니다'라는 나나 같은 부류인게다~~  하핫... ^^;;


"우리에겐 오직 질문하고 여행할 권리만이"라고 했지만
내겐  "우리에겐 질문하고 여행할 의무가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근대 작가들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며, 지리적, 심리적... 그리고 민족적 경계을 넘어선 이와 그 안에 갇힌 이들을 이야기하고
'작가라면 모름지기 경계에 다가가서 경계를 밀어내야 한다'고 하고 있는데
그것도 실은 '사람은 누구나 제 안에 경계를 쌓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어서 든 예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꾿바이 이상>에 대한 설명도 많이 들을 수 있었고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의 친구도 만나서 반가웠다.
<노르웨이의 숲>에 아무 느낌 없던 건, 내가 '두 종류의 연인'을 가져보지 못해서인가보다.... 하는 새롭고도 우울한 깨달음도 있었고. 
숙제도 또 받았다. (이 작가는 늘 이것도 읽어봐, 저것도 읽어봐... 속삭인다니까....)
<빛속으로>를 다시 읽으려서 꺼내놨고, <노마만리>는 위시리스트에 담아놨고.... 

위대한 고전 소설과 한때의 유행소설을 차이는 전자는 질문을 던지지만 후자는 쉽게 대답을 제시하려 한다는 데 있다고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소설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경계 바깥을 향한 여행 가이드가 되어주기를 그에게 바란다. 

  
(참, 이번 책엔 실수마저 큐트하더라. 모나미 135볼펜... 아니죠~ 153 볼펜이어요.
연수 씨, 그게 성경에서 따온 작명이란 사실 몰랐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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