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살인죄일까? - 대중문화 속 법률을 바라보는 어느 오타쿠의 시선 대중문화 속 인문학 시리즈 1
김지룡.정준옥.갈릴레오 SNC 지음 / 애플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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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동화는 사건이 해결되며 깔끔하게 이야기가 끝날 수 있지만 그들을 현실에 데려다 놓으면 그럴 수가 없다.

드라마는 끝났어도 감옥엘 가느냐 마느냐 하는 형법 문제, 얼마나 배상해야  할지 하는 민사 문제, 그리고 헌법에서 뭐라고 하는지를 구질구질하게(!) 따져보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한 번 헐크로 변해 소동을 피우고 동산과 부동산을 파괴했으면 민형사상 책임이 따르고 공권력을 가진 것도 아닌데 나서서 악한을 처단하느라 기물을 파손했으면 뒷수습도 해야만 한다.

해리포터의 빗자루나 알라딘의 양탄자 같은 탈 것은 초경량 비행장치에 해당하므로 비행이 가능한 구역에서 사전 승인을 얻어, 고도제한을 지키며 날아야 한다. 태권 브이가 도로를 달리고 싶다면 번호판도 달고 교통 법규도 지켜야겠고.

이런이런... 법이란 게 온통 규제 투성이라 지구를 지킬 수가 없네?

위의 사례들은 일견 그렇게 보이겠지만 그런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은 원래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니 말이다. 

이를테면 하늘에서 떨어진 ET를 국가에서 강제로 막 데려간다?

이럴 때 법을 좀 알고 있으면 당당하게 대처할 수 있다. 공유지에 떨어진 소유가 없는 것은 주운 사람이 임자고, 특별한 필요에 의해 국가가 압류하려 할 때도 대가를 지불하고 가져가야 한다. 이걸 알았음 애들 맘 고생이 덜했을 텐데...

억울한 계약때문에 울고 있는 이들에게도 법은 구세주다. 애초에 불합리한 계약은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실엔 있을 수 없는 일을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실제 우리 생활에 접목하여 생각해 볼 부분도 많은 책이다.

특히 마지막 피터 팬이 웬디 또는 웬디의 손녀와 결혼할 수 있는가 이야기는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대답은 우리나라에서는 불가. 혈통주의에 기반한 속인주의 원칙을 고집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피터 팬은 무국적자로 살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할 수 없다. 사실 동화의 배경은 영국이고 영국은 속지주의에 따라 국적을 갖게 되므로 피터 팬은 좀 힘들지 몰라도 적어도 피터 팬의 자녀는 국적과 인권을 지킬 권리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의 수많은 불법체류자들, 그들의 아이들은 우리나라에서는 국적을 얻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피터 팬도 우울하게 만드는 나라랄까...

 

참! 제목에 던진 질문을 살펴보면, 저자는 데스노트의 기능을 알고 썼다면 살인죄라고 하고 있다.

데스노트에 이름을 쓴다고 처벌받는다면 '인형에 바늘 꽂으며 저주하는 것도 처벌감이야?'라고 속으로 궁시렁대는데 저자가 곧 그 얘기도 꺼내며 차이점을 설명하려 애쓴다.

<과학적으로 데스노트의 기능에 대해서는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이름이 적힌 사람들이 지금까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죽는 상황을 묘사해 적었을 때 대상은 써진 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이것은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라고.

어라? 계약 무효에 대해 설명하면서 <현실의 법은 마법을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해놓고? 민법에선 인정 안 하고 형법에선 인정하면 쓰나....

이름을 쓰니 죽은 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건지, 아니면 누군가 뒤에서 수작을 부린 건지 어찌 아나...  탐정 갈릴레오의 유가와 교수 같은 사람이 나와서 이 사건은 데쓰노트라는 신비로운 노트로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켰지만 뒤에서 실제로 어떤 짓을 해서 사람이 죽게 됐는지, 진짜 살인자는 누구였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해주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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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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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어딘가의 연구팀에서 힘든 일을 겪을 때 욕을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고 한다. 맞아, 그럴 것 같아, 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을 때 욕하고 불평하고 화를 내고 싶은데 주변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느니, 다 마음 속에 있다느니, 좋은 말로 달랠 때,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신이 암에 걸린 건 당신이 암을 원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억울할지도 조금은 상상이 된다.

정말로 긍정성은 병이 피하가게 하고 왔던 병도 물러가게 하는가, 에 대해 저자는 결코 그런 사실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데이터가 갖춰지지 않다고 한다.

긍정적 사고는 기업에서, 사회에서 불이익 당하는 사람들의 이의 제기하는 입을 막는 도구로도 이용된다.

'해고 당한 것도 당신이 긍정적이지 않아서이다.' '다음 좋은 직장을 간절히 갈망하면 될테니 오히려 기회이다.' '당신의 가난도 당신이 부를 갈망하지 않아서이다.'

이런 식으로 긍정성의 옹호는 불평을 금지하는 동시에 피해자를 교묘하게 질책한다.

긍정적 사고 시크릿의 영역은 개인의 자기개발용으로, 기업의 동기유발 강좌로, 사회의 문제를 보지 않고 없는 셈 치는 용도로, 그리고 교회 부흥의 도구로까지 퍼졌다.

저자는 긍정주의와 교회가 관련된 시초를 칼뱅주의에 대한 반대에서 찾는다. 엄격한 자기 관리와 절제를 강조하고 완수하면 복이, 그렇지 않을 경우 벌이 내릴 것이라는 두려움에 대한 반대 이론으로 사랑의 하나님, 원하는 대로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했는데 그것이 과도하게 증식했다. 이제는 심지어 하나님은 내가 바라는 대로, 아니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는 종이라는 듯한 태도까지 보인다. 대형교회에서 죄와 보혈에 대한 설교는 미뤄두고 축복만 강조하는 경향이 우리나라 특유의 민간 기복신앙과의 결합 탓이라고만 여겼었는데 미국에서 온 사고법이었던가... 

그런가하면 독재국가나 공산주의 사회에도 긍정론이 퍼져나가는듯한 모습이 보이는데, 이는 그렇게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그곳은 예전부터 애초에 체제에 대한 불평이 금지되었고 부정적 묘사를 담은 책, 어두운 이야기는 허용되지 않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즉, 긍정적 생각만 허락되는 곳은 어떤 의미에서 보이지 않는 대형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같은 곳이라고 하면 심한 표현일까?

사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간절히 바라면 된다는 긍정론을 줄기차게 듣다보면 '그럴 리가 없잖아.' 하는 생각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긍정주의는 틀려먹었어'를 300여 쪽 읽다보니 그래도 확신하고 꿈을 갖는 건 좋은 거잖아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고백에 혹자는 역시 난 삐뚤어졌다고...^^;) 

그렇지, 좋은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긍정적 사고가 문제라고 강하게 외친 이유는 '비판적 사고'를 막기 때문이다. 사회적 부조리에 눈감고 환경 개선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험신호를 무시하고 돌진하다 큰 사고를 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맹목적인 긍정 사고가 아니라 실패와 성공의 가능성을 꼼꼼하게 짚어보며 조사하고 준비하는 태도다. 

 

처음에 말한 실험, 늘상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에게는 욕을 했을 때 기분이 나아지는 효과가 없다고 한다.

역시 긍정적 생각은 전혀 없이 맨날 부정적 생각만 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 세상에는 위험과 기회가, 죽음의 확실성과 커다란 행복이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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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러치 - 인생 최고의 반전 전략
폴 설리번 지음, 박슬라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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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승패를 가르는 절체절명의 순간 겁에 질리지 않고 과제를 완수하는 것을 '클러치'라고 한다.

운동 경기에서, 사업에서, 업무에서 어떤 사람들은 황당한 행동을 하고, 잘못된 계약을 체결하고, 엉뚱한 곳으로 공을 날리고 실패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클러치를 해낼 수 있는가.

저자는 많은 클러치맨(우먼 포함)들을  만나보고 그 비결을 들어본다.

 

1. 계획을 위해 싸우지 말고 싸움을 위해 싸운다.

분명 좋은 실력을 갖춘 사람이 클러치에 실패할 경우 흔히 '감정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서 부담감에 질식했다', '감정을 능숙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한다. 지금은 중요한 순간이니 감정적이 되지 말자, 내 감정은 잊자... 이러면 될까? 이래서야...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형국이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우선 코끼리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런 상황에 대해 클러치맨 중 하나인 코플랜드는 '감정을 통제하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하면 병사들은 오히려 그 때문에 자신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사태는 더욱 악화되지요.'라고 설명한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그저 당장 눈 앞에 당신 사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 외부에 초점을 맞추면 자기 내부를 들여다보며 쓸 데 없이 고민할 틈이 없어진다. 동시에 처음 계획은 미뤄두고 상황에 적응하여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기. 이것이 '계획을 위해 싸우지 말고 싸움을 위해 싸우는' 클러치법이다.

 

2. 생각하되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라.

클러치를 해냈을 때 찾아올 환호와 영광을 생각하지 말하는 조언. 우승컵을 들고 무슨 멘트를 날려야할까 생각하느라 미리 달뜨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자기가 하는 일을 생각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이것도 결국은 지금 이순간 할 일이 열중하라는 얘기로 수렴되는 것 같다.

 

3. 노력의 결과는 정직하다.

자, 그러면 그냥 실전에서 잡념 없이 집중하면 된다?

혹은 부정적 사고가 질식의 원인이며 긍정적 사고를 키우면 다 해결된다는 주장이 작년까지만 해도 붐이었는데... 집증 + 긍정적 사고면 오케이일까? 

중압감을 느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사실 '실력'이다. 그리고 단순히 긍정적 마음만으로 실력이 늘지는 않는다.

저자를 비롯한 많은 아마추어 골퍼들이 경기를 엉망으로 망치고는 흔히 하는 변명을 들어보면...

'연습할 땐 완벽하게 할 수 있었는데, 실전만 닥치면 이렇네~~'

그러나 클러치맨 양성 전문(?) 코치인 린치는 발견했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 대부분이 연습장에서도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금껏 클러치 상황에서 평소보다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는 행운을 바랐던 게 아닌지 되짚어볼 일이다.

 

4. 실패를 인정한다 

클러치맨과 비클러치맨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한 번 클러치맨이었다고 죽을 때까지 클러치맨이라는 법도, 여러 차례 클러치에 실패했다고 평생 클러치는 못 해내라는 법도 없다. 실패에 맞닥뜨렸을 때 생각해야 하는 과제는 '어떻게 자존심을 지키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손실을 줄이는가'이다. 실패를 깨끗이 인정하고 클러치를 위한 교훈을 다시 되새긴다면 몇 번의 실패는 오히려 좋은 약이 되어줄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요주의!

결국, 클러치는 병가지상사라. (clutch 兵家之常事)

오늘 클러치했다고 내일 또 클러치하는 것이 아니며 오늘 클러치 못했다고 하여 내일 또 못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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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밖에 있다 - 문제 해결의 고수들이 생각하는 법
이상협 지음 / 쌤앤파커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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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같은 난제의 해답을 찾는 방법, 논리적 사고의 단서를 탐정들의 모습을 통해 알아본다.
좀 더 재미있게 논리를 알려주려는 마음에 탐정들의 이야기를 끌어들였겠지만 추리소설 반기지 않는 나로선 각 에피소드들과 연결짓느라 더 힘만 든다. 
일례로 연역법 설명에서 미스 마플이 바람둥이 남편이 아내를 죽였음을 추리하는 예를 드는데, 그 전에도 그저 젊은 여자와 바람만 피우고 아내는 아내대로 집안에 뒀는데 이번엔 왜 죽인 건지. 저 남자가 원래 바람둥이니까 부인을 죽였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고정관념이 아닐지, 마플 씨도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혹 원본엔 정확인 추리가 있는데 이 책에서 설명을 하다 만 건지도 모르고.
또, 볼테르가 쓴 꽁트 <자디그>의 주인공이 개가 지나간 흔적이나 말이 달려간 자취를 보고 개와 말의 모습을 정확히 묘사하는 씬은 가설추리로 설명하는데, 왜? 그건 관찰을 잘 해서가 아닌가?
그런가 하면 관찰의 실례로는 나이키 사례가 등장한다.
나이키 창업자가 와플 굽는 모습을 '관찰하고' 신발 밑창을 고안했다고 하는데 역시 납득이 안 간다. 그건 뉴튼이 사과 떨어지는 모습을 본 것(사실이든 아니든)과 같은 류, 즉 끊임없이 고민하다 영감을 주는 무엇과 조우하는 순간 유레카를 외치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몇몇 이야기는 수긍이 안 되지만 어쨌거나 논리 사고법은 알아봐야지. 
셜록 홈즈 같은 탐정을 떠올려보면 남들이 못 보고 지나친 것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보고 그 안에서 단서를 찾아낸다. 그래서 첫번째 단서는 관찰력.
관찰의 힘에 대해선 지난 해 <스눕>에서 잔뜩 보고, '난 이 방법 별롤세'라는 결론을 내렸었는데... 게다가 <다른 그림 찾기> 무진장 못하는 나이고.... 그래 그럼 두 번째로 넘어가보자.
두 번째는 직관.
직관이라면 딱 보고 떠오르는 생각? 그건 우리의 명탐정이 등장하기 전에 평범한 수사관들이 하는 일이 아니던가.
아니다. 여기서는 그 전에 충분히 트레이닝하고 고민한 끝에 홈즈처럼 '중간 단계를 의식하지 못했을 뿐 -사실은 내면에는 중간 단계가 있는- 척 보면 압니다'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이거이거... 진짜 아무나 못 할 것 같은데? (역시 난 탐정이 적성에 안 맞아)
세 번째는 제로베이스 사고.
선입관을 버리고 제로베이스에서 생각할 것. 자신의 경험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것.
그래, 이건 수긍도 가고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자가 그러네. '제로베이스 사고는 쉽지 않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우상화하며, 회의적으로 사고하기는 게을리하기 때문. 버틀런드 러셀 왈 "많은 사람들은 생각을 하느니 차라리 죽을 것이다."
애구, 죽겠네.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 내게 적용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가설 사고와 가정적 추론은 상상력이 필요하겠고, 연역법과 귀납법은 별로 흥미롭지가 않으니 건너뛰고... 여차저차해서 내 눈길을 잡아끄는 건 '로직트리와 이슈트리' 법.

로직트리는 순차적으로 가지를 쳐가면서 전체적 얼개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논리를 세워보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요인을 하나하나 제거하면서 원인을 찾아가는 방법이다. 로직트리를 통해 얻은 이슈를 다시 분해해가는 나무는 이슈트리. 해결책을 찾는 데 쓰인다. 로직트리를 분해하면 이슈트리가 되고 이슈트리를 다시 거꾸로 작성하면 최종 전략이 완성된다.
좋았어. 종이와 펜을 들고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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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론자들이 빠지는 무모한 실수 12가지 - 행복한 비관론자
마티아스 뇔케 지음, 신혜원 옮김 / 나무생각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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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간절히 원하면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온 세상이 당신을 도울 거라고?

그럴 리가 없어!

비관론자들은 절대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

오히려 내가 바라고 바랄수록 세상이 태클을 걸어올 것만 같다.

그래서 비관론자들은 더 철저하게 대비한다.

낙관론자가  80% 준비하고 낙관한다면 (간혹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긍정의 힘만 믿는 경우도 있겠으나 그런 경우는 비교할 가치도 없으므로 배제) 비관론자는 120% 준비하고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비관론자의 성공률이 더 높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왜냐하면 비관론자가 더 철처하게 준비했으니까.

뿐만 아니라 비관론자는 이 일이 100% 성사되리라 믿지 않았기에 혹시 실패해도 낙관론자보다 타격을 덜 받는다.

심적으로도 실패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고, 현실적으로도 2안, 3안을 준비했기에 그렇다.

게다가 처음부터 하늘이 도울거라든가, 단번에 성공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으니 더 오래 꾸준하게 시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세상이 낙관론이 최고라고 하고 비관론자에게 그런 생각으로 사니 아무것도 안 되는 거라며 몰아붙인다고 불평한다. 사실상 비관론은 이렇게 유용하고 건설적인데 말이다.

아, 비관론자가 이렇게 바람직한 거였구나. 그렇다면 여기서 나도도 커밍아웃을?

'솔직히 말해서 첫 페이지부터 깜놀! 저자가 제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갔구나 싶더라구요.'  <-- 서울에 사는 최모씨의 고백입니다. ㅎㅎ

단, 뒤로 가면 점점 중증, '이쯤 되면 당신 행복하지 않은 거잖아요?' 라고 하고 싶은 레벨의 이야기까지 나온다. 한두 장면에선 난 그 정도는 아니라고, 그런 심리는 나도 이해가 안 된다고 모른체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제야 당당하게 말하는데, 비관론은 내 삶의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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