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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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어딘가의 연구팀에서 힘든 일을 겪을 때 욕을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고 한다. 맞아, 그럴 것 같아, 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을 때 욕하고 불평하고 화를 내고 싶은데 주변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느니, 다 마음 속에 있다느니, 좋은 말로 달랠 때,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신이 암에 걸린 건 당신이 암을 원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억울할지도 조금은 상상이 된다.

정말로 긍정성은 병이 피하가게 하고 왔던 병도 물러가게 하는가, 에 대해 저자는 결코 그런 사실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데이터가 갖춰지지 않다고 한다.

긍정적 사고는 기업에서, 사회에서 불이익 당하는 사람들의 이의 제기하는 입을 막는 도구로도 이용된다.

'해고 당한 것도 당신이 긍정적이지 않아서이다.' '다음 좋은 직장을 간절히 갈망하면 될테니 오히려 기회이다.' '당신의 가난도 당신이 부를 갈망하지 않아서이다.'

이런 식으로 긍정성의 옹호는 불평을 금지하는 동시에 피해자를 교묘하게 질책한다.

긍정적 사고 시크릿의 영역은 개인의 자기개발용으로, 기업의 동기유발 강좌로, 사회의 문제를 보지 않고 없는 셈 치는 용도로, 그리고 교회 부흥의 도구로까지 퍼졌다.

저자는 긍정주의와 교회가 관련된 시초를 칼뱅주의에 대한 반대에서 찾는다. 엄격한 자기 관리와 절제를 강조하고 완수하면 복이, 그렇지 않을 경우 벌이 내릴 것이라는 두려움에 대한 반대 이론으로 사랑의 하나님, 원하는 대로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했는데 그것이 과도하게 증식했다. 이제는 심지어 하나님은 내가 바라는 대로, 아니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는 종이라는 듯한 태도까지 보인다. 대형교회에서 죄와 보혈에 대한 설교는 미뤄두고 축복만 강조하는 경향이 우리나라 특유의 민간 기복신앙과의 결합 탓이라고만 여겼었는데 미국에서 온 사고법이었던가... 

그런가하면 독재국가나 공산주의 사회에도 긍정론이 퍼져나가는듯한 모습이 보이는데, 이는 그렇게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그곳은 예전부터 애초에 체제에 대한 불평이 금지되었고 부정적 묘사를 담은 책, 어두운 이야기는 허용되지 않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즉, 긍정적 생각만 허락되는 곳은 어떤 의미에서 보이지 않는 대형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같은 곳이라고 하면 심한 표현일까?

사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간절히 바라면 된다는 긍정론을 줄기차게 듣다보면 '그럴 리가 없잖아.' 하는 생각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긍정주의는 틀려먹었어'를 300여 쪽 읽다보니 그래도 확신하고 꿈을 갖는 건 좋은 거잖아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고백에 혹자는 역시 난 삐뚤어졌다고...^^;) 

그렇지, 좋은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긍정적 사고가 문제라고 강하게 외친 이유는 '비판적 사고'를 막기 때문이다. 사회적 부조리에 눈감고 환경 개선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험신호를 무시하고 돌진하다 큰 사고를 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맹목적인 긍정 사고가 아니라 실패와 성공의 가능성을 꼼꼼하게 짚어보며 조사하고 준비하는 태도다. 

 

처음에 말한 실험, 늘상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에게는 욕을 했을 때 기분이 나아지는 효과가 없다고 한다.

역시 긍정적 생각은 전혀 없이 맨날 부정적 생각만 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 세상에는 위험과 기회가, 죽음의 확실성과 커다란 행복이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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