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0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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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바야르 씨의 이번 너스레 주제는 여행이다.

유명한 여행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부터 생각해 보자.

과연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 다녀왔는지 여러 면에서 의심스럽다고 한다. 진짜 중국에 갔다면 신기해서 이야기했을 만한 것들(전족이나 만리장성 등)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문자에 관심이 많은 그였는데 한자의 존재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동방의) 우리로선 듣도 보도 못한 파격적 손님 접대 성품속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음, 거 참 여행자한테 환상적인 곳이네, 하고 가보고 싶어할 법한 이야기를.

그가 유럽을 떠나지 않은 채 실제로 오간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썼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아니 그렇다면 그 이야기를 실제로 들려준 사람들은 왜 마르코 폴로에게 전족이며 만리장성 이야기를 안 해줬을까? 어쩌면 실제 여행객들이 얘기를 했지만 그것들을 실감나게, 또는 환상적으로 전하지 못한 탓에 마르코 폴로가 별거 아니라고 느껴 책을 쓸 때 빼버리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동방견문록에 제대로 된 정보가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은 마르코 폴로 탓이 아니고 그 무명의 진짜 여행객 탓인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상상을 보태고 마구 부풀러 사람들 구미를 당기는 내용으로 책을 꾸밀 능력을 갖춘 훌륭한 여행서 저자였는데 안타까운 노릇이지.

 

80일간의 세계일주의 포그 씨는 어떨까? 그는 진짜 여행자였을까?

80일 동안 전세계 여러 도시에 도착했지만 대개는 항구만 찍고, 뭍에 내린 건 단 한 번인데. 

그 한 번은 인도인데, 자신이 그 곳에서 해야할 일을 하기 위해 내렸다. 화형 당할 처지에 놓인 가여운 여인을 구하기 위해. 불쌍한 여인을 살려야 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다른 주민이나 여행객들은 간과한 진실을 왜 그만 깨닫고 행동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가 그 지역에 내려 익숙해지지 않고 여러 나라에 대한 지식만 늘리며 대충 여행한 덕분이라는 묘한 결론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그 도시에 섣불리 발을 딛고 사람들이 미리 정해 놓은 일치된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여행자로 남아 냉철한 시각을 유지할 수 있어서.

 

여행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중요한 수단인데 그것을 게을리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현장에 가지 않는 신문기자. 자기 집에서 파자마를 입은 채 관계자와 통화를 하고, 다른 자료를 찾아보고 TV 화면을 보고 기사를 작성한다. 독자들이 현장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자세한 묘사를 곁들여서. 그로써 독자들이 사건 당사자의 심정에 공감하고 현장을 실제 본 듯 느끼게만 한다면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하는 문장력으로 사실을 효율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했는데! 

 

중간에 교통수단을 이용한 마나토너는 어떨까? 로시 루이스는 198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1등으로 결승점을 통과했지만 부정행위로 고소당해 우승을 박탈당한다. 중간지점의 진행요원들이 그녀를 보지 못했다고 했으며 마라톤 코스에 포함되어 있던 여대에 대해 루이스가 묘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죄목(?)은 상상력과 묘사력 부족이 아닐까? 마라톤 정신 때문이라고? 그게 뭔데. 첫 번째 마라톤 주자인 그리스 병사도 중간에 다른 교통수단이 있었다면 왜 그걸 거부하고 죽어라 뛰었겠나.(응?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라구! ㅋㅋ)  그러니 그녀가 우승을 박탈당한 진짜 이유는 남들이 다 맘에 들어할 만한 스토리를 써내지 못한 탓이다.

 

우리(독자?)가 여행자들에게 원하는 것은 우리의 감성을 만족시켜주고 정말 희한한 얘길 들었어, 상상을 뛰어넘는 곳이네, 신기하다... 이런 느낌을 채워주는 이야기인 것이다. 여행자가  자기 발로 그 땅을 밟았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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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사회 - 벌거벗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한홍구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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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본 드라마는 control. 마쓰시타 나오와 후지키 나오히토 주연의 수사 드라마인데 심리학자인 후지키 씨가 사건 해결을 돕는 구성이다. 그러나 예상을 깨는 반전 같은 것도 없고, 경찰이나 심리학자나 늘상 뒷북인 좀 처지는 드라마라 하겠다.

아무튼 그걸 보면서 '아휴, CCTV 없었으면 범인 찾겠어, 어디?' 했는데....

이 책은 전반적으로 (그 중요한!) CCTV의 효용에 대해 회의적이다. 지속적으로 드는 비용과, 온 국민이 여기저기서 사생활이 찍히고 감시당하는 데 비해 범죄 예방율은 얼마나 낮아졌는가, 하는 문제제기. 순찰을 한 번 더 돌거나 가로등을 더 설치하는 편이 비용이나 효율성 면에서, 그리고 사생활 보호에서 더 나은 방법이 아니겠는가, 라는 주장.

사실상 그런 감시카메라는 안심하고 살기 위해 주민들이 앞서서 요구하는 일이 많으니 프라이버시를 일정 부분 포기하고 안전&안심을 확보하겠다는 의미인 셈이다. 

 

카메라로 드나듦을 감시하는 것 외에 정보의 흐름을 체크하는 감시도 있다.

대표적으로 연말정산. 예전에는 내가 일일이 자료를 챙겨서 제출해야 했지만 이젠 국세청에서 정보를 모아 먼저 알려주고, "어때, 빠진 거 없지?" 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상황이다. 우린 아, 몇 년 전에 비하면 훨씬 편해졌어, 좋아, 하며 기뻐하고.

 

언뜻 사생활 침해는 (나쁜) 정부가 악의를 갖고 감시하는 것, 그래서 이를테면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실태를 알게 되면 반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안전을 위해 감시카메라 설치를 요구하기도 하고 이런이런 데이터 통합 처리해서 민원인 귀찮지 않게 해주기를 원하기도 한다. 온라인 서점에서 나의 구매 이력을 살펴 취향에 맞는 책을 추천해주면 호오, 이 시스템 똘똘한데? 싶다. 

.... 난 감시카메라의 역할이 중요한 드라마와 영화에, 그리고 기업체의 깨알 같은 서비스에 세뇌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제와서 감시카메라 모두 없애라, 정보 수집 전혀 하지 말아라, 하며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인 것 같다. 여러 연사들의 강연을 읽고도, 이미 편리함에 매몰된 난, 활용 범위에 대한 제한을 까다롭게 해야겠다, 는 정도밖엔 말 못 하겠네.

감시장소, 내용과 정보 수집 방법을 모두에게 공개하고, 부당하게 사용되지 않도록 모두가 감시체계를 감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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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지도 - 대규모 전염병의 도전과 현대 도시문명의 미래
스티븐 존슨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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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소개>

존 스노 : 의사. 자수성가형 인물로서 마구잡이로 투여되던 마취를 정량화하여 명성을 얻었다. 콜레라가 번지자 당시의  주류 이론인 독기설에 의문을 품고 조사를 벌인 끝에 수인성 질병임을 밝혀낸다.

 

헨리 화이트헤드 : 콜레라가 창궐한 보르도 지역의 교구 목사. 처음에는 주류 독기설과 스노의 수인성설 모두에 반대했으나 여러 정황 증거가 스노의 설을 지지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평소 쌓은 지역주민과의 유대관계와 해당 지역에 대한 토박이 지식을 활용하여 결정적 증거를 수집, 제공하는 도움을 준다.

 

인문과학서지만 마치 소설처럼 묘사되어, 감염지도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이해할 수 있다. 위의 두 주인공에 공감하여 함께 마음 졸이거나 기뻐하면서. 

 

"자네하고 나는 그런 날(그들의 조사 결과가 모두에게 인정 받는 날)을 보기 전에 죽겠지. 그런 날이 와도 내 이름은 완전히 잊혀졌을 걸세. 하지만 대규모 콜레라 발생이 까마득한 과거의 일로만 여겨지는 그런 날은 반드시 올 거라네. 그리고 질병의 전파 방식을 파악하는 것이 바로 질병 박멸의 수단이 될 것이네."

존 스노가 화이트헤드에게 한 말인데, 이 말이 얼마나 슬프게 느껴지던지. 정말 완전 감정이입을 했던 모양이다. 화이트헤드는 장수한 덕에 죽기 전에 공로도 인정받고 훗날 다시 콜레라가 창궐하자 고문역을 하게 되지만, 스노는 요절한 탓에 수인성 이론이 인정받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요절의 이유가 마취제를 연구할 때 스스로에게 생체실험을 했던 때문으로 보인다니, 더 슬퍼. ㅜ.ㅜ

 

1800년대 중반 영국에서는 (아마 서구 전체가 그랬을 것) 독기가 질병을 옮긴다는 확신이 주류 이론이었다. 환자가 발생하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독기를 차단하는 일이었다. '독기'를 확인하는 지표는 '악취'였다. 일상적으로 가장 악취를 내는 것은 물론 '똥'이다. 아, 책 첫장부터 분뇨처리인, 똥 치우는 얘기가 막~ 나와서 '으, 밥맛 떨어져!'라고 느(꼈....으나 실제로 밥맛은 떨어지지 않았지만)끼며 읽기 시작했다.

적당히 구덩이를 파고, 또는 커다란 지하실에 모아뒀던 똥을 분뇨처리자를 불러 퍼내는 식이었는데 도시가 거대해지고 밀도가 높아진 데다 독기론 신봉자가 도시 정책을 맡으면서 분뇨를 포함한 하수를 템스강으로 흘려보내는 시스템을 만든다. 차라리 분뇨만 따로 모아뒀다 퍼가는 예전 방식이 나았으려나. 결과적으로 보면 완벽하지 못한 하수시스템에 흘러들어간 감염자의 분뇨는 그 지역에서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우물에 스며들었고 그 탓에 맛좋은(!) 물을 마신 이들을 집단 감염시키는 지경에 이른다.

지금 우리 생각으로는 몇 가지 데이터만 보여주면 아, 오염된 물이 원인이었구나, 끄덕일 것 같지만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설명하듯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두 사람이 아무리 확실한 사례를 모아도 그러니까 '독기론'이라며 무시당하고 만다.  이를테면 공기가 맑은 곳에 사는 부인이 그 물을 공수받아 마시고 콜레라에 걸린 사례가 있는데, 정책담당자들은 공중에 떠도는 독기가 너무 강력해서 깨끗한 물까지 더럽혔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인과관계와 질병의 전파 경로를 한 눈에 보여주기 위해 고안한 것이 바로 책 제목이기도 한 '감염지도'이다. 거리의 지도에 우물 위치를 표시하고 감염자 발생 수치를 표시한 지도.

 

자, 지도가 완성되어 - 아직 몇몇 고집쟁이들은 똥고집을 부리지만 - 대부분은 수긍하게 되어  대단원의 막을 내리리라, 아니면 과학의 방법이나 전염병의 발생과 진화에 대한 고찰이 이어지리라 생각하는 순간 이 책은 저자의 독특한 관점에서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첫 째는 두 주인공이 이 분야에서 아마추어 토박이였다는 점. 스노는 사실 의사기는 했지만 전염병 전문은 아니었고 화이트헤드는 더더욱 문외한이었다. 저자는 그들의 끈기도 중요하지만 토박이였다는 점도 높이 산다. 외부에서 잠시 들러 조사하는 타지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던 현실을 느낄 수 있던 것이다. 이 관점은 현대 도시의 정보망은 토박이 아마추어들이 멋지게 구축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다른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할 때 시너지효과도 고려했을 때 전문가들이 아마추어의 말에 귀를 귀울여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얘기다.

둘째는 도시 자체에 대한 고찰. 멀리 떨어져 사는 것보다 오밀조밀 모여사는 편이 생태발자국이 작다나. 이 얘기엔 아무래도 끄덕여지지가 않네.  아무튼 150년 전보다 훨씬 밀도가 높아진 도시가 품고 있는 여전한 위험과 새로 등장한 위험 요소를 생각해본다. 여전한 위험이란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전염병이다. 다음 요인은 도시 문명 자체를 이용한 테러. 911테러를 도시 문명 자체를 이용한 고효율(!) 테러로 볼 수 있다. 과밀하게 사람들을 집중시키는 고층 빌딩, 문명의 작품 비행기가 없었으면 그만큼 효과적이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스노의 지도 덕에 여전한 위험인 조류독감은 미리 예방책을 내놓을 수 있지만 다른 위험인 도시 문명 자체를 이용한 테러에는 속수무책이다. 다른 지도들과 달리 테러위험 지도는 그려두어도 소용에 닿지 않는다.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은 인간의 예측을 비웃는 독창적(!) 문제를 낳는 법. 더불어, 생산도 폐기물 처리도 도시 내에서 해결할 줄 모르는 거대도시의 생태발자국 계산도 다시 제대로 해봐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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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전 한국을 걷다 - 을사조약 전야 대한제국 여행기
아손 그렙스트 지음, 김상열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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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스웨덴은 우리와 그닥 가깝지 않은 나라인데, 100년 전에 이 땅을 걷고 보고 듣고 체험기를 남긴 스웨덴 인이 있었다고 한다.

을사늑약을 앞둔 겨울, 아손이라는 스웨덴 기자는 도쿄에서 지루해하고 있었다. 그는 전쟁의 모습을 취재하고 싶어서 동아시아까지 온 거지 평온한 도쿄에서 지내기 위해 온 게 아니었다. 일본 관리들은 웃는 낯으로 꾸벅이고 애매한 약속의 말을 남겼다. 하지만 서양 기자들이 실제로 전장을 볼 기회는 결코 주어지지 않을 상황이었다.

아손은 속임수를 쓰기로 한다. 장사치로 신분을 위조하는 것이다. 그 계획은 제대로 통해서 그는 드디어 조선땅에 상륙하게 된다. 연말 즈음 도착해 한 달 남짓, 몹시 추운 서울에서 그는 참 많이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기록으로 남긴다. 왕실 장례식도 보고, 감옥도 구경가고, 강화도에 가서 전등사 주지도 만나보고.  

100년 전 작은 동양나라의 낯선 문화에 대한 소중한 기록이자,  우리 입장에서도 그 당시에 대한 많지 않은 민간의 기록이기도 하다. 잠시 후면 일본에 먹혀버릴 것이 명백한 나라를 딱하게 바라본 씁쓸한 여행기이다. 아손의 문체에 순간순간 유머와 재기가 흐르지만...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은 서양 기술을 받아들이고 부지런히 조선을 삼킬 준비를 하는 일본에 비해 너무나 낙후되었고 사람들은 게으르기만 한 곳이었다. 준비 없이 근거없는 낙관적 태도만 보이는 민족으로 비춰진다. 조선 사람들은 일하기를 너무 싫어한다는 일본 사람들이 평이 과연 틀리지 않더라는 듯한 묘사에 나, 이거 창피해해야 하나 갈등하다 가냘프게 반론을 해본다. 겨울이니까 그렇지이~ 하고.

겨울의 우리의 대표적 문물로 떠올릴 수 있는 온돌은 영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코레아 사람들은 밤이면 방에서 빵처럼 구워진다나. 빵이든 핫케이크든, 온돌에 구워지는 거 기분 좋은데 이 아저씨 그 맛을 모르시네... 쩝.

미신도 엄청나게 믿고 맨날 귀신을 무서워하고, 병에 걸리면 무당에게 의존하거나 엉터리 의학에 매달려 어이없는 처방 끝에 죽게 되고. 부정적 묘사도 꽤나 많다.

그런데 미신과 원혼을 두려워하는 건 일본도 만만치않았을 텐데.... 일본에선 서민들을 못 만나고 식자들의 얘기만 들었던 거 아냐?

어쨌거나 이 책에서 또 중요한 부분은 조선인들을 학대하는 일본에 대한 증언이다. 그리고 그런 일본의 속내를 간파하고 미워하면서도 힘없이 당하는 가련한 모습도 묘사하고 있다.  

일본이 자기네를 따라잡으려는 꼴이 보기싫었던지, 원래부터 일본에 좋은 인상은 아니었던 듯 한데 막상 조선 땅에 와보니 상상을 초월하더라는 말이지. 일인들은 조선인을 노예나 짐승처럼 다룬다고 하며 아손은 몹시 분개한다. 그러나.... 자기가 아무리 흥분한다고 해도 양자의 주종관계(?)는 더욱 심화되고 조만간 이 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지리라고 생각했던 듯도 보인다.

저자가 쓴 부분의 뒤를 이어서 한 마디 보태면, 일단은 당신의 예상대로 진행되었지만

종국에는 우린 살아남았다오~

우리 힘으로 독립을 한 게 아니라 국제 정세에 의해 어쩌다보니 광복이 주어졌니 뭐니 하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얼마나 터무니없는 체급 차이가 있었는지 상세히 보고 나니..... '버티느라 애들 많이 쓰셨어요, 어르신들'이라고 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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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거나 멍청하거나 천재이거나 - 꼬마 올리버의 과학 성장기
올리버 색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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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이 넘은 저자에게 어느 날 소포가 도착한다. 

소포 안에는 화학학용품 카탈로그와 주기율표, 그리고 묵직한 텅스텐 막대가 들어있었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텅스텐 막대는 어린 시절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향기로운 과자도 아니고 단단한 텅스텐이 어떻게! 싶지만 말이다.

텅스텐은 올리버 색스에게 화학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주고 각종 장비를 제공하던 일명 텅스텐 삼촌 덕에 가장 좋아하는 금속이었다.

지금은 신경생리학자로 환자를 세심하게 살피는 의사로, 그리고 따뜻한 글로 알려진, 내겐 처음 접했을 때부터 할아버지였던 저자는 수십 년 전에는 화학에 푹 빠진 소년이었다.

주기율표의 매력에 푸욱 빠진 소년을 보며 아픔 속에 주기율표를 암기하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 화학 선생님은 일단 수업에 들어오면 한 학생을 지명해서 일으켜세우곤 '3족 읊어봐.' '칼슘 원소번호, 원자량은?' 등등.... 문제를 냈고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 볼따구를 '아프게' 잡아당겼다. 몇 명을 그렇게 괴롭힌 후에야 화학 수업은 시작되었고 화학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행복감을 느낄 구석도 (수험 과목에서 그럴 걸 느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저자가 화학물질, 금속을 알아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행복한 앎의 과정이었다. "난 금속을 너무 사랑해. 금속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는 느낌. 촉감과 무게를 느끼고 냄새를 맡고, 이 녀석이 어떤 물질과 친하고 어떤 물질과 사이가 나쁜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걸 암만 자세히 말해도 읽는 나는 '뭐야~' 싶었지만 느낌만은 전해졌다.

당시는 놀라운 화학적 발견이 계속 이루어지고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학설이 지위를 차지하던 시절이었다. 소년 올리버는 새로운 물질이 발견될때마다 환호하고 텅스텐 삼촌 등을 통해 자료와 재료를 구해 지식욕을 채운다. 특히 주기율표가 그 틀을 갖추고 화학 물질의 체계가 정리되었다고 느꼈을 때는 어찌나 좋아하던지,,,,, 원.....

열정이 사그라진 때는 아마도 양자역학이 등장하고 나서인 것 같다. 수학처럼 확실한 규칙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직접 만져보고 느낄 수 있는 단단한 세계라고 생각했던 화학이 양자론의 불확실성에 의해 훼손되었다고 느낀 모양이다. 혹시 너무 늦게 태어나서 화학자가 되지 못했다고 생각했을까?

독자 입장에서는 조금 늦게 태어난 덕에 화학은 어린 시절의 즐거움으로 간직하고 커서는 의학계의 음유시인이 되었다고 기뻐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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