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동쪽 작은 역사 4
전우용 지음, 이광익 그림 / 보림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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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아이들을 데리고 고궁이며 종묘를 돌아보곤 했지만 그곳들 말고는 옛 서울의 모습이 떠올려지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고 발전이란 명목하에 새로운 시설물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게 당연지사지만 우리의 유구한 옛역사가 묻힌 듯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이 책은 현재에 가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서울의 모습, 그중에서도 서울의 동쪽 권역에 관련한 역사를 말해준다.

육백여 년 전, 한양이 조선의 서울이 되고 풍수지리에 입각해 현재의 경복궁과 도성자리가 정해진다.

궁을 중심으로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을, 남으로는 행정을 책임지는 관청과 궁궐 뒤로는 시장을 두는데 당시 서울의 동쪽으로는 흥인지문과 청계천 그리고 배우개장이 생긴다.

개천의 하류라 '아랫대'라 불리던 이곳은 물난리가 자주 나 사람이 별로 살지 않았다 한다. 도성을 지키는 군인과 왕실과 군대에서 쓰일 말이 길러지고 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사는 그야말로 서민들의 삶터였다.  

 

1876년 불평등 강화도조약이 맺어지고 조선은 나라의 힘을 키우기 위해 개혁을 추진한다.

발전소가 세워져 가로등과 전화가 보급되고 아시아에선 두 번째로  전차가 들어온다. 그리고 이때 배우개시장은 더 넓게 확장, 상설시장화하여 '광장시장'으로 바뀐다. 

일제 강점기, 우리 주권을 빼앗은 일본은 군대해산을 물론 교통에 방해된다는 핑계로 성벽과 동대문 옆 오간수문을 철거시키고 동양척식회사를 세워 우리 땅을 일본인들에게 헐값으로 넘긴다. 이땅의 주인들이 신석기시대 움막과 다름없는 토막에서 살고 일본인들은 전기와 수도시설을 갖춘 문화주택에서 호사를 누리며 살았다니 주권을 잃은 국민의 비애감이 무엇인지 절실히 느껴졌다.

또한 동대문 성벽 자리에는 현대식 운동장인 경성운동장이 들어서는데 서울의 이름이 경성으로 바뀐 뒤라 이름이 경성운동장이 된거라 한다.

1945년 해방이 되지만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전쟁은 수많은 이재민과 고아, 실향민을 만든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물품대신 원조 구호물자와 군용물자가 거래되고 광장시장 옆으로 실향민들의 새 삶터인 평화시장, 광희시장, 방산시장, 중부시장 등이 생긴다. 이때부터 동대문과 서울운동장 주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시장동네가 된 것이다.

정부의수출정책으로 평화시장은 의류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고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통해 노동자 인권 운동의 발화점으로, 현재는 전국 최대 규모의 의류전문 패션타운으로 발전되었다.

2008년에는 동대문 운동장을 헐었고 그 자리에 동대문디자인 플라자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지어 현재 운영중이다.

 

서울이 아니었던 동네문 밖, 조선시대 서민들의 삶터는 이제 서울의 한복판이자 외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명소로 변모하였다.

이책에서는 이렇게 서울의 동쪽지역이 어떻게 변화되어왔고 이 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육백여 년동안 사람과 지역의 변천사를 다양한 사료와 그림을 통해 상세하게 보여준다.

1405년 한양천도로 시작된 조선시대부터 2014년 한양도성박물관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개장에 이르기까지 페이지마다 연표로 꼼꼼하게 올려 놓았고 고지도와 기록화, 지형도, 문헌자료나 사진 등의 자료가 풍부해 학습적으로도 볼 것이 많다.

굵직한 한국사의 흐름에 맞춰 당시 우리나라의 문화재와 생활사, 정치 경제사까지 훑어본 기분이다.

참고 문헌자료를 보니 엄청나다. 이 책을 쓰신 전우용님의 노력이 느껴지고 역사적 사실과 관련한 이광익님의 친근한 그림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4학년인 아이와 읽기에 어렵지 않았고 무엇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의 역사가 더 가까이 와닿았다.

 

책에 쓰여진 '사라지는 것, 변하는 것, 되풀이되는 것, 지속되는 것들이 서로 어울려 역사를 만듭니다'는 글에 동감한다.

그런데 개발과 복원이란 이름으로 시행된 청계천 복개공사가 오히려 물길의 흐름과 순환을 고려하지 않아 수질오염이 심각하고 역사적인 유물 유적도 제대로 복원하지 않았다는 글을 보고 안타까웠다.     

일제 강점기는 식민지였던 터라 우리 문화재들이 지켜지지 못했다쳐도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할 우리 역사조차 제대로 지키고 보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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