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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의 재판 ㅣ 옛이야기 그림책 까치호랑이 21
홍성찬 글.그림 / 보림 / 2012년 5월
평점 :
선행과 현명함 사이에서 우리는 망설일 때가 많다.
어려움에 처한 이를 돕는 것은 인정이고 또 우리가 추구해야할 바이지만 상황에 따라 선택을 달리해야 하는 경우도 분명 있다.
옛 이야기 [토끼의 재판]은 그것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다.
함정에 빠진 호랑이를 구해주었다가 잡아먹힐 위기에 처한 나그네를 구해주는 지혜로운 토끼 이야기를 어릴 적 교과서에서 읽었던가..
우리가 잘 아는 토끼의 재판이 이번에 보림의 옛이야기 까치호랑이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책 내용이 주는 교훈 이전에 팔순을 넘은 홍성찬 작가가 쓰고 그린 책이라는 게 더 값지다.
홍성찬 작가의 그림은 까치호랑이 시리즈중 [땅속나라 도둑괴물]과 솔거나라의 [단군신화]에서 먼저 만났는데 요즘에 나오는 그림책의 그림과는 많이 다르다.
사실적이고 치밀한 그림은 한 번 보기만 해도 강한 느낌을 남긴다.
이 책에서도 옛 사람들이 어울려 살면서 서로 의논하고 협동해 일하는 모습이나 여러 가지 사실적인 그림은 옛날 우리 조상들의 생활상을 잘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60년 그림을 그려온 홍성찬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지켜온 철저함이지 싶다.
우리나라 1세대 삽화가이신 홍성찬 작가는 당뇨에 노안이 겹쳐 이 그림책을 한 권을 만드는데 2년이 걸렸다고 한다.
60년간 그림을 그려온 노작가가 공들인 2년, 어릴 적 아버지께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려 한쪽 눈을 감고 작업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니 더 애틋하고 글과 그림 하나 허투루 봐지지 않는다.
요즘 들어 호랑이에게 화를 입는 일이 부쩍 늘자 마을 사람들은 훈장 집에 모여 허방다리를 파기로 의논하였다.
가을걷이가 끝나갈 무렵 마을 사람들은 도르래로 커다란 허방다리를 파 놓았고.. 드디어 그곳에 호랑이가 잡혀 들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보다 먼저 호랑이를 만난 나그네는 호랑이의 울부짖음을 지나치지 못하고 호랑이를 구하게 된다.
지나가던 장끼 한 마리가 호랑이를 구해 주면 분명 잡아먹으려 들것이다 말리기도 하고 본인 스스로도 의심을 하기는 했지만 나그네는 선행을 택했다.
그리고 후회 대신 자신의 행동을 옳다 생각한 나그네는 호랑이에게 다른 이에게 물어 올바른 해결법을 찾아보자 권한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그에게는 스스로 판 허방다리, 함정이나 다름 없었다.
아홉 번을 묻기로 하고 만난 것은 나무와 멧돼지, 닭, 소, 염소, 곰, 여우, 사슴과 토끼..
'사람들 때문에' 다들 아픔이 있던 이들은 거의 하나같이 호랑이에게 나그네를 잡아 먹으라는 판결을 내린다.
그들의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그도 합당한 이유들이고 읽는 동안에 인간의 처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그나마 사슴은 사람과 호랑이 둘 다 자신들의 적이라 하고 드디어 마지막이자 주인공 재판관인 토끼가 등장한다.
허방다리로 되돌아온 이들은 토끼에게 허방다리 일을 자세히 알렸고 토끼는 재판을 제대로 하려면 처음 허방다리에 갇혔던 모습을 그대로 보아야 한다 말한다.
그리고 허방다리로 다시 들어간 호랑이에게 "급하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달콤한 거짓말을 내뱉고, 은혜를 입은 상대에게 오히려 해를 입히니, 너 스스로 말하는 '산속의 왕'이란 형편없는 몸가짐과 보잘것없는 마음 씀씀이를 일컫는구나. 너는 이제 거기에서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고통스러운 마지막을 맞을 것이니라." (본문에서) 라고 말한다.
작지만 당돌하리만치 명쾌한 판단과 조언을 내린 토끼는 나그네에게도 한 마디 더해준다.
"나그네여, 어찌 호랑이를 풀어 주셨습니까? 허방다리를 팠을 때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을 터인데 말입니다."라고 말이다.
극적으로 살아난 나그네를 보자면 덕행에도 지혜와 현명함이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처음엔 살려달라고, 맹세코 나그네를 잡아먹는 일은 없을거라던 호랑이가 은혜를 갚기는 커녕 욕심을 내다 다시 허방다리에 갇히는 걸 보자면 거짓과 교만이 얼마나 위험하고 옳지 않은지를 잘 보여준다.
나그네의 목숨을 놓고 아홉 재판관이 내리는 판결은 매순간 긴장을 고조시키는 거 같다.
그것은 바로 이야기가 주는 재미이자 매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