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의 마음, 신라인의 노래 - 이야기와 함께 만나는 향가의 세계 진경문고
이형대 지음, 신준식 그림 / 보림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얼마 만에 '향가'라는 말을 접한 것인지 모르겠다.
강산이 두 번 변했을 시간을 거슬러.. 천 년 전의 노래를 읽자니 처음엔 엄두가 안나고 공감이 적었다.
그러나 작가가 조언한 대로 그 시대 사람들의 입장에서 세상이나 사물을 바라보고 또 노래에 담긴 생각이나 상상력 그리고 감수성을 느끼자 생각하니 한결 가볍고 흥미로운 기분이 들었다. 
향가는 분명 신라시대의 노래인데 지금은 노래로 부를 수가 없단다.
천여 년 전에 신라인들이 지어 부른 것이 맞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악곡을 잃어버려 지금은 노랫말과 배경설화만 전해지고 있다 한다.
어떤 곡이었을까? 누가 왜 만들었을까?
그것들을 생각하며 작가가 소개하는 향가를 조목조목 만나 보았다.

좀 더 자세히 알게 되고, 되읽게 되면 그 느낌이 새롭다.
'이야기와 함게 만나는 향가의 세계'라는 부제 그대로 이 책은 신라시대의 노래인 향가 12편을 네가지 주제로 나누어 배경설화와 함께 한 편 한 편 꼼꼼하게 일러 준다.
고전 시가를 연구하는 고려대 이형대 교수가 어린 두 딸과 친구들에게 들려주고자 쓰기 시작했다는데...
그래서일까? 글이 무척이나 상세하고 또 구성면에서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그 노래를 부른 이의 마음으로 그 의미를 되짚어보면 과거의 옛노래는 악곡이 없어도 그이의 고민과 슬픈 역사를 담고 다시 살아난다.

이 책에 맨처음 소개되는 <서동요>는 서동요보다 비슷한 주제로 쓰여진 동시를 먼저 소개하며 시작된다.
자기가 접한 현실이 싫다 말하는 어린 아이의 동시를 통해 작가는 서동요 속 서동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이 신화와 민담, 전설의 세요소를 고루 갖춘 신화적 영웅담에 대해서 설명을 이끈다.
아름다운 수로부인을 위해 위험한 벼랑의 꽃을 따다 바치는 노인의 <헌화가>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도 담겨 있다니 흥미롭다.
신라의 향가중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최고로 친숙한 주인공은 아마 <처용가>속의 처용일 것이다.
용의 아들인 처용이 인간세계에 와서 자신의 부인을 탐하는 역신을 만나고 그런 상황에 분노 대신 춤과 노래를 부른다는 내용은 낯설지 않은데 이 책에서는 처용이 그 비범함으로 신앙적인 숭배 대상이 된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잇는다.
샤머니즘적인 처용설화는 불고가 신라의 국교로 받아들여지면서 망해사를 세우게 된 사찰 연기 설화로까지 변하게 되었다 전한다.
신라인들의 정신세계를 이끌던 불교는 향가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현세의 어려움과 고달픔에서 벗어나 극락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상 <원왕생가>나 수행을 다룬 <우적가>가 있고 월명사는 누이를 잃은 슬픔을 표현한 <제망매가>와 재앙을 물리치는 <도솔가>를 짓기도 했다.
그리고 <도솔가>의 이야기에서는 하늘과 땅의 질서가 일치한다고 믿은 신라인들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한다.
신라인들은 향가를 노래로 부르면서 사사로운 자신의 감정을 노래하기도 했고 그 신비력을 믿어 귀신이나 액운을 막기 위해 주술적인 의미로도 지었다 하는데 융천사가 지은 <혜성가>가 그것이란다.
그리고 읽다보니 향가에 빠지지 않는 것이 우리가 아는 화랑도이다.     
이 책에 소개된 향가중 <혜성가>, <찬기파랑가>, <모죽지랑가>에서 화랑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었다.
유교, 불교, 선도를 종합한 풍류도로 출발한 화랑이 <혜성가>에서 그들이 전투를 담당하는 집단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에 있었다면 <모죽지랑가>와 <찬기파랑가>에서는 삼국통일 이후에 역할을 잃고 사라져감을 보여준다.
배경설화 말고도 작가가 구절을 끊어 상세히 들려주는 설명을 읽다보니 <찬기파랑가>가 지닌 상징과 비유가 새롭게 와닿았다.
불교의 이상향을 상징하며 신라의 아름다운 역사를 간직한 줄 알았던 불국사가 정작 신라인들의 고된 노동과 착취 결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백성을 어려움에 빠뜨린 장본인 경덕왕이 어지러운 국정을 달래고자 직접 충담사에게 <안민가>를 짓게 한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향가를 어떤 믿음처럼 노래한 신라인들의 간절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문학작품에는 그 시대상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신라인의 마음, 신라인의 노래]는 제목에서처럼 향가는 신라인들의 마음은 물론 당시 신라인들의 초현실적인 세계관과 시대상 그리고 그들의 정신세계와 종교 등을 보여준다.
21세기 지금으로선 황당하고 허구같은 이야기들이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삶이었겠다 싶다.
교과서의 단편적인 내용과 해설이 아니라 향가마다에 담긴 이야기에는 사람들의 소망과 기쁨이 담겨 있어서 문학적인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역사를 이해하게 되고 내가 알지못하던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즐거움이 컸다.
우리 역사에 관심 갖거나 공부를 시작하는 아이들이 함께 읽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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