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탄 나무토막 같구나, 아스케 보림문학선 8
레이프 에스페르 안데르센 지음, 김일형 옮김, 울리치 뢰싱 그림 / 보림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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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바이킹시대는 하룻밤새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는 혼란의 시대라고 해도 옳겠다.
평화로운 무역과 거래가 있기도 했지만 약탈과 침범, 강제와 혼란이 많았던 때. 나보다 강한 자에게 잡히면 한순간 내 신분은 노예가 되고 절대권력은 다시 절대 복종의 위치로 바뀌어졌다.
수백년 동안 당연시되었던 바이킹시대 생존의 법칙,, 그 부당함과 안타까움을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불에 탄 나무토막 같구나 아스케]이다.

남자 어른들이 바이킹 항해를 떠나고 여자와 아이들, 노예만 남은 섬에 다른 바이킹족이 쳐들어온다.
순식간에 일어난 기습으로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끌려가고 섬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모든 것이 불태워진 다음 날 섬에는 족장의 아들 안과 노예였던 아스케만 남았다. 
아무도 없이 둘만 남은 섬에서 안은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 자연스레 아스케를 자신의 노예로 생각하고 아스케를 시켜 음식과 집을 해결하려 하지만 아스케는 안의 태도에 슬슬 화가 난다.
하지만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에 길들여져 반항하기가 어렵고 그런 생각이 상상조차 해서는 안될거라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다.
우연히 창고에서 창과 도끼를 찾아온 아스케를 보고 안은 자신보다 아스케가 더 힘이 세고 강하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한다. 
아스케가 찾은 창과 도끼는 아스케에게는 그저 생존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지만 안에게는 생존에 대한 위협이었던 것이다.
둘만 남은 섬에서 어쩌면 안에게 아스케는 마을과 집을 태우고 가족을 데려간 바이킹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을 것이다.
이런 긴장감 속에 안은 자신이 자유인이고 아스케가 노예라는 변함없던 사실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운명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지금껏 살아온 것과 다른 방식을 택하고.. 차츰 노예와 자유인이라는 둘 사이에 벌어진 틈이 사라져간다.
그리고 도끼와 창은 그들에게 더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돛을 자르고 집을 짓고 사냥을 하는 데 쓰는 단순한 도구로 남고 서로 도와가며 여름을 지나는 동안 이들에겐 동지애를 넘어선 우정같은 것이 싹튼다. 

책 제목이자 이 책의 주인공 노예 이름이 바로 아스케다.
원래 아스케에게는 자신의 이름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바이킹의 기습으로  이긴자의 섬으로 끌려와 노예가 된 뒤로 아스케에게는 5년 전의 이름과 삶이 송두리째 잊혀졌다.
단지 끌려온 섬의 사람들보다 검고 머리가 곱슬거린다는 이유로 누군가 불에 탄 나무토막 같다고 아스케라 불렀기 때문에 그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어디 이름 뿐이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본질의 것을 잊고 절대 복종을 해야 했지만 아스케는 안과 함께 둘만의 여름을 보내는 동안 새로운 꿈을 꾼다.
족장이 되는 것보다 노력을 해서 대장장이가 되고 싶다던 아스케는 대장장이 일을 배워 처음 안을 위한 칼을 만들어 선물한다.
그리고 안에게 스스로를 지켜야 할 때 혹은 자신이 해치려 할 때라도 그 칼을 꺼내 쓰라고 말한다.
두려움과 편견이 가득했던 둘 사이에 흐르던 긴장감이 완전히 사라지는 대목이다.
어른들이 없는 여름동안,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함께 하며 안과 아스케는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신분이란 굴레를 완전히 던져 버리고 성장해 자라고 있다.

노예가 가질 수 없는 무기, 그러나 이제 더이상 안에게 아스케는 노예가 아니다.
이 섬의 대장장이가 될 것이고 최고의 친구로 또 자유인으로 남을 것이다.
모든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도 아스케에게는 자유가 올것이라 말하는 안!
둘 사이에 끼는 어떤 칼도 어떤 기습과 폭력과 힘도 이들에겐 더 이상 두렵지 않은 것들이다.
돈과 권력이 신분을 만드는 시대가 바이킹시대로 끝이었을까?
힘과 권력으로 약한 것들을 옭아매고 보이지 않는 칼로 약한 것들을 베어버리는 게 많은 세상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강한 힘과 권력, 모순된 제도보다 더 중요하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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