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꿈 - 14세에 남장하고 금강산 오른 김금원 이야기 진경문고
홍경의 지음, 김진이 그림 / 보림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책을 통해 역사를 알고 과거에 살았던 누군가를 만나 그이의 삶을 작게나마 느껴볼 때가 있어요.
그다지 익숙치 않은 이름.. 김금원
'14세에 남장하고 금강산 오른 김금원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책은 조선시대 여류 시인 김금원의 금강산 기행문 [호동서락기]를 바탕으로 그녀의 일생을 조명하고 그녀가 보고 느끼고 써온 글과 그녀의 글벗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책머리에서 그녀의 이야기가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에게서 어머니, 그리고 오늘 딸들에게까지 이어지는 오래된 꿈인지도 모른다 말하고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 열네 살에 내가 가졌던 꿈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
열네 살, 지금이라면 친구들과 어울려 가요를 흥얼거리며 재잘재잘 수다가 즐거울 때!
금강산으로 발걸음한 그녀의 첫 발이, 그리고 부모의 걱정은, 기대와 믿음은 어떠했을까?
남장을 하고 여행을 하는 동안 그녀의 마음엔 어떤 그림이 그려졌을까?
20여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내 열네 살은 어떠했던가! 나에게도 어떤 꿈과 바램이 있었던가? 돌아보게 합니다.

금원에게 글자는 도공의 진흙이요, 시는 잘 빚어 놓은 도자기와 같았다.
글을 깨치면서 세상을 보기 시작한 금원에게 시는 세상으로 열린 창이자 자기가 느낀 세상을 담아내는 그릇이었다.
  (p.23)

엄격한 신분 차별이 있던 조선시대, 기생 첩의 자식으로 자란 김금원은 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조차 없었어요.
하지만 아버지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 글을 알아간 김금원은 가족이 함께 시를 주고 받으며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기면서 시를 통해 세상을 알아가고 시를 통해 자기 속 세상을 표현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겸재 정선의 '단발령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다'라는 그림을 보게 된 금원은 그후로 금강산에 관한 그림과 유람기, 시 등을 찾아 보고 읽으며 금강산을 꿈꿉니다. 그리고 '여성도 성인이 될 수 있고,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임윤지당의 말과 '여자도 능히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또 능히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강정일당의 말을 새기며 금강산 여행을 실행에 옮기게 되지요.
그녀는 그림과 글을 통해 상상하던 바다를 직접 보고 그 감동과 벅참을 시로 남겼고 작가는 금강산에 오르는 동안 그녀가 본 것은 산과 바다만이 아니라 홀로 나와 선 자기 자신과 만나게 되었던 것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녀의 가슴에 바다보다 더 큰 세계관과 세상을 향한 자신감이 들어찼겠지요.
그러나 글을 알고 세상의 이치를 깨치고 자신의 재능이 세상에 쓰일 수 있기를 바라던 금원의 소망이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조선시대!  
그녀의 오랜 꿈은 결국 자신의 신분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기생 출신인 어머니에 이어 기생이 된 금원은 '금앵'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지요.
하지만 여행중에 쓴 시를 통해 자신의 시적 재능을 인정받고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게 된 그녀는 다시 희망을 갖게 되고..
김덕희의 소실이 되고 그를 따라 새로운 지방 의주로 떠났다가 서울로 돌아온 금원은 어릴 적 동생 경춘과 시를 읊던 비단마당이 그리워 삼호정을 새로운 비단마당으로 만들고.. 글벗들과 시모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앞서 살다 간 여성들이 대체로 자신의 글을 남기는 것을 꺼렸던 것과 달리 금원은 금원이라는 한 인간이 살다간 흔적을 남기고자 자기 이야기와 여행과 감상 그리고 자신이 읊었던 시들을 기록한 '서동호락기'를 그녀 나이 서른 넷, 1850년에 완성합니다.

[오래된 꿈]은 김금원, 그녀의 출생에서부터 금강산을 비롯한 동해안과 서울등지의 여행기록, 그리고 금원의 한시와 마음을 나눈 글벗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의 한시까지.. 180여년 전 과거를 살다 떠난 우리 여성들의 삶과 그들의 꿈과 이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느꼈던 감상음을 절제된 운율로 표현한 김금원의 시, 그리고 그녀보다 먼저 살다간 이들 - 송덕봉, 허난설현, 고모 기각 - 의 시가 그녀에게 세상으로 나가는 첫걸음이었다는 것이 인상적이고 그들의 시가 함께 실려 있어 금원을 이해하기에 도움이 됩니다. 
책을 읽으며 그녀가 동생 경춘과 마주하며 시를 읊던 비단정원도 보였고 그녀가 여행하며 감탄한 금강산과 글벗들과 시를 읊던 삼호정의 흐르는 강물이 보이는 듯 합니다.
그 시대를 살다간 여성들의 탄식과 안타까움, 이제껏 알지 못하던 여류시인들과 그들의 마음이 스며든 글들, 책에 실린 인물과 그에 관련한 책 소개까지 순 한문으로 이뤄진 호동서락기에서 김금원의 일생을 재구성한 작가의 노고는 그녀를 향한 애틋함과 애정에서 출발했음이 느껴집니다.

아아! 천하의 강산은 크기도 하다. 우리 땅 모퉁이를 보고 천하를 보았다고 하기는 어렵다. 해와 달의 오랜 세월에 비하면 백년을 사는 인생도 부족하다. 그러나 모퉁이 작은 땅으로도 천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백년의 세월로도 고금의 세월을 알수 있으니, 어찌 강산의 크고 작음과 세월의 오래되고 짧음을 논할 것인가. - <서동호락기> 중에서 (p. 170)

금원 그녀가 '호동서락기'를 통해 자신의 꿈과 마음을 글로나마 표현하고 시대를 거슬러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네요.
발그레한 볼에 남장을 하고 산 글자를 오르는 김금원의 모습이 실린 표지를 보며 1830년, 그녀를 상상해봅니다.
가냘픈 나비처럼 살아야 했던 조선시대 한 여인! 그러나 그녀가 밟은 세상과 그녀가 꾸었던 꿈들은 산같은 크기로 오롯이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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