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빌딩 숲 뒤의 작은 집, 문이 꼭 닫힌 인기척 하나 없는 집이 책표지에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표지를 펼치면 열린 창문으로 요리를 하는 아저씨와 평상에서 노는 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누군가 그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다음 장에는 열린 창으로 살짝 얼굴을 내민 아이와 자질구레한 살림이 많은 마당이 보여요. 그리고 그 그림을 설명하기라도 하듯 새로 이사온 준범이네 그리고 이웃한 집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시장 골목 낮은 집에 준범이네가 이사를 했습니다. 다닥다닥 붙어 있어 창 너머로 앞집의 마당과 집 안까지 다 잘 보이지요. 미용실 공주네집, 늘 동생때문에 야단을 맞는 슈퍼 충원이네집, 하루종일 맛있는 냄새가 나는 강희네 자장면집.. 그리고 항상 뭐든지 같이 하고 같이 노는 이 세 집의 꼬마 아이들까지..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준범이는 할머니가 일 나가 계신 동안 혼자 텔레비젼을 보거나 창밖을 바라보거나 하며 방안에서만 지냅니다. 나가지 말고 집에서만 놀라고 하신 할머니 말씀대로 따르는 어리고 순한 아이지요. 그런데 어느날 준범이에게 강희가 먼저 같이 놀자고 손을 내밀어요. 하지만 준범이는 자기 속마음과는 달리 싫다 말하며 모습을 감춥니다. 이내 다시 창문으로 다가와 마당을 기웃거리는 준범이의 뒷모습.. 그때 "준범아 노올자"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준범이가 바라보던 창문으로는 강희네집 맛난 자장면이 들어옵니다. 금새 어울려 함께 먹고 함께 떠들며 신나게 노는 아이들.. 그 속에 이제 준범이가 있습니다. 그림과 글.. 모두 아련하고 따뜻합니다. 아니 가슴 속까지 훈훈해진다고 해야할까요.. 이 책은 [우리 가족입니다]를 쓰고 그린 이혜란 작가의 작품인데요.. [우리 가족입니다]가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모시는 아버지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보여주었다면 이책은 준범이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강희를 통해 이웃간의 소통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보여줍니다. 이 책은 읽고 나서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하는 말이 마음에 맴돌았어요. 준범이가 또래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이사해 친구들을 사귀게 된 것도 그렇고 친구들이 찾아와 문을 먼저 연 것도 그렇고 또 이웃에 사는 아이들이 준범이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도 그렇습니다. 요즘은 놀이터에 나가도 함께 어울려 놀 아이를 만나기 어렵고 문을 활짝 열고 함께 어울려 지낼 이웃을 만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덩달아 아이들도 어울려 놀 기회나 친구와 마음을 나눌 시간조차 만들기 어렵지요. 소박한 이웃들의 모습, 아무런 거리낌없이 한데 어울려 노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들이 참 정겹습니다. [우리 가족입니다]도 그렇고 이 책도 흙백의 연필 그림은 마음을 편하게 하는 매력이 있어요. 마치 오래 전 흑백 사진을 꺼내 볼 때처럼 우리 이웃이나 우리네 삶의 부분부분을 충실히 보여주고 그러면서 우리가 지나온 시간이 손에 닿을 듯한 느낌입니다. 혹여 글이 없더라도 이야기를 짐작해 볼 수 있을 만큼 그림마다에는 작가가 보여주고 들려주고팠던 이야기들이 느껴져요. 복작거리는 강희네와 충원이네 그리고 공주네 집 그리고 그 앞집 준범이네 집이 들여다 보이는 작은 그림, 일 마치고 오신 할머니께 씩씩한 모습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준범이, 그리고 슈퍼 앞에서 요구르트를 먹고 있는 할머니와 아이들의 모습에서 글로 만나지 않은 다른 이야기들을 짐작케 됩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입니다]를 읽으면서도 그림책이 비단 아이들을 위한 것만이 아님을.. 어른들이 읽으면 더 좋겠구나 싶었는데 이 책 또한 그래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다른 것을 보고 또 달리 느낄지 모르겠지만 서로 어울려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내 주변의 다른 이웃을 들여다 보며 다른 이의 마음을 이해하며 정이 무엇인가도 스스로 느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