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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아 내 형제야 ㅣ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79
간자와 도시코 글, G. D. 파블리신 그림, 이선아 옮김 / 보림 / 2010년 10월
평점 :
나는 시베리아의 숲에서 태어난 사냥꾼이다.
내 옷은 사슴 가죽, 내 신발도 사슴 가죽.
옷도 신발도 사슴의 다리 힘줄을 실 삼아 꿰매었다.
나는 사슴고기를 먹는다.
그것은 내 피와 살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사슴이다. (본문에서)
처음 읽으면서는 시베리아의 숲과 강, 자연 속에서 사슴을 사냥해 살아가는 시베리아인들의 생존기일거라 생각했는데 읽을수록 사람과 자연사이의 깊은 관계와 엄숙함을 느끼게 되네요.
어떤 장소나 사물, 누군가에 대해 그것을 떠올려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시베리아의 한 청년이자 사냥꾼이 화자가 되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그들이 사는 대자연과 가족, 생존에 관한 방법들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위의 글이 쓰여진 첫 페이지에선 총을 든 시베리아 천년과 커다란 사슴이 대칭적으로 서 있는 그림인데요..
사냥을 하는 사람과 사냥을 당하는 동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공존을 하는 자연, 그리고 사람과 자연 사이의 깊은 성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문화란 것이 한 세대 한 세대 계속해 이어지는 것처럼 시베리아에서 태어난 청년은 그의 할아버지로부터 또 아버지로부터 사슴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합니다.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랬듯 청년으로 자라 가정을 이루고 사슴을 사냥해 가족을 부양합니다.
조각배를 저어 시베리아 강을 거슬러 가는 동안 그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기도 하고 사슴을 사냥하는 과정, 그리고 자신이 살아갈 미래에 대해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담담하고 경건하게 그 이야기를 들려 주는데 그 이야기는 어떤 대화나 설명글이 아니라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시적인 글들로 쓰여져 있어요
사슴이 쓰러졌다. 네 다리를 하늘로 쳐들고서.
내 형제, 이 숲에서 나고 자란 훌륭한 사슴아.
나는 무릎 꿇고 앉아 단도로 털가죽을 벗긴다.
네가 입고 있던 외투를 벗긴다.
뼈를 단 한개도 부러뜨리지 않고 살을 발라낸다.
고맙다, 내 친구, 내 형제야.
나는 이제 너를 조각배에 싣고 집으로 돌아간다.
사슴아, 내 아름다운 형제야.
네 영혼은 숲의 신령에게 돌아가
그 곁에서 편히 쉬다
다시 이 숲으로 돌아오겠지.
다시 내 앞에 모습을 나타내겠지. (본문에서)
총부리를 입에 대 암사슴의 울음을 흉내내 사슴을 유인하고 결국 총을 쏘아 사슴을 사냥하지만..
사냥에 대한 기쁨이나 보람 대신 그는 자신에게 털가죽과 고기를 내어준 사슴에게 감사와 영혼에 축복을 빌어주고 있어요.
생존을 위한 사냥이 잔혹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사슴을 찬양하고 존경하는 엄숙함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했구요.
책을 읽다보니 처음에 자신이 사슴을 먹었고 그것이 피와 살이 되었기에 자신이 곧 사슴이라고 말하던 사냥꾼의 말이 생각나더군요.
비단 사슴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잊고 사는 대자연의 이치 그리고 인간의 삶이 자연의 한 일부임을 되새깁니다.
시베리아의 숲에서 사냥을 하는 한 청년은 그렇게 우리에게 자연의 소중함과 찬양을 말하고 싶었던거 같습니다.
그림에서는 그가 이야기 하는 것들과 그가 보는 것들을 동시에 만나게 되는데요..
'삐칫 삐치치', '쏴아아 쿠르릉 쿠르릉', '뽀글 뽀그르르', '보오 보오오 비우 비오오우'
책 읽기를 하는 동안 새소리, 물소리, 그리고 해질 무렵의 바람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표현말들이 생생하고요.
그림 또한 무척이나 섬세하고 사실적인데다 또렷해 그림과 글이 모두 특별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땅 시베리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과 식물군락, 그리고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의 모습이 아이들에겐 많은 볼거리를 주더군요.
시베리아의 숲과 나무, 화려한 문양의 옷, 긴 조각배, 젖을 먹이는 아내와 어린 아기, 두터운 목을 가진 사슴들의 몸짓과 표정, 표범과 뱀 등 그림을 보느라 책장을 쉬 넘기지 못하고 기다려야 했어요.
속지 그림을 시작으로 매 페이지 한 장 한 장 섬세한 그림들은 아름답다는 느낌이 남아요.
아름다운 그림이 있는 그림책.. 그림들이 오래 기억남는 그림책이 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