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이 넓은 빨간 모자와 시원한 푸른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빨간 구두를 신고 서 있습니다. 다섯 살 우리 딸내미를 이렇게 입혀놓는다면 아마 가만 있지 못하고 팔랑팔랑 공주처럼 춤을 춘다 할거 같은데요... 이 산뜻한 모습은 제 눈만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이 예쁜 빨간 모자를 봄이도 제일 좋아한다는군요. 그런데 지나가던 바람이 세게 불면서 봄이의 모자가 날아가 버립니다. 모자는 계속 날아가고 당황한 봄이는 허둥지둥 모자를 쫓고 또 쫓습니다. 화가 난 봄이가 "바람 따위는 없어졌으면 좋겠어!” 하고 소리를 지르네요 순간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마법처럼.. 봄이의 말대로 바람이 멈췄거든요. 그런데.. 모자를 찾은 기쁨도 잠시 봄이의 눈에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바람이 부는 동안 신나게 연날리기를 하던 곰들은 연날리기를 못해 슬퍼하고 방아를 찧으려고 기다리던 사람들은 풍차방앗간이 멈추자 방아를 찧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바람이 멈추자 마을도 멈추고 배도 멈추고.. 모든것들이 멈추었어요. 아이는 모자를 벗고 금방이라도 울듯이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습니다. 그러다 봄이는 작은 목소리로 다시 속삭이지요. "바람아...... 미안해. 네가 필요해" 다시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리고 아이는 이제껏 알지 못했던 바람의 고마움을 느끼며 팔을 벌리고 아주 뿌듯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서서 바람을 맞고 있어요. 맑고 깨끗한 색과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느껴지는 이 그림책은 보림창작그림책 공모전 수상작이라고 합니다. 아주 적은 글이지만 봄이의 표정과 행동을 통해 봄이가 보고 느끼는 것들을 짐작해 볼 수 있겠더군요. 아이들은 자기중심으로 쉽게 생각하고 쉽게 말하면서 그것이 다른 이들에겐 어떤 영향을 미칠까는 생각하기 어렵지요. 봄이도 정작 바람이 멈춘 후에야 이제껏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른 사람들의 삶, 마을과 배.. 자기의 개인적인 행복보다는 여러 수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바람에게 먼저 사과를 건네는 봄이는 그럼으로써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는걸 알게 됩니다. '말 한 마디에 세상이 바뀐다면..' 하는 것처럼 아이들과 '~하지 않으면'이라는 즐거운 상상도 해볼 수 있겠고요.. 우리 생활 속에서 바람이 불면 일어나는 현상들을 이야기 나눠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산뜻한 수채화빛 옷을 입은 봄이와 살랑거리는 머릿카락 그리고 넘실거리는 풀잎사귀를 보면서 따스한 봄느낌이 났는데 시원하게 불어와 살갗에 닿는 느낌, 그리고 살풋이 부는 바람소리가 느껴지는 거 같아요. 빨간모자를 쓴 소녀와 바람 그리고 바람에 넘실거리는 푸른 풀밭.. 파스텔톤의 맑은 색들과 산뜻하고 섬세한 그림을 보며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상상해 보는 재미를 주는 책 [바람이 불지 않으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