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 시즈카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다시마 세이조 글.그림, 고향옥 옮김 / 보림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 그림책을 읽다가 특별한 공감을 더할 때가 있어요.
저도 어린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슷한 경험을 한 내용에는 왠지 모를 친근감이 마음에 와닿더라구요. 
마당 한쪽에 있는 닭과 토끼장, 느른하게 대문 앞을 지키는 개가 있는 시골집..
그런데 어느 날 까만 염소 한 마리가 우리집 가축의 무리에 끼었습니다.
주말마다 토끼장 청소를 맡았던 오빠는 숙제가 또하나 늘었다며 불퉁거렸지요.
학교에 가기 전 염소를 동네 풀밭이 있는 곳에 매어 두었다가 저녁 무렵엔 집에 데려와야 하는 일을 맡았기에 한참 놀기 좋아하던 때 그게 숙제라면 숙제였어요.
그런데 학교에 일찍 가야하는 날이나 뭔가 꼬인 날에는 그 일을 저한테 슬쩍 넘기곤 해서.. 염소 말뚝을 잡고 어디다 매어둘지, 말뚝이 박히지 않을 때나 힘이 세진 염소에게 제가 끌릴 땐 속이 상해 울기도 퍽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엔 염소가 무서워 가까이 가지도  못했는데, 본의 아니게 함께 다니면서는 좋은 풀이 있는 곳으로 매어주고 싶고 더울 땐 물도 챙겨주고..  또 새끼를 낳았을 땐 얼마나 신통방통한지 새끼 젖물리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어요.
사실 염소는 사람을 잘 따르는 것도 아니고 생김새가 좀 멍텅구리해 보여서 정이 안가는데 새끼염소는 폴짝거리는 모양이 얼마나 귀엽던지.. 한 번 안아볼라고 쫓아다니던 기억이 선명하네요.



나호코네 집에도 어느 따스한 봄날 하얀 아기염소가 옵니다.
귀여운 아기염소와 나호코는 금세 친해졌어요. 
그런데 끈을 묶어두지 않아도 멀리 달아나지 않고 나호코 주변에서만 폴짝거리며 뛰놀던 염소가 강건너 할머니 할아버지 집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그리곤 밥상 위에 올라가는 것도 모자라 엄청난 양의 똥 세례를 퍼붓기도 하지요.
아, 이런 난감함이란!!!
어린 나호코는 어찌할 줄 몰라 엉엉 눈물을 쏟고 마네요.
이제 아기 염소에게 목줄이 매어지고 시끄럽게 계속 울어대는 염소에게 가족들이 "조용!" 이라 말하다 보니 '시즈카'란 이름이 지어졌어요.
'시즈카'는 일본어로 조용함, 고요함이라는 뜻이라는군요.

풀이 자라는대로 다 먹어치우는 시즈카는 쑥쑥 자라고 여름이 갈 무렵엔 힘도 더 세어졌지요.
그리고 시즈카는 어른염소가 되어 결혼을 하고 슬슬 배가 불러옵니다.
기껏 추운 겨울산을 돌며 풀을 뜯어 왔는데 시즈카가 자기 배를 들이받자 나호코는 시즈카가 밉습니다.
그래도 새끼를 낳느라 시즈카가 큰 소리로 울 때는 맨발로 시즈카가 있는 언덕 위를 향해  달려가네요.
가까이서 바라보는 생명탄생의 경이로움이란 어떨까요.. 
나호코의 가족은 시즈카의 첫 출산을 함께 하며 기뻐합니다.
시즈카가 엄마염소가 되고선 새끼를 향한 사랑을 유감없이 보여주네요.
천방지축 말썽꾸러기였던 바로 그 시즈카가 말이죠.
우리 안도 깨끗이 하고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우고 아기염소가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아요.
그리고 한 밤의 불청객을 일방의 박치기로 잡는 놀라운 힘도 보여 줍니다.
풀을 먹기 시작한 아기염소는 옆 동네 큰집으로 떠나 보내고 시즈카의 젖은 이제 가족의 몫이 되었어요.
하지만 요령이 없는 아빠가 시즈카의 젖을 짜기란 순조롭지 않았어요.
시즈카의 뒷발질에 벌렁 쓰러기지고 하고 뒷다리를 꽁꽁 묶었을 땐 시즈카가 날뛰고 꼼짝 못하게 묶어 놓았을 땐 시즈카가 우유통에 발을 담가 버렸거든요.
강 건너 할아버지 댁의 양배추밭과 표고버섯, 토마토 밭에 들어가 포식한 시즈카의 배가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어요.
사고뭉치 시즈카때문에 이제 막 구운 과자를 하나도 먹지 못했지만 한가족이라 모든 것이 용서됩니다.

나호코의 집에 온 하얀 아기염소 시즈카가 가족과 친해지고 또 자라 어른 염소가 되어 새끼를 낳고 헤어지는 경험등을 하며 겪는 여러 일상을 일곱 가지 이야기로 보여주고 있어요.
'시즈카'는 봄에 우리 집에 온 염소랍니다. 이 그림책은 아기 염소 시즈카가 엄마 염소가 되기까지의 이야기예요.
모두 정말로 있었떤 일을 바탕으로 만들었답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책은 시즈카와 우리 가족의 그림일기라고 할 수 있지요.
라 한 작가의 말처럼 한 가족과 염소 시즈카의 일상은 무척 친근하고 소소하게 보여집니다. 
책의 맨 뒤엔 다시마 세이조 작가가 쓴 작가의 말이 있는데 그는 실화를 바탕으로 거짓말도 조금 섞어 이 그림책을 만들면서 인간과 함께 사는 가축, 그리고 자연과 생명, 이별과 일상에 대해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는군요.

나호코가족과 시즈카의 일상을 보면서 옆에서 지켜보는 듯 또 웃으며 볼 수 있는 것은 페이지 가득 그려진 다시마세이조의 그림때문이에요.
백두산이야기를 쓴 류재수 작가는 이 그림책을 그의 반세기에 걸친 창작 여정 가운데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 세계가 한창 무르익는 시기의 작품으로 그의 호방한 기질이 유감없이 드러나 있는데, 유니크한 화면의 구조와 역동적인 데생, 거기서 느껴지는 소박함과 천진스러움, 그리고 슬그머니 미소짓게 하는 유머 등 앞으로 전개될 그의 모든 작품의 특징이 집약된 밀도 있는 그림책이라 평하고 있어요.
정말 그림책을 보고 있노라면 역동적이고도 두터운 그의 힘있는 붓그림 그리고 미화나 군더더기 없는 소박한 그림 속에 아이가 그린 듯 천진스럽고 간소한 사람들의 모습과 표정이 눈에 띕니다.
두터운 유화그림들 중에는 그림책속의 그림으로 뿐만 아니라 풍경화로 표구를 해두어도 좋겠단 것도 있고요..
[뛰어라 메뚜기]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가 철학적이고 어려운 사람이라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는 그가 장난기 많고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시즈카와 함께 봄부터 겨울까지 일 년을 보내고 또 다음해 여름을 맞는 동안 나호코가족은 시즈카와 함께 많은 일을 경험합니다.
울며 웃고 행복해하고 또 난처했던 여러가지 사건사고들,,
우리 아이들이 쉽게 경험해 보지 못할 일상이지만 그림일기처럼 가득 채워진 페이제에서 공감과 웃음을 얻습니다.
시즈카 뿐만 아니라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사는 동물들은 우리에게 그들의 생활을 보이며 마음을 나누게 되는데 하얀 염소 시즈카를 통해 따스한 그들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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