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두산 이야기 ㅣ 보림 창작 그림책
류재수 지음 / 보림 / 2009년 8월
평점 :
어릴 때부터 매년 연말연시에는 육남매인 엄마형제 일가가 모두 모여 놀았다
그때 외갓집에 놀러가면 맛있는 별미나 색다른 놀잇감도 좋았지만 큰 언니들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가 넘 재미나 외갓집 가는 즐거움이 컸다
언니 중에 누가 옛날이야기를 해주겠다 하면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우르르 이불 속으로 모여들고 모두가 귀를 기울여 주위는 조용해졌다
"옛날옛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하고 시작되는 이야기들
참이지 거짓인지 몰라도 이야기에 흠뻑 빠져 우리 모두 때론 가슴 졸이고 때론 깔깔 웃어대고.. 아마도 공감이란 걸 그때 경험했지 싶다
'까마득히 먼 옛날, 세상이 처음 생겨날 때는' 하고 시작하는 옛날 이야기,
[백두산 이야기]는 오래 전에 듣던 옛날 이야기처럼 구수하고 실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짜같은, 백두산 탄생 설화를 다룬 류재수 작가의 그림책이다
세상이 처음 생겨날 때는 하늘과 땅이 서로 맞닿아 어우둔 기운의 소용돌이만 가득했다
맑은 기운의 하늘과 탁하고 무거운 기운의 땅, 그리고 세상에는 짐승과 사람이 생겨나 마을을 이루어 살기 시작했는데, 너른 만주 벌판에 마을이 모여 세운 나라가 바로 조선이다
세상이 처음 생길 때는 해와 달도 두 개씩이어서 낮은 너무 덥고 밤은 또 너무 추워 농사를 짓기 어려워졌고 사람들은 하늘에 도와달라고 빈다.
흑두거인이 나서서 해와 달을 하나씩 없애려고 했지만 실패하여 천지왕의 야단을 산다
결국 천지왕이 부른 백두거인이 천근 활과 화살로 해와 달 하나씩을 쏘아 바다로 떨어뜨리고.. 이를 계기로 흑두거인은 백두거인을 시기하게 되었다
세상은 살기 좋아지고 천지왕은 아들 환웅왕자를 내려보내 조선의 임금이 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백두거인을 시기한 흑두거인은 이웃나라까지 부추겨 조선을 침략해 전쟁을 벌인다
용으로 변한 흑두거인과 흰 호랑이로 변한 백두거인의 싸움은 백 일이나 이어지고 결국 흑두거인이 쓰 러진 곳이 넓은 사막이 되면서 싸움은 끝났다
"나는 영원히 너희 곁에서 너희를 지킬 것이다.
언젠가 커다란 재앙이 올 때 나는 다시 깨어날 것이다."
긴 싸움에서 기운이 빠진 백두거인은 조선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본문 내용 중에서]
싸움에 지친 백두거인은 다시 재앙이 닥치면 돌아올거라 하며 깊은 잠에 빠진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거대한 산으로 변하는데 사람들은 그 산을 '백두산'이라고 불렀다
오랫동안 평화롭던 조선에 다시 가뭄과 흉년이라는 재앙이 닥쳤다
백두산의 전설을 생각한 사람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며 흥겨운 기우제를 지내게 되고 천둥과 번개가 백두산 꼭대기를 내리치더니 비가 퍼붓기 시작한다. 이때 백두산 꼭대기에는 커다란 호수가 생겼는데 이를 '천지'라 부르고 천지에서 넘친 물은 강이 되어 사방으로 흐르고 가뭄 걱정도 사라진다
그 후 사람들은 항상 백두산을 기억하게 되었고 재앙이 닥쳐 왔을 때 백두산이 다시 깨어나리라 믿게 되었다
백두산은 단군이 탄생한 산으로서도 성스러운 뜻을 담지만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은 우리나라의 다른 산들의 근본이 되는 산줄기로 이어지기에 더 신성시된다
절대적인 힘을 가진 해와 달을 없애고, 전쟁으로부터 때론 극심한 가뭄과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을 구해 살피는 백두거인과 백두산 이야기는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검붉은 용암이 흐르는 것처럼 붉은 듯 하면서도 칠흙같이 까만 태초의 세상, 태양을 활로 쏘는 거인의 굳센 주먹, 호랑이와 용으로 변신해 싸우는 두 거인의 그림자, 잠든 거인의 모습등 류재수 작가의 그림은 책 속의 글을 다시 보여주는 듯하다
살기 좋고 평화로운 조선의 땅에서는 사람들이 사냥을 하거나 소를 몰아 농사를 짓고 나무아래서는 바둑을 두거나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들과 뛰노는 아이들도 보인다. 아이와 함께 숨은 그림찾기를 하듯 사람을 찾아봐도 될 만큼 그림이 간단한 듯 하면서도 다정하다. 그리고 책 표지에서처럼 호랑이 탈을 쓰고 흥겹게 노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민화처럼 익살스러움도 묻어난다
전체적으로 이 그림책은 강렬한 색채와 거칠고 투박한 질감, 거침없는 붓칠로 역동적인 힘이 느껴지는데 그건 아마도 백두산에 대한 우리의 자긍심이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단군신화]를 종종 읽던 터라, 이 책에 잠깐 나오는 천지왕과 환웅 왕자 부분에서 단군신화에서 읽었던 곰 이야기를 하며, 이때에 백두거인이 살았던거라 말해주었더니 호기심이 동한다
사람들이 강과 바다에 주로 모여 살게 되었을 때 그 강물이 백두산의 천지물에서 흐른 물이었다고 엄마표 구전설화를 만들었더니 믿는 눈치이기도 하다
아마 좀 더 자라면 (혹은 초등 중학년 이상이라면) 책을 보면서 고조선의 역사와 고조선 사람들의 삶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옛날옛날에~' 하고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보다 더 오래된 옛날 이야기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백두산의 탄생설화가 아이들에게는 멋진 백두거인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고 언제 한번쯤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래 기억에 남는 옛날이야기 한 편이 될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