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세월 무덤 속에 잠들어 있던 살인.
클래식 추리소설의 잃어버린 보석,
세기를 넘어 우리를 찾아오다.
"드 볼터 가족의 사진들이 있답니다. 아버지와 아들, 딸들이
말을 타고 있는 사진, 보트를 타고 있는 사진, 그리고 잔디밭에
모두 함께 앉아 있는 사진들 ···, 심지어,"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메리 데이질의 사진도 있어요." 그 이름이 나오자 다시 한번
침묵이 흘렀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던 것인데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선생님이 방금 보셨던 그 두 여자," 그녀가 말했다.
"린디 드 볼터와 애런 드 볼터, 그들은 메리 데이질의 힘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기념비들이에요. 서로 다투는 과정에서
그들이 그녀를 죽인 거 ···."
"나를 용서해 줘, 자기야. 난 어쩔 수가 없어. 너를 사랑해."
"존," 애런은 속삭이듯 말했다. "린디 언니에게 당신이 말해야 해요."
"린디에게 말하라고? 난 못 해, 애런. 알잖아, 난 그녀와 약혼한
사이야. 발표한 건 아니지만 너희 아버지에게 이미 말씀드렸어.
그녀에게 말을 했고. 우리 가족들이 알고 있어. 그래서 내가
괴로운 거야."
연못 위에 둥근 돌멩이를 놓으면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않고
물속으로 가라앉아 자취를 감추는 것처럼 메리 데이질은 그들
사이에 아주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거의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았다. 그녀는 귀족
출신으로서 두 소녀에게 가정교사라기보다는 말벗인 것으로
되어 있었기에 매끼 식사를 그 가족과 함께해야 했다.
그는 또 한번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 온몸에 전율이 흐를 정도였다.
얼굴이 다 가려지는 모자챙 아래로 진주같이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검은 속눈썹 아래 눈은 짙은 청색이었다.
책에서 자주 읽었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장미꽃 봉오리 같다'
는 말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랠프는 하나하나 세세한 것까지 다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도록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애런은 침대에 누워 흐느꼈다. 그녀가 그렇게 운 것은 자신의
무식이 드러나서도 아니고, 계속해서 지적을 당해서도 아니었다.
그녀의 심장을 다 삼켜버린 존을 향한 열정이 아니었다면 거기
아래층에서 그런 우스운 꼴을 보이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린디를 배신하고 있는 자신을 생각하면 수치심에, 열일곱
살이 느끼는 치욕스러운 수치심에 가슴이 짓이겨졌다. 애런은
아버지와 결혼한 메리 데이질을 상상하는 것이 혐오스러웠기
때문에 '어머니'라는 단어는 물론 '계모'라는 단어조차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넌 이해 못 해." 그가 마침내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난 메리
데이질을 사랑하고 있다고. 나도 어쩔 수가 없는 걸.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애런은 말이야, 내가 그애를
오해하게 했다면 정말 미안해, 하지만 그건 내가 메리를 만나기
전의 일이었어."
그는 그녀와 결혼한 순간 더는 그들의 보호자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마음에서 이미 그들은 가장 소중한 존재에서
뒷전으로 물러났던 것이다. 그들의 존재는 희미해졌고 그는
계획을 세울 때 그들을 잊고 싶어졌다. 그들은 그가 그토록
열렬히 추구하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속한 존재들이었다.
레너드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건,"
그가 말했다. "만일 아버지가 그 여자와 결혼한다면, 아버지
자신의 행복을 포함해서 여기 우리 모두의 행복이 다 무너지고
말 거라는 애깁니다."
그녀는 영리한 여자야. 사랑은 그녀의 입을 열게하는 대신
더 깊은 침묵에 빠지게 하지. 그래, 메리는 지금, 예전과
마찬가지로, 자기를 보호하고 안전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할 작정이야. 그녀는 방향을 틀지 않을 거야.
지금, 당신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냐고요?
"내가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루시, 난 바로 총을 쏴서 자살할
거야."
"루시 ··· 비명은 지르지 마, 레너드 오빠 일이야.
오빠가 ··· 자기 방에서 총으로 자살했어. 오늘 아침에 하녀가
발견했어. 오빠는 창문 옆, 자기 책상에 앉아 있었고 ··· 아버지의
리볼버 권총이 오빠 옆에 있었어."
유구한 세계사를 보더라도 견딜 수 없는 육체적 고통에 처하지
않은 어떤 사람이 각양각색으로 펼쳐지는 인생이라는 보석을
버릴 수 있었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책 중간쯤 펼쳤다. 글자들 사이로 몇 장 두께에 걸쳐
우둘투둘 골이 생겨 있었다. 루시는 이제 미친 듯이 흥분하며
책장을 넘겼다. 마침내 그녀는 그 골을 만들어 낸 원인에
도달했다. 종이 가운데 총알이 박혀 있었다. 두 사람은 놀라서
총알을 쳐다봤다.
우리 중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법한 사람을 넌 상상할 수
없어? 난 있어. 난 악마가 있다고 믿어.
"난 들었다고, 그 화살이 귀 옆으로 날아가는 소리를 들었단
말이에요! 그리고 그게 나무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어요.
내 손이 닿았을 때 화살은 여전히 진동하고 있었어요."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cimeliumbooks
@chae_seongmo
#죽음을걷는여자
#메리피트 #키멜리움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살인 #추리소설 #가족 #사랑
#기념비 #침묵 #다툼 #전율
#배신 #수치심 #결혼 #미래
#오해 #과거 #증거 #자살 #악마
#책 #도서 #독서 #철부지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