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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손에 닿았을 뿐
은탄 지음 / 델피노 / 2025년 2월
평점 :
상처받은 내게 손 내밀어 준 그 남자,
그 남자를 믿어주는 여자
"저도 하나 질문할게요. 제 초능력 정말 믿어요?
정확히 언제부터."
정신이 이상한 남자였다. 초능력자라고 말하는 이 남자.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손을 잡고 말을 하면,
말하는 대로 말이 되게 하는 말이라니.
위잉위잉, 착착, 쿵쿵. 모던 타임즈 세계로 돌아왔다.
잡생각은 뒤로하고 속도를 올려야만 했다. 오전에 많이
찍어놔야 야근하지 않기 때문이다. 옆에서 채 반장이 뭐라고
떠들어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는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우선 가족 중엔 아빠와 나만 돈을 벌고 있다. 그런데 아빠의
양봉 사업은 갈수록 버거웠다. 내 돈은 할아버지 병원비로
나갔다. 병원비만 나가면 문제가 아니다. 전반적으로 통원
치료 수행이 내 몫이어서 쉽게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그게 두번째 이유다. 치매 말기인 할아버는 유일하게 나만
손녀딸로 인지했다.
서은우 소식이 궁금하긴 했다. 이름만 기억 안 났을 뿐,
내 기억에 독특했던 '꼬마 서은우'는 일하면서 자주 회상하던
남자였다. 서울에 올라오면 나를 찾아와. 환상을 보여줄게.
그가 떠날 때 했던 말이다. 그때 그 아이만이 내 마음을 알아
줬기에 연락을 안 했어도 얼굴이 눈앞에 자주 아른거렸다.
탓, 탓, 탓. 그게 날 버티는 힘이다. 난 사회를 모순덩어리로
규정하고 그 핑계로라도 남을 탓할 것이다. 그래야 훗날
내 탈출에 명분이 생긴다.
사실 나는 해리성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해리'는 정신적
으로나 행동적 과정이 내 나머지 정신적 활동과 분리시켜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로 나타나는 증상이란다.
담당 신경정신과 의사는 스트레스성으로 인해 단편적 기억이
사라진 것 같은데 애써 찾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단식할 줄 알아야 욕망이 사라진다. 그러면 조급함도 사그라
진다. 조급함이 사라지면 좀 더 여유 있게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 이게 핵심이다. 다른말로 시나브로 전략이라고 한다.
위잉위잉, 쪼르르, 퉤퉤. 서울 생활 한 달째. '사람저널' 신문사
입사 후 여기서 내 귀에 들리는 소리가 저것뿐이다. 별다른
의성어는 필요 없다. 그냥 내가 정했다.
이건 지영씨에게만 말하는 건데요. 사실 저는 마인드컨트롤
초능력자예요. 저는 말을 하면 말을 하는 대로 말이 이뤄지게
말을 하는 말하는 초능력자거든요.
저는 제가 말한 것을 상대가 실행하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요.
근데 아직 영속성이 없죠. 나중에 상대방이 '왜 저 사람의 요구에
나는 응했을까' 의심이 들려는 걸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일종의
개연성을 연출하는 것입니다.
물론 물리적 명령은 오 분이 지나면 더는 효력이 발생하지 않아요.
그래서 조건제시를 정확히 해야 합니다.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방금까지 안 하겠다고
역정 냈던 양반이 프라이팬 달걀 뒤집듯 혼쾌히 대답했다.
시선을 주변으로 돌린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럼 뭔가 후유증은 따로 없어요?
쓸 때마다 머리가 좀 아프긴 해요.
앞에 있는 이 여자가 서은우와 깊은 연관이 있을 거라
직감적 으로 알 수 있었다. 어깨에 얹힌 그녀이 샤넬 끈이
살며시 흘러내리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여 고쳐 메곤 내게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이윤경 기자입니다."
"어쨋든 딱 오 분이에요."
초능력 효력은 오 분간만 유지된다. 그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그가 편히 잘 수 있도록 해줘야 했다. 내 의도를 알아차린
그는 고맙다며 머리를 비비며 더 깊이 파고들었다.
불행은 행복에 다다랐을 때 찾아온다고 했던가.
왜 우리는 좋아졌다고 할 때마다 새로운 벽이 세워지는가.
사랑만 하고 살기엔 우리의 인연이 그리 박복한가 싶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얼마 후 서은우가 사라졌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delpinobook
@chae_se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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