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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의 절반은
곤도 후미에 지음, 윤선해 옮김 / 황소자리(Taurus) / 2024년 8월
평점 :
우리 모두에게는, 파란색 캐리어 안에 담고 싶은
'또 다른 나'가 있다.
지하철 승객의 90퍼센트가 일터로 향하는 이 시간에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며 놀러가는 사람이라···,
도리가 아니다. 캐리어는 메탈릭 실버블루, 크기로
짐작건대, 해외 여행이다. 행선지가 어디일까.
좋겠다···, 마미는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여권조차 없다.
뉴욕에 간다고 해도 즐겁기는커녕,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길을 헤메거나 어떤 사건에 휘말려서
마음먹은 대로 즐기지 못한채 돌아올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달랜다.
항상 이런 식이다. 하지 않을 이유 같은 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다들 갖가지 옷이나 신발 등을 죽 나열해 두고
있는데, 그 여성이 시트 위에 전시해 둔 건 중간
사이즈 캐리어 하나뿐이었다. 가죽으로 만들어져
디자인은 클래식하지만, 컬러가 눈이 번쩍 뜨이는
파랑이었다. 딱 오늘 하늘과 같은 색감의 선명한 파랑.
"미안, 나 혼자 갈게."
하고 싶은 것을 누군가의 결단에 의탁하고는
대롱대롱 애타게 매달리듯 하는 거, 이제 더는 싫다.
무심코 손가락을 주머니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한 장의 종이가 손가락에 닿았다.
뭐지? 종이를 꺼냈다. 두 번 접힌 메모지를 펼쳤다.
'당신의 여행에 많은 행운이 깃들이기를···.'
갈겨 쓴 듯한 한 줄이었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여행이 다시 또 떠나고 싶어질
만큼 즐거운 추억이 될지, 학을 떼고 질려 버릴
악몽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한 가지,
마미는 오래된 소망을 이루었다.
혼자서,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자신이 되었다.
길을 헤매고, 혼자서는 레스토랑에 못 들어가서
결국 호텔 룸서비스를 시키고, 너무 걸어서 신발
뒤축이 벗겨지기는 했지만, 그녀는 오래된 꿈을
이루고 무사히 집으로 돌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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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카의 눈은 정확하다. 하나에는 여행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부끄럽기 때문이다.
나름 관광도 하고, 거리를 걷기도 한다. 맛있는 것도
먹는다. 최고급 명품점에도 들어가고, 마트나 작은
잡화점을 구경하면서 선물이나 기념이 될 만한
것들도 산다. 호화스러운 호텔에 묵는것을 제외하면
사실 그게 전부다.
'절대로, 지지 않아.'
마미의 글씨였다. 스스로를 다짐하고자 쓴 것인지,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었는지···. 신경이
쓰였다.
나뿐만이 아니구나. 숨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 누구나 하나쯤 그런
부분을 지니고 사는지도 모른다. 가츠라기는
부끄러운 듯 웃었다.
"오랜만에 타인에게 말했네요. 비밀까지는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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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자주 들었다. "반드시 후회할 거야."라는
말. "너는 항상 되는 대로 대충 살고, 충동적이란 말이야."
라는, 부정할 수 없는 평가와 함께
불행하지는 않다. 일도 있고, 좋아하는 여행도
갈 수 있고, 남친도 있다. 마미와 하나에와 유코라는
좋은 친구들도 있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캐리어가 맞지. 마미도 좋아하는
배우를 만났고, 그 배우가 허그까지 해줬다며 난리가
났었다.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이렇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도 있다. 어느쪽을 추억으로 삼고, 어느 쪽을
잊으면 좋을지는 명백했다.
"잘 있어. 앞으로 연락하지 말고, 공항이나
비행기에서 만나도 아는 척하지 마."
거울을 보고서야 알았다. 아까 산 스카프의
파란색과 캐리어의 파란색이 깔맞춤한 듯 똑같은
색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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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는 여행을 할 때 제 가치를 발휘한다.
장식품 같은 파티 핸드백이 아니라 혹사당하는
캐리어 같은 인생이 훨씬 자신과 어울렸다.
유코는 살짝 손을 뻗어 캐리어를 어루 만졌다.
자신의 것이 아닌데, 자기 자신처럼 느껴졌다.
여자들 사이에도 질투와 독점욕은 있다.
그러나 일본인 여고생도 아닌 어른 프랑스 여성이
그런 마음을 갖기도 하는구나. 메리는 장난스럽게
계속 웃었다. 그 웃음으로 알아차렸다.
친구가 행복해지는 것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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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리의 애정에도 욕망이 섞여 있었다. 에릭의
애정이 자신의 욕망과 등을 맞재고 있다고 해서
나무랄 수는 없다. 다만 성실하지 못한 것은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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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인생에서 사랑에 빠질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그렇게 무언가와 만날 일은 생길 것이다.
자신이라면 하루나가 독립할 때도, 의연하게 잘
보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왜, 내 감정조차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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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손바닥 같다. 무언가를 쥐기 위해서는
손바닥 안에 있는 것을 버려야만 한다. 불현듯
생각이 스쳤다. 자신은 무엇도 버리고 싶지 않아서
변하지 않은 채로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iotaurusbooks
@chae_se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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