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유 어게인
김지윤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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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요, 나의 맛나 도시락

각자도생의 우리를 위로할 진짜 어른이 나타났다.


"세상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없다고 하잖여?

마음 병 앓지 말고 속앓이도 하지 말고!

해브 어 나이스 데이 되슈. 씨 유 어게인!"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으로 담아 쓴 쪽지를 은박지에

잘 싸서 넣고, 그 위에 고슬고슬한 밥을 담아 오늘의

메시지를 잘 숨겨놓는다. 팔자 주름 옆으로도 주름이

몇 줄이나 깊게 패인 금남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금남이 여러 역사를 통과하듯 살아오면서 이루고

싶은 건 딱 하나, 그냥 노인이 아니라 어른으로

살고 싶은 마음뿐이다.


깊은 밤처럼 빠져들 것만 같은 아기의 눈을

보고 있자니 괜히 눈물이 났다. 앞으로 이 핏덩이

같은 아기를 책임질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정이는 수배자였디. 아기 아빠라는 남자가 여러

사기를 쳐놓고 모두 정이의 탓으로 돌렸다.

보육원에서 나와 갈 곳이 없을 때 만난 사람이었다.


금남이 무슨 말만 하면 아기가 웃었다. 큭 소리를

내며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잘 웃는 아기를 어떻게

두고 간 거야.


확신한 증거는 도시락이 있는 진열장을 보지 않고

아기만 얼핏얼핏 곁눈질로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혹여나 또 도망칠까 봐 태연하게 행동했다.

여자도 아기를 오래 보고 싶은지 제일 끝에 줄을

섰다.


정아가 더 말을 하지 않아도, 실핏줄이 터진 흰

눈자위만 봐도 그간의 고생이 느껴졌다.


외로움도 습관이야. 그렇게 마음에 문 걸어

잠그고 있는 것도 다 습관이고 버릇이라고.


신이 이런 못난 인연을 주신 건요. 그런 사람

만나고, 또 그런 남자를 만난 건요. 앞으로 좋은

인연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알아볼 수 있도록.

보는 눈을 선물로 주신 거예요.


누군가가 처음 해준 이 말이 아까워 삼킬 수가

없었다. 차마 삼킬 수가 없어 입을 다물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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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인지 고라니인지 알 바 아니다. 스물 살이

넘으면 모두 대학에 가고 근사한 어른이 되는 줄

알았지만, 형을 보고 알았다. 스무 살이 넘어도,

술집에서 당당히 술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된다고

해도, 모두 어른은 아니라는 것을. 그저 자기 

앞가리만 해도 꽤 잘 사는 게 아닐까 싶다.


뉴스 보면 왜 정말 사람이 애한테 저런 짓을

한다고? 이런 진짜 짐승만도 못한 사건들 있잖아요?

그런 걸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왜 나한테 오지

않고 저기를 가서···, 나한테 왔으면 정말 잘해줄

텐데. 정말 사랑해줄 텐데.


도움이 필요할 땐 청하는 것도 용기야. 손 내밀 때

내밀지 못하면 놓치는 것도 많아.


사실··· 슬픔을 인정하면 무너져내릴 것 같았어요.

웃으면 다 괜찮아진다고 하잖아요. 책에서도

TV에서도, 웃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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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 결절에 걸려 기업 후원까지 끊긴 성악가에게

달리 무슨 할 일이 있을까. 극적인 성공 이후

갑작스럽게 자신을 덥친 성대 결절, 그리고 냉정하게

끊겨버린 기업 후원은 충격이었다.


1년 넘게 새벽을 여는 중이다. 게다가 요즘은

이 일이 꽤 즐겁다. 자신을 덥친 성대 결절 사고

또한 누군가를 만나게 하려는 의도인 것 같아

감사했다. 그만큼 소중한 누군가가 생긴 것이다.


무슨 소리지? 정이는 휴대전화를 들었지만

전화하지 않았다. 불안한 예감이 현실이 되는 순간. 

늘 그런 상황을 맞으며 살아왔던 터라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한 번도 넘지 못 한 문턱을 넘는 날이었다.

온몸이 터지도록 마음을 부른 오늘. 금남의 말이

맞았다. 사랑하기만 해도 부족한 시간. 그저 사랑만.

보이지 않는 것을 열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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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말만 보면 안타까웠다. 사지육신 멀쩡해 뭐가

모자라 저러고 다니는지. 여기저기 밥집에 들어가

이것저것 남은 것들 얻어 먹으며 사는 모습을 보면

속이 터지기도 했다. 자기 앞가림은 하고 살아야지.


금남이 동경하는 미국에서 전시를 열고, 거기서

평범한 집안의 남자를 만나 결혼도 했다. 훗날 

미국에서 노년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금남의 꿈을

자기 삶에 투영했다. 그게 보답이니까.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꿈에 탈이 났다. 목구멍에 큰 바위라도

걸린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위가 비틀리고 속이

불편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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