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은 창백한 손으로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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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절대적이지만 진실에 뒤섞이는

욕망은 상대적이다. 기억의 빗장이 풀리는 순간, 

창백한 진실이 드러난다


새삼 인간의 뼈가 이렇게 단단했나 싶다.

남자는 다급한 마음으로 삽을 다시 들어 올렸다.

그러고 고통을 끝내주겠단 선한 마음으로 머리를

다시 한번 내리찍었다. 쩍. 잘 익은 수박이 갈라지는

소리가 적막한 산을 울렸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연우는 이 사건에

뭔가 복잡한 내막이 얽혀 있음을 직감했다.

"현장에 가보기도 전에 정보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담당 수사관에게 편견이 생길 수 있어."


"그나저나 그쪽에선 선뜻 우리를 반겨줄까요?"

연우는 상혁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것 같았다.

형사들끼리도 암묵적인 영역 다툼이란 것이 있다.


언제부터일까. 도진의 마음속엔 선 하나가 그어져

있었다. 그 선 너머로 누구도 들어오게 한 적이 

없었다.


"강원도 선양군 에덴 종합병원"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던 이름이었다.

그동안 잊고 있던 거센 바람 소리가 이명처럼 들려오는

듯했다.


"아까도 조금 이상하다 싶었는데, 피해자 얼굴이 약간

웃음을 짓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요?" 피해자의 얼굴은 평온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처럼 보였다. 사방에 튄 피와는 대조적이었다.


강력반 13년 차지만 이런 사건은 처음이다. 원한의

냄새가 난다. 범인은 피해자를 반드시 제 손으로 죽이고

싶어 한 것이다.


누군가 15년 전의 그 일을 세상에 까발리겠다며 자신을

협박하고 있다. 도진은 숨 막히게 두려웠다. 누군가에

의해 그 일이 세상에 까발려지는 것이 두려운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잊고 있던 기억을 직면하게 되는 것이

두려운 것인지 헷갈렸다.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있다. 지나고 나면 이미 정해진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은 그런 일들이.


화염의 뜨거운 열기 같은 것이 감지되었다. 그 순간

자신이 목격하고 있는 장면의 실체를 파악하곤 비명을

지르려는 스스로의 입을 다급히 틀어막았다.


모두를 지옥으로 보내놓고, 본인은 기억하지 못한다니


벌어진 입 안에서  뭔가 들어 있었다. 저게 뭐지?

이상한 직감에 이끌려 그 앞으로 다가갔다. 죽은 이의

입안에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온몬에 소름이 돋았다.

끈끈한 침과 피에 젖어 있는 그것은 다름 아닌 쪽지였다.

"이들은 왜 죽어야만 했을까? 알고 싶다면 오늘 자정,

그곳으로."


그 환자는 눈을 부릅뜨고 있었지만, 도진은 그 환자가

쳐다보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곧이어 우지끈,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환자복이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park.young_writer

@chae_se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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