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의사의 코로나
임야비 지음 / 고유명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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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한가운데서 코로나 전장의 사투를 기록한 증언문학.

숫자가 된 죽음들, 그들을 붙잡던 나는 괜찮은 사람이었나?


엄마의 눈동자 속에 내 눈동자가 보였다.

"엄마, 걱정하지마. 금방 끝날 거야."

그것은 엄마 눈동자 속에 있던 내 눈동자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 눈동자는 죽음과 고통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불현듯 기도란 무엇인가를 극복하기 위한 침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의 모든 불효자는 못된 놈들이라기보다는 바보 천지들이다.


산속에 파묻혀 있는 병원은 천명이 넘는 정신질환자를 넉넉히

수용하고도 남을 만큼 큰 규모였다. 급격히 공간이 팽창하면서

시간과 시설이 희석된 듯, 모든게 낡고 열악했다.


호기심 반 존경심 반으로 한 질문이었다.

"이런 복잡한 일은 누구에게 인수인계하느니, 그냥 혼자 해버리는

게 낫습니다."


촌극, 라이브로 개그 콘서트를 관람한 느낌이다. 정 과장은

담배를 끄고 바로 며칠 전 설치했던 이동식 간이 변기를 치우러

병동으로 향했다.


인간의 몸이란 작은 압력을 애지중지 가둬 놓는 가년린 풍선일지도

모른다. 품은 압력의 '동적인 평형' 상태가 바로 생명일 것이다.

이렇게 압력은 터져서 흩어져 버릴 생명을 밀봉하고, 쪼그라드는

생명을 팽창시키는 힘이다.


열이란, 몸 안으로 위험한 것이 들어와 큰일이 났으니 꼼짝하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라는 일종의 경고 신호다.


냄새가 사라진 세상은 어떨까?

코로나 후유증으로 후각을 상실한 환자들을 보며 든 상상이다.

후각 상실증에 덧붙여 전 인류가 마스크로 코와 입을 막아 버렸다.

합병증이든 예방이든 코로나 때문에 전보다 냄새를 맡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다.


자식이 노벨상을 받는다 해도 낳은 엄마에게는 안쓰러운 지적 

장애아일 뿐이다.


내가 아는 한, 고령의 중환자에게 돌이키기 힘든 몇 가지 처치와

시술이 있다. 장루, 투석, 기관 절개술이다. 물론 젊은 환자라면

회복을 위해 임시로 시행한 위 세 가지를 전부 원상 복구 할 수

있다. 하지만 엄마는 고령의 패혈성 쇼크 환자다.


의학은 과학의 범주에서 내쫓길 정도로 '예외'가 너무 많다.

그래서 의학은 자신의 치부인 '예외'를 확률과 통계로 덕지덕지 

메워 버린다.


우을증 환자들은 조현병 환자와 달리 자신이 우울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이 세상에 말을 던져봤자 소통되지

않을 걸 알고 아예 입을 닫아 버린 것일 수도 있다.

말이 없는 곳에서 소통과 합의는 차단된다.


길고도 긴 낮과 기나긴 밤들을 ··· 저는 믿어요 ··· 불쌍하고

또 불쌍한 ··· 울고 계시군요 ···.

엄마. 이제 쉬게 될 거예요.


평생 무뚝뚝했던 아버지가 엄마의 말라붙은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 행위는 너무나 순수해서 소년의 뽀뽀 같았다.


"내가 얼마나 남은 것 같니?"

그날 밤, 외출을 저지당한 아버지가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내게 물었다. 기습 같은 질문에 나는 크게 당황했다.

내 귀, 내 청력까지 이상해진 느낌이었다.


아버지는 이 헤맴의 유전자를 Y염색체에 새겨 나에게 물려

줬을지도 모른다.


이곳의 의료 마인드는 '환자 건강이 최우선'이 아니라 '자신이

책임질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이것이 내가 직접 격었던 공공 의료의 근원적인 문제였다.


가장 못난 의사가 환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못난 짓이 

바로 방치다. 그걸 모르는 의사는 없다.


봉사도 좋지만 어른 거기서 나와. 거기 보람도 없고 희망도 없어.


아버지는 늘 고팠던 그 숨이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아버지는 소원대로 짧은 고통만 겪고

곧바로 엄마 곁으로 떠났다. 두 분이 약속이나 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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