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미날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2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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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1]을 읽고 나서 한참동안 다른 책들을 기웃거리다 이번에 [제르미날 2]를 마저 읽었다. 그러고 보니 읽다만 책들이 꽤 된다.특별히 계획적이거나 목적적인 독서를 하지 않고, 내키는대로, 읽는 스타일이라 '속죄', '돌의 연대기','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난한 사람들', '안녕 주정뱅이','줌인 러시아','거대한 전환'등이 뒤적거리다 다 읽지 못한 책들이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제부턴 새책을 잡지 않고 위의 책부터 마저 읽어야 겠다.


[제르미날2]를 읽으면서 지난번 [제르미날1]에 대한 리뷰가 상당히 미흡하다는 생각에다 에밀졸라는 정말 위대하고, 뛰어난 작가임에는 틀림없다는 사실을 다시한 번 강조해야 겠다는 마음이 든다. 그는  자연주의적 문학관에 입각해 인간의 이중성이나 추악함에 대해 매우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서술하면서, 인간과 사회의 본성을 날카롭게 꿰뚫는 혜안을 갖고 있다.


1789년 이후 탐욕스럽게 살을 찌운것은 부르주아들뿐이었다. 그들은 노동자에게 자신들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부르주아들은 노동자들이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선언했을뿐 그들의 삶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랬다. 그들은 마음대로 굶어죽을 수 있었고,실제로도 그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1권 226쪽)


"임금을 인상한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나? 임금은 임금철칙설(임금이 생존비 수준에서 결정된다고 리카도가 처음으로 주장했다)에 따라 생존에 필수적인 적은 금액으로 고정돼 있어. 노동자들이 맨빵만 먹으면서 번식을 하는데 꼭 필요한 금액만큼만... 임금이 너무 내려가면 노동자들이 굶어죽지. 그럼 새로운 인력이 필요하니까 임금을 올리게 되는 거야. 반대로 임금이 너무 올라가면 넘치는 노동력 땜에 임금을 다시 깎게 되지... 빈 뱃속이 그렇게 자연적으로 균형을 잡아나가는 거지. 그러니까 노동자들은 굶주림이라는 도형장에 영원히 갇혀 있는 셈인 거야.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정부주의야. 이 땅에 더이상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는 거지. 피로써 세상을 씻어내고, 불로써 정화하는 거라고!"(1권 227쪽)


(프랑스 무정부주의사상가이자 사회주의자 프루동. 그는 자본가의 사적 소유를 부정하고, 힘 대신 정의를 가치의 척도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사상은 파리코뮌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마르크스는 '철학의 빈곤'에서 프루동의 '빈곤의 철학'이 충분히 혁명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채탄부로서 성실한 일처리,책읽기와 토론을 통해 급기야 탄광의 지도자가된 에티엔. 그가 읽었던 책과 토론 주제는 당시 성행했던 마르크스의 이론과 미하일 바쿠닌의 급진적 무정부주의 사상(소설에서는 기계공인 수바린이 신봉한다)이다.


 2권에서 에티엔은 탄광파업을 이끌다 광부들과 어린아이 등이 진압군인의 총에 학살당하며 실패로 끝난후 곤경에 처하게 되는데 이때의 에티엔 생각에 대한 서술을 보자.

 

" 한 달 전 숲속에서 롸스뇌르가 자신에게 경고했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군중의 배은망덕함으로 인해 고초를 겪을 날이 올 것이라던. 정말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아닌가! 자신들을 위해 해준 것들을 어떻게 그리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는지! ~분노뒤에는,에티엔 자신의 침몰과 그가 품었던 야심의 비극적인 종말에 대한 절망감이 감춰져 있었다. ~그는 너도밤나무 아래 모였던 3천명의 심장이 그의 심장에 응답하며 뜨겁게 뛰는 소리를 들었던 때를 떠올렸다.~가슴벅찬 꿈들이 그를 도취시켰다. 몽수가 그의 발밑에 있었고, 더 나아가 저멀리 파리에서 어쩌면 국회의원이 되어 사자후를 토해내고 부르주아들을 호령하면서 국회 연단에서 연설을 하는 첫번째 노동자가 될수도 있었을 터였다."(2권, 246,247쪽)

 

물론, 우리 노동자들의 삶이 이 소설에서처럼 비참하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마치 우리 80,80년대 노동운동 현장과 노조활동가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는 뛰어난 우리 노동소설을 보는 듯 하다. 2권에서는 탄광의 파업과정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는데,파업의 절정먹을 게 없는 탄광노동자들의 시위대가 탄광회사 사장집에 이르른다


부르주아의 상징인 탄광회사 사장 엔보.."노동자들은 굶어 죽어가는데 자신은 배탈이 날 정도로 산해진미만 탐하는 비열하고 뚱뚱한 돼지".라는 욕설을 듣고 있는 그는 실상 부인의 외도로 인한 부부생활의 위기를 겪고 있으며 배고프더라도 차라리 무지한 탄광노동자들처럼 자유로운 섹스를 꿈꾼다또한 그는 혁명을 통한 인류의 행복을 믿지 않는 불행한 인간인 것이다.


저 더러운 부르주아놈들언젠가는 저들의 배가 터질 때까지 그 속에 삼페인과 송로를 마구 쑤셔넣어주고 말 테다.

빵을 달라빵을 달라빵을 달라!”


빵을 달라고? 사람이 빵만 먹고 살 수 있는 줄 아나보지어리석은 인간들 같으니라고!”

그는 빵을 먹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고통받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삭막해진 부부생활,고통스러운 그의 삶 전체를 떠올릴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혀오면서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헐떡거렸다도대체 어떤 바보가 부의 분배에 모든 이의 행복이 달려 있다고 주장한단 말인가혁명주의자들의 그런 허황된 꿈은 기존의 사회를 무너뜨리고 또다른 사회를 세울 수는 있다하지만 그것으로 인류에게 기쁨을 가져다주거나빵을 나눠줌으로써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는 없다오히려 이 세상의 불행을 더 확산시키면서사람들을 조용한 본능의 충족에서 끌어내 채워지지 않는 정념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다.”(2권 100,101)

 

파업은 결국 군인들의 총에 의해 진압되고탄광노동자들은 패배한다굶어 죽지 않기 위해 어쩔수 없이 탄광갱으로 내려가는 노동자들... 그 속에 카트린과 에티엔도 있다그러나 무정부주의자 수바린이 방수벽을 무너뜨려 많은 노동자가 죽는다카트린은 죽고 에티엔은 간신히 살아남는다주인공 엔티엔은 이 탄광을 떠나 파리로 가기로 한다떠나는 길에 만난 초췌한 탄광노동자들... 그는 다시 생각한다.

 

다윈의 이론에 따라 어느 한 계층이 잡아먹혀야만 한다면활력넘치는 새로운 계층인 민중이 향락에 빠져 피폐해진 부르주아들을 집어삼키는 게 순리 아니겠는가새로운 피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 것이다낡고 오래된 국가들에 변혁을 가져올 야만적인 침략에 대한 기대 속에그의 마음속에서는 임박한 혁명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되살아 났다노동자들이 주체가 되는 혁명그 진정한 혁명의 불꽃은 저기하늘을 붉게 물들이면서 떠오르는 태양처럼 붉은 빛으로 이 세기말을 불타오르게 할 것이다.”(2권 366)

 

이러한 생각끝에 그의 사상은 서서히 변화하게 된다온건한 개혁주의자 라 마외드의 말처럼 눈에 보이는 것마다 파괴하는 것폭력이 과연 옳은 것인가언젠가 합법적인 것이 훨씬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실제 1884년 3월 제정된 법에 따라 노동조합 결성이 합법화되었다)

 

에티엔이 떠나는 길...4월의 태양아래 나무의 새순들이 기지개를 활짝 켜면서 초록빛 나뭇잎을 터뜨리고새로운 풀들이 대지를 뚫고 나올 때이 소설은 복수를 꿈꾸는 검은 군대가 밭고랑에서 서서히 싹을 틔워 다가올 세기의 수확을 위해 자라나고 있었다그리하여 머지않아 그 싹이 대지를 뚫고 나올 것이었다.”(2권 370) 라는 끝문장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 책은 풍속소설노동소설성장소설의 요소를 고루 갖춘 역작으로 저자인 에밀졸라는 치밀하고 ,성실한 현장조사를 통해 탄광노동자들의 곤궁한 삶과 파업에 이를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사실적 묘사를 통해 사회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 주며 혁명을 통한 역사발전의 가능성을 예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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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17-12-13 2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견해에 동의합니다. 저도 이 소설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sprenown 2017-12-13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반갑습니다. 새삼 에밀졸라의 위대성을 느끼게 해준 것 같아요 르공마카르 총서를 다 읽지는 못하더라도 ‘목로주점‘을 다시 읽고 ‘나나‘는 읽어 봐야겠어요^^.

syo 2017-12-13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빨갱이 빨갱이 입에 달고 다니면서 아직 이 책을 못 읽어봤다는 게 좀 부끄럽네요. 의욕적으로 독서에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sprenown님 감사해요!

sprenown 2017-12-13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추천합니다.

cyrus 2017-12-14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헌책방에서 90년대에 나온 두 권짜리 <제르미날>을 샀어요. 땡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몇 달 뒤에 문동 번역본이 나왔어요.. ^^;;

sprenown 2017-12-14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래도 소장가치는 있을거에요^^.

레삭매냐 2017-12-20 1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밀 졸라의 책들을 줄줄이 나오는데 쟁여만
두고 한 권도 못 읽고 있네요.

그전에 <제르미날>도 무슨 행사로 가서 문동
창고에 가서 업어왔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겠네요.
읽을 책들이 너무 많아서 정말 후순위로 밀리
는 게 아쉽네요.

sprenown 2017-12-20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쟁여두면서 ‘언젠가는 읽겠지‘라는 마음이지만,그런 책들이 너무 많아 묻혀버린다는 문제가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