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존재 1 - 담박한 그림맛, 찰진 글맛 / 삶과 욕망이 어우러진 매콤한 이야기 한 사발
들개이빨 지음 / 애니북스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말에 일어난 골치아픈 일이 연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 과실도 있기 때문에 반성과 동시에 자책을 하면서도, 그 상황이 오기까지에 대한 억울함도 있었다. 그 억울함은 예상보다 크게 내 마음에 자리하고 있었나 보다. 어쩌면 필요보다 더 감정적으로 흔들린 게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 안에 생긴 필요 이상의 걱정과 피해의식을 깨닫고 나니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물론 그럼에도 그 일에 대한 감정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다. 내 잘못을 바로잡으며 그 상황에 대한 잘못도 함께 해결하고 싶어졌다. 너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서.

마음이 편안해지기까지 사람들과 대화하고 위로받고 맛있는 걸 먹었다. 쭈꾸미볶음, 해물전골, 파스타, 우동, 부페 그리고 내가 만든 집밥. 그 모든 음식들은 입을 통해 몸으로 전해졌고 지금쯤 나갈 것은 나가고 나머지는 피와 살이 되었을 것이다. '식탐'이라는 말은 주로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때로 저지르고 후회하더라도 탐하게 되는 때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온다. MSG나 몸에 안 좋다는 것들이 위로가 되는 날이란 대부분 견디기 힘들 만큼 구차하거나 슬프거나 비참한 날이니까. 힘겹게 이어지는 먹고사니즘의 번뇌를 그렇게라도 잠시 내려놓고 싶은 날이 있으니까. 너무 잦으면 문제겠지만 그래서 가끔은 마음껏 탐하고 싶다. 

왜 인간은 광합성을 못할까라는 주인공의 혼잣말이 한때 나에게도 큰 화두였다. 배고픔이란 걸 느끼지 않는다면 세상은 더 평화롭지 않을까, 삶은 덜 비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엽록체를 갖지 못한 인간은 영원히 불완전하다는 생각이 어린 마음을 서글프게 했다. 그 사실이 여전히 서글프지만 그래도 괜찮다. 유양과 박병처럼, 나도 또다른 먹는 존재와 함께하니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 캡슐로 배고픔을 이겨낼 수 있다 하더라도 인간은 배고픔이란 양아치를 늘 끼고 살아야 하는 먹는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모두 누군가와 함께라면 좋겠다. 가족, 친구, 연인 때로는 개와 고양이 같은 동물처럼, 이 질낮은 양아치를 버릴 수 없는 누군가와 하루 한끼는 같이 먹을 수 있기를. 그럼 이 구차한 배고픔도 가끔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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